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내가 지금 불타고 있는 거라면 이렇게 깊이 사랑할 순 없지 않았을까? 죽을 것만 같은 꿈결에 이토록 사랑받는 느낌이 들고있었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핫초코를 입 안에 머금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 선은 괜찮다. 넘어도 된다. 사내는 제 앞의 상대가 생각보다 퍽 유들유들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이러면 곤란하다. 브레이크를 밟을 순간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어디까지 내 마음대로 해도 돼? 어디까지 봐줄 거야?
"걱정 마, 당신, 내 뒷조사 했잖아? ...아닌가?"
애초에 그렇게 유명한 작업장도 아니다. 그 '제롬 발렌타인'이 모를 만도 하지. 유명하지 않기에 되려 메리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다.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고, 시선조차 두지 않는 곳이라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숨길 그늘이 생긴다. 사내는 그 습한 구석에서 가는 목숨을 부지하는 삶을 살아왔다. 어쩌면 발렌타인 씨를 데려온 게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뱉고 있는 이 말까지 포함해서 모두.
"나는 시체를 돈으로 바꿔주는 일을 하고 있어서 말이야, 미스터 발렌타인."
당신이 관심 가질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야, 덧붙인다.
"당신한테 피해갈 일은 없어. 그게 내 일 중 하나니까. 그냥, 시체 가져와 달라고 하는 건, 부업 정도라고 해두지."
청부업자의 신상을 대충 훑었다. 그렇게 크게 관심 두지는 않았다. 신용 팔아 먹고 사는 사람이니 어쭙잖은 사람 소개시켜주지는 않겠지. 대놓고 나를 매장시켜 죽일 생각이 아니면. 그리고 피피는 타인이 그리 정성을 들일 만큼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
"집이 더러워서, 방역업체를 불렀었어."
퍽 차분한 그 표정 아래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 그 때 재밌었는데, 정도의 감상일까.
캡틴 연락처 언급하신 이유 지금 깨달았는데요⋯ 무라사키를 부르려면 연락처가 필요하군요⋯? 아무래도 새벽이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서 잘못 이해했던 8.8 먼저 요청하지 않는 건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이야기구 지금이라면 엘레나가 먼저 달라고 할 것 같네요. 일상 마무리하면서 받아가면 되지 않을지⋯?
외모는 제껴두기로 하겠습니다. 8살이니까, 20년 뒤를 안다면 아- 할 수 있으니까. 책이라던가 많이 들고 다니고 읽을 것 같은 너드인듯 너드가 아닌 분위기에 그 나잇대보다 조금 어른스러운 아이. 은근히 고집스러워서 부모님이 애먹을 일이 많았을 것 같고, 산타는 이미 안믿을 것 같고.....그래도 좋아하는 선물이라던가 받으면 순수하게 기뻐했겠지. 목욕 좋아하는 것도 이때부터였을 것 같은 느낌.
엘레나의 말에 무어라 말하려는 듯, 소녀가 그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기를 반복하며 뻐끔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제 안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말을 계속해서 고르고, 집어넣고, 다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동조일까? 아니면 반박일까. 그 모습이 마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도 보였다.
"―그렇, 그렇겠죠...! 저는, 다른 것 뿐... ...이상한게 아닌... 그렇죠..."
그 끝에서 고른 말이 그것인지. 무라사키는 그렇게 말해놓고서는, 흔들리는 눈을 그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엘레나 씨는, 당찬 사람이야. 그리고 동시에 상냥한 사람이야. 칼을 좋아하지도 않고, 또 이상한 물건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리고 또,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이런 나에게 지지를 보내고 조언도 해 줄 수 있는 강한 사람이야... '맞아, 나와는 다르게...' 손을 서로 겹쳐서 엘레나가 가리켰던 반지를 어루만졌다. 차가운 감촉이었다. 소녀의 눈에 촛점이 돌아온 것도 바로 그런 때였다.
"...앗. 죄, 죄송해요...! 괘, 괜히 이상한 말만 잔뜩 늘어놓고... 벼, 별로 궁금하시지 않을텐데... 아, 아하하..."
무라사키가 허둥대면서 시선을 이리저리 옮긴다. 마치 방금 이곳에 도착한 사람처럼 주위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 두서없는 시선은 방 한 켠에 놓인 시계를 마침내 종착지로 삼았다. 초 분 시의 위치를 확인한 무라사키는 그 즉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이제! 가, 가봐야겠어요...! 너무 늦으면, 혼나거든요..."
그리고, 그대로 휴게실을 나가는 문을 향해 걸어 갔을테다. 상냥한 사람과 멀어지기 위해서, 강한 사람과 멀어지기 위해서, 사람을 살리는 사람과 멀어지기 위해서.
"..."
분명 그랬을 터였다.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저, 저어...!"
'그 말이, 정말이라면... 나는―'
"괘, 괘괜찮으시다면... 이거, 바, 받아주세요...!"
소녀가 갑자기 몸을 조수쪽으로 획하니 돌리더니 옷의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그녀에게 불쑥 내밀었다. 하얗고, 정갈한 느낌의, 정제된 종이프린트.
"이건, 그러니까아... 제, 저의, 명함이에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의... 생각해보니까. 아, 아직 제 연락처... 드린 적,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다닌다. 앞머리 속에 가려진 눈. 그 눈까지 동원하여 있는 힘껏 엘레나를 살핀다.
"...부, 불러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아니, 마주한다. 그렇게 말하는 무라사키의 시선은, 분명히 그녀를 꿋꿋히 올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