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나 아끼던 두려움들은 돌아선 당신의 귓가에 계속해서 맴돌죠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페퍼는 필터 끝까지 태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 던져낸다. 그의 차량은 골목을 벗어나 머잖은 곳에 있었다. ZiP의 랭 랭글러. 산지 1년도 안된 루비콘이었다. 광 나는 갈색의 차체에 은빛으로 빛나는 펜더와 밝은 오렌지색의 사이드 마커 램프가 포인트를 준다. 넓고 탄탄한 후드와 유체역학이라곤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칼같은 각도로 서있는 윈드실드, 그리고 크고 두꺼운 타이어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투박함 그 자체로 점철되어있는 차량이었다.
"타라." 본래라면 타인을 차에 태우지도 않을테고, 설령 그리한다 해도 마지못해 발이라도 털고 타라 할 터였으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근처에 좋은 가게가 있다. 테이크아웃으로 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몇 차례의 코너링과 부드러운 후면주차를 거쳐 식당 "Hungry Thug"에 도착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곳은 외관은 매우 허름하나 실력만큼은 출중한 좋은 곳이다. 단지, 지역 양아치들이 자주 출몰할 뿐.
잠시 뒤, 페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봉투를 들고왔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면 수프, 양갈비 스테이크, 식사빵, 반지 끼워진 손가락 같은 것들이 가득하다. 수프에서는 향긋한 샐러리의 향이 가득히 퍼져나온다. 감자를 푹 쪄서 곱게 갈아 브로콜리, 양송이, 샐러리와 카라멜라이즈드 양파를 사용하여 켜켜이 맛의 층을 쌓았다. 양갈비 스테이크는 마이야르 반응을 충분히 일으켜 먹음직스러운 색깔을 낸다. 파프리카 가루와 마늘 가루로 보이는 럽을 충분히 발라내어 색깔도 고루 예쁘게 나왔을 뿐더러 맛의 균형을 잡아줄 것이다. 가니쉬로는 구운 아스파라거스와 방울토마토가 올려져있으며 약간의 오레가노를 뿌려 맛에 포인트를 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오팔로 보이는데, 털난 손가락과 대비되게 심미적으로 아름답고 반짝였다. 분명 훔친 것이리라.
"여기서 먹을테냐? 난 상관없다만." 피퍼는 피와 살점이 묻은 손으로 좌석을 살짝 뒤로 당겨 공간을 만들었다. 철두철미한 식사 준비인 셈이다.
'그런 것도 있고, 혼자 너무 신나버렸으니까... 우으.' 그런 무라사키가 제롬을 데려온 곳은 다름 아닌 [포켓 나이프] 진열 코너였다. 유리 진열대 안에 나열되어있는 자그마한 나이프들은- 이런걸 앙증맞다라던가, 귀엽다- 라는 식으로 표현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저마다 칼날을 드러내거나 숨기면서 자신의 주인 될 자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뭐 적어도, 이 소녀의 보라빛 눈에는 그렇게 비춰질 것 같았다. 무라사키는 그 중에서도 봐둔 것이 있었는지 진열대를 스윽 열어젖히고 대번에 그 안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어 제롬에게 다가와 보여줬다.
"저어- 제롬씨, 이건... '폴딩 나이프', 라는 건데요..."
둥글고, 가녀린 무라사키의 손에도 한 손에 들어올만한 적당한 크기. 솔직히 그건 '나이프'라기보다는 사무용품으로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잠깐, 보, 보여드릴게요."
촤락- 이내 무라사키가 손으로 꾹, 누르니 단번에 빛을 반사시키는 칼날이 거침없이 튀어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큰 건 아니지만 사람을 해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렇게 펼칠 수도 있고, 물론, 다시 접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요."
그리고 작은 레버를 당기니 칼날은 장치에 의해 언제 그랬냐는듯 쑥 들어가 모습을 숨겼다.
"가볍고... 위협적이지 않아서, 숨기기도 좋구요... 그, 그리고 이건 또 부품이 적게 들어간 일체형이라, 씻기기만 해도 된대요... 칼날도 단단해서, 유격도 적고, 나무도 자를 수 있고... 그리고, 또오... 온도 영향도 적어서... 아, 캐, 캠핑에도 쓸 수 있어요...! 취미,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녀는, 이런 정보를 그저 훑어본 것 뿐으로 알았다는 것일까. 사실 그렇게 대단찮은 정보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 뉴 베르셰바에서 칼에 대해 이렇게 알고있는 18살짜리 소녀가 또 어디에 있을까. 당장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제롬도 그녀에게 도움을 받고있는 마당에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무라사키의 이런 말이었다.
"제롬씨, 는... 그으,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주, 싸우시는 분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서, 최대한 일반인도 쓰기 쉬운, 그런 걸로... 골랐는데요... 읏. 하, 하지만 제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건 절대로 아니니까요...!"
대체 누가 지나친 부정은 긍정과도 같다고 했었는지. 지금 허둥대며 말을 수습하는 무라사키는 영락없이 그런 꼴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