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맹독에 번뇌에 고독을 품고 거짓은 망상에 군침이 끊이질 않아 심판과 범죄를 하나로 묶고선 지껄여 누가 타개책 따위에 관심을 가지겠어
※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없다. 블라인드는 내려가 있고 의미 없는 뷰 윈도의 커튼이 열리지 않은 건 5년이 넘어간다. 노트북 한 대는 충전 중이고, 다른 한 대는 혹독한 스케줄에 맛이 갔는지 먹통이다. 그나마 남은 세 대의 노트북 중 단 한 대만 펼쳐져 대기화면만 띄우고 있다. 오늘은 에만의 휴일이다. 아무리 이 도시에 사람이 많다고 해도 의뢰를 하러 오는 사람이 늘 넘쳐나는 건 아니다. 에만은 침대에 누워있다. 가면을 벗고 덮지도 않고 깔린 이불에 고개를 묻었다. 괜히 손을 들어 목덜미를 한번, 그리고 어깨에서 목을 어색하게 쓸었다.
밖에 나가야 하는 걸까, 그건 싫다. 밖은 두렵다. 언제 누가 죽을지 모른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쪽에서 죽이는 게 정상인 사회가 되어버렸다. 에만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올 때도 늘 마지막 기회만 남은 저격수를 고용해 나갔다. 암살자가 쫓아오면 머리를 쏴 죽이고 저격수도 자결시켰다. 에만은 그렇게 살았다. 결국 에만도 누군가의 가해자였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에서 깬 건 노크 때문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의뢰를 위한 암호가 들렸다. 거절할까 하던 에만은 손을 더듬어 가면을 썼다. 기계음이 나오는지 잠깐 테스트를 하고 가느다란 다리를 움직였다. 한 걸음, 두 걸음.. 문 앞에 겨우내 서고 에만이 문고리를 잡았다.
"부엉이 시체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문을 열었다. 다른 손으로는 혹시 몰라 주머니 속의 나이프를 꾹 쥐고 꺼낼 준비를 했다. 이자벨라의 짐승같은 감이 있다고 해도 킬러는 언제 어디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을 열자 마주한 건 처음 보는 사람이다. 에만의 짧은 삶도 위험을 경고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에만이 천천히 가면 너머의 입을 열었다.
그냥 들어가도 됐겠지만, 몇 년간 빈틈없이 지어낸 예절은 료를 문 앞에 잠시 머물게 만들었다. 변조된 목소리는 떨림을 만들지 않고 표정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았지만, 야생에서 오래 산 사람은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 목이 으스러지기 직전의 토끼같다고 생각했다. 곧잘 죽여오던 것이라 가장 먼저 생각이 났다. 물론, 이 도시의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는 없다. 료는 복도 좌우를 살피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잠금장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잠긴다.
"제가 맡기고 싶은 건 그저 생존 여부를 조사하는 겁니다. 간단하죠. 보수는 어느 정도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500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료는 소파에 걸터앉았다. 자세는 꼿꼿했으나 예의없게도 손은 점퍼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였다. 도시의 원주민이라면 수상해할 두가지 태도가 공존해, 그녀는 꽤 기이하게 보였다. 료는 조용히 물었다. 쿨러 돌아가는 소리밖에 없는 적막이라, 목소리를 세우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그랬다면 료 특유의 명료한 발성이 드러났을 테니까.
브리엘의 매력....? 분위기? 인상? 사실 시트 짤때 제일 고심했던 게 분위기였거든. 일상에서는 일부러 잘 드러내지 않는 건 길이가 중구난방으로 길어질 것 같기 때문이지. 냉랭하고 남에게 관심이 없는 인상의, 그것도 정장을 풀 착장한 미인이 눈을 내리깔면 나른한 분위기가 되는 게 묘하게 색기 있어보이고.
스텔라는 또 앓는 소리를 내면서 팔을 내렸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스텔라는 아쉬운듯 입맛을 다셨다.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렸다. 스텔라는 이미 그렇게 이야기했다. 이번만큼은 자신의 방식대로 해보자고. 사실 그 안에 숨은 뜻은 상대의 의지가 어떻든 자기 방식대로 밀고나가면서 자신의 입지를 올리고 상대의 입지를 끌어내리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내어주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 세 번 얘기한게 아니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어. "
배시시 웃은 스텔라는 안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 남아있는 술을 전부 들이키곤 담배하나를 꺼내 입술에 필터를 문질렀다.
" 조만간 찾아올거야. 우리 오빠가 됐든, 언니가 됐든 아니면 내 동생이 됐든. 누군가 찾아올거야. "
한 달치 분량은 그 때 받아가겠다고 말한 스텔라는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입에물고 자신의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심볼이라면 목걸이다. 단검은 가족 회의에 참가할 수 있는 간부들이나 들고다니는 것이고 일반 조직원, 가족이라면 목걸이가 전부일것이다. 스텔라는 목걸이를 보여주며 이걸 차고 있는 사람이니까 잘 기억해두라고 일렀다.
" 비즈니스 즐거웠어. 그럼 다음에! "
안아보지 못한게 못내 아쉬웠던듯 스텔라는 두 손으로 손을 덥석잡고 두 어번 정도 흔들며 씨익 웃었다. 뒤를 돌았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푸- 하고 연기를 뿜은 스텔라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