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죽음을 갖기 위해 사십 년의 생이 필요했다 이 생을 좀 더 정성껏 망치기 위해 나는 몇 마리의 개를 기르고 몇 개의 무덤을 간직하였으며 몇 개의 털뭉치를 버렸다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그럴지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들이지만, 사실 조금 당황했다. 그 반동인지 어리석게도 손은 잠시 갈 곳을 잃었다. 내 가면을 벗기다니. 의도한거라면 실로 대단한 자다. '아직 벗겨지진 않았지 않나.' 그래,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시체 처리는 내 전문이다. 삡, 당신은 식인 취미라도 있나보지?" 지하실과 냉장고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최대의 경우는 지하고문실 정도일까.
라텍스 장갑을 낀 채인 손을 건네며 아까 응하지 못했던 악수를 다시금 청한다. "페니 레인, 특수청소, 범죄현장 및 흉기 처리 전문회사의 대표 이사인 페퍼 상사… 라고 한다." "죽은지 몇 달이 넘은 시체같은… 그런 것도 기쁘게 치워주지." 바라마지 않던 일이다. 너의 심연을 보여다오. 그러면 나 또한 그 안에서 기쁘게 거닐으리.
나, 다이애나 이리스! 라 베르토의 (자칭)유망주다! 이래뵈도 내 밑에는 세명이나 부하가 있다구! 그래서 오늘도 한건 해결하고 돌아가는 중이지! 어디로 가냐구? 말해, 뭐해~ 바로 우리 라 베르토의 예쁜 보스가 있는 곳이지! 우리 조직원들은 다들 그곳을 거쳐간단 말이야~ 물론 나는 너무 자주 가서 종종 혼이 나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거기가 편한걸!
아차차, 그래서 내가 뭐 말하려고 했더라! 맞아, 난 지금 퇴근하고 있어! 오늘도 맡은 운송 호위 임무를 마무리 했거든! 부하 하나가 멍청하게 다쳤지만, 내 부하들은 튼튼해! 칼 좀 맞은 건 몇밤 자면 금방 나을거야! 뭐?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몸이 튼튼하지 않다구? ...아무튼 우리 애들은 튼튼해! 튼튼하다구! 엣헴.
아무튼 아무튼, 오늘의 일을 마무리한 나는 지금 보스가 있는 잡화점으로 가고 있어. ...보고 하러 가는건 아니야, 이리스 보고서 같은건 잘 못 쓰니까 똑똑한 부하한테 시켜뒀어~ 알아서 잘 할거야. 그럼 뭐 하러 가냐고? 당연히 놀러가지!
" 보~~~스~~~~~! "
언제나 처럼 활기차게, 기분 좋게 잡화점 문을 벌컥 열고, 힘차게 보스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외치는거야! 그야, 나 오늘도 일 잘 했으니까 칭찬 받을게 뻔한데!! 안 그래?
이렇게 적어놓으니 대단히 부조화스럽고 부조리한 말인 것처럼 들리지만, 좋은 직장을 잡은 몇몇 행운아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특권이었다. 모루를 입간판으로 세워둔 비스트로 바 '앤빌'의 바텐더인 페로사 역시도 그 행운아들 중 하나였다. 물론 저녁시간이 된다는 말은 식사에 술을 곁들이고 싶어하거나 아예 주 목적이 술인 손님들이 많아진다는 뜻이니 저녁이라는 게 페로사에게 마냥 평화로운 시간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페로사는 오늘 밤은 진상이 얼마나 오려나, 하고 툴툴대면서 본격적인 바텐더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 시간이 피와 화약냄새와 쇠 부딪는 소리를 준비해야 되는 시간이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페로사의 투덜거림은 스스로가 팔자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장난스런 투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기는 뉴 베르셰바이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모른다. 피와 화약냄새와 쇠 부딪는 소리는, 각오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들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이 덜컥 열리면서, 쩔러덩, 하고 문에 붙여둔 종이 문 열리는 서슬에 우는 소리가 나자 페로사는 얼음을 나이프로 깎는 능숙한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로 고개만을 앤빌의 입구로 돌렸다. "어서 오-" 하던 말이 멈춘다. 문은 열렸는데 문을 연 사람은 없었던 까닭이다. 페로사는 고개를 뺐다. 그리고, 방금 문을 연 방문객이 보이지 않았던 사실이 그가 대단히 기묘한 자세로 문을 열었기 때문임이 드러났다. 바닥에 엎드려서 비척비척 기는 채로, 파카가 피로 젖어서 딱 봐도 심상찮은 상처를 입고 있는 누군가가 바르르 떨며 피거품을 물고 죽을 힘을 다해 문을 열어젖힌 것이었다. 그는 무언가를 간절히 애걸하는 표정으로 뭐라 말을 하려 하고 있었다. 페로사는 황급히 얼음과 나이프를 내려두고는 바의 아래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어서는 뒷주머니에 찔러넣고 바에서 돌아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어디선가 공기를 가르는 핏피핏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그 가엾은 방문객의 등에 피가 두어 번을 퍽퍽 튀었다.
페로사가 바에서 돌아나오려던 것을 그만두고 바를 훌쩍 뛰어넘어 입구로 나왔을 때에는, 이미 이 가엾은 방문객은 생에 마지막으로 방문하려던 식당에 발도 채 들이지 못하고 겨우 문지방 너머에 상반신만 엎어뜨린 채로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가 엎어져 있는 앤빌의 타일이 스멀스멀 피로 젖어들고 있었다. "......하아." 페로사가 보인 반응은 경악도, 충격도, 공포도 아니고, 탄식과 짜증이었다. 저녁장사 시작할 타이밍에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페로사는 총알이 날아든 가게 정문이 아니라, 가게의 뒤편으로 난 직원용 출입구로 향했다.
"잡았습니다." "좋아. 어서 회수해." 죽은 방문객을 습격한 자들은 임무를 수행하는 자세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는, 평범한 양아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태도의 열두엇 명의 사람이었다. 고작 한 사람을 쫓아와 죽이기 위해서 거의 소대에 준하는 숫자의 킬러들이 따라온 것이다. 열두 명의 무리는 가게 입구에 쓰러진 시체에게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선두에서 두번째의 사람에게 고갯짓으로 시체를 가리켜보였다. 두번째 사람은 선두를 한발 앞질러 시체로 다가가서는, 앤빌의 가게 문턱 안으로 넘어져 있는 시체의 상반신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멈춰." 딱딱한 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골목 전체의 공기를 콱 틀어쥐는 듯했다. 열두 명쯤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뒤쪽으로 휙 쏠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장신의 체격좋은 여자가, 셔츠와 청바지에 앞치마 차림을 하고서는 무시무시한 눈길로 그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손 떼고 돌아가. 너희는 앤빌을 방문하신 손님께 손 댈 권리가 없어. 마지막 경고다."
갑자기 대열의 후미에서 툭 튀어나온 여자의 무슨 중2병 걸린 것 같은 언행에, 일동 사이에서 몇 명의 웃음소리가 키득키득 새어나왔다. "매지맥 경고뒈~ 나참, 이 미친 X이 뭐라는 건지. 목격자 처리하겠습니다."
대열의 가장 뒷자리였기에 여자와 가장 가까이 있던 습격자가 품에서 권총을 쓱 빼들었다. 그리고 그는 권총을 빠르게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아니, 당기려 했다. 그러나 총을 겨누는 과정에서, 그는 총을 내뻗던 자신의 손이 무언가에 턱 가로막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야?" 자신의 손목이 여자의 손아귀에 잡혔다는 것을 깨달을 새도 없이, 우득 하는 소리가 나머지 열한 명의 귀에 아주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비명마저 되지 못하는 끄어어어 하는 신음소리에 방금 자신들이 사냥한 목표물의 약탈을 재개하려던 습격자들의 움직임이 다시 멈췄다. 그들이 뒤를 돌아봤을 때는 가장 뒷자리의 습격자는 손목의 형태가 사라져버린 몰골로 게거품을 물며 장신의 여자에게 붙들려 있었다.
"쏴!"
네다섯 개의 총구가 여자 쪽을 향해 겨누어져 불을 뿜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에게 붙들린 습격자를 인간방패로 내세워 총알을 막아냈고,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를 그들의 총알로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 사실에 "이런 미친..." 하고 경악할 틈도 없이, 그 여자는 뒤에서 두번째의 습격자에게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뿌각 하는 끔찍한 소리가 온 골목에 울려퍼졌다. 피가 퍽 터져나온 가슴을 하고 뒤로 자빠지는 두 번째 희생자는 가슴의 윤곽이 완전히 폭삭 뭉개져 내려앉아 있었다. 밀집대형을 이루고 있던 습격자들에게, 여자는 처음에 인간방패로 썼던 첫 번째 희생자의 몸뚱이를 번쩍 들어 내던졌다. 사람의 몸뚱아리가 거의 대포알처럼 직선을 그리며 습격자들의 대열에 충돌했고, 순식간에 거의 대여섯 명의 습격자들이 나동그라졌으며 남은 서너 명도 균형을 잃어 비틀거렸다. 여자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쑥 뽑아든 게 그 순간이었다.
화려한 금장으로 치장된 한 쌍의 데저트 이글이 여자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리고- 투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균형을 잃어버린 대열을 향해서 50구경 AE탄이 굉음과 함께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반자동식인 데저트 이글을 완전자동으로 개조해놓은 것이었다. 화려한 액션이나 멋들어진 기교까지도 필요없었다. 일방적인 학살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한 차례의 사격이 끝나고 페로사는 쓰러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된 습격자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들 중에서 누가 리더인지 짐작한 것일까, 페로사는 재기불능이 된 반시체더미들 사이에서 리더임직한 이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러나... 시체로 생각했던 그것이, 늘어뜨리고 있던 시선을 들어올리더니 손에 쥐어진 권총을 여자에게 겨누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를 맞추지 못했다. 여자의 우악스런 손아귀가 그 권총을 꽉 쥐고 옆으로 젖혔다. 리더는 방아쇠를 당겼고, 탕 하고 약실에 있던 총알은 발사되었으나, 여자의 손에 꽉 붙들린 권총 슬라이드는 다음 발의 총알을 약실로 밀어올리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이, 이런......"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리더의 귀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손에 쥐어진 권총이 떨며, 띠딕 딱 뿌드득 따캉, 하고. 손아귀 안에서 쇠가 짓눌리며 형태가 무너져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권총이 무슨 찰흙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자의 손 안에서 짓뭉개져가고 있었다.
"비스트로 바 앤빌의 철칙을 어겼으니...... 영구 입장거부 조치 하겠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꺼져."
그 다음 순간, 리더는 두 번째 희생자를 쓰러뜨렸던 뿌각 소리가 어떻게 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꽉 쥐어진 여자의 주먹이 자신의 가슴을 꽝 내리찍자, 순식간에 가슴의 윤곽이 무너지다시피 짓뭉개지며 패여들어가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가슴 쪽에서 느껴지는 전에 겪어본 적 없는 생소한 고통들과 목구멍에서 치솟아올라오는 피의 흐름이 리더가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이었고, 그는 곧 숨이 끊어졌다.
그럴지도, 라니. 뻔뻔하기는. 사내는 곁눈질로 페퍼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무례한 생각들을 억누르느라 힘든데, 그런 반응이면 내가 곤란하다고.
"식인? 으응,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어."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팔짝 뛰며 손사래쳤다. 사람 살점 골라 먹는 악취미는 아직 없다. 제 입 안에 밀어넣고 씹으라 한다면 안 씹을 것도 없겠으나, '먹어야만 해서 먹는다'와 '찾아서 먹는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지 않던가. 따라서 시체매매로 식인 행위에 일조하는 것과, 피피 자신이 사람 고기를 먹는 것 또한 천지 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
'페니 레인, 특수청소, 범죄현장 및 흉기 처리 전문회사의 대표 이사.'
사내는 입꼬리를 기묘하게 뒤틀며 웃었다. 고작 벌레 몇 마리 치우고 헤어지기엔 꽤 괜찮은 사람을 만나버린 것 같은데.
"아니, 죽은 지 몇 달 넘은 시체는 곤란하지. 곤란하고 말고."
피피는 환하게 웃으며 페퍼의 손을 잡았다.
"피피, 프로스페로. 피피라고 불러도 좋아."
그는 게을렀으며, 아둔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작자였으나 이따금 계산적으로 굴 때가 있었다.
"시체매매, 장기매매. 죽은 사람 몸뚱아리를 돈으로 바꿔드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 가공부터 신원처리까지 나 혼자 다 처리하고, 입도 꽤 무겁지."
만약 손을 놓았다면 어느새 도착한 집 문고리를 잡고 비틀어 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조금 더 자주 만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관계 같아 보이는데."
그리고 기껏 분위기 잡아놓고 피피가 페퍼에게 보여준 집 꼬라지는 돼지우리나 다름없었다. 안녕, 난 쓰레기란다. 저 인간이 어젯밤 바닥에 그냥 내버려두고 가서 벌레밥이 되어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