난 힘들게 노력했고 멀리까지 도달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몰락해야만 했고 내가 가진 걸 전부 잃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헤, 그럴리 있겠어? 말했잖아~ 심박이 오르고 있다고 말이야. 내가 인간변절자인건 인정하지만, 생리적으로 인간이 아닌 건 아니야. 어제도 쇠질 잘못하다가 손에서 피나는 바람에 큰일이었다구~ 니시시, 보여줄까?"
로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펼쳐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엄지에 마법소녀 캐릭터가 프린팅 된 분홍색 밴드가 감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어제 감았을텐데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는지 기름때가 묻어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계가 기계를 쫓는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 나는 블레이드 러너 같은게 아냐. 그래도 설마 가게 앞에서 얼쩡이는 멋모르는 순박한 아가씨가 구 도시의 로봇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앞선 몇 가지 장난질을 해 본 거니까. 그런데- 웁스. 이게 웬 걸~ 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게 이런 말이었다니."
결국엔 이 경박해보이는 주인장이 첫 눈에 반했다던가, 그림이 좋다던가 하고 헛소리처럼 흘린 말들이 마냥 마음에 없던 소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절대적으로 기계를 신봉하는 로미였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이 원하던 존재를 차아내는 데에는 인간 그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있던 본능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었다. 로미도 그것에 대해서 '자존심이 상한다'라고 표현을 했던 것이다. 혹자에게는 메카프릭, 인간변절자, 철혈의 장인이라 불리우는 자신이었지만, 최종적으론 자신 또한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기 때문에. 그런 로미는 처음부터 이러려고 끌어드린 것 같다고 말하는 쥬의 말에 팔짱을 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넌 내가 찾고있던 병기는 아니야. 오늘 만남은 순전히 100퍼센트 운. 그 뿐이야. 쥬, 너는 보조 목적으로 만들어진 첩보용 개체지? 그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구. 나는 그 당시에 직접적으로 사람을 배제하던 전투용 친구들을 찾고있었어. 하지만~ 난 보다시피 이렇게나 허약한데다가~ 장사가 예상보다 너어무 잘되는 바람에 밀려오는 주문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거드은. 나는 엔지니어지, 현장요원은 아니잖아~? 그리고 이 도시의 멍청이들은 서로 죽이는 데에만 관심 있으니 믿을만한 사람을 구할 수가 있어야지~ 헤헤헤. 그래서어... 쥬, 네가 그걸 도와줬으면 해."
로미가 팔짱을 끼던 팔로 진열대를 기대고 앞으로 가까이 고개를 내민다. 목소리가 차지하는 지분에 공기가 다량 함유되면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된다. 단 둘만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가 쥬의 귓가에만 맴돌 수 있도록.
"알고 싶지 않아? 너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친구가 이 도시 땅 속 어딘가에 파묻혀있을 수도 있다구~ 맞아, 마치 예전의 너처럼 말이야. 쥬, 너도 알겠지만 네가 굉장히 특이케이스인거야. 세상 어떤 로봇이 스스로 부팅을 하고 자기 혼자 명령을 지우고 하달해가며 움직이겠어. 넌 이미 그 자체로 엄청나게 귀한 존재인거라구. 다른 친구들은 그러지 못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밑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며 시그널 오프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 어쩌며언- 아주 진짜 만약에, 누구는 벌써 리부트되어 어디선가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내 생각엔 아마 가능성 낮아. 그랬다면 도시는 벌써 난리가 났을테니까. 아, 맞아. 이미 지금쯤 르메인에게 붙잡혀서 갖가지 실험을 당하고 있겠지. 물론, 패밀리가 그렇게나 바라는 '도시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말이야~"
거기까지 말한 로미는 휘어진 눈매로 미소짓고 쥬를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로미 또한, 그녀만큼은 아니었지만 살갑게 웃고있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순전히 이 가게에 찾아온 사람들의 몫이었다.
"너같은 존재가 이 우주 어딘가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찾아줘야 되지 않겠어? '전우'가."
거절하자 제롬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저 혼자 위스키를 홀짝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적당히, 취기가 오를 만큼만 마셨긴 하겠지만서도. 그는 플라스크를 까딱이다 에만의 농담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게 동업자는 너 하나뿐이니까 걱정마. 그녀석은 개인적으로 날 도와주는 거니까."
그는 능청스레 농담을 받아치며 느긋한 시선으로 에만을 바라보았다. 징그럽다 말하면서도 하나하나 관찰하는 모습에 그는 무언가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는, 말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가면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듯 마음속 가면 너머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그렇다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을까. 가면 너머의 모습은 여전히 자신의 친구인 것을.
"나도 무서워. 네가...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수도 있다는게."
사진을 내려놓은 에만을 보며 제롬 역시 중얼거렸다. 동질감이 느껴졌고, 내게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최고의 동업자이자 내 친구. 감정 없는 기계음이 튀어나오자 쓰게 웃었다. 네가 말한 것은 확신을 가져다주지 못 했다. 정말, 내 친구야? 5년동안 네 본모습을 보지 못 한 탓일까, 네가 말하는 것들은, 전부 믿기지가 않아. 참 우습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에만이 말하는 것이라면 뭐든 믿었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이프가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다가온 에만이 자신의 눈 앞에 보인다. 오늘도 그래. 넌 무기를 쥐고 떨고 있는게 다였고, 움직임이라곤 항상 꿈떴지. 어느정도 눈치는 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참.
"내 친구. 뭘 묻고싶나?"
바르르 떨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순수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이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그게 내가 정말로 바라는 모습이다. 가면을 배제하고 이성을 내려놓고 감정을 앞세워라. 네 본질이 뭔지 보여라. 내가 보고싶은 것은 그것이니까. 네 본질, 네 감정, 네가 내 친구로 계속 있을 수 있는지. 난 아직도 널 소중히 여겼다. 그렇기에, 네 가면 너머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너도 잘 알고있잖아? 커넥션의 주인, 초중요인물 중개업자, 고위 정보상. 그리고-"
"네 친구."
퍼석.
가면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제롬은 자신의 코앞에 있던 에만의 멱살을 붙잡고는, 그대로 주먹을 가면의 중앙에 꽂아버렸다. 재능이라고는 없어 때리는 법조차 몰랐던 우둔한 사람. 그게 바로 제롬이었다. 에만도 평소라면 쉽게 피했을 어설픈 주먹이었으나, 그가 멱살을 잡은 탓에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 했을 것이다. 때릴 수만 있다면, 가면을 부수는 것 정도는 그의 근력만으로도 충분했을까.
"슬슬 가면 같은건 내려놓고 이야기하자고, hommie."
네 본모습을 말해줘.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은 입가와 달리, 가면 너머에 있었을 에만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한없이 차가웠다.
"그 말이 맞기를 바라." 페로사는 벌써부터 지쳤다는 듯이 파스스 흩날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엘리시움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동네라 다행이야. ...상대적으로." 하며, 페로사는 주머니를 뒤적여서 담배 팩을 꺼내고는 담뱃개비를 톡 튕겨 꺼낸다. 튕겨보니 돛대다. 오늘 집에 갈 때 담배를 좀 사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페로사는 그걸 입에 물었다. "비스트로에 있는 금연석이랑, 화장실을 제외하면 흡연 가능해. 재는 재떨이에 털고." 재떨이? 그제서야 페로사는 아차 하면서 아까 재떨이에 얹어놓았던 꽁초를 돌아보았다. 아까워라, 절반 넘게 남아있던 장초였는데, 심지어 쌍대였는데 홀랑 다 탔다. 페로사는 인상을 구기며 나직이 뭐라 한 마디 센 어조로 투덜댔다. "Che cazzo." 표정이나 악센트로 봐서 좋은 말은 아니다.
"내 정신머리 하고는..." 하고 한 마디 더 투덜대며, 페로사는 그 다 타버린 꽁초가 남은 재떨이를 그대로 이리스 앞에 놓아준다. "내가 청소한 건 아니고. 청소업체를 불렀어. 청소할 만한 일이 있었거든." 가게 앞에 시체 13개가 생긴 사건을 '청소할 만한 일'이라는 표현으로 간소하게 압축해버린 페로사는 품에서 새로 산 일회용 라이터 하나를 꺼내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이고, 이걸로 붙이라는 듯이 재떨이 옆에 라이터를 툭 놓아두었다. -누군가한테 말할 일은 아니다. 청소업체에도 조용히 청소해달라고 비밀유지비를 줬고, 피피와의 거래도 비밀유지비를 계산한 일이다. 어찌됐건 공식적으로 앤빌의 입장은 '가게 앞 도로에서 일어난 사소한 교통사고에서 유발된 연료 누출로 인한 도로 오염'으로 인해 청소업체를 불러 청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로사는 "운전 좀 똑바로 하지 그 사람들 참." 하고, 거짓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날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건이 터진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