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마셔보고 괜찮으면 찾아오라는 말에 브리엘은 답하지 않았다. 뉴 베르셰바에는 이유없는 호의가 없고, 이유없는 배려도 없으며, 하다못해 바라는 것 없이 전해지는 선물또한 없다. 물론 브리엘이 만난 사람들 중, 그런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댓가로 작은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으니 결과론적으로는 자신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른다. 선물로 주겠다는 저 순순한 제의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게 뭔지 알수 없다. 찻잔과 받침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썩 경쾌했다. 달그락- 하는 소리를 내며 찻잔을 내려놓은 브리엘은 여전히 한쪽 다리를 꼰 채, 스텔라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파란색의 작은 유리병에 담긴, 하얀 가루인가. 브리엘은 손을 들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자신의 머리를 한차례 쓸어넘기며 립을 바른 입술을 혀끝으로 잠깐 핥고 생각에 잠겼다. 카두세우스의 대표적인 몇가지 약들 중에서 솎아내기 위한 작업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시니컬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브리엘은 커피가 담긴 찻잔의 표면을 손으로 무심하게 훑어냈다. 아, 그건가.
"원래 명칭은 그게 아닐테지만 은어로 그렇게 부르는 거 아닐까. 원래 판매자가 직접 은어를 붙히는 경우는 없으니까."
누가 먼저 지은건지 모르겠지만 꽤 직설적이고 단순한 작명센스 아닌가. 보기좋게 웃는 스텔라와 다르게 커피가 담긴 찻잔 표면을 훑어내는 브리엘의 표정과 목소리는 무덤하다못해 냉소적이었다.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한 채 브리엘의 시선이 카페 창문 밖으로 넌지시 움직였다. 어쩌다보니 스텔라의 시선을 피하는 꼴처럼 보였지만.
"지금 말이야? 상관은 없지만 나도 내 보스에게 양해는 구해야하는데."
//이다음 레스에 카페 밖으로 나갔다고 해도 되고, 아니면 카페에서 브리엘이 통화를 마칠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였다고 해도 되니 어느쪽이든 스텔라주가 모쪼록 편한대로 해줘. ///그리고 다시한번 우리 브리엘이 무미건조해서 재미없는 녀석이라 미안하다...
스텔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딱였고 두 눈을 곱게 접어 웃었다.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눈이라고 하는 은어와 파란 유리병과 하얀 가루 정도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정보도 몰라도 상관 없다. 어차피 상대 조직을 찾아갈 것이고 그 곳에는 약의 정수라는 것들이 모여있을테니 거기서 적당한걸로 그리고 제일 잘 나가는 녀석으로 구해다 거래를 하면 그만 인 셈이다. 그래서 직접 약을 시연해볼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스텔라는 고개를 저을것이다. 약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술도 그랬듯이 약도 첫 경험이라면 꽤나 장난아니게 다가올 것은 불보듯 뻔했기에 적어도 자신이 혼자 안전하게 있는 곳에서 해볼 예정이었다. 뭐, 예정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바뀌는 것이지만.
" 아하, 브리엘은 그냥 직원이었지. 나는 아닌데 말야. "
푸흐흐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스텔라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모카는 두 모금만 마셨고 더 이상 마시지 않아 거의 새것이었지만 스텔라가 가지고 다니는 작은 술병은 벌써 반이나 사라져있었다. 잠깐 통화가 이어지는 것을 본 스텔라는 먼저 밖으로 나섰다. 그리곤 담배 하나를 꺼내 필터를 입술에 문지르다가 입에 물고 불을 당겼다. 담배연기가 폐포 깊숙히 적셨다가 다시 뿜어져나온다. 두 어 번 정도 더 태우고 코트의 안주머니에서 술을 꺼내 마셨다. 술과 담배. 떨어질 수 없는 오랜 친구같은 느낌이지.
" 아, 왔어? 자자~ 그럼 가볼까~ "
보통 이런 자리라면 옆 자리에 서서 얌전히 걷거나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앞장서서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스텔라는,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그게 원래 성격이라 그런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스텔라 솔로몬스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과 당당함 때문에 굳이 그런 것들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옆자리에 서서 자연스레 팔짱을 끼려 들었다.
"그건 카두세우스의 약에 푹 절여져 있는 정키들을 향해 물어보는 게 빠를걸. 물론 제정신으로 대답해줄 정키들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야."
은어를 붙히는 이유따위 알게 뭐냐는 식으로 브리엘은 예의 특유의 표정을 유지하고 깐깐하고 시니컬하게 대답해보였다. 마약을 판매하는 사람이 할 법한 답변으로는 옳지 못했지만, 그런 걸 신경쓸 브리엘이 아니다. 웃음을 마주하는 브리엘의 눈빛 또한 별반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건조했다.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찻잔을 쥐고 입술 가까이 가져다대며 브리엘은 능숙하게 손을 놀려서 전화번호를 누른 뒤 통화버튼을 누르기 전에 스텔라를 마주 바라봤을 것이다. 직원이라는 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조에 관여하지 않을 뿐이지 판매는 자신이 카두세우스에 들어온 이래 계속 맡고 있으며 직책을 따지자면 간부기는 했다. 직원이라는 말을 정정해줄 생각따위는 없으면서 그저 잠시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스텔라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브리엘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마디, 안부가 오고가고 브리엘은 길지 않은 통화를 마쳤다. 보스는 자리에 없을테지만 제조를 하는 인원들에게 준비해두라고 이르겠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브리엘은 블랙커피를 비워냈다.
카페를 나서자마자 브리엘은 차를 부를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스텔라와 걸어가면서 무슨 대화를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대화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깐의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생각이 지나갔지만 이번에는 팔짱을 끼려하는 스텔라의 모습을 발견하고 상체를 비틀어서 뒤로 물려내며 피할 수 있었다. 아까의 포옹 시도에서 보였던 밀어내는 제스처와 사뭇 다른 움직임이었다.
"당신 말이야. 내가 이런 걸 싫어할거라고 생각은 안하는거야?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걸을 정도로 당신과 내가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
죽음이라, 이 도시에 살고 있는 한 항상 가까이서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는 주제인 것은 사실이다. 허나 하멜슨은 일부러 그것을 잊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죽음 뒤를 생각해 봐야 암울한 것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철저한 사업 주의의 마인드로, 그런 것들을 떠올릴 바에야 조금 더 건설적이고 이익이 되는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지금 와서 하멜슨은 한 마디로 일축한다.
"죽음은 쓰레기야. 그리고 반추하면 발추할 수록 몸을 더럽히는 음식물 쓰레기지."
"그건 누구의 죽음이라도 같나요?"
"물론."
"그럼 아내 분의 것도?"
"윽."
이 녀석은 또 곤란한 것을 물어 왔기에 하멜슨은 앓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10대 조직의 오너라고 해도 아내의 앞에선 안으로 꼬리가 말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그런 취급은 오랫 동안 당해왔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고 금방 면을 되찾아 하멜슨은 헛기침을 했다.
"크흠, 물론이다. 다만, 나는 이자벨라와의 죽음을 곱씹는 대신에 그녀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겠어. 죽음은 돌이켜 봤자 돌아오지 않지만, 추억은 별이 되어 사람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으니까."
"오오, 아내 분께 미움 받지 않기 위한 훌륭한 변명이네요. 역시나 16년차의 베테랑 공처가다우신 현명함입니다~."
"다물어. 그리고 애처가다!"
라고 맹렬히 주장하는 하멜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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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라에게 물어보았다.》
이자벨라는 그 물음에 묘한 웃음을 지었다.
"참고로 저희 둔탱이 남편은 그 질문에 무어라고?"
"분명 쓰레기던가 뭔가 했었죠. 아, 하지만 아내 분께서 돌아가셨을 땐 죽음 대신 추억을 떠올릴 거라고 하셨었습니다. 추억은 별이 된다더라구요."
"쿠후-. 그이다운 답변이네. 아직도 그런 철 없는 소릴...."
귀여우면서도 가소로운 것을 들어버린 표정이 된다. 하멜슨은 5년 전이나 15년이나 바뀐 게 하나도 없다. 자란 건 무수한 수염이 전부인 새파란 애송이, 적어도 이자벨라의 눈엔 그리 비쳐졌다.
"그럼 남편 분보다 어른되시는 헌신적인 사모님께선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해주실까요?"
"죽음은 빚이에요. 단, 한번 지워두면 사라지지 않는 절대적인 빚."
"아아~, 뭔가 알 것도 같네요. 즉 죽음은 죽은 자에게 남아 있지 않고 그 죽음을 추모하는 산 자들에게로 옮겨가 언제까지고 마음 속의 짐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그렇게 물어오자 이자벨라는 고갤 끄덕여 수긍했다. 대충 의미는 통하니까.
"비슷해요. 그래서, 나름 유명한 전 사업가면서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이는... 제 눈엔 여전히 애송이라는 거네요."
감탄하듯이 입을 오 모양이로 벌렸다가 곧 궁금해졌는지 조심스레 물어온다.
"어.... 참고로 사모님께선, 얼마만큼의 빚을 지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런지요?"
"분명, 제 몸에 난 흉터의 수보다 많이. ...보여줄까요?"
라며 살짝 넥타이의 머리를 잡고 끌르자, 흠칫 놀라다 시선을 피했다. 침을 한번 삼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시시각각 꽃피어나는 감정의 변화들을 지켜 보는 게 이자벨라는 썩 즐거웠다.
"아하하... 봐 주십시오, 사모님. 아직 전 살아갈 날이 길답니다아...."
"저런, 아까워라."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자벨라, 그것을 보며 식은 땀을 흘렸다. 그리고 분명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아, 하멜슨씨. 당신은 대체 어떤 터무늬 없는 여성 분을 아내로 들이신 겁니까...라고.
스텔라는 이런걸 싫어할거라고 생각은 안하냐는 말에 쯧쯧, 하고 혀를 차고는 진작 말하지 그랬어~ 하고 미소를 지었다.
" 팔짱이 싫으면 안아줄까? "
그리곤 두 팔을 벌려서 다가갔다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저지당했다. 그리도 뒤에 들려오는 말을 들으며 어깨를 으쓱하곤 주변 사람들을 한 번 생각해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 내 주변 사람들은 다 좋아하던데.. 나 피부도 부드러운데? Urgh... 살냄새 좋아하고 스킨십 좋아하는게 잘못은 아니잖아? "
스텔라는 싫으면 어쩔 수 없고~ 하고 말하며 다시 코트 안주머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 꿀꺽, 하고 한 모금을 들이켰다. 스텔라 펍이 양질의 술을 만드는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는 스텔라 솔로몬스라는 사람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자신이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양질이어야 하고 자신이 마시는 술이기 때문에 맛있어야했다. 술의 질이 떨어지면 밀주를 마시는 손님들 보다 스텔라가 먼저 알아차렸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 술을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먼저 마시는 사람은 스텔라였으니까. 그런 연유로 스텔라 펍의 술은 항상 양질로 관리될 수 있었다.
" 그럼 지금부터 더 친해지면 되겠네. 그치? 서로서로 알고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자! 나는 스텔라 솔로몬스. 호라이즌 블라인더스의 사장이야. 잘 부탁해? "
스텔라는 악수를 하겠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브리엘이 잡아주었다면 두 어번 정도 가볍게 흔들것이고 또 거절한다면 Urgh...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면서 다시 걸어갔겠지. 이런저런 잡생각이나 실없는 소리, 알맹이 없는 이야기와 저질스런 농담을 치면서 가다보면 또 금새 다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텔라의 말에, 브리엘은 콕 찝어 말로 형언하기 힘든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비스듬히 시선을 움직였다. 곧이어 이어지는 포옹을 아주 당연스럽게도, 손을 들어올려 저지했다. 처음에 멋모르고 당할 뻔했던 포옹이나 팔짱처럼 격렬하지는 않아도 단호하게 느껴지는 제스처는 확실히 거절이었다. 무심하고 건조한 표정 속에 있는 일말의 예민함이 툭 튀어나온 결과였다.
"세상에는 이런 걸 싫어하는 부류도 있어. 아주 우연하게도 당신과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이 그 부류 중 한명이고."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도가 0에 수렴하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인간불신에 가까워진다. 브리엘도 다를 바 없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브리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아는 성격이다. 예민하게 말을 맞받아치고난 뒤에 브리엘은 먼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구두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하기 짝이 없었다. 빠르지는 않았으니 스텔라가 따라오기에 어렵지 않았을테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내밀어진 손과 스텔라의 말 때문에 걸음은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냉랭하게 헛웃음을 짓고 브리엘은 자신의 옆머리를 쓸어올렸다.
"비즈니스로 아는 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친해지는 건 사양이야. 그런 수고스러움까지 감수하고 싶지 않아."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기분 나빠질 것 같은 어조였다. 냉정하고 무심하며 건조해서, 감정이라고는 한톨도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명백히 브리엘은 스텔라에게 선을 그었고, 그 결과로 악수는 받아주지 않았으며 앓는 소리를 뒤로 하고 어쩔 수 없이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는 내내 브리엘은 스텔라가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다가 저질스러운 농담에는 가감없이 어처구니 없는 시선을 던지기도 했을 것이다. 카두세우스의 본거지는 그리 크지 않았고 현대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건물이었다. 브리엘이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1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조를 담당하고 있는 카두세우스의 조직원이 헙,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두사람을 반겼을 것이다.
오전 3시 11분. 기지개를 켜자 몸의 관절이 두둑 대고 비명을 질러 몸을 잽싸게 움츠렸다. 어깨가 유달리 아팠다. 그렇지만 괜찮다. 오늘 이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뢰를 성공리에 마무리했으니, 당분간 친분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의뢰를 일절 받지 않을 생각이다. 대충 나흘 정도. 그중 절반은 잠에 쏟을 것이고, 절반은 누워서 보낼 예정이다.
에만은 뻣뻣한 고개를 돌려 옆에 수북하게 쌓인 빈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 캔, 그리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룸서비스라며 들어온 버섯과 채소가 들어간 라자냐가 담긴 그릇을 봤다. 신경 써서 좋은 재료로 좋은 요리를 해준 호텔 요리사에게 미안하지만 입에 몇 번 대지 못하고 토했다. 카페인과 타우린, 각종 액체로 절여진 위는 제대로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고체로 된 것이 들어오면 난리를 쳤고, 씹을 때마다 새롭게 구역질을 했다. 덕분에 라자냐가 담긴 그릇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에만의 위는 민감했다. 고체로 된 것이 들어오면 난리를 쳤고, 삼키고 새로 씹을 때마다 새롭게 구역질을 했다. 덕분에 라자냐가 담긴 그릇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버섯 한 조각, 완두콩 하나. 에너지 드링크 두 캔과 스위트 아메리카노 한 캔. 오늘의 식사는 그게 다였다. 에만은 한입 더 먹어볼까 생각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생활 습관을 고치려 해도 몸 상태가 글러먹었다. 이것저것 시도하기엔 그조차 허락하지 않는 상태였다. 쓸데없는 모험을 해 더 망쳐놓는 것보다 이대로 사는 게 더 낫다. 이 습관대로라면 요절하는 건 한순간이지만 어디 이 도시에서 이유 없이 죽는 사람 한둘일까. 에만은 칼에 찔려 죽거나 총에 맞는 등 남의 손으로 죽임 당하느니 차라리 일하다 스스로 죽는 게 낫다 생각했다. 곧 찾아올 호텔리어를 위해 라자냐 그릇을 덮고, 팔을 들어 책상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쓸었다. 탑을 쌓은 캔이 솜씨 좋게 옆에 구비해둔 통에 담겼다. 이젠 숙달되어 튕겨져 나오는 일도 없었다. 처음엔 여러 번 튕겨 나오고 액체가 쏟아지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이젠 숙달되어 튕겨져 나오는 일도, 쓸데없이 액체를 튀겨 방을 더럽히는 일도 없었다.
에만은 가슴까지 당겨 굽혔던 다리를 의자 밑으로 쭉 펴려다 잠시 멈췄다. 오랜 시간 한 자세를 유지했던 다리는 굳었다. 한 번에 펴자니 근육이 놀라 아플게 뻔하다. 덕분에 에만은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천천히 다리를 뻗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 않으면 의자에서 일어날 때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지도 모른다. 오랜 좌식생활은 에만에게 새로운 지혜와 느림의 미학을 알려줬다. 다리의 오금을 몇 번 주물 거리던 에만은 발이 바닥에 닿자 허리를 세웠다. 조금 굽어버린 등과 움츠린 어깨를 정자세로 유지하려 고개를 조금 뒤로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바닥에 두 발을 디딘다. 서있는 에만은 체구가 작았다. 후드티는 어린아이가 어른의 것을 주워 입은 것처럼 헐렁했고, 무릎에서 손바닥 한 뼘 정도 떨어진 길이 정도 됐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바지도 리넨 재질로 된 오버핏 바지였다. 그마저도 커 바지 밑단이 바닥에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꼴이 꼭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어른 행세를 내려는 어린아이 같았지만 에만은 남의 신경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다. 에만이 손을 뻗어 가스로 켜는 형광 초록색 싸구려 라이터와 그저 그런 저 타르 1mg 담뱃갑을 쥐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오늘따라 연초를 피우고 싶었다. 전자 담배니, 향 담배니. 에만에게는 먼 세상 얘기다. 에만은 이따금씩 짜증이 치밀 때만 담배를 입에 물곤 했다. 달리 말하자면 시간을 적게 내는 활동에 그런 사치품을 쓸 여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문을 열자 복도를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204호 객실은 밖에서 일방적으로 열리지, 안에서 밖으로 열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신을 여력도 없는지 객실 슬리퍼를 직직 끌고 걸어 나오는 에만의 모습에 제각기 수군거리기 바빴다. 아마 오늘 일은 호텔 내부에 쫙 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죽이러 찾아오지만 않으면 되는 일이다. 에만은 5층까지 올라갔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계단은 에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기 때문이다. 테라스의 문 손잡이를 열고 밖으로 나선다. 싸늘한 공기가 목덜미와 손을 스쳤다. 오래간만에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이라고 해봤자 호텔 객실 문을 열고 약 3분만 걷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나오는 5층 야외 흡연구역이지만 에만에게는 충분히 먼 세상 이야기다. 에만은 엄지를 턱에 댔다. 그리고 굽혀 딱딱한 가면의 끝에 걸고 그대로 팔을 위로 올렸다. 가면은 콧잔등에 걸치고 눈을 보이지 않았다. 메마른 입술이 얇아서 피는 맛도 없을 것 같은 연초를 물었다. 싸구려 라이터는 세 번을 당겨야 불이 올라왔다. 연초에 불이 닿아 잠깐 타오르는 연기를 뒤로 연기가 방치되듯 흐리게 퍼졌다. 맛깔나게 피울 생각도 없거니와 힘차게 숨을 내쉬기도 싫었다. 그렇게 세 번쯤 연기를 방치하듯 뱉었을 때, 에만은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의 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온 불청객은 그런 자신을 눈치챈 듯 뒤를 돈 에만의 시선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대신 권총을 꺼내들어 에만에게 겨눴다. 에만은 콧잔등까지 올린 가면 너머로 속삭이듯 입술을 달싹였다. 미처 다 뱉지 못한 연기가 뭉글게 퍼져나갔다.
"Kid. Good day to die."
방금 전까지 서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머리였던 것은 수박이 깨지듯 박살이 났다. 분홍색 덩어리가 솟구치더니 뇌수와 피가 야외 테라스를 보여주는 유리 문에 온통 튀었다. 동시에 탕 하고 총성이 울리며 유리 문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푹 고꾸라진다. 몸뚱이가 푸딩이 바닥에 떨어져 뭉개지듯 무릎을 꿇고 소리 없이 주저앉았다. 피가 낭자한 자리에 에만은 웅크려 앉았다. 무릎을 덮을 것 같이 큰 후드티의 뒷면 아랫부분이 바닥에 닿아 피를 머금었다. 에만은 가만히 킬러였을 것을 관찰했다. 귀에 꽂힌 무선 이어폰에서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목표를 사살했다. 에만은 입술을 달싹였다.
"목소리를 들었으면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지.."
담배를 시체의 머리였던 고깃덩어리에 비벼 끄며 다시금 가면을 썼다. 일어서 테라스의 문을 열었을 때, 이어폰 너머로 잠시 가쁜 숨을 내쉬며 심호흡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총성이 울렸다. 그 이후로는 정적이 흘렀다. 에만은 테라스 문을 닫았다. 남겨진 것 어느 하나 없는 그저 그런 하루였다.
미리 말하자면 브리엘주는 약이름을 하나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카두세우스의 대표적으로 제공되는 마약의 설명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넘길 수 밖에 없어. 스텔라가 언급한 눈, 이라는 약이랑 대략 너댓가지가 같이 나왔고....어, 그중에서 눈은 제조한지 얼마 안되서 그 수량이 적은 편에 속하다고 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