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나 아끼던 두려움들은 돌아선 당신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커넥션은 기본적으로 인지人紙산업이다. 사실, 종이가 없으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도 조금 어폐가 있긴 하지만, 하여튼 간에 무언가를 창출하거나 생산해내는 것이 아닌, 사람과 계약서만 가지고선 돈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롬의 주요한 업무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고, 설득시키며,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제롬은 그 능력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원래 사람이란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어도 몇번 잘해주고, 챙겨주다보면 쉽게 문을 열고는 하는 법이다.
...하지만, 눈 앞의 소녀는 조금... 이상했다.
'너무 쉽잖아.'
수상해보이기 짝이 없는 말에 냉큼 도움을 주겠다며 의지를 불태운다. 제롬은 그런 소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남이 도와달라고 해서 쉽게 따라갈 만큼 일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순진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소녀는 후자였다.
"착한 친구네. 어떤게 필요하냐 물어도 지금은 호신용이라고만 생각해둬서... 같이 가서 골라주지 않을래?"
이미 사라졌다 생각했던 마음 속 한구석에 있는 양심이 찔려왔다. 이렇게 순진한 소녀를 이용해먹어도 되는 걸까... 사실은 내가 이용당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순진함이, 그의 죄책감의 역치를 뚫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미안해 이름 모를 꼬마야.
"아, 그러고보니 넌 이름이 어떻게 돼?"
무라사키를 이끌며 나이프 매장으로 향하던 도중, 문득 생각난 질문에 뒤에 따라오고 있었을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래도 기왕 만난 거 이름도 모르면 불편하니까 말이다. 이름을 알아두는게 나중에 더 편하기도 하고.
>>42 아마... 무라사키의 나이프를 주워주면서 기성품 브랜드는 쭉 꿰고 있어서 이 브랜드는 이렇고 이 모델은 이런데 콜렉션이 폭넓다느니, 개인 공방에서 만든 수제작품 나이프를 보면 이건 개인공방에서 만든 것 같은데 밸런스도 형상도 마음에 꼭 든다니 어디서 주문했냐느니 이야기하다가 무라사키가 브리의 나이프에 대해서 물어보면 단검도 싫진 않지만 장검을 선호해서요- 하고 가방에 우산처럼 끼워놓은 장검 한 자루를 툭툭 쳐보일 것 같네요, 브리는 uu
이상하리만치 붉은 하늘, 종일 천둥번개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괴상한 기상. 그렇다고 하여 맑은 날이 아예 없지는 않다. "이게 맑은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이지." 그런 비아냥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2미터는 족히 될 듯한 거대한 체구를 목부터 발목까지 전부 감싸는 샛노란 보호복. 그리고 노란 고무장화까지. 오늘의 페퍼는 노란 기분이 든다.
최근들어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독사 특수청소는 아이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로. '그 새끼들은 대체 뭔 생각으로 그 난장판을 쳐놓은 건지.' 덕분에 삼일밤낮을 꼴딱 새워가며 3층짜리 안전가옥 전체를 처리했다. 듣자하니, 개를 잃어버려서 그랬다던가? "잃어버린건지, 죽은건지. 하여간에." 그래도, 이렇게 일만 하다간 죽을 수 밖에 없다며 항변한 끝에 얻어낸 연차이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사실 그렇진 않다. 페퍼는 일만하던 끝에 결국 여가시간에도 뭘 해야할지 모르겠던 것이다. 그렇게 지루하게 서성거리고 있자니, 문득 무언가 낯익은 것이 보인다.
그런 제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또 따라와 달라는 말에 냉큼 쫄쫄 따라가는 것이었다. 먼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또 너무 앞섰다고 생각하는지 걸음을 늦추다가- 그러면 또 늦춰져서 뒤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다가 다시 속도를 내서 앞으로. 그렇게나 서투르고 묘한 걸음걸이를 하고 있는 소녀가 낯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제롬의 옆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아, 저, 저는... 그..."
우물쭈물. 망설이던 소녀.
"무, '무라사키'라고... 불러주세요..."
직관적인 이름이지 않은가. 본명인걸까? 코드네임? 아니, 코드명일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순진한 소녀라도 그런 대외비를 함부로 유출할 만큼 정신이 없지는 않다. '우우. 혹시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려나...?' 가려진 앞머리 사이로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가 눈치보듯 잠시 제롬과 마주쳤다가, 이내 획 하고 시선을 금세 돌려버렸다. 그녀가 그렇게 이름 붙여지고, 불리고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저어... 오, 오빠...는요...? 이름, 알고싶어서..."
그리고 둘은 몇 발짝이나 더 나아갔을까, 무라사키는 그 뒤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게 낯선 청년에게 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