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럽다. 추악하다. 내게 붙은 평가들이었다. 하룻밤의 여흥으로, 불어터진 몸으로 내 몸을 깔아뭉개던 그들이 내게 잔에 담은 물을 얼굴에 부우며 했던 이야기들은 아직도 날 살아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이 내 얼굴과, 몸을 보고, 터진 입술에 흐르는 피를 삼킬 즈음에는 난 그들에게 방긋 웃는 얼굴로 인사해야만 했다. 그게 내 역할이었다. 이름 없는, 단지 누군가에 의해 휘둘리는 인형. 죽는 것도 거부된, 그저 살아야만 하는 인형.
나아가야 한다면 나아가는 것이지, 흘러간다고는 안 할텐데 말이죠. 흘러간다는 건.. 바람이나 물줄기가 흐르는대로 그것에 떠밀린다는 느낌이 강하네요. 강산 씨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셨지만, 어쩌면 자신의 의념에 떠밀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그가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한 것에 자신의 생각을 말해요.
"졸졸 흘러가던 물줄기가 다른 물줄기를 만나면, 거대한 물줄기가 하나 탄생하는 것 뿐이에요. 흐름은 계속 된다고 봐요. 누군가 둑을 만들지 않는 이상요."
그리고는 재능에 대한 물음에 강산 씨가 하신 말씀을 듣고 눈을 가늘게 떴어요. 재능을 제외하고도 많은 걸 가지신 분 같은데 말이죠. 어머, 제 안에 의심암귀가 싹트고 있었네요. 재능이란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이런다니까요~ 자신 안의 공기를 환기시키고자 창문을 힐끔 바라보며 내리는 눈을 바라봐요. 얼마나 내릴까요?
"그러시군요. 하나에 매진한 저와는 조금 다르네요. 정말 많이 다르네요."
조금에서 정말이 되어버렸지만, 신경쓰지 않아요. 혼잣말을 내뱉듯 한 말이니까요. 마지막의 그 한 마디는요.
나보다 더 큰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강산은 유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유리아가 눈을 가늘게 뜨자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다 급히 덧붙인다.
"아니 근데, 진짜야.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 많고, 막말로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난 그냥 쩌리라고. 우리 어머니도 이미 음악계에서는 유명인사이신걸."
서계가흔 주혜인. 그 사람이 음악만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닐테지만, 분명 음악이 그 명성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맞을 터였다. 그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유리아가 내뱉듯이 한 말에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래."
어째서 그러했는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무언가를 어렴풋이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갈 때 주스라도 사들고 갈게."
애써 장난스레 말한다. 이쯤에서 그도 유리아에게 뭔가 더 있다는 촉이 온 듯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추측이 있었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아직까지 유리아가 뒤라 교단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강산의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이상한 곳에 엮여있다면 따라갔다가 쟤 데리고 튀어야지, 같은 생각도 해본다.
//17번째. 아무래도 본의아니게 강산이놈이 유리아의 열등감을 자극한 것 같은데 뭔가 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강산이한테 뒤라 교단 한번은 보여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