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은 오늘도 어김없이 수련장 한편에서 열심히 활을 쏘고 있었습니다. 길쭉한 귀 대신에 조그마한 부러진 뿔 같은 흔적을 머리에 달고 있네요. 얼핏 보면은 그냥 머리장식처럼 보이는 정도입니다. 한 번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니까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지는 게 소녀의 마음이었어요.
틱, 틱.
활을 쏠 때마다 손에 쥔 화살에 손톱이 걸리는 느낌이 납니다. 어느새 손톱을 자를 때가 된 걸까요? 그녀는 하던 것만 마무리하고 돌아가서 손톱을 다듬을 요량이었습니다.
... 틱!
"아!"
결국 화살 끝에 엄지손톱이 걸려서 깨지고 말았어요. 워낙 활을 거칠게 다루는 편이긴 했지만, 여태까지 손톱이 부러지는 일은 없었는데. 적당히 길면 가위로 싹둑싹둑 아무렇게나 다듬어도 문제가 없었단 말이에요. 아무래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수인으로써의 특성이 줄어들어 손톱의 강도도 약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씨이... 아프네."
자리에 쪼그려 앉은 라임은 급한 대로 인벤토리에서 급속 회복 키트를 꺼내어 손에 뿌려서 손톱이 따끔하게 아픈 것을 멈추려고 했어요. 엄지손톱의 상태는 아주 심하게 깨진 건 아니었지만 손톱을 바짝 자르더라도 안쪽에 깨진 부분이 남아있을 정도였답니다. 그 상태에서 손톱을 들면 큰일나는데.
당장 아픈 건 멈췄지만, 깨진 부분이 되게 거슬립니다. 잘 떼어내면 말끔하게 떨어질 것도 같은데. 그런 생각으로 엄지를 입에 물려는 순간, 근처에 있던 지한과 눈이 마주치는 라임이었습니다.
수련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일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한산한 편이었습니다. 지한은 창을 잡는 사람이니까 손톱을 짧게 유지하는 편이었습니다. 손톱이 길면 창을 쥐었을 때 손바닥에 옅은 손톱자국이 나고.. 창을 투창할 때 아주 미세한 차이가 나니까요.
'조금.. 갈아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길어진 손톱을 봅니다. 가끔 보는 미용 쪽 검색에서 인조손톱과 큐빅을 붙이거나 젤네일같은 걸 하는 것도 간혹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지요. 아. 후자는 기회가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다가 다시 창을 잡고 돌아보려다가 라임이 뭔가를 뿌리는 것을 슬쩍 봅니다. 손에 뭔가 다쳤나.. 싶은데. 자세히 보면 손톱이 조금.. 뭔가 있네요.
"라임 씨?!" 그러다가 엄지를 물려고 가져가는 것에 손톱 쪽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살짝 기함합니다. 그렇게 죽 뜯으면 피를 보는 것이라고... 예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던 겁니다. 그래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려 하는 지한이네요.
라임의 녹빛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갑니다. 놀란 듯이 이름을 부르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오는 지한과 눈이 마주친 그녀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흠칫 놀라며 손을 홱 내려서 회복 키트와 함께 두 손을 등 뒤로 감추려고 했어요. 손톱을 물어뜯으면 안 된다는 걸 인지했다기보단 다친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왜... 왜?"
정말. 지한의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려는 라임이었습니다. 숨겼다기엔 이미 바닥을 점점이 적신 약품 자국이 눈에 띄었지만요.
녹빛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는 손을 뒤로 숨기는 것을 보자. 몇 가지 가능성이 마리속을 스쳐지나갑니다. 가장 먼저 든 것은 부끄러운 걸까요? 였고. 회복 약품의 흔적을 보았을 때에는 다친 건데 숨기는 것.. 이라는 것이었네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다음.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습니다.
"손톱... 그렇게 뜯으면 피도 나고 아플 겁니다." 지금은 거슬리고 불편한 정도지만요? 라고 말하는 지한입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아프게 될 것이다와 지금은 불편하다 라는 건 다쳤다가 아니라 다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은 다친 게 아니라는 말입니까?
손 주실 수 있나요? 라고 속삭이면서 손을 얹어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습니다. 인벤토리 안에 손톱깎이 세트가 있을 텐데.. 라며 내밀지 않은 손으로 인벤토리를 뒤적입니다.
"으음..." 지한은 라임이 손을 얹자. 엄지손톱이 어떻게깨지고 얼마나 잘라내고 갈아야 하는지 가늠해보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사실 제대로 뜯어지면 나을 때까지 미묘한 감각에 계속 거슬리는 건 둘째치고 특히 손은 사용량이 많을 수 밖에 없어서 덧날 확률도 높아서 그렇습니다." 간단하게는 매일 씻을 때 물이 닿으면 따갑다거나. 격하게 움직이면 살짝 당겨져서 쓰라린 감이 온다거나요. 같은 말을 하는 지한입니다.
"의념 각성자인 만큼 저정도로 심각해지진 않겠지만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잔뜩 무서운 말을 했지만 의념 각성자라면 저정도는 꽤 빠르게 치유되겠지요. 아 여기있다. 라고 중얼거리며 지한이 손톱깎이 세트를 꺼냅니다.
내민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지한은 꼭 의사선생님 같습니다. 회복약에 마취 성분이 있는지 지금은 아프지 않지만, 덧날 확률이 높다거나 물이 닿으면 따갑고 평소에도 쓰라릴 수 있다니, 끔찍해요. 라임은 살면서 겪어본 적 없는 고통들을 상상하니 저도 모르게 어깨가 파르르 떨립니다.
"하... 그렇게 심각한 상처였어...?"
무서운 것을 봐버린 것처럼 조심스럽게 속닥이던 라임은, 그렇게까지 심각해지진 않을 거라는 말에 조금 안심하면서, 지한이 시키는 대로 손을 내민 채 바닥에 쪼그려 앉습니다. 손톱... 어렸을 땐 아저씨가 이렇게 잘라주곤 했었는데 말이에요. 손도 조그맣고 손톱도 오밀조밀하게 생겨선 쓸데없이 억세다고, 지금처럼 손톱깎이가 아니라 가위로 썩둑썩둑 잘라주긴 했었지만요.
"의념 각성자니까 심각한 건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신경이 쓰이기로는 굉장한 상처이긴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 손끝에 그 깨진 것이 자꾸 거슬리게 하고 물이나 뭐에 닿을 때마다 그 존재감을 약한 쓰라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경이 곤두서게 하기엔 충분합니다.
"의외로.. 손거스러미나 손톱 손상이.. 한번 나면 끈질기다고 하네요." 손거스러미가 나타났을 때 뜯고 싶은 욕망을 참는 것과 그 손거스러미가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이 좀 긴 만큼 평소 관리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황하진 않았지만.
"전투할 때 손톱이 거슬리면 은근히 신경쓰이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시위가 있는 활이면 조금 깨진 손톱 사이에 시위가 걸려 확 뜯겨나가면.. 이라는 말을 하지만.. 당연히 경험한 적은 없겠죠. 쪼그려 앉으면 지한은 세트에 있는 작은 손톱깍이로 조심스럽게 깨진 손톱을 바짝 자르려 하네요. 손톱 안쪽의 깨진 부분은 줄로 갈아낸 다음 투명 매니큐어로 보강하는 게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할까요?
시위에 깨진 손톱이 걸려서 확 뜯기는 걸 상상하니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장력이 강한 활을 주로 사용하는데 오죽하겠어요. 마주보고 쪼그려 앉아서 지한이 손톱깎이로 엄지손톱을 바짝 자르려 하자 라임은 눈을 질끈 감습니다. 손톱을 이렇게 바짝 깎아본 적은 없었는데... 손톱과 살갗 사이에 손톱깎이가 닿는 느낌이 서늘합니다. 깎! 하고 손톱을 잘라내면 엄지에 힘을 꾹 주고 다른 손가락이 살짝 오므라들까요.
가위로 손톱을 자르고 나서 줄로 갈아낸 적은 몇 번 있어서, 깨진 부분을 갈아내는 건 그나마 익숙했지만, 지한이 꺼내드는 투명 매니큐어를 본 라임은, 생긴 게 소독약은 아닌 것 같고, 손톱에 바르는 건가? 싶습니다.
손톱을 깎 자른 다음 줄로 슥슥 갈아냅니다. 깎아낸 표면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갈아내고, 깨진 부분도 조금 갈아낸 다음... 꺼낸 것은.
"아. 투명 매니큐어입니다." 정식 명칭은 네일 폴리쉬였나..(지한주도 잘 몰랐던 사실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손톱 안쪽의 깨진 부분을 들어내면 출혈이 일어나고 손톱 안쪽 부드러운 살이 노출되어 아픈데, 그렇다고 내버려두면 거슬리고 사이로 물이 들어가면 안에서부터 곪을 수 있어서 투명 매니큐어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보강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는 지한입니다. 지한은 손톱영양제와 같이 쓰는 경우가 많았을까..?
"투명한 게 아니라 새카만 거나 다른 색을 원하신다면 사러 가야하지만요?" 가벼운 농담을 말합니다.
매니큐어는 손톱을 꾸미는 데에 사용하는 거 아냐? 생각했던 라임은, 이어지는 설명에, 방수처리하는 거랑 비슷하구나 하고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입니다.
"넌 참 아는 게 많네."
저번에 카레를 만들 때에도 그렇고. 지한이는 박학다식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색이 있는 걸 원하면 사러 가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습니다.
"아냐. 이걸로 좋아. 손톱에 색칠을 하는 건 좀..."
한 번쯤 해보고는 싶었지만, 손톱을 칠하는 건 너무 꾸미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라임이었습니다. 원체 꾸밈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요. 지한이 손톱을 투명 매니큐어로 칠해주는 것을 빤히 바라보는 라임입니다. 지한이 매니큐어를 칠해주면, 손톱에 뭔가 발리는 느낌은 또렷하게 나지 않았겠지만, 그 손을 받치고 있는 손의 느낌이 따듯하고 간지러워서 몸을 부르르 떨었을 거예요.
"네. 자주 쓰지는 않지만..." 지한이 손톱영양제나 그런 걸 잘 쓰지는 않고 매니큐어도 잘 쓰지는 않지만... 가끔 유리알 같은 광택이 보고 싶으면 가끔 발라보기도 하는 거라고 하네요. 그리고 손톱이 자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고..
"검색의 힘이지요." 놀랍게도 박학다식 특성은 없는 것. 음. 아닌가.. 이정도는 특성 없이도 가능하겠죠. 아는 게 많다는 말엔 고개를 기울이면서 헌터 일을 하면서 모르는 것은 알아보는 버릇이 생겨서 그렇습니다.(그러니까 검색의힘) 라고 말합니다. 하긴.. 라임은 모른다지만 폐쇄적인 가문 내에서 뛰쳐나온 만큼 모르는 것을 바로바로 검색할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좋습니다." 사러 갈 필요는 없어졌네요. 손톱 안쪽의 깨진 부분에 서너 겹 정도 투명 매니큐어를 바른 다음(아마 몸을 부르르 떨면 조금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할까요?) 마를 때까지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최소 한두시간은 걸릴 테니 오늘 훈련은 끝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손톱 전체에 바른 건 아니니까 한두시간이지. 다 발랐으면 더 오래 걸렸을지도.
약을 뿌리고 처치가 잘 된 덕분에 피를 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약을 뿌린 건 잘 한 거라고 말하며 지한은 조심스럽게 손부채를 부쳐 매니큐어를 아주 조금은 말려보려 합니다.
"양 손에 바르고 두껍게 바른 경우는 대여섯시간은 있어야 하지만 한두시간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말하지만 농담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고는
"그러면 다리가 굉장히 저리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있으면 발끝부터 차가워지고 감각이 점차 사라지다가 일어나면 피가 흐르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뭔가 세포가 터지는 듯한 따끔거림과 히이익거리는 감각이 느껴지는 그 저림을 경험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매니큐어를 바른 손만 안 움직이면 괜찮아요. 라고 말하며 다른 쪽의 팔을 톡톡 건드리며 일어납시다. 라고 눈짓하네요.
"알고리즘으로 본 네일숍에서는 뭔가 빛을 쐬어주면 바로 마른다곤 하는데." 이건 싸서 그런건지. 아니면 성분이 달라서 그런지. 그냥 말리는 겁니다. 라고 말하며 매니큐어를 인벤토리에 넣기 전에 톡톡 건드립니다.
지한은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라임은 '손톱을 예쁘게 하는 건 정말 고된 고행이 필요하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열 개의 손톱을 모두 색색이 물들이는 건 부처님과 같은 인내심을 가져야지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일까요.
"아... 일어나도 되는 거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 라임은, 여전히 마네킹처럼 부자연스럽게 한쪽 손을 앞으로 쭉 뻗고 있습니다. 매니큐어가 칠해진 오른손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 다른 팔을 펭귄처럼 위아래로 파닥거리며 허둥거리네요.
"호-... ?"
하고 가볍게 입바람을 불어보지만, 손톱이랑 거리가 멀어서 바람이 전혀 닿지 않는 것 같고, 그러다가 기우뚱. 앞으로 쭉 뻗은 손 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는 듯하더니, 그걸 중심으로 빙글빙글 작은 원을 그리면서 돌기 시작합니다. 마치 고양이 옆구리에 테이프를 붙이면 몸이 고장 난 듯이 그쪽으로 계속 걸어가게 되는 것과 비슷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