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리야. 과연 사람 목숨에 가격을 붙일 수 있을까?" "야쿠자로서는 생각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도덕적인 발언인데?" "착각하지마. 누군 3억벅을 받고도 아무렇지 않지만, 누구는 3000만벅에 사람을 죽여. 그말이 하고 싶었을 뿐이야."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뻔뻔하게 헛소리 한다. 짐짓 눈 내리깔고 고상하게 머리카락 귀 뒤로 넘기는 시늉 한다. 거 참 꼴사납다. 자신도 그 사실 자각했는지 이내 낄낄대고 웃어버렸다.
턱 괸 채로 페로사 움직이는 것 바라봤다. 언젠가 바텐더들이 화려히 움직이는 것이 신기해 흉내내보려 한 적이 있었다. 처참하게 실패한 채로 끝났지만. 아마 저것도 운동 신경이 따라줘야 하나 보군, 하고 합리화했던 기억이 났다. 연습이 부족하단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이 꽤나 양심없다.
"아, 그렇지. 그런 이유로 죽으면 돈도 많이 못 받으니까."
죽어서도 값을 높게 받으려면 건강해야 하는 모순이다. 꽤 질 나쁜 농담하고 저 혼자 입꼬리 올린다.
"당신이 만들었어?"
마냥 달지는 않다. 적당한 산미가 느껴진다. 다만 피피가 기겁하며 피하는 자기주장 강한 신 맛이 아닌, 달짝지근해 유순한 신 맛이다. 아마 이 안의 잼 비슷한 것 때문인 걸까, 잔 안에 동동 떠다니는 붉은 점들을 바라보았다. 맛있네, 재잘대며 홀짝였다.
"아, 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내지. 친구도 몇 명 사귀었고 말이야. 그래서 알다시피 페로사 씨 바도 홍보하고 다니고 있다고."
잘 지낸다던 그가 여동생을 만나 머리 깨지게 아픈 것은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지만, 미래의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가 여기서 술이나 홀짝이고 있을 리가 없다. 어디 고급 양탄자에 앉아 점쟁이 노릇 하고 있겠지.
7층 소회의실은 여전히 답답하다. 발가락을 손가락처럼 움직일 수 있을까 싶어 두 시간 내내 꼼질대는 것도 질린다. 당연히 안 될 것을 하려 들었으니 짜증도 치밀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하나, 둘.. 그래. 나흘이 지났다. 자신을 거둔 여인은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 문을 빼꼼 내밀면 덩치 큰 이상한 아저씨들만 가득하다. 그리고 단호하게 뭘 묻기도 전에 말한다. "들어가." 아이가 뭘 물어도 답하질 않아서 답답하다. 특히 척 모리슨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사람은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목덜미를 콱 잡아채고 방 안으로 던져버린다. 상냥하지 않은 손길을 두 번 겪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불평을 하며 낡은 노트북을 안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삐걱대는 매트리스에 몸이 같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오늘도 낮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도시 밖 소리를 듣다 첩보 시스템으로 바깥을 보고 말겠지. 아이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아직 7살밖에 안 됐지만 벌써부터 재미없는 삶이다. 아이가 재미없고 칙칙한 낮잠을 위해 눈을 아이가 눈을 감았을 때, 바깥에서 소란이 일었다. 시시한 농담 따먹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화 소리였다. 소문이라도 있는 걸까? 이렇게 큰 소리로 대화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벌떡 일어나 맨발로 소회의실 문까지 뛰어가더니, 이내 찰싹 달라붙어 귀를 붙였다. 방음이 잘 되는 방이라 소리가 작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너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아이는 남들보다 귀가 좋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출입 금지입니다."
여기 오자마자 내게 도넛을 주던 뚱뚱한 아저씨의 목소리다. 아이는 눈을 꾹 감고 집중했다. 걸어오는 발소리도 안 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언제부터- 이 나에게 출입할 수 없는 구역이 있었지?"
처음 듣는 목소리다! 듣기 좋은 목소리를 뒤로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퀸의 명령입니다." "아, 누님의 명이었다고.. 그런데 카드 병정에 불과한 너희에게 한 거야, 아니면 나한테 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퀸께 허락이라도 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누님은 늘 자비로워서 난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도 봐주겠지. 확신해." "이번에는 아닐 겁니다."
누님이라면 그 여인을 말하는 걸까? 척 모리슨의 기운 없는 목소리다. 아이는 내심 척이 된통 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뭔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척까지 나설 정도면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그로스만의 사생아라도 숨겼나?"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미친 애송이. 퀸이라고 해도 그 발언은 용납하지 않았을 거야." "아, 그러셔. 그럼 하나 물어보자. 척, 네 목숨은 여러 개야?" "퀸의 구역에서 살인을 저지르시겠다?" "그랬다간 우리 누님이 나한테 불을 지를 건데 내가 왜? 그냥 네 기어오르는 태도 때문에 물어본 거야, 앞으로는 목숨 간수하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못 간다고 말했을 텐데." "내가 된다고 하면 그게 곧 퀸의 뜻이지, 애송아."
문에 큰 충격이 일고 쾅 소리가 나자 아이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저앉았다. "그러니까 개기지 말라고." 척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이 소리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떠올랐다. 구석으로 도망쳐야 한다. 어딘가로 숨어야 할 것 같아 기어서 장난감이 든 상자를 탈탈 털어 뒤집어써 기어 들어갔다. 청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척을 발로 크게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경첩 소리가 영 별로다. 아이는 오들오들 떨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이번엔 아주 선명했다. 그리고 몸을 숙이듯 옷깃이 구겨지는 소리가 나자 몸을 크게 웅크렸다. 상자를 치우는지 쨍한 형광등 빛이 질끈 감은 눈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쉬잇, 다 괜찮아."
아까 시원하게 욕을 뱉던 것과 달리 친절하고 나긋한 목소리에 아이는 부조화를 느꼈다. 다시금 괜찮다며 등을 어색하게 다독거리는 손길에 아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형광등 빛의 역광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정말 독특한 사람인 것 같았다. 학생인가? 뭔가 입은 것 같은데. 아이의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독특한 옷을 입은 소년이 아이의 등을 손으로 쓸어주고 다독이기를 반복했다.
"누, 누구세요?" "음, 여기 여왕님 친구. 그리고 네.. 숙부? 음- 그러니까, 숙부인가? 아, 몰라! 숙부든 형제든 그게 그거지. 여왕님 덕분에 살고 있는 건 똑같으니까. 직장은 달라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이는 움츠러들었다. 소년은 괜찮다는 듯 등을 팡팡 두드려줬다. 아팠지만 고의를 가진 건 아닌 것 같았다. 소년이 "눈은 똑같은데 성격은 로이드 아저씨를 닮았구나?" 하더니 그게 재밌는지 크게 웃었다. 변성기가 잘 지나 무르익은 바리톤의 웃음소리가 척의 괴로워하는 신음 소리를 묻어버렸다.
"알려줄까? 아니면 모르는 채로 있고 싶어?" "..알고 싶어." "보기보다 욕심이 많구나. 괜찮아, 셰바에선 아주 흔한 부류지. 그런데 넌 조금 다른데..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그러면 내가 알려줄게, 혹시 네 아버지, 그러니까- 로이드가 어머니 얘기는 안 했어?"
아버지는 어머니에 물어보면 늘 안경에 음각으로 파인 H자 각인을 매만지곤 했다. 그리고 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소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안 알려줬어.." "그럼 조금 충격적인 얘기일 수 있겠지만, 널 이곳에 들여보낸 여왕님은 네 어머니야. 봐, 눈도 닮았고, 빨간 머리카락도 조금씩 섞여있고."
아이는 자신의 곱슬 진 단발을 쳐다봤다. 붉은 머리가 이따금씩 섞여있었다. 아버지는 늘 자신은 특이한 체질이며, 완벽한 금발은 없기 마련이고, 아마 너도 그런 편일 거라 했다. 특이한 체질을 물려받지 않아 다행이라며 유전에 대한 얘기를 해주긴 했지만 재미가 없어 기억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 엄마일까? 아이는 발가락을 오므렸다.
"믿기 어려울 테니 차라리 동화처럼 얘기해줄까?" "응." "착한 아이네."
소년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직 청소도 안 된 소회의실 바닥의 먼지가 새하얀 옷을 더럽혀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소년이 운을 떼었다. 옛날 옛적에.
……옛날 옛적에, A-13 구역이라는 나라가 있었어요. 그곳의 왕은 요제프 그로스만이라는 커다란 늑대였는데, 무리를 이끌고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요. 많은 돈을 내! 너희는 그런 존재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했어요. 늑대의 이빨은 사람들을 하도 깨물어서 새빨갰지요.
그 사이에서 로즈밀이라는 용감한 마녀가 있었답니다. 로즈밀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요제프에게 잡혀 끌려다니는 불쌍한 존재였지요. 아무도 마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어요. 저 마녀는 늑대랑 한 패거리야! 하면서요.
그렇게 외로워서 펑펑 울던 마녀는 저 멀리 다른 나라에서 온 왕자님을 만나게 됐어요. 왕자님은 마녀의 이야기를 듣고도 무서워하지 않고, 말없이 다독여줬어요.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답니다. 마녀를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둘 사이에서 아이도 생겼어요. 아이의 이름은 부엉이, 왕자님이 안경을 썼을 때 부엉이를 닮았기 때문이었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천사 같아서 천사라고도 불렀답니다!
그렇게 마녀와 왕자님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영원히요! 하지만 늑대는 욕심이 많았어요.
커다란 늑대가 이 작은 천사와 왕자님을 깨물까 봐 무서웠던 마녀는, 왕자님과 부엉이를 마법을 써서 몰래 숨겼어요. 마녀의 세상 속에 들어가기 전에 왕자님과 마녀는 약속했어요. 무시무시한 늑대를 벗어나겠다고요. 그리고 마녀는 열심히 발버둥 쳤어요. 쑥쑥 자라 자신의 작은 나라를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욕심 많은 늑대는 그런 마녀를 놓지 않으려 했지요. 저 나라도 내 거야! 그러면 왕자님을 물리쳐서 마녀를 가둬야겠어!
그렇게 못되고 욕심 많은 요제프는 왕자님을 앙, 하고 깨물었지요. 마녀는 소리쳤어요. 안돼! 왕자님은 못된 늑대의 저주에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지요. 슬픈 일이었어요.
그리고 엉엉 울다, 천사를 발견했어요. 마녀의 마법으로 지킬 수 없다면, 마녀가 직접 소중하게 지키기로 했지요.
그리고 마녀는 천사를 위해 여왕이 되기로 했어요.
마녀는 못된 늑대에게 마법을 썼어요. 불이야, 불이야! 온 세상을 덮을 만큼 큰불에 사람들이 놀랐지만, 마녀가 외쳤어요. 이제 나쁜 늑대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믿어. 못된 늑대의 가죽을 보여주자 마녀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늑대의 가죽을 보고 환호했어요. 나쁜 폭정의 끝이 도래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마녀는 인정받고 여왕이 됐답니다. 그리고 천사를 데리고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소년은 이야기에 재간이 있었다. 드문드문 아이를 놀래켜주거나, 우는 모습을 따라하거나. 아이는 작게 웃으며 한결 편하게 자신에 대한 비밀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것도 많았다. 불이 난 이유나 그런 걸 물어보려 했지만 소년은 네가 아직 어리니까 안 돼. 하고 딱 잘라 말했다. 대신 아이의 손에 작은 보따리를 쥐어주며 친절하게 말했다.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났다.
"네 어머니는 지금 여왕이 되고나서, 늑대가 저지른 나쁜 일을 수습하느라 바쁘셔. 그래서 널 돌봐주지 못하지만..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 "물론이지. 그런데.. 여기 있는 녀석들은 지금 널 별것 아닌 애로 생각하나 보네.. 무서운 마녀가 나타나겠어. 내가 여기서 도우면 척과 같은 허울만 좋은 쭉정이를 거르지 못하니까, 당분간만 참아줘. 알겠지?" "어려운 말이야.." "곧 알게 될거야. 적어도 지금 살아서 귀 쫑긋대는 녀석들은 깨달았겠지. 내가 온 건 여왕의 칙명 때문이었다, 등신같은 척."
소년은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네 이름이 뭐야?" "나의 작은 로즈밀." "나는 그거 거짓말인 거 다 알아. 네 아버지가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잖아. 내게 훌훌 털어보겠어?"
듣기 좋은 바리톤 음색에 아이는 입술을 다물다 조근 거렸다. "미카엘.."
"예쁜 이름이네. 미카엘, 나는 상사가 불러서 이만 가봐야 해. 나중에 봐." "저기.." "응?" "이름이 뭐야..?" "나?"
소년은 사람 좋게 웃었다. "여왕님이 그랬는데, 나라를 수호하는 건 용이래."
에만은 직접 만든 도시 시뮬레이터에 그로스만이라 쓰여있는 단어가 A-13 구역을 향해 들어간다. 온통 새카만 색으로 빛났다. 눈을 굴리며 다른 모니터를 보자 사생아가 A-13 구역을 치기 위해 준비한 온갖 자금과 돈 세탁을 했던 자료가 실시간으로 송신되고 있었다. 또 다른 모니터에는 그로스만 패밀리가 타 조직과 하던 전화를 도청해 기록하고 있다. 다른 구석에서는 현재 새로 생긴 지하 투기장에서 그로스만이 승부조작을 시도한 증거를 찾았는지 스틱맨이 폴더 하나를 들고 방방 뛴다. 에만은 천천히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며 배 위에 깍지 낀 손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정면에 있던 모니터에서 신상 정보가 떴다. 현재 A-13 구역의 지배자. 통칭..
멋쩍게 웃어넘겼을까, 상대가 제시한 3가지 가설은 어설프기도 했으며 썩 와닿지 않았지만 때로는 당혹스럽기도 했다. 자세를 고쳐앉고선 카운터에 팔을 올려 몸을 기대다 이내 손가락을 하나씩 펴보이며 제 나름의 가설을 꺼냈을까,
뒤로 넘어간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첫번째... 그 말씀은 다소 비약이 심하네요~ 물론 베르셰바 사람들이 무기에 정통하거나, 돈벌이를 위해 관심을 가진단건 알지만... 모두가 그러는건 아니니까요~ 때로는 그걸 부러 피해가는 이들도 있는 법이죠.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살아간다지만... '모두'가 그런다 볼수는 없는걸요?"
일전의 자신이 누구였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폐허에서 눈을 떴고 주변에 널린 흔적들과 현재시대를 계산해서 도출된건 그 어떤 인간도 십수년간 기절한채 아무 영양분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이미 그쯤에서 그녀가 인간이 아닐거란 씁쓸함 정도는 느끼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두번째... 이건 이슈트래킹이네요. '코덱스 기가스'처럼요. 도무지 한사람만이 작성했다 볼수 없는 압도적 분량,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필체 때문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겨 작성했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죠. 그 이후로 인지를 벗어난 무언가가 나오면 사람들은 항상 '외계인 짓이다.', '로봇이 사주했다.', '악마의 개입이 있었다.' 라고들 하죠~"
하지만 이건 그녀도 반쯤 인정해야 했다. 아무리 퀄리티를 낮추려 손의 움직임을 둔하게 해도 그것은 그저 느려질뿐, 아무리 열화시키고 열화시키더라도 결과물은 '화질이 매우 좋지 않은 사진' 정도에 지나지 않을 뿐 인간으로서의 손때묻은 그림의 범주에선 다소 벗어나있었다.
"그리고 세번째... 이것도 긴장해서 뭐라도 답은 한거라 볼수 있죠~ 설령 총을 쥐고 쏠 근력이 없대도 일반적인 날붙이 무기는 쉽게 다루실수 있을거고, 무엇보다 본인의 본거지는 본인이 더 잘 아는 법이니까요. 그 상황에서 그 각인이 함정일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나요?"
이정도면 추리력으로서는 칭찬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당황한 나머지 뻔한 함정에 빠진 그녀 자신의 실책이었을까, 어쨌든 상대에게 증거를 내놓은건 사실이었고 만약 상대가 자주 마주칠 사람이었다면 언젠간 드러날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령 그렇다 한들, 그걸 알아내서 당신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평범하게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사람의 눈과 다르게 그녀의 눈은 확실하게 안광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상대방에게 경고하듯,
어차피 자신의 몸은 그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연약한 인간의 뼈를 대체하기 위한 특수합금으로 이루어진 골격,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돕는 몇몇 신경회로, 자체적인 회복과 재생력, 줄곧 의심했던 시간이 지나도 거의 없다시피한 노화, 그리고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진 의식과 육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