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나 아끼던 두려움들은 돌아선 당신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아무생각 없이 걷다보니, 자신을 앞서지르며 가다가, 또 어느샌가 속도를 늦춰 뒤에서 따라오고, 또다시 추월하여 앞으로 가길 반복하는 소녀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 자체가 드문 듯 했다. 그래도 그 미숙함이 소녀의 작은 몸집과 맞물려 귀여운 느낌이 들었는지, 제롬은 키득키득 하고 웃음소리를 낸다.
"무라사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네. 이름은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 생각하지만."
너무 길고 장황해서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이름 중에서 최악인 이름이라 생각한다. 자고로 이름은 흔하고 편할수록 좋은 법이다. 독특한 이름도 개성넘쳐서 좋긴 하지만. 일부러 기억하기 힘들게 어렵게 만드는 이름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좋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커넥션을 세우고 이후부터였다. 관리할 사람은 많은데 망할 놈의 이름은 왜 그렇게 또 다양한지.
그에 비하면 무라사키라는 이름은 어떤가. 의미로도, 외견과 연관되어 있기도 해서 외우기 편했다. ..너무 직관적인 이름이라 가명이 아닐까 싶긴 했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신경쓰진 않기로 했다. 눈치보는 듯 자신과 시선이 맞았다가 금세 돌려버리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롬이었다.
"나는 제롬. 제롬 발렌타인."
이쪽도 흔한 이름이었다. 성씨는 뭐, 그 초콜릿 주는 날 때문에 유명하기도 했고. 그는 자신의 옆을 따라오는 소녀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그럼 통성명도 했으니, 오늘 하루는 잘 부탁해 무라사키."
손을 불쑥 내밀어서 무슨 짓 하려는 게 아닌가 오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의도는 악수였다. 무라사키를 향해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민 그는 잠시지만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려 했다. 어쩌면 그녀의 머리카락과 비슷한 색의 눈동자가, 무라사키를 빤히 응시했을까.
그렇게 인사와 만담을 하며 걷다보니 머지 않아 나이프 상점이 도착했다. 안쪽은 생각보다 넓고, 다양한 종류의 나이프들이 상품처럼 포장되어 걸려있거나, 유리로 된 쇼케이스에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네..."
이번에는 무라사키와는 달리, 이쪽이 당황했는지 뭐부터 봐야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애초에 총포상이라던가, 로미의 가게만 갔던 제롬에게 이런 나이프 판매점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가게라는게 원래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그정도만 갔어도 어느정도 파악은 할 수 있었겠지만... 소위 말하는 결정장애가, 제롬에게도 있었기 때문인지 입구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을까.
>>100 도시 수준의 규모는 아니고, 대학 캠퍼스 정도의 규모에요. 학교 자체는 시티 헌트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명문학교지만, 경호학과가 창설되면서 본격적인 뉴 베르셰바의 암살학교로 거듭나며 고순위권으로 진입한 건 22년쯤 전이네요. 25년 전의 시티 헌트 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데우스 엑스 푸엘라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1세대 실험체들을 확보하는 데 3년 정도가 걸렸거든요.
오늘은 잡쳤다. 이틀 만에 잠들어 1시간 반 만에 깬 개 같은 그 꿈도 그렇지만 오늘 일 운수는 정말 잡쳤다. 첫 의뢰부터 실종된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흔적이 어디에서 끊겼는지, 자신이 기억하는 게 맞는지 알고 싶다는 킬러의 자백을 뒤로 연달아 들어온 일이 하나같이 인외마경이다. 그중 가장 압권인 것은 르메인 타임즈를 해킹해 자신의 순위를 2위로 만들어달란 의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에만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 경고하며 의뢰인을 내쫓은 에만은 강한 흡연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호텔 5층 테라스에서 올라가니, 사람이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냥 피우면 모를까 저 사람이 아까 전의 의뢰인이었기에 에만은 속으로 몇 번 욕을 지껄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철면피를 깔 사람도 아니거니와 평소 같으면 담배를 포기할 수는 있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결국 에만은 방으로 돌아가 신발을 신고 호텔 밖으로 나가기를 택했다.
날씨 한 번 맑다. 에만은 후드에 가려진 가면 너머로도 날씨를 알 수 있었다. 눈이 내리거나, 폭풍우 같은 비가 쏟아지거나, 바람이 불어 후드가 벗겨지지 않으니 이 정도면 딱 좋은 날이다. 맑은 날인만큼 사람들도 밖으로 몇 나와 일상을 보낸다. 그마저도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에만은 괜히 몸을 숨기고 싶었다. 사람이 많은 건 딱 질색이다. 저 안에 어떤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슬슬, 구석으로 가던 에만은 이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인파가 드물게 지나가는 곳, 골목의 초입이었다. 그 사이에서 에만은 가면을 콧잔등까지만 끌어올리고, 얇은 연초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뱉을 힘조차 없는지 벽에 기대 입만 열었다. 연기는 알아서 머금다 바람을 타고 흩어졌고, 뒤집어쓴 후드 속의 가면은 반절만 들려 눈과 코를 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가 메마른 입술 사이로 흘렀다. Fuck.. 그렇게 F-Word를 시원하게 내갈긴 에만은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만 슬쩍 돌렸다. 그리고 아직 연기가 뭉글게 피어나오는 입의 연기를 훅 뱉고는 천천히 연초를 등 뒤로 숨겼다. 꼭 어른에게 담배를 피우던 것을 들킨 어린 학생처럼.
이름은 중요한 것이지.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잊고 산다. 그래서일까, 지금 소녀의 말은 어딘지 조금 궤가 어긋나는것도 같았다.
"그럼. 자, 잘 부탁드려요...! 그으, 제, 제롬...씨...?"
'이름까지 아는데, 역시 오빠라고 부르는 건 실례, 겠지...' 과연 이렇게 불러도 되나 싶은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흔들리는 눈으로 힐긋힐긋 눈치를 본다.
. . .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나이프 매장.
"와아, 와아아아...!"
그것은 공기 반, 육성 반의 소리. 순수함으로 가득한 감탄. 아까까지만 해도 행여 떨어질까 제롬의 옆에 딱 붙어있던 (불안하긴 했어도) 무라사키는, 오히려 여기선 먼저 앞으로 뛰어나간다. 그리고 그 홀 가운데에 선 그녀는 천천히 눈을 어디에 먼저 두어야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뉴 베르셰바에는... 이런 곳이 있었던 거군요...! 저는- 하, 항상 인터넷으로만 주문하니까... 저, 전혀 몰랐어요..."
마치 장난감 가게에 온 아이처럼. 아니, 이 또래라면 화장품이나 옷일까? 이 가게에 모여있는 수많은 날붙이들. 그것이 이미 전부 자신의 아이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마냥 반짝이는 눈을 하고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었다. 이 갈팡질팡은 방금처럼 소심한 성격의 소행이 아니라, 어디를 먼저 둘러봐야 할지 모르는 상태의, 그것이었다. 정작 여기에 데려온 것은 그였는데, 무라사키는 이미 먼저 뛰쳐나가선 매장의 이곳부터 저곳까지 샅샅히 둘러보고 있었다. 이때의 제롬은 어쩌면- 일말의 소외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저어. 제, 제롬씨이...~"
그래도 어쨌든 목적은 잊지 않았다는 걸까. 그런 그에게 조용히 돌아와 이름을 조심히 부른다. 너무 혼자만 신났었다는 걸 알긴 아는지, 무라사키는 조금 상기된 얼굴을 하고선 '에헤헤'하고 멋쩍은 웃음을 살풋이 흘린다.
>>106 연구에 필요한 물자는 리멘슈나이더-토텐코프 재단에서 자체적으로 수급하고 있기에 문제없지만, 학교 운영에 사용되는 비품들(특히 경호학과 교육을 위한 각종 냉병기/화기/탄약/방탄장구 및 보호구/훈련용품 등)의 공급에 대해 라 베르토가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면 제휴협약을 맺었을 듯 하네요. 어쩌면 몰루아카이브처럼 RT학원의 학생들이 저마다 크로스백을 메고 삼삼오오 교내에 마련된 라 베르토 건샵에서 총알이며 수류탄을 무슨 간식 사듯이 사가는 장면이 진짜로 나올지도...
그의 이름에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무라사키는 제롬의 이름을 연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그럼. 자, 잘 부탁드려요...! 그으, 제, 제롬...씨...?"
하고는 내밀어진 손을 무방비하게 '아!'하고 양손으로 덥썩 잡아버리는 것이었다. 의심도 없고, 망설임도 없다. '이름까지 아는데, 역시 오빠라고 부르는 건 실례, 겠지...' 그러면서도 스스로 확신이 없어 과연 이렇게 불러도 되나 싶은지,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흔들리는 눈으로 힐긋힐긋 눈치를 본다.
"뭘 하나 했더니, 떨 한 대 태우고있었나."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한 페퍼는 보호복에 가려진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한다. "뭐 그래도 벤제드린보단 낫다만."
페퍼는 옆으로 다가가서 골목의 벽에 비스듬이 기댄다. 그리고는 자신도 마찬가지로 방독면을 느슨하게 하여 담배를 한대 꼬나문다. "편하게 펴. 설마 이런 것 가지고 뭐라하는 꼰대라고 생각진 않겠지?" 약간은 장난스러운,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퍼져나온다. 동시에 그는 그 앞에 선 이 작은 사람의 이마에 —정확히는 가면의 이마 부근에— 검지로 딱밤을 먹였다. 약간은 단단한 가면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위험한 바깥 세상에는 무슨 일이실까?" 페퍼는 지난번 그를 만났던 작은 방안을 떠올린다. 다섯 대의 노트북으로 둘러쌓인 요새. 그 철옹성같은 요새가 드디어 뚫린 것일까.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티를 내지 않으려 했으나, 페퍼는 내심 반가운 기색이었다.
https://postimg.cc/BjSwF5Br (사물의 예기치 못한 형태로의 갑작스런 변형, 거미와 유사한 움직임, 벽에 튀는 혈흔의 묘사 등이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 그래 참, 로미 이야기하니까 캡틴한테 보여주려고 쟁여놨던 GIF가 있었어요. 로미가 이런 걸 좋아하겠다(or 실제로 만들어본적 있거나 상품으로 진열해놓고 있겠다)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