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퍼도 아닌 거라면..AE 소총의 언급에 그는 눈을 확실하게 찌푸렸다. 토할 것 같은데 더 심각한 소식까지 들린다. 만약 추측이 맞고 소총을 사용할 줄 안다면 최소 훈련된 사람일 것이 분명한데 얼마나 스케일이 커질까! 뒤집힐 것 같은 속을 뒤로 그는 고개를 돌려 유자 꿀물의 뚜껑을 따 들이켰다.
"만약 소총이 확실하고, 관리부 소속이라면 안전지대는 없다는 뜻이잖아요. 강제하지 않는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가야해요."
솔직히 죽든 말든 상관은 없다. 그는 그 말을 꾹 삼키고는 원샷 때문에 비어버린 병을 엄지로 만지작거렸다.
"그 사람이 범죄자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에게도 표적을 돌릴 수도 있으니까요."
제발 너희는 미개한 괴물이며 나는 심판자다 하는 녀석만 아니길. 만일 그 소리가 나온다면..그는 병을 꽉 쥐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악의 경우 AE 소총이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은 명심해야 해요. 만약에 정말로 범행도구가 그쪽이라면 이번만큼은 정말로 위험해요. 여러분들은 모두 익스퍼니까요."
말 그대로 요원들이 익스퍼를 제압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인만큼 만약 두 사람을 살해한 이가 정말로 AE 소총을 가지고 있다면 보통 위험도가 커지는 것이 아니었다. 위그드라실 멤버들 역시 잘못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무튼 들려오는 물음에 소라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김태윤 경감님은 오히려 지금 이 사태를 이용해서 그 이름없는 수리를 끌어내려는 것 같아요. 수용하게 되는 곳은 애초에 청해시 밖의 다른 곳이기도 한만큼, 완전히 이송되버리면 이름없는 수리로서는 찾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아요."
"물론 존재를 알 수 없는만큼 이렇게 끌어내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예성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방법이 없는 것일까. 소라는 이어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저와 예성이도 함께 할 생각이에요. 그만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니까요. 이번만큼은 최악의 경우엔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주세요. 물론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면 상관없지만요. 자. 준비하고 일어나주세요. 바로 출동할거니까요."
덧붙여서 전에 붙잡은 시민은 일단 근처 지구대에서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시민도 '신'을 이야기했다는 것 역시 말을 하며 소라와 예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갔을 것이다.
위험한 건 안다. 그렇지만 언제는 사활을 안 걸었을까. 경찰의 무게가 가벼운 것이 절대 아니니까. 이 사태를 이용해 이름없는 수리를 끌어낸단 것도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준비하고 일어나란 소리에 그는 잠시 깊은 생각을 하다 벗어나듯 하며 롱패딩 주머니에서 머리띠와 머리끈을 꺼냈다. 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원리는 저도 몰라요. 애초에 그 소총은 청해 그룹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거니까요.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큐브 웨폰과 마찬가지로요."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소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건은 쓰더라도 그 이론까지 모두 알 순 없는 법이었기에 더더욱. 애초에 익스파라는 것 자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았기에 거기까지 파악하는 것은 경찰일을 하는 소라로서는 무리였고 그 점에 대해서는 그녀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말해두지만 우린 경찰이에요. 승리자니 뭐니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해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기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게 아니니까요."
화연의 말을 들으며 소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번에도 느낀 것이긴 하나, 최근 들어 뭔가 이 모든 것을 전투로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녀도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았다. 일단은 자신이 스카웃한 대원인만큼. 그저 경찰의 본분에 충실해주길 바라며 작게 숨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각자 모두 현장에 도착하면 상당히 경계가 철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익스퍼 경찰들도 있고 익스퍼를 알고 있는지 작전에 참여하는 다른 경찰팀도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을 지휘하는 이가 바로 김태윤 경감인듯 보였다. 다른 경찰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던 김태윤 경감은 위그드라실 팀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왔는가. 이번 작전은 잘 알고 있을거라고 믿네."
"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소라는 경례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윤은 별 코맨트 없이 다른 대원들을 하나둘 바라보았고 뒤이어 이야기했다.
"일단 자네들이 담당할 곳은 후방 포인트네. 별 거 없어. 그냥 버스를 타고 따라오다가 일이 생기면 하차해서 사태에 대비하면 되네. 일단 자네들이 체포한 용의자는... 지금 완전 겁을 먹은 상태라서 접촉은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접촉하고 싶다면 해보게. 저기에 있으니까."
뒤이어 태윤은 저 편에 있는 경찰차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무래도 그 안에 김신호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어 그는 작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고 하면서 질문을 기다렸다.
경계는 확실히 철저하다. 익스퍼인가? 위그드라실 말고 다른 팀도 있는 건지 궁금해졌지만 글쎄, 딱히 질문하진 않기로 했다. 가오가 있어야지 하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숙취가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맑은 공기도 괴로운듯 드문드문 표정을 구겼으나 선글라스 덕분에 더러운 눈초리는 내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점은 다행이다.
"잠깐 읽어보고 와도 되겠슴까."
그는 소라에게 한번, 그리고 태윤에게도 질문하듯 말을 던지곤 허락을 기다렸다. 허락한다면 김신호에게 다가가 즐거운 대화의 시간을 나눌 것이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만 즐거운 대화 말이다.
"이번 작전은 양동작전입니까? 아니면 일사천리로 대역 없이?"
신호에게 가기 전 물은 질문에 별 뜻은 없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인 듯 싶다. 그것보다 버스라..멀미만 안 하면 좋겠다.
"다른 이들의 능력이라. 불꽃도 있고 빙결도 있고 전기도 있고 다양하지. 허나 하나하나 다 말해주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니 패스하겠다. 그리고 일반 경찰들의 무장? 일반 경찰들의 무장 정도다. 테이저건이 대부분이겠지. 물론 나는 만일의 경우를 이용해서 AE 소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것까지 쓸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화연의 물음에 조용히 태윤은 대답했다.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일일히 다 설명하기엔 시간도 걸리고 하나하나 다 소개할수도 없으니 적당히 넘기려는 듯 말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익스퍼 경찰들만 모두 불러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한편 퍼디난드의 물음에 소라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윤 역시 별 상관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대역 따윈 없다. 그런 어설픈 것을 세워서 들키기라도 하면 오히려 전력이 분산되는 단점이 있지.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대역 없이 일사천리로 갈 생각이다. 애초에 그 이름없는 수리라는 이가 누구인진 모르나 이 많은 경찰 전력을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좋아. 무엇보다 메인 경찰차에는 나를 포함해서 S급 익스퍼 두 명이 탑승할 예정이다. 안심하도록."
말 그대로 신호가 있는 경찰차에는 경감을 포함해 실력자 두 명이 더 탑승하다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경비로서는 전혀 나쁘지 않았고 다른 경찰 차량들도 많았으니 쉽사리 뚫기는 힘들어보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야기를 나눌거면 빠르게 나누고 오도록."
아직 출발 시간까진 조금 시간이 있었다. 볼일을 마친 후에는 버스로 가서 대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이 마지막 레스가 될 것 같네요! 너무 길게 무리하지 않고 1월 1일부터 깔끔하게 본격적으로 작전 진행을 하도록 할게요! 11시 30분까지!
이런, 방금 플래그 하나 거하게 세우셨군. 원래 영화에서 보면 철통같은 보안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고 자랑하는 세력이 가장 먼저 털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이니까, 실제로는 플래그 따위 없이 무탈하게 지나갈 수도 있지.
"두 명으로 충분한 건가요?"
S급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체험해 보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때는 반쯤 제정신이 아니기도 했고. 그렇기에 S급 익스퍼 두 명이라는 수가 어느 정도일지 잘 와닿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상부에서 두 명으로 충분하다고 결정했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비록 그 수리 어쩌구는 익스퍼를 죽일 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이전에 차에 탄 S급 익스퍼 중에 범인이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절대로 적은 수는 아닐 거야. 암, 그렇고말고.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네요."
그저 지나가듯이 그렇게 말하고 끝낼 뿐이었다. 여기서 편성에 이의를 제기해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어차피 우리 팀은 소라와 예성을 제외하면 전부 A급인데, S급도 아닌 A급을 굳이 중심부에 많이 배치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걸지도.
"충분해. 너무 많은 이가 배치가 되어도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겠지. 그 부분은 괜찮을거야."
케이시의 물음에 태윤은 확고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해도 현재의 배치를 바꿀 생각은 없어보였다. 물론 이후의 목소리에도 그는 크게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예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어 케이시에게 일단 지금은 크게 반응하지 마라고 조용히 이야기할 뿐이었다. 어쨌건 더욱 높은 계급은 바로 저쪽이었기에.
한편 퍼디난드는 이전 체포했던 그 용의자. 신호와 접촉할 수 있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렸는지 벌벌 몸을 떨고 있었기에 그는 퍼디난드의 말에 크게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허나 만약 읽으려고 하면 이런 감정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왜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거야?' '왜 더 이상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거야?' '신의 매개체를 잃어버려서 그러는거야?' '왜 그게 없어진 이후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고 자신감도 채워주지 않는거야.' '모두 다 경찰 때문이야. 날 체포한 경찰 때문에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 신에게 버림받았어.' '신이시여. 제발 그때처럼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신의 매개체에 접촉했을 때, 저에게만 들려줬던 그 목소리를!!'
신의 매개체. 목소리.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진 알 수 없었으나 한가지 확실한건 적어도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내 시간이 흘러 모두가 버스에 탑승할 무렵, 차량이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맨 앞쪽에 버스가 한대. 그리고 양 옆으로 버스가 또 한대. 그리고 뒤쪽으로 나란히 버스가 두 대. 위그드라실 팀 멤버가 타고 있는 버스는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불러놓고 이렇게 맨 끝에 세우는 것은..."
"......"
예성의 투덜거림에 소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녀는 그저 앞을 바라보았다. 한편.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미 청해시를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한참 돌리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가운데에 있어야 할 차량이 급속하게 질주해서 앞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유지되던 대열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이내 무전기로 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상사태다! 용의자가 패닉을 일으켰다! 지금 이곳에서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으며.." -내려! 내릴거야!! 내릴거라고!! 죽을거야! 이대로는 죽을거야! 죽을거라고!!!!!!
이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차량은 순식간에 레일을 벗어났고 그 때문에 현장은 혼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맨 뒤에 있었을 위그드라실 멤버들에게도 그대로 목격되었을 것이다.
/오늘 진행은 여기까지!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는 커밍순 1월 1일! 아무튼 반응레스를 쓰시고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아요!
단호하기도 하셔라. 두 손을 들고 뒤로 돌아서면서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성은 꽤나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도 이 이상 대거리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정말로 필요했다면 멱살이라도 잡았겠지만 지금 당장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 아니 이건 내 성격 문제가 아니라니까? 나 분노 조절 장애같은 거 없다고!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멱살을 잡는 게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게요, 우리 완전 찬밥 신세네요."
예성의 투덜거림에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던 것도 잠시, 대열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내가 말했지, 센터에 사람이 부족하다니까! 창문을 내리고 밖을 내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맨 끝에 붙어서 가던 입장이었으니 지금 당장 차량을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걸 대체 어쩐담?
신의 매개체와 목소리. 그의 두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선글라스 너머 붉은 눈은 상대를 차갑게 내려다 보는 듯, 짐짓 오만하기 그지 없는 시선이었지만 검은 알 덕분인지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다.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판단한 그는 "잘 알겠수다." 하고는 자리를 털레털레 빠져나가 버스에 합류했다.
그는 뒤집어지기 직전인 속을 달래듯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평소엔 숙취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오늘따라 이렇게 울렁거리는 지. 신선한 공기도 소용이 없다. 다만 한 시간이 넘도록 그는 잠들지도 않고 그 자세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창문에 머리를 모로 박고 반쯤 죽어가는 자세를. 그 자세가 빠릿하게 바뀐 건 대열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와, 기절이라도 시킬 걸 그랬나.."
범죄자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잔 건지. 그는 순식간에 대열을 벗어나버린 차를 보며 그는 황당하단 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