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면 텅 빈 놀이터에 연둣빛 풀씨 하나 살짝 물어다 놓고 날아간 바람의 날개를 기억하는 눈이 있어 아이는 한발짝 한발짝 어른이 되어가지 색이 다르고 성이 다른 것을 차이라 말하고 차별하지 않는 고은 네가 내 죽음을 네 죽음처럼 보살피는 사랑이지 절망으로도 살아야 하는 이유이지
고막을 때리는 알람소리에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잠에서 깬다. 부엉이가 야행성 동물이라 그런가 밤잠이 많아서 유독 아침에 약해 일어나는 것을 버거워하는 나를 위해서 특별히 제작된 알람이다. 말을 듣지 않으려는 몸을 어떻게든 움직이면서 몸을 일으켜서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한다. 원래는 수업을 전부 오후에 몰아놓고 들었지만 여기에선 내 시간표를 내가 짠게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오전 수업도 들어야했다.
" 졸려 ... "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도 잔재해있는 졸음 때문에 평소엔 꼬박꼬박 챙기는 아침도 거르고 수업을 듣는데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방을 나선다. 학교 근처의 오피스텔이라 그런가 거리에는 벌써부터 가방을 메고 있는 대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서 멍하니 걸어가니 어느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좋은 아침이야 ... "
전공 수업이라 1, 2, 3교시를 내리들어야했기에 얼른 잠에서 깨야했지만 체질 상의 문제는 쉽사리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조금은 감긴 눈으로 힘없이 손을 들어서 인사를 한 나는 큰 백팩을 메고서 서있는 은새를 보고선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물었다.
" 근데 그 가방, 잔뜩 들어있는 것 같은데 안무거운거야? "
항상 보는거지만 저기서 책도 나오고 다른 것들도 튀어나오던데 힘들지는 않은가 의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이 쎌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을 확인한 나는 아직 조금은 여유롭다는 것을 깨닫고선 은새를 바라보며 말했다.
괜한 잔소리인가 싶어서 유의하겠다는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여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저렇게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다는건 필요한 물건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일테니까 막상 빼려고 해도 뭘 빼야할지 감이 잘 오지는 않겠지. 하지만 내 몰골이 좀비 같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은새의 모습에 방금까지 하던 생각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 이래서 아침 수업은 안듣는데 ... "
흐으으, 하는 신음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고서는 동아리가 없다는 말에 아직도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은새를 바라보았다. 뭔가 메카트로닉스 동아리 같은 곳에 들어갈 것 같은 이미지인데.
" 따로 안하는 이유는 있는거야? 나도 저기에 있을때는 잠깐 동아리에 들었다가 나왔지. 뭔가 그런 활동을 하는걸 별로 안좋아하거든. "
레몬에이드와 내가 마실 커피를 같이 주문하고선 대답했다. 학교 생활만 하는 것도 나에게는 좀 벅찬 일이라 동아리 활동까지 신경 쓰기엔 인생이 고달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금방 나와버린거고 그 이후론 동아리랑 담을 쌓고 살았다.
" 여기서도 딱히 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
금세 음료가 나왔고 레몬에이드를 은새에게 건네주고서는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수업이 있는 건물로 향하면서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잠을 깨려고 노력해본다. 그래도 이렇게 걷고 있으니까 한결 나은듯한 느낌이다. 수업이 있는 건물에 도착해서 강의실로 올라가니 또 한번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 얼른 강의실 들어가자. "
그리고 이런 시선이 아직까지도 부담스러운지라 은새에게 작게 속삭이며 걸음을 좀 빨리 해본다.
은새는 한숨을 내쉬는 세현의 모습에 작게 웃어버렸다. 그러다가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얼른 웃음을 지워버렸지만.
“으음, 저도 뭔가 다같이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요. 혼자 생각하고 혼자 알아보고 하는게 아직까지는 더 좋은 것 같고….”
그리고 동아리는 사람이 너무 많고 사람이 많으면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져서 벅차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기계공학과가 과에 사람이 많아서 과 사람들 챙기는 것도 벅찬 느낌이기도 했고.
세현이 여기서도 동아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은새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몬에이들을 받아 들고 짜릿한 탄산의 맛을 느끼며 은새는 조금 흐물흐물해진 표정을 지었다. 세현과 함께 강의동으로 들어가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긋흘긋 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은새는 세현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져 세현을 따라 걸음을 빨리해서 강의실로 들어갔다.
강의실에는 미리온 사람들을 피해 빈 두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은새는 자리에 앉자 테블릿과 작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냈다. 그리고 한쪽에는 참고 자료가 될 책들도 꺼내두었고. 책들은 몇 번 봤었는지 손때가 조금 묻어있었다. 아마 강의용 피피티를 프린트 해오지 않고 테블릿에 담아온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기타 필기구와 노트도 올려놔서 책상이 가득 차버리고 말았다.
사실 여럿이서 하던 혼자서 하던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지만 둘 중 뭘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혼자서 하는게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협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묘한 알력 같은걸 보는게 좀 꺼려진다고 해야하나. 다툼을 해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
" 그래서 가방에 든게 많구나. "
책상에 앉아서 태블릿과 보조 모니터, 그리고 필기용 펜만 꺼내놓은 나와는 다르게 참고자료들도 잔뜩 책상에 늘어놓고 있었다. 저래서는 공간이 안나올 것 같은데 묘하게 배치가 잘 되어있어서 움직이는데엔 무리가 없는듯 했다.
" 나는 참고 자료도 그냥 보조 모니터로 보는 편이라서. "
남들이 흔히 쓰는 태블릿과는 다른걸 쓰고 있어서 필기감이 조금 좋지 않은 것을 빼면 자료를 여러개 보기엔 이런게 좋았다. 보조 모니터가 큰 편도 아니라서 책상에 올려놓는 것도 무리는 없었고.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오늘 사용할 자료들을 미리 띄워놓았다. 그러자 금방 교수님이 들어오셨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 와 진짜 졸려. '
하지만 아침에 약한건 어쩔 수가 없는지 커피를 마셔도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내기가 힘들었다. 졸음이 올때마다 차가운 커피로 목을 적시며 잠을 깨려고 노력했지만 커피는 금세 다 마셔버렸고 결국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