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힘들게 노력했고 멀리까지 도달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나는 몰락해야만 했고 내가 가진 걸 전부 잃었지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에만은 의자에 앉아서 늘 그렇듯 무릎을 그러모은다. 그런 사람이다. 위축된 듯 웅크리고, 먹이사슬의 하위인 것처럼 살았다. 피식 웃는 소리에 에만은 소심하게 무릎을 끌어안던 한쪽 팔을 슬쩍 올려 손목을 꺾었다. 턱 아래에 손등을 괸다. 팔에 반쯤 파묻힌 가면이 제롬을 향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위스키 향이 방을 채운다. 에만은 플라스크를 내밀자 고개를 아예 파묻으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미안, 최근에 앤빌에서 거하게 마셨더니 보기만 해도 숙취가 오는 것 같아서." 아마 물어본다면 참일 것이다. 에만은 그 뒤로 인생에서 처음 겪는 거센 숙취에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지 못했으니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쓸 줄이야.. 조금 질투 나는 걸."
에만은 농담을 던졌다. 어플이 괜찮다라. 과연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다. 그 이후에 또 설득이라. 에만의 감겨있던 가면 속 눈동자가 느릿하게 뜨였다. 감히 설득이라. 이후 에만은 침묵했다. 한참이고. 단 하나의 소리도 내지 않고 그 자리 그 자세로 가장 친한 친구를 쳐다봤다. 에만이라는 사람은 허약하고, 싸움을 피한다. 무기를 잡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며 어설프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에만이 움직인 것은 사진 때문이다. 에만은 제롬이 앉아있는 넓은 소파와 달리 맞은편 1인 소파에 앉아있다. 고작 테이블 하나를 둔 거리. 에만은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징그럽네.. 나 이런 거 못 보는 거 알면서." 하고 농담을 던지고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집어 관찰했다. 징그럽다 한 사람이 사진 하나하나를 이렇게 훑을 수 있었을까.
"무섭네."
사진을 내려놓고 에만은 무릎을 내렸다. 다시금 입을 연다. 무섭네. 지금껏 이런 적이 있었나? 천천히 허리를 기울이고, 손가락의 끝을 붙이며, 무릎 위에 팔을 얹고. 마치 협상하는 사람처럼 앉은 적이 있었나? 이 사람은 무엇이 두려웠을까, 이 시체를 만든 자신? 아니면 뒷조사하던 친구? 에만은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다. "제롬, 에만은 에만이야, 네 친구지." 하고 감정 없는 기계음이 한 번 속삭이듯 튀어나왔다.
퍽.
순식간이었다. 칼날이 스쳤다. 소파 등받이에 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그대로 나이프가 박혔다. 만일 빗겨 맞추지 않았다면 뺨을 스치고 미간에 정확하게 꽂혔으리. 테이블 하나의 거리. 몸을 기울여 무릎을 대고 사진을 짓뭉개면 금세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그 짧은 거리. 어느새 다가왔을까? 그 에만이.
"역으로 물어볼까, 친구."
가면 너머로 바르르 떨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놀랐나? 아니면 거센 흥분을 참을 수 없나? 배신감이 들었나? 그리고 작게 웃었다. 그래, '늘 그렇듯' 힘없는 미소였나? 그렇다기엔 웃음이 지나치게 맑았다. 또래 친구와 대화하다 터지는 순수한 웃음이 기계음 사이에서도 또렷했다.
"Kid, 내 동갑내기 사랑스러운 친구야. 유일한 동업자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말해야 내가 아량껏 대답할 수 있지 않겠어?"
고개를 슬쩍 기울인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쏟아지고 헐겁게 틀어진 가면 사이로 낮게 으르렁대듯 속삭였다.
"그러는 넌 누구야? 그로스만의 개? 금요일의 잔재? 나를 속이려 드는 어중이떠중이? 이 내가 무얼 믿고 네게 온전히 답해줄 수 있지?"
" 헛...어떻게.. 아니, 그런 준비는 아니었다구. 엣헴 " 이리스는 한순간 놀란 표정을 해보였지만 다급하게 표정을 태연하게 한대 쥐어박고 싶을만한 의기양양한 미소로 바꿔보인다. 그리곤 태연하게 대답을 해보이는 것은 덤이었다. 머릿속엔 계획수정! 이라고 외치는 수많은 이리스가 보이는 것 같았지만."내가 그런 준비를 할리가 없잖아. 그치? 그치? "
그러다 머리에 내려앉는 페로사의 손길에 마냥 기분이 좋은 듯 베시시 웃어보인다. " 맞아, 맨날 소란스러운 것도 힘드니까." 아닌 녀석들도 있는 것 같지만 대부분은 그럴거라 생각하며 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 도시의 무언가도 성장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야 금방 의식의 저편으로 넘겨버린다. " 언니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려고 했지? 그치? 그런거지? " 눈 앞에서 금방 할말이 가득하 표정을 지어보안 페로사가 보였으니까. 쉼없이 재잘거리는 이리스.
" 오오, 멋져멋져 " 재잘거림도 페로사가 얼음을 손질할 무렵에는 잦아들곤 입을 작게 벌린 이리스가 감탄을 하며 가볍게 박수를 친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닐텐데, 처음 보는 것만 같은 확실한 리액션이었다. " 아냐아냐, 분명 이대로도 맛있을거야. 언니가 준건 한번도 별로였던 적이 없거든. "두번째잔에 아름답게 깍인 얼음이 담기고 갈색 액체가 부어져 건내어질 때 이리스는 고갸를 저으며 말한다. 술에 관해선 페로사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듯 망설임 없는 말이었다. 그리곤 입가로 가져가는 잔, 이번엔 음미하듯 조금만 입에 머금곤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 뭐, 언니가 했으면 내가 할게 뭐 있겠어. 우스운건 맨날 그렇게 청소하는데도 늘 오는 녀석들이 웃긴거지. "기분좋게 입안의 향을 즐기던 이리스는 페로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페로사가 싸우는 모습을 못 봐서 아쉬운 듯 하면서도 이미 해버렸다는 말에 가볍게 흘려넘기려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쪽에 대해선 그냥 가볍게 말했던 모양이지만.
"왠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느긋하게 눈구경을 할 수 있던게 언니가 청소했던거구나~그럼 그렇지. 이 동네가 조용할리가 없는데~" 다시 한모금을 머금었다 삼킨 이리스가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눈을 잠시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보낸다. 그러다가도 다시 페로사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엔 다시 개구쟁이처럼 변해있었지만.
"아, 언니. 여기 담배 펴도 괜찮지? 나 오늘 담배 다 떨어져서 여태껏 금연해버렸거든..푸흐.. 여기 오면서 사놓고 깜빡하고 있었어." 가죽 자켓의 주머니에서 검정색 향담배갑을 꺼내며 물음을 던진다. 막무가내로 행동할 것 같이 하면서도 물어볼건 다 물어보는 이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