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스레는 17금 수위를 기준으로 합니다. ※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 될 시 1회 경고 후 시트가 즉각 내려질 수 있습니다. ※ AT필드(따돌림)를 절대적으로 금합니다. ※ 어두운 세계관이지만 밝은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 서로 서로 인사합시다. ※ 아리송한 부분이 생기면 캡틴에게 질문합시다. 물지 않아요!
>>918 지금은 대충 28세 정도라서 어느정도는 이자벨라의 활동을 봐왔을거야 딱히 전달하지는 않았을지도? 매서커과의 과장은 매우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이거든 명령도 시니컬하게 할말만 띡띡 하는 군상이야 혼자만 알고 묻어놨을 확률이 높아 과장 시트는 언젠가 공개하기는 할 건데 당장은 아무래도 힘든가 싶어 일단 이정도로만 말해두고 나중에 공개되면 선관 짜도 괜찮은데 어때?
"손실이라." 하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다. 태어나서 제일 처음으로 터뜨리는 울음. 그것은 세상에 대한 외침이고, 아이는 태어난 그 직후부터 거부당할 위험을 감수한다. "이런 구절을 알고 있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라는." 페퍼는 한 아이를 본다. 그 아이는 울지도, 애정을 갈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할 뿐. 하지만…
'나란 작자도 참, 오만하기 그지없군.' 인생은 어쩌면 본래 고독한 것일지도. 제 눈 앞에 있는 이 자가 도리어 현명한 건지도. 페퍼는 그렇게 생각하며 날카로운 턱선 아래로 중후한 목소리를 내어본다. 마이크를 통해 울리는 기계적으로 변조된 목소리와 함께. "그저 내 알량한 욕심일 뿐이다. 그래, 어쩌면 자기실현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을 그런 것. 그러니까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돼."
자신의 손등 위에 놓인, 따뜻한 살의 감촉과 무기질적 인공물의 감촉을 동시에 느끼며 그는 다시 상념에 젖는다. "나도 나이가 들었지." 다시 한 손으로 방독면을 덮어쓰자, 이제는 육성은 모두 묻혀버리고 기계의 음성만이 들려온다. 그 아래로 드러나는 시커먼 땋은 머리도, 연붉은 기가 감도는 목을 감싸도는 하얀 천 제의 초커도, 마찬가지로 묻혀버린다. "이렇게 되고 나니… 젊은 시절의 치기 어린 욕심과 욕망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젠 그저 막연한 의무감만이 드는군." 에만의 어깨 위에 올린 손은 이제 천천히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애무하듯 어루만지는 흰 라텍스 장갑의 촉감은 거칠고 기분나쁘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억지로 지킬 사람을 찾아나서고 있는지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그 역할을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렇지 않나?"
#왠지 쓰다보니 페퍼가 변태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기분나빠 ㅇㅅㅇ;; 혹시 묘사 중 NG가 있다면 다시 쓰는걸로 할게!~
>>948 일단 시작부터! 술을 제법 좋아한다고 했는데 스텔라도 술 정말 좋아하거든! 구획 내에 '스텔라 펍'이라는 자기 이름 붙인 술집도 있고 주로 취급하는건 밀주로 만든 위스키랑 럼이지만 아무래도 술 좋아하는 본인이 마시는 것이다 보니까 제법 양질로 만들고 있다는 설정인데 브리엘은 여기까지 술 마시러 오는 일이 있을까?
저기 둥지 잘못 틀어 날지도 못하고 둥지 밖으로 떨어져 죽은 새는 날 적부터 태양이란 것을 본 적이 있나. 밤길 매섭게 쳐다보며 산 자 수호하고 죽은 자에겐 침묵으로 묵념하는 부엉이는 살면서 햇살 한번 내리쬔 적 있나. 비 오는 날 하늘이 붉으면 붉었지 푸른 적 있나. 가면 벗은 날의 공기가 맑은 적 한 번이라도 있나. 당연한 것은 이질적이고, 평범한 것은 특별하다. 그것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끌어안아야 할 숙명이다.
오늘도 레이스 호텔의 204호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창문의 블라인드는 완벽하게 쳐있다. 방 안은 작은 천재의 공간이다. 의뢰인으로 위장한 첩자가 선물로 두고 간 꽃다발 속에 숨어있는 소형 카메라는 이미 에만의 영리한 프로그램에 장악되었다. 시선 밖 노트북 한 대는 정해진 수순을 밟는다. 역으로 통신을 추적해 조직의 정보를 야금야금 뜯고, 중요한 것은 부수고, 통신 베이스에 던져 올려버린다. 화면의 조잡한 스틱맨이 날뛰며 정보를 이곳저곳 뿌리는 애니메이션 효과는 순전히 에만의 취향이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에만은 가면을 올렸다. 콧잔등까지 올라온 가면 틈으로 메마른 입술이 보였다. 탈지면처럼 버석하게 마른 윗 입술에 검은 캔이 닿았다. 녹색으로 M이라는 한 글자만 쓰여있는 에너지 드링크로 목을 적셨다. 입술 위에 묻은 음료를 혀로 훑으며 적당한 구석자리에 캔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오늘로 벌써 사흘째 밤을 새운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닌지라 이젠 익숙하다. 사흘 밤을 새우고 하루를 꼬박 잠든다. 그게 에만의 삶이다. 불규칙하게 자리 잡은 생활 습관에 한때 몸이 제멋대로 셧다운 되는 등 시위를 벌인 적도 있지만 이젠 아니다.
앞서 말한 도시의 숙명을 거절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끌어안지 못할 것이라면 맞서거나 도망쳐야 했다. 전자의 경우에는 경우의 수가 많지 않다. 죽거나, 죽여달라고 빌거나. 어느 쪽이든 끔찍한 일이며 불합리를 감수할 용기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한 가지 더 늘어난다.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제각기 도시를 떠돈다. 그리고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지만 억지로 휘저어 섞였다 주장한다. 그러다 기름 둥둥 섞인 물이 된다. 어린아이에게 먹기 싫은 반찬을 주었을 때 볼 안에 밀어 넣고 자신이 먹었다며 주장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다. 그러다 얼떨결에 씹어버리고 주변 눈치에 뱉지도 못하며 맛들어버린다. 이게 에만이 봐오고, 정의하는 뉴 베르셰바의 삶이었다. 이것이 에만이 사흘 내내 밤을 새우는 이유다. 섞여버린 사람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흔적을 지워달라 한다. 아니면 과거의 자신을 만든 사람을 차라리 죽고싶게 만들도록 해달라 의뢰한다. 섞여버린 사람은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흔적을 지워달라 한다. 아니면 과거의 자신을 만든 사람을 차라리 죽고 싶게 만들도록 해달라 의뢰한다. 에만이 맡은 일은 후자였다.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학생이 거금을 들고 왔다. 삶을 지옥으로 떨어트린 그 사람도 같이 끌고 가게 해달라며 이를 박박 갈며 분에 겨운 얼굴로 들어왔을 때, 에만은 동조나 동정 한번 하지 않았다.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내 손은 안 더럽히고 싶어요."
그리고 현재. 에만은 화면에 뜬 프로필을 봤다. 강도, 특수 살인.. 범죄 경력이 화려하지만 이곳에서는 양호한 수준이다. 가족은 아내와 은밀하게 만나는 창부가 하나 있다. 창부는 열명 남짓 모인 마약 브로커 조직의 비호를 받고 있고, 해당 구역의 마약 유통은 타 조직이 독점한 상태다. 쉬운 일이었다. 몇 가지 날조하면 끝난다. 조직의 계좌와 목표의 계좌를 해킹했다. 창부를 위한 돈을 마약 밀매와 구역 쿠데타를 위한 거금으로 바꿔치기하는 등 몇 가지 혼선을 주고 마약 밀매를 드러나게 했다. 그렇게 에만은 창부와 목표, 그리고 목표의 가족의 삶까지 모조리 끝장냈다. 아마 내일쯤이면 시체는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에만이 닳아 헤진 엄지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엉망이 된 손톱은 더 씹을 수도 없어 살만 자근자근 몇 번 씹다가 겨우내 기지개를 켰다. 온몸의 관절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시원하기는커녕 아파서 잽싸게 몸을 웅크렸다. 이제 진짜 끝이다. 평소 같으면 하루면 끝나는 일이지만 학생의 새 신분을 만드는데 무진 애를 썼다. 학생의 삶은 지옥이었다. 퍼진 것도 많았고, 지우고 난리를 치기엔 보안이 빡빡한 곳도 있었다. 수습하고 적당히 꾸미는 일은 끝났지만 남은 건 사람들의 기억이다. 에만은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나머지는 학생의 몫이다. 에만이 학생에게 메일을 보냈다. 의뢰 완료.
그리고 에만은 의자에 늘어진다. 더 이상 새까맣고 지루한 화면이 아닌 인터넷 이미지 검색이 노트북 화면을 파란 색조로 가득 채웠다. 오늘도 사람을 손가락질 몇 번으로 죽였지만 도시 바깥세상은 맑고 화창하다. 그 점을 위안 삼으며 느릿하게 눈을 끔뻑이던 에만이 가면을 다시 내려썼다. 그리고 몇 분 채 되지 않아 새근새근 숨소리가 방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오늘도 칙칙한 빗소리를 벗 삼아 잠들었다.
꿈속에서 마주한 태양은 호텔 안 공기처럼 따뜻하지만 낯설었고, 쳐다보는 순간 눈이 타버렸다. 그럼에도, 불타는 와중에도. 에만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지금 볼 수 있는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듯, 어스름 녘 때도 모르고 눈치 없이 켜진 가스등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952 박제가 되어버린 젊은 천재를 아시오...? 느와르적이고 어쩌면 사이버펑크적이기도 한, 디스토피아적이고 염세적인 독백 잘 읽었어!~ 숙명과 맞서싸우기 보단 차라리 회피해버리는 이 시대의 젊은 청년들이 떠오르는군 ㅠㅁㅠ >>958 오오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료~ 다들 많이 많이 창작해달라구 ^~^ 페퍼주는 모든 인물들의 서사가 궁금해~
버졔바, 사람들은 베르셰바라고 부르는 곳은 춥지 않다. 그러나 료의 버졔바는 춥다. 미닫이 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흰 설원과 입김이 안으로 들이칠 것만 같다.
하지만 눈을 한 번 깜박이고 나면, 희기는 커녕 붉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료의 새로운 터전, 아마도 고향. 자각할 때마다 싸늘한 계절풍이 분다.
료는 미닫이 문을 닫는다. 오늘 간판에는 사람이 걸려있지 않았다.
*
"이런 건 침을 놓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할머니." "아편이라도 좀 줘..."
"이런 건 정형의를 찾아가보는 게 빠를 것 같은걸요. 가급적 빨리..." "그럴 돈이 없으니까 찾아오는 것 아니겠소."
"하루에 한 번, 밥 먹고 이것 드시고 요양하세요." "안 나으면 책임져라, 이 X것아..." "네~"
료의 고객들은 버림받은 작자들이다. 고향에게서, 터전에게서. 이 쓰레기통과 같은 도시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묵고 있는 찌끄레기들. 료는 한 때 이들을 업신여겼으나, 결국 그 찌끄레기들의 푼돈을 받고 살게 되었다. 물론 그것만으론 수지가 맞지 않는다. 보수되지 않는 수도관을 고치고, 전기선을 다시 까는 것을 하기엔 턱도 없다.
>>777 브리엘과의 인연은 3년 전부터로구나. 음. 담당이 브리엘로 바뀐 뒤에도 라 베르토 측에선 별다른 반응은 없었을거야. 다만 거래는 아스가 직접 하니 바뀐 담당을 보고 예의상 인사 정도는 했겠지. 그 뒤에도 별다른 일 없이 한 반년 정도는 그대로 흘러가. 브리엘이 라 베르토에 세번째 찾아왔을 때, 그날따라 아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아. 거래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 날은 어쩐 일인지 거래 후에 브리엘에게 말을 걸어. 부탁을 하나 해도 될까. 지금 잠깐만 시간을 내서 이곳의 아이들을 잠시 봐주지 않겠나. 진찰료가 필요하다면 지불할테니까. 라고. 아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을거야. 말투도 사뭇 신중했겠지. 브리엘은 이 부탁을 받아들였을까? 아님 거절했을까?
》어리석은 자의 일생이라 함은 만인에게 결례를 범하는 자가 아니요,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묻어두고 변화하지 않는 이라. 현명한 자의 일생이라 함은 비단 그가 문무에 출중하기 때문이 아니요, 5할의 포용과 4할의 경험과 1할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라. 그러나 이에는 우열과 순서가 없으니 현명한 자라 일컬어지더라도 한순간에 심연으로 떨어질 수 있음이요, 어리석은 자라 손가락질 받는 이도 찰나의 선택으로 떠오르는 태양이 될 때가 있음이라.《
흐름에 몸을 맡기고 나아가다보면 정말 셀 수조차 없는 풍경들이 우리 곁에서 스쳐지나가기 마련이랍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지나가고 풍경은 멈추어져 그 모습을 잠깐 담아둘 뿐이겠지만요.
소란의 중심에 선 이가 있다면 그것을 저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외부자도 있고, 애당초 그곳에 자리하고 있지도 않은 논외의 존재도 있답니다. 주연과 조연, 무리와 배경이 한데 어울려 극이 완성되듯... 그렇기에 그들 중 하나라도 떨어져나가면 완성되지 못한 극장에 어느 누가 발을 들일까요?
어쩌면... 비평가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기에 어린날의 기억으로만 남겨진 비극적인 씬이 정작 내놓으면 보잘것 없는 아마추어의 그림 한폭이라 해도 묘하게 일그러진 프레임조차 그들만의 테마가 어려있듯, 누군가가 신경쓰지 않는 세상에서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법이랍니다.
흔히 말하는 야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극 밖의 극, 공주의 등장으로 그제서야 빛을 드러낸 난장이들의 어두운 과거, 이상형을 쫒던 고귀한 왕자의 일그러진 이상향, 탐욕스러운 마녀가 아직은 숲 속의 현자였을 때에 일어난 사건들, 심지어 화가의 팔레트나이프에 묻은 선혈의 행방까지... 그 테두리의 이야기들과 어우러지는 것 또한 제 운명인 셈이지요.
때때로 그들과 어울려 추상(抽象)을 초상(肖像)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 초상에 어우러질 풍경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제가 할 일이랍니다.
면은 고사하고 그 흔한 선이나 점도 남길 수 없는 저에겐 만용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손실은 무섭다.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되찾지 못하는 게 이 세상이라 더 무서운 것 같다. 평범한 삶을 살았더라도 두려워했을까? 에만의 기운 없는 감정은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괜히 또 발가락을 꿈지럭 움직였다. 호텔 방은 따뜻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비에 젖고, 하얀 성에가 끼다가, 마침내 꽝꽝 얼어 깨질 것 같았다. 그리고 다리도 얼어붙고, 골반도, 허리, 끝내 심장까지 모조리. 에만은 가면 속의 입술을 자그맣게 뗀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종이로 된 책을 읽을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떠도는 자료는 읽을 수 있었다. 떨어지는 머리로 간신히 기억해 낸 한 문장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의 가치가 있다. 세계를 깨뜨려 마주해야 했다. 악하고, 선함의 판단은 옳은 것일까? 올바르게 소망할 수는 있을까? 포기한 사람은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연장선이었다. 에만은 기계음 사이로 섞이는 중후한 목소리에 가만히 화면을 바라봤다. 눈앞의 화면은 다시 대기모드로 들어섰다. 잠깐 암전 되더니 새파란 바깥세상의 하늘과 그 위를 노니는 이름 모를 흰 새가 보였다. 짧은 순간 둘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으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곳을 사람들이 비탄의 도시라고 해도.. 욕망의 도시라고 안 불린다고는 하지 않았어."
그러니 그 욕심은 당연한 것이라는 양. 에만은 비스듬한 고개 사이로 기계음을 흘렸다. 페퍼는 나이가 들었구나. 그렇지만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애당초 이 도시에서 나이를 신경 쓰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일이다. 흐르는 말에 위로해 줄 단어를 마땅히 찾지 못했는지 에만의 가면 너머로 목소리가 흐르지 못했다. 에만은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그게 삶이야,라고 답하기엔 서로 다른 이념을 안지 않았는가.
에만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이다. 눈만 굴려 커피 캔을 쳐다본다. 차가운 냉기를 품었던 캔은 객실의 온기에 섞여 어느덧 이슬이 맺혔다. 이슬이 한줄기 흐를 때, 에만은 손의 움직임을 따라 어깨를 움츠린다.
"아, 페퍼."
목덜미에 소름이 쭉 돋아 올랐다. 거칠고 빡빡한 라텍스의 촉감 너머의 온기가 목을 어루만지는 것도 낯설지만 누군가 이렇게 자신을 진득하게 만져본 적이 있었나. 전혀 없다. 애당초 이렇게 만질 사람의 관계도 없었다. 에만이 움찔대다 기운 없지만 어딘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토로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네 욕망이면 목표가 되는 거겠지. 웃기지는 않아.. 타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