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가 귀여운가, 캡틴이 귀여운가. 기록하는 자가 곧 승자일지니,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캡틴 귀여워. 도시뿌셔 지구뿌셔. (캡틴은 수정 뒤 이 문구를 지워주세요.)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잡화점 내부로 연결된 계단을 내려가며 거기 있을 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게 어째 불안하더라니.
문 대신 달아놓은 비즈커튼을 걷고 들여다 본 잡화점은 불이 꺼져 있었다. 그 말인 즉 오늘도 하루종일 늘어져 있었을 터줏대감님이 말도 없이 자리를 비웠다는 거다. 어디 갈 때는 말을 하던가 표시를 남겨놓으라고 누누히 말했었지만 한번도 들어준 적이 없지. 오늘은 또 어딜 가서 언제 돌아올런지. 예상은 커녕 짐작도 안 되는 상황에 골치가 아프기 전에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직 관계자만 들어갈 수 있는 잡화점의 안쪽으로 가면 몇명의 조직원들이 간단한 잡일을 하며 오늘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그들은 나를 보고 잠깐 멈춰서 인사를 하고 하던 일을 마저 이어간다. 인사를 받아주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혹시나 싶어 한번 말이나 꺼내봤다.
"보스 못 봤냐." "예? 예. 아까 오셔서 위스키 한병 들고 가셨습니다."
이 시간에 위스키? 그것도 병으로 들고 갔다니. 누굴 만나러 간 건가. 그러면 적어도 오늘 밤 내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소한 기다림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았으니 나름 수확은 있었다. 대답해준 조직원에게 알았다 답해주고 가려는데 다른 조직원이 말을 덧붙였다.
"잔도 가져가셨으니, 거처에 올라가시지 않았을까요?" "...그렇군. 알았다."
잔을 가져갔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곧장 걸음을 돌려 안쪽을 나와 계단을 올랐다. 2층, 3층, 4층, 5층. 단 하나의 집으로 만들어진 5층의 문을 가볍게 노크하며 이름을 부르니 대답이 돌아오는 건 머리 위쪽, 옥상이었다.
"나 여기 있어."
술기운이 은근한 목소리를 따라 다시 계단을 올라간다. 열댓개의 계단을 올라 열려있는 철제 문을 넘어가면, 검붉은 밤하늘 아래 위태로운 뒷모습이 거기 있었다. 투박한 난간 위에 바깥을 향해 걸터앉아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발밑과 저 너머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여." "여어. 왔어?"
내가 조심스럽게 부른게 무색하게 그녀는 몸을 뒤로 젖히며 나를 보았다. 아슬하게 앉은 그녀의 몸을 지탱하는 거라곤 난간에 댄 손 하나 뿐이다. 삐끗하면 미끄러져 떨어질 텐데 취기가 오른 얼굴은 태평하게 웃고만 있다. 그래. 언제나 마음 졸이는 건 내 몫이지. 천천히 걸어가 그녀의 옆에 섰다. 이미 위스키의 향이 진하게 흘러나오는 그녀였지만 잔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나는 잔을 뺏는 대신 옆에 있던 병을 들어 다시 잔을 채워주었다. 반쯤 녹은 얼음들 사이로 황금빛 술이 차오르고 그녀는 잔을 입술로 가져가 단숨에 반을 비운다. 방금 부은 걸로 벌써 반이나 줄어든 병을 내려놓고 난간에 가볍게 기댔다.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풍경을 같이 보았다.
달그락. 그녀의 잔에서 얼음 흔들리는 소리가 침묵을 흐트러뜨렸다. 나는 그녀를 불렀다.
"벨라." "음?" "꼭 술을 여기서 마셔야 해?" "음. 응." "왜?" "오늘은 그러고 싶은 기분이니까." "대체 어떤 기분이어야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할 수 있는 거냐?" "나 같은 기분?" "어련하겠냐..."
하하. 내 한숨과 그녀의 웃음소리가 겹쳤다. 금방 사라진 한숨과 달리 웃음의 여운은 길다. 그녀가 술로 여운을 지우고나서 나는 다시 말했다.
"벨라. 넌 지금 생활에 만족해?"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음. 모르겠어. 내가 지금 만족하고 있는지. 더 원하고 있는지." "...그러냐." "그러는 너는 만족해? 벨로."
예상항대로 돌아온 질문에 나는 쉬이 대답하지 못 했다. 말이 끊긴 나를 그녀는 지그시 바라보다가 흐물쩍 웃었다. 어둑한 사방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두 자색 눈동자를 휘어 웃고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만족이란 걸 영원히 모르게 되어버린거야. 벨로. 특히나 이 도시 안에선." "...어." "그래도 있지. 만약에. 네가 만족이란 걸 알게 된다면." "... ..." "그 땐 꼭 나한테도 알려줘." "그래." "응. 자. 내려가자."
그녀는 취한 사람 답지 않게 날렵한 몸짓으로 난간을 넘어와 잔을 들고 흔들흔들 걸어간다.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은 지난 시간 동안의 모습과 다를게 없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흐려져 사라질 것 같은 뒷모습이었다.
" 그렇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내 가족들한텐 내가 필요하고 나한테 내 가족들이 필요해. "
제법 멋있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스텔라는 그런 분위기를 한 번에 깨버리며 또 다시 스흡- 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 살냄새가 제일 좋다. 향수나 담배, 술의 향기보다 좋은 것은 이런것이다. 부드럽고 안심이 되는 향.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안심과 동시에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긴장따위의 것들이 살아있음을 다시 짐작하게 해주었다.
" Urgh... "
갑자기 이어진 칭찬에 스텔라는 또 습관처럼 앓는 소리를 내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 스텔라는 '그것도 그렇지' 하고 조금은 뻔뻔하게 답했다. 무채색의 옷을 좋아하더라도 머리색부터 눈동자색까지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덕분에 다른 사람의 눈에 각인되기는 쉬웠으며 적어도 이 구획안에서는 이 머리색을 휘날리며 어디든 들어가면 주변에서 '스텔라다' 하고 수근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 아무도 눈을 못떼긴하지. 내가 어디에 가고, 뭘 하고. 이런 것들 전~~부가 이 곳의 가십거리니까. "
호라이즌 블라인더스라는 이름과 스텔라 솔로몬스라는 이름은 그런것이다. 행동하는 하나하나, 말하는 하나하나가 어떻게 작용하여 돌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행동하기전에 몇 번을 더 생각해야하고 말하기 전 몇 번을 더 생각해야하지만 스텔라는 딱히 그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불러오도록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그렇게 설계됐는지 모르지.
" 흐으음... "
스텔라는 손을 뻗어 이리스의 허리를 잡았다. 머릿속에 처음 든 감상은 생각보다 탄탄하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 감상은 왜이렇게 말랐을까, 하는 것이었다. 잠시동안 말없이 얼굴을 바라보던 스텔라는 또 픽 하고 웃으며 '이리와' 라는 말과 함께 머리를 감싸안고 자기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곤 시선을 허공으로 돌려 멍하니 바라보면서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다시 한번 자신의 체취를 맡기 시작하는 스텔라의 머리를 상냥하게 매만져주며 이리스는 조용히 속삭인다. 분명 자신의 주위에도 사람이 늘어갈수록 자신이 변화해가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분명 스텔라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앞으로 지내다보면 좀 더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따금 간지러움에 몸을 조금씩 떠는 이리스였다.
" 나랑은 다르게 언니는 참 예쁘단 말이야. 하여튼 언니는 대단해. "
스텔라라는 이름과 호라이즌 블라인더스라는 이름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생각치 않고, 그저 순수하게 자신이 스텔라의 얼굴을 마주하며 느낀 것을 말한 이리스는 자주 본 얼굴이지만 새삼스레 구석구석 보겠다는 듯 뺨을 감싼 체 몇초간 스텔라의 얼굴을 살피곤 해맑게 웃어보였다. 그러다 스텔라가 자신의 허리를 잡아오자 '꺄아~'하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눈을 깜빡인다.
" 언니? "
자신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허리를 붙잡은 스텔라를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던 이리스. 이내 다시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품에 꼭 끌어안아오자 망설임 없이 가볍게 목을 두 팔로 감싸안는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는 그 손길이 기분 좋은지 콧소리를 조금씩 흘리던 이리스는 스텔라의 중얼거림이 들려오자 천천히 고개를 떼어내곤 스텔라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좀 더 대담하게, 고양이가 애교를 부리듯 스텔라의 볼과 자신의 볼을 맞대곤 부비적거리는 일이었다.
" 왜? 내가 '가족' 밖에 있으니까 불안하고 그런거야? 물론 언니가 '가족'으로 데려오고 싶어하는건 나도 잘 알지만.. "
마치 스텔라를 달래려는 듯 볼을 부비작대며 작고, 나긋한 목소리로 다독이는 듯한 말을 던진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는 듯 목을 감싸안은 두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 우리 언니를 너무 애타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어쩌지~ 내가 지금 뭘 해줘야 우리 언니가 덜 애탈까? "
볼을 몇번 더 부비적 댄 이리스가 가까운 거리에서 베시시 웃으며 장난스레 물음을 던진다. 마치 스텔라의 텐션이 너무 떨어지지 않게 해주려는 듯한 살가운 애교였다.
1. 『이게 우리에게 내려진 벌이야』 》"성서에 그런 말이 적혀있다고 하죠. "최후의 순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아 올라가는 이들이 있을지니, 선택된 자의 수는 14만일 것이라." 라고... 적어도 저희들은 논외의 존재일것 같네요~ 차라리 언덕에서 노니는 들짐승이 들려올라가는게 나을테니..." 2. 『진심이야?』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응해드릴게요 ... ...하지만, 정말 그걸로 만족하시는 건가요...?" 3. 『나 아니면 누가 해주겠어』 》"걱정 마세요... 전 어디 가거나 하지 않는걸요? 게다가... 두번 다시 누군가를 잃고 싶진 않으니까요...
" 비슷하면서도 다르지. 나는 말이야, aight. 말했던것처럼 이 회사의 사장이고 우리 가족의 제일 큰 언니이면서 창시자이자 보호자니까. "
또 알면서도 모를 소리를 시작했다. 결국 요점은 자신은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보스라는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소리로 치장을 했지만 결국 정론은 하나였고 동시에 틀린 말들 또한 아니었다. 가족 밖에 있어서 불안하다. 맞으면서도 틀린 이야기다. 가족이기에 믿는다. 그리고 가족이기에 걱정한다. 불안하고, 믿는다. 결국 자신조차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 가능하다면 내 동생이고 내 가족이니까 곁에두고 보고싶다는 이야기야. "
스텔라는 자신의 조직원은 전부 알고있다. 종이를 주고 적어보라고 하면 전부 적지는 못하겠다만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이름과 나이 따위의 것들은 막힘없이 이야기 할 수 있다. 모두가 소중한 가족이니까. 스텔라는 멍하니 허공을 보면서 쓰다듬던 머리와 토닥이던 등에 있던 손을 슬며시 옮겨 이리스를 조금 더 꽉 끌어안았다.
" 글쎄~ 우리 도둑고양이가, 아니. 내 동생이 뭘 해줄 수 있을까- "
그럼 너희 조직이랑 거래를 틀 수 있게 도와줄래? 따위의 말도 하려면 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로 접근하게 된다. 게다가 그렇게 접근했다간 상대 쪽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고 그 쪽 조직과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즉, 함부로 덤벼서는 안되는 것이란 이야기다.
" 아, 그래. 꼭 오늘 가야하는거 아니지? 그럼 자고가~ 요새 혼자 자는것도 질리던 차였는데 잘됐네. "
이전에도 스텔라는 이따금씩 거리를 다니거나 비즈니스차 어딘가를 방문하다가도 뜬금없이 같이 있던 조직원 즉, 가족에게 오늘 같이 잘래? 하고 말하곤 했다. 문제는 그게 너무도 뜬금없는 타이밍에 나오는 것이라 대부분은 존중을 담아 사절하곤 했다. 스텔라는 이번이 나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또 한 마디를 던지는 것이었다.
" 그렇구나~ 그러면 앞으론 좀 더 자주 와야겠네~ 적어도 자주 보게는 해줄 수 있을테니까~ "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은 입에 담지 못하고, 이리스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되는 자주 보러 오는 것을 입에 담으며 베시시 웃어보인다. 스텔라의 걱정거리를 하나 줄여줄 수 있다면 자신의 시간을 좀 더 스텔라에게 내어주는 일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집에 있으면 술,담배를 즐기며 늘어져있는게 대부분이었으니, 오히려 이쪽이 이리스에게도 유익한 일이 아니었을까?
" 말해봐, 말해봐~ 언니~! "
부탁을 들어준다는 말을 건내자 고민을 하는 듯한 스텔라의 모습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바꾸는 이리스. 물론 곤란한 부탁이 올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자신이 아는 스텔라는 그런 부탁을 아무렇게나 꺼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어떤 부탁을 할지 궁금해진 이리스였다. 기왕이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스텔라의 호의에, 자신도 돌려주는 것이 있었으면 했기 떄문이었다.
" 자고 가도 괜찮아? 언니 안 불편하겠어?? 나 막 끌어안고 잘지도 모르는데?? "
스텔라의 부탁에 눈을 깜빡이던 이리스가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재잘거리며 물음을 던진다. 자신이 잘 때, 옆에 있는 것을 끌어안고 잔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혹시나 스텔라에게 불편하게 느껴질까 걱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래저래 스텔라의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 언니만 좋다면 나 자고 갈래! 응! 이리스는 자고 가도 괜찮아~! "
스텔라만 괜찮다면 얼마든지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는 듯 이리스는 들뜬 목소리로 답했고, 괜히 한번 더 스텔라를 끌어안아준다. 이런 권유를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언니가 해주는 건 마냥 좋은 모양이었다.
성가시다는 목소리와 눈빛을 자신에게 향하는 것도, 2년 전이라면 모를까 2년쯤 겪다보면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 쌀쌀맞은 태도도 2년동안이나 이어졌다는 뜻이지만... 어라? 이거 절대 좋은게 아닌가? 뭐,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2년동안 조금씩 변화하기는 한 것도 사실이니까.
"신랄한 평가네, 그거. 그래도 걱정되는 건 사실이야. 브리엘은 내 첫 후원 대상이었으니,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단 말이지."
가차없는 독설임에도 제롬의 표정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저 물을 달라 요청하는 브리엘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을 뿐이다. 원래 후원 대상이라는 것은 신경을 많이 쓰긴 했으나, 브리엘은 처음이었고, 가장 오래된 이였으니. 정이 들 법도 했지. 브리엘은 아닌 듯 한 것을 보면 일방적인 감상에 가까운 듯 싶었지만 말이다. 제롬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툭. 툭. 두드리며 규칙적인 소리를 만들어냈다. 제롬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최고의 칭찬이라는 말에 브리엘을 향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칭찬 아니었거든요-"
비꼬는 말이었음을 알았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했다. 그래야 브리엘이 좀 더 재미있는 반응을 보일 것 같아서. 이런걸 보면 그도 참 악취미적인 면이 있었을까. 맑은 잔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브리엘이 중얼거리자, 제롬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 일을 하다보면 이런 뻔뻔함 정도는 필수적으로 갖춰야지. 안 그래?"
그의 일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관계를 얻어내는 일. 그런 그는 필연적으로 넉살 좋은 성격을 갖출 수밖에 없었을까. 제롬 역시 잔을 한번 돌려 와인의 향을 맡고는, 입으로 가져가 몇번 오물거리다가 삼켰다. 좋은 포도의 향기와 단맛에 조금 풀어졌는지 그가 늘어진 표정을 짓는다. 와인의 여운을 잠시 즐기다가, 나온 먹물 파스타를 포크로 말아올리고는 입으로 가져가기도 하며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브리엘이 식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체크하듯 그녀를 한번 바라보았겠지.
“글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뭐,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 그런 집안이었고. 이제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으니.”
제롬이 태어나보니 이 도시였던 것처럼, 자신도 태어나니 이런 집안, 그러니까 독과 마약을 만드는 클로리스라는 집안에 태어난 것이었다. 어렸으니 어찌할 방법도 없고 그저 시키는대로 따랐을 뿐인. 그러다보니 관성으로 인해 여기까지 와버린. 그렇지만 후회를 한다거나 나가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미 이런 삶에 적응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대단한 거지.”
남을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로운 사람. 하웰은 어린 조직원을 돌보는 아스타로테를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은 못된다. 가문에 있어서 자신이 지켜지는 것이지 자신이 누군가를 지킬 만한 능력도 없고, 그리고 그럴 마음도 없었기에.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만든 독이 돌고 돌아서 저를 해치거나 아니면 제 소중한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
“아, 그래그래. 알겠어.”
하웰은 제롬의 염려를 듣고 넘긴다. 대충 어느정도 취기를 조절할 줄은 안다. 여기는 취해서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녹록한 곳은 아니고, 자신도 늘 인지하고 있으니까.
“장미는 항상 구비하고 있지. 찾는 사람이 많거든. 하지만 네 부탁이라면 그 중에서도 가장 싱싱한 녀석으로 골라 놓을게.”
역시 꽃 부탁은 쉽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하웰은 미소를 거둔 채 제롬을 잠시 쳐다보다가 설명했다.
“가사 상태라고 하면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정말로 심장과 호흡이 멈추는 것, 다른 하나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미약하게 호흡과 맥박이 뛰는 경우야.”
하웰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는 찬찬히 설명했다.
“전자는 섭취하면 즉각 심장의 통증을 느끼며 쓰러져. 그리고 맥박과 호흡이 멈추지. 그리고 3분, 그 내에 심폐소생술 및 심장제세동기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 약을 풀어주는 해독액을 마셔야해. 위장에서 바로 흡수되지 않는 조치를 해독제에 사용해서 두 약을 같이 먹되 해독제가 시간차로 작동하는 것도 있지만, 그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서. 그리고 3분이 넘어가면 신체의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고 4분 이상이 되면 뇌사 상태가 될 수 있어. 혹은 죽거나.”
하웰은 소주 한 잔을 다시 목으로 넘기고는 뒷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겉으로 보기에는 심장이나 호흡이 멈춰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약한 생명활동을 하게 만드는 거야. 손으로 호흡과 맥박을 체크했을 때는 마치 죽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전문 장치를 사용하면 가사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 이것도 권장은 하루정도. 수액 등 처치를 하면 최대 일주일. 그 이상이 되면 깨어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장애가 있을 수 있어. 못 깨어나고 숨이 멎거나. 권장 시간을 지키더라도 심장에 큰 무리가 가서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해.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은 못 쓰고.”
하웰이 어깨를 으쓱했다.
“꽤 위험한 약이야.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쓰려고?”
하웰이 테이블에 몸을 기대며 제롬을 빤히 쳐다봤다. 가사약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시체로 위장시켜 도시 밖으로 내보낼 때를 제외하고는.
단순 서프라이즈로 사용하기에는 몸에 굉장한 부담을 주는 약이다. 일어나지 못하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