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였다. 수업을 듣고, 돌아와서 게이트 관련 내용을 좀 찾아보다가, 운동을 하고, 씻고, 잠자리에 든다. 별 거 아닌 루틴이지만 이젠 이걸 지키는게 일종의 강박처럼 되어버렸다. 어릴 적의 트라우마 비슷한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운동을 안 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마지막 한 세트까지 끝마치고 기구에서 내려온다. 쳇바퀴를 돌듯 정해진 루틴에 따라 정해진 행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조금 특이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딸기잼을 받아가라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딸기잼..?"
정말 뜬금없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 사람은 왜 딸기잼을 받아가라고 글을 올렸는가, 왜 하필 딸기잼인가... 등등. 메시지를 받자마자 꼬리에 꼬리를 물며 궁금증이 생겨났다. 마침 오늘 할 일은 더이상 없고 자유시간이었던 만큼, 그는 딸기잼을 나눠준다는 장소로 향했다.
연희와 같이 딸기잼을 잔뜩 만들었으니 나눠주는 게 있어야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딸기잼을 담은 병을 쌓아두고 지한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눠받은 사람들을 봅니다.
"으음..." 이제 나눠받을 만한 사람들은 웬만큼 나눠받았고.. 라고 중얼거리다가 지한은 이제 들어오는 시우를 바라봅니다. 매대 위에 있는 딸기잼과 그 옆에 앉아있는 지한은 눈을 깜박입니다. 그러고보니 안 받아가신 것 같고요.. 라고 생각하다가 남은 병 양이 생각보다 되는 것을 보면.. 또 덜 받아간 분들 있는 것 같고.. 같은 생각이 이어지다가. 시우에게
"...수제입니다." 어쩐지 판매자같은 말을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는 딸기잼 병을 쑥 내밉니다. 그거 너무 강매처럼 보이지 않나..?
없으면 벌어서 갚으라는 말과, 옅은 미소, 그리고 사라지기 전에 눈치챈 장난기를 통해, 시우는 지한이 자신이 한 짓을 똑같이 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방금 전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보면 아예 안 통한 건 아닌 것 같았고, 눈치가 좋은 편인 걸까... 살짝 장난치려 했는데, 역으로 당하게 생겼다.
"아르바이트인 건가..."
나눠주는 것 정도는 별로 힘도 안 들일테고 상관 없다. 문제는 따로 있었나.
난 분명 강매당하는 척 연기했을 뿐인데, 어쩐지 정말 강매를 당한 것처럼 되어버렸다. 억울하다...
...라고 호소해도 아무도 안 들어주겠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까.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딸기잼을 받아들더니, 지한의 옆에 섰다. 그냥 이대로 나눠주면 되나..?
"그래서, 어떻게 나눠주면 돼?"
나눠주기 전에 포장을 해야한다던가, 그런 과정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었나. 이렇게 된 거 빨리 도와주고 받아가겠다는 생각이었지.
후후후 웃는 지한입니다. 역으로 당하는 것도 좋지요? 라고 생각하면서 앉을 거면 의자는 저쪽에서 공수해 오시면 된답니다? 라고 말하는 지한입니다.
"그렇죠? 아르바이트입니다." "스불재스불재인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지한은 딸기잼을 어떻게 나눠주면 되냐는 질문을 하자. 그냥 나눠줘도 되고요.. 여기 라벨에 이름을 적어서 나눠줘도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여기 수첩에 받아간 분의 이름이 써져 있으니 나머지 분들의 이름을 적으면 되겠습니다. 라고 수첩을 내밉니다.
"남은 딸기잼을 빵에 발라드시겠나요?" 딸기잼을 병에 담고도 좀 남은 것이 그릇에 담겨져 있고 그 옆에 동그란 모닝빵과 식빵 조금이 놓여 있습니다. 따끈따끈하게 굽기도 가능할지도?
후후후 웃는 지한을 보며 어째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는 그였던가. 받아치는 것까진 예상했어도 역으로 장난에 걸려들 줄은...
"스불재라니 그거 정말 맞는 말이네... 얌전한 녀석인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짓궂은 녀석이었잖아."
불만스레 말하며 약간 투덜거리기는 해도 별로 기분 나빠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할 것도 없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수첩을 내밀자 그것을 받아들며 쭈우욱 훑어내렸다. 생각보다 많은 거라고 해야할지... 그냥 나눠주는 것 뿐인데 명단이 있을 정도라면, 나눠주기 전엔 얼마나 많이 만든 거야? 같은 생각을 한다. 아마 스스로의 추측보다도 많은 양일지도.
"아직도 남아있어?"
한창 나눠주던 차에 남은 걸 빵에 발라먹겠냐는 말에, 살짝 놀란 듯 시우가 눈을 크게 떴다. 지한에게 묻는 목소리에는 조금이지만 경악이 묻어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일단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식빵을 따끈하게 구워서 남은 잼을 바르고, 빵을 하나 더 올려 크게 한입 베어물었으려나.
"꽤 맛있네... 얘는 어쩌다 이렇게 많이 남은 거야?"
메시지를 받았을 적부터 생겼던 궁금증이었다. 과연 이 많은 딸기잼은 어쩌다 생긴 건지, 그에게 있어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던가.
"얌전한 건 맞지만... 그 이상으로 짖궂어요?" 장난기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지한은 수첩을 보는 시우를 잠깐 봅니다.
"그렇...죠..?" 병이 모자랐던 것도 있고요... 분위기가 붙어서 열심히 만든 것도 있고요.. 라고 변명을 하면서 그래도 맛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변명일 뿐입니다. 모닝빵을 갈라서 딸기잼을 발라서 냠 하고 베어뭅니다. 따끈한 모닝빵에 베이컨과 계란과 딸기잼.. 도 맛있겠지.
"많이 만들었는데 병이 없어서요.." 왜 남았냐는 물음에는 성실합니다. 그리고 왜 만들게 되었냐라면 그것은 준혁이 가져다준 1인당 1상자의 딸기와 그것이 상하면 곤란함에서 시작되는 꽤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 것... 이라는 말을 쓸데없이 진지하게 하는군요.
장난기 있는 목소리에 하하. 하고 힘없이 웃으며 지한을 빤히 바라보았다. 미리 말해줬다면 장난을 안 걸었을텐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혀가 길구나. 변명이야, 그거 전부."
딱 잘라 말하고는 무표정히 있다가, 키득 웃음을 터트렸을까. 사실 나도 맛있으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는 걸 보면 어쩐지 글러먹은 걸지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인드가 기본 탑재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삭바삭한 식빵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그는 냠 하고 베어무는 지한의 모습에 어쩐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을지도? 사실 키 차이가 꽤나 나기 때문에, 동생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려나...
"한마디로 양을 생각하지 않고 만든 탓에 이렇게 쌓인 거구나... 그냥 다른 요리에서 소모하면 됐잖아..."
왜 그 많은 양을 한번에 잼으로 만들 걸까... 라고 생각하던 와중, 상하면 곤란이라는 말에 그제야 이해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딸기는 오래 둘 수 없으니 많은 양을 처리하려면 잼밖에 길이 없었겠지...
"...아니, 그거 애초에 준 사람이 적당한 양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면 일부러 골려주려고 그만큼이나 보냈다거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애초에 그런 의도였다면 이렇게 잼을 만들지도 않았을테니 감각이 없었거나 애정이 넘쳤다는 것에 가까우려나. 같은 생각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1인당 1상자의 딸기는 너무 많다. 너무.
"장난을 말하고 치는 분도 있나요?"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면 모를까요..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지한입니다. 사실 지한주가 빵에 딸기잼 발라먹어서 이입중이라는 사실..(아무말) 그리고... 지한은... 동생처럼 보이지만 동갑이었던 겁니다(?) 지한이 그렇게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지만요.
"찌릿." 찌릿하고 바라보는 걸 말로 한 시점에서 이미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하지만 딸기는 다른 요리에 소모하기엔 조금 애매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잣집 사람들은 이게 애매하다니까요" 야 너 별의 아이잖아. 자폭이지 않아? 하지만 지한은 스스로를 슬쩍 숨기는 타입이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시우의 표정이 볼만할지도(농담)
"이쪽은 위험...보다는 장난의 대가로 일을 하는 거긴 하지만,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위험이 아닐까..."
뭐,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이었으니 지한이 신경쓸 필요는 없었겠지만... 저도 좀 주세요 같은 괴전파가 느껴지는 건 기분탓일 겁니다(?) 키차이만 봐서는 동생처럼 느껴졌지만... 동갑이었다면 크게 티는 안 내었으려나.
"그건 인정한다는 뜻?"
찌릿. 이라 말하는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노려보는 효과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게 귀여워서... 마치 동생이 생긴 느낌이다. 거듭 상기해보자면, 지한과 시우는 동갑이었지만.
"처리 곤란의 과일을 대량으로... 부잣집 도련님이나 따님이었나. 어쩐지."
한숨을 푹 쉬었다. 간혹가다 있단 말이지, 그런 사람들이... 너무 부유해서 서민들의 기준을 모르는 사람들. 지한이 열심히 숨기고 있었기에 시우는 눈치채지 못 했지만, 나중에 눈치챈다면... 글쎄다. 아마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라고 말은 안 했지만 의미를 알겠는 시선을 보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