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가 지금 불타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깊이 사랑할 순 없지 않았을까? 죽을 것만 같은 꿈결에 이토록 사랑받는 느낌이 들고있었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소녀가 말을 고르는 동안 엘레나는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 태도가 불안한 듯 혹은 불편한 듯 보였다. 어쩌면 그 외의 감정일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소녀가 아니었으니 알 수 없었다. 혹 실수를 하였는지 스스로 했던 말을 되새겨 볼 뿐.
"아뇨. 재밌었어요. 빈말 못한다니까요."
정말 관심이 없었다면 반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하며 소녀를 따라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돌아가는 길을 혼자 보낼 순 없었다. 적어도 병원 입구까지는 따라가야지. 하지만 소녀의 걸음이 더 빨랐다. 멀찌감치 멀어졌다가 어느새 돌아와서는 명함을 내민다. 그것을 받아 눈에 담았다. 이 작고 하얀 종이가 앞으로 두 사람을 연결해줄 수단이었다.
"꼭 부를게요. 무라사키가 생각나면."
소녀는 전처럼 무뢰배를 내쫓을 때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꼭 그러란 법은 없었다. 소녀가 그러했듯 그녀도 놀러간다는 느낌으로 불러볼 성 싶었다. 명함이 구겨지지 않도록 잘 챙기고는 소녀가 나가는 길을 배웅했을 것이다.
"조심해서 가요. 다음에 보게 될 날을 기다릴게요." 하는 작별인사와 함께.
/말하지 않이도 미리 알아채주는 캡틴은 역시 최고다••• 이걸로 막레할게요. 무라사키 너무 귀여운데 너무 짠하구••• 아무튼 긴 텀에 맞춰주시느라 고마웠구 수고했어요!
제롬의 손이 여인의 머리 위로 뻗었을 때 여인은 피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대로 서서 쓰다듬을 받았다. 손이 스침을 따라 느릿하게 감기고 다시 뜨이는 눈이 자잘한 빛가루라도 머금은 듯 반짝인다. 그 손길이 뭇내 반가운 듯. 어딘가 아쉬운 듯. 쓰다듬이 짧았으니 여인이 그런 눈빛을 하고 있던 시간도 짧았을 것은 자명했다.
여인이 팔을 잡는 순간 제롬이 움찔거린 걸 놓쳤을 리가 없었다. 빼내려 하면 놓아줄 여인인데 제롬은 그걸 잊었는지 그러기 싫은건지. 여인의 바람으로는 후자였으면 싶었다. 그야, 그 편이 좋지 않은가. 여러 의미로.
제롬을 앉히고 다리를 밀어넣는 여인의 행동은 물 흐르듯 매끄럽고 거침없었다. 그 즈음 하면 항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시선도 제대로 못 주고 빠져나가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여인의 밀어붙임을 오히려 끌어당기는 행동이라니. 여인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한술 더 뜨듯 구는 제롬을 보며 여인이 눈을 살며시 휘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는 거니.
"직접 듣고 싶으시다니. 짖궂기도 하셔라."
여인은 웃으며 중얼거렸다. 속으로는 이제 제법 남자의 태가 나는 낮은 목소리가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보다 훌쩍 큰 키도. 크게 와닿는 손도.
제롬이 허리를 감아 당기는 손을 따라 그대로 몸을 맞대어주고 여인의 손을 제롬의 양 어깨에 올렸다. 그대로 천천히 미끄러트리자 여인의 손이, 팔이 제롬의 목을 휘감아간다. 그 행동만큼 가까워진 거리는 이제 옷의 두께 만큼 뿐이었다. 그리고 여인과 제롬의 얼굴 역시 숨결이 섞일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여인이 입을 연다.
"보답한다 한들 가진 것이라곤 제 몸 하나 뿐이라. 성심성의껏 봉사하는 재주 밖에 드릴 것이 없답니다."
나긋하게 이어지는 말을 따라 여인의 손이 제롬의 뒷머리를 살살 간질이고 내려와 뒷목을 쓸어내린다. 그 손짓을 반복하며 여인의 말이 이어진다.
"제 손이 필요하시다 하면 기꺼이 움직여드리고, 제 품을 원한다 하시면 한점 모자람 없이 내어드릴 것이며, 편히 눈 감고 싶으시다 하면 제 다리를 베개 삼아 긴 밤 내에 곁을 지켜드릴 것이어요."
여인은 맞댄 몸에 무게를 살짝 실어 제롬에게 기대이듯 했다. 여전히 목에 팔을 두른 채로 어느샌가 제롬의 다리 위에 앉은 자세로 올라가 마주보고 있었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여인이 웃음 짓고 있었으니. 다음 한 마디가 조용히 이어질 뿐이었다.
"제 몸 전부를 드려도 성에 차지 않으신다 하면. 마음까지 내어드리지요."
어떠신지요. 라는 말과 이어지는 희미한 웃음소리. 과연 어디부터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장난일까. 거기까지 말한 여인은 약간 고개를 뒤로 물러 얼굴 간의 거리를 만들었다. 평소처럼 웃고 있는 얼굴이 잘 보이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