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맹독에 번뇌에 고독을 품고 거짓은 망상에 군침이 끊이질 않아 심판과 범죄를 하나로 묶고선 지껄여 누가 타개책 따위에 관심을 가지겠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그 날은 일요일로 낮에도 저녁에도 일을 하지 않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본점에 들렀다가 꽃집으로 돌아가던 중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보고 택시에서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조금은 얼룩덜룩한 치즈색 야옹이를 따라 걷던 중 길을 잃었던 것이었다.
지나다니는 택시도 없고, 야옹이는 사라졌고,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이상기후가 시작되려는지 점점 추워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으, 추워.”
하웰은 얇은 겉옷만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근처에 있는 허름한 술집으로 일단 피신했다. 눈이 잔뜩 쌓인 겉옷을 탈탈 털며 그 안에서 인터넷으로 택시 전화를 알아보고 집에 가야겠다 했지만, 왜인지 내부가 독특한 느낌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따뜻한 천막 안에 간의테이블과 무언가 따뜻한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
하웰은 왠지 모를 따뜻함에 잠시 쉬었다 갈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게 주인에게 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 무어냐고 물으니 오뎅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마시는 술은 소주라는 술이고.
아무래도 이 도시는 여러 문화권이 섞여 있으니 아, 어딘가의 독특한 문화이구나 하면서 호기심에 음식을 시키게 되었다. 가게 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뎅탕을 가져다주며 이게 어묵이고 이게 소주라며 작은 잔과 함께 주었다.
뭔가 이런 곳이 서양에는 없었기에 동양 문화 체험인가 하며 뜨거운 국물을 한 입 떠먹으려는데, 뭔가 익숙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408 흠 그냥 가볍게 답해주면 되는데 조금 치사할지도 모르는 대답인데 일단 로미네 가게에선 누구나가 평등하게 대해지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로미가 또 아스타로테한테 실없는 농담이나 장난을 쳤을 수도 있거든 사실 질문한 것도 이것 때문이야 그런 로미를 분위기 대장인 아스타로테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인거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날씨가 급격하게 어두워지자 제롬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제롬의 경험상 이렇게 날씨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은 이 빌어먹을 도시 특유의 이상기후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별로 조급해하진 않았다. 날씨가 살짝 어두워진 것 뿐이고, 곧 있으면 자신의 집이 나왔으니까. 여차하면 레이스 호텔로 방향을 틀어도 된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롬은 자신의 낙천적인 생각이 독이었음을 머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그의 복장이 문제였다. 그는 간단한 거래를 하고 오느라 정장 차림이었고, 특별한 방한복은 갖추지 않은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눈이 내릴 정도로 온도가 떨어지니 정장만으로는 체온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거기다 안일하게도 그는 핫팩 같은 열원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 탓에 어두워짐에도 미리 대비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주변엔 편의점도 안 보인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동사하겠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자 빨간 지붕에 비닐 천막이 보였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온도, 빛에 이끌려 제롬은 홀린 듯 천막의 입구를 열어젖혔다.
"어, 하웰?"
반가움에 제롬의 표정이 반색했다. 그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였으나, 동시에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직장에서 알고 지낼 뿐인 관계. 하지만 그런 관계일지라도 춥고 힘든 지금같은 상황에선 꽤나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 다행이네. 라고 생각하며 제롬은 하웰의 맞은편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자연스러운 합석이었다.
"너도 이상기후 때문에 여기로 피신했나봐?"
대충 하웰을 훑어본 제롬은 그의 옷차림을 보곤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과 같은 얇은 옷차림은 대충 하웰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마,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따뜻한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동질감이 들었다.
곧이어 가게 주인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제롬은 하웰의 음식을 바라보고는 똑같은 것을 주문했다. 역시, 잘 모를 때는 다른 사람들 먹는 것과 같은 걸 시키는게 최고다.
에만의 말은 상냥하지 않았지만 어조는 둥글었고, 느렸다. 그 덕분인지 기계음으로 감정을 알 수는 없어도 기력이 없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예민한 토끼처럼 경계심을 품던 에만은 이내 경계심을 거뒀다. 하지만 신뢰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짧은 의심도 심신이 지쳤기 때문이다. 의심해놓고 금세 또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죽으면 죽는 거지. 잠시 가면 속으로 눈앞의 의뢰인을 훑었던 에만은 몸을 돌려 본인의 바퀴 달린 푹신한 의자로 향했다.
"편하게 앉아.. 누워도 되고.. 그렇지만 침대 위에 올라갈 거면.. 신발은 벗어줬으면 해.. 깨끗한 곳에서 자고 싶거든.."
의뢰인이 들어오고 호텔의 보안은 짧은 음을 울린다. 문이 잠기고 에만이 의자에 늘어지듯 앉았다. 의뢰인은 침대에 앉거나 눕지 않고 소파에 걸터앉는다. 에만의 웃는 가면이 노골적일 정도로 주머니를 향해있다. 이내 에만은 의자 위에서 무릎을 당겨 안았다. 불편한 자세였지만 에만은 편안해 보였다.
"……."
잠깐의 침묵. 이따금씩 노트북의 쿨러가 윙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에만은 무릎을 끌어안은 팔뚝 위로 고개를 파묻었다.
"250만 벅.. 흥정은 230만까지."
가장 먼저 보수를 얘기했다. 에만이 고개를 파묻었다 해도 시선은 여전히 주머니를 향했다. 총이나 칼이 나올까 하는 시선 뒤로 기계음이 흘렀다.
"그리고.. 충분한 휴식. 한 사람의 지속적인 의뢰는 2주에 한 번 받아.. 나중에 또 올 생각이면 염두에 두는 게 좋아.."
에만이 조곤조곤 묻는다. "누굴 찾길 원해. 언랭이라면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지만 사흘 안에 완벽한 결과를 가져다주지." 하는 것은 호흡 한 번 흐림 없었다. 경계에 질린 토끼같던 모습과 달리 밤길의 나그네를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부엉이와 같았다.
카두세우스의 본거지 앞에 세워진 자동차의 열린 뒷문으로 브리엘이 몸을 밀어넣었다. 차안에 퍼져 있는 가죽냄새와 불쾌하지 않은 정도의 차량 방향제의 향기가 섞이는 건 브리엘의 취향이었다. 줄곧 내리 끼고 있던 검은색 가죽 장갑을 벗어서 뒷좌석 문 손잡이에 끼워둔 뒤, 브리엘은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책을 펼쳐들었다. 뒷문을 열어주고 운전을 맡은 조직원은 그런 브리엘의 행동이 익숙했는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에 집중했다.
"-네, 브리엘입니다." "네, 거래를 마치고 지금 귀가하는 중이에요. 이번에 새로 납품하기 시작한 눈의 샘플을 제공하고 한달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습니다. 저쪽에서 중간책을 맡아달라는 조건을 붙히기는 했으나 그렇게 하면 이쪽의 손해는 분명하니까요. 콕 찝자면 -저의, 손해잖아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찾아뵙고 직접 보고 드리겠습니다. -네, 쉬세요."
통화를 마치기 직전에 브리엘은 무심코 든 시선을 들었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이 아닌, 뉴 베르셰바의 붉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며 몇차례 의미없이 눈을 깜빡이던 브리엘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자동차는 브리엘의 저택이 있는 구역으로 바삐 달려가고 있었다.
저택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브리엘은 구두를 벗어서 한손에 든 채였다. 타박타박, 오르는 발걸음과 빈 손으로 꾹 잡아당겨서 말끔하게 매어두고 있던 넥타이 매듭에 손가락을 걸고 끌어내렸다. 발걸음과 사소한 손짓 하나하나에 털어내지 못하는 피로감이 잔뜩 묻어난다. 옷장이 있는 문을 열려던 브리엘은 풀어낸 넥타이를 쥔 손으로 자신의 긴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드레스룸 앞에 몸을 낮추고 웅크린 브리엘이 그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