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진행 때에는 #을 달고 써주시면 됩니다. 진행레스가 좀 더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색깔을 입히거나, 쉐도우를 넣는다거나 하는 행위도 모두 오케이입니다. 스레주가 지나치지 않을 수 있도록 이쁘게 꾸며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스레주도 무협 잘 모릅니다...부담가지지 말고 츄라이츄라이~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적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루주가 재하를 부르는 명칭은 아주 많았다. 재희, 재하, 머리 하얀 놈, 사내아이, 계집아이……. 평소에는 머리 하얀 놈이라 부르더니, 오늘 처음으로 남 앞에서 재하를 재희라 불렀다. 재하는 영민하지 못하지만 제법 열심히 굴러가는 머리로 생각했다. 드디어 첫 호명인 것 같다고. 이날을 위해 재하는 아주 많은 시간 동안 교육을 받았다. 재하는 절뚝거리며 루주 앞에 섰다. 루주는 재하를 내려다보고 뒷짐을 졌다.
"아직도 다리를 쓸 수 없느냐?"
재하는 흘끔 다리를 내려다보듯 고개를 내리다가 이내 저었다. "아뇨……." 며칠 전 재하는 가사를 틀렸단 이유로 다리를 호되게 얻어맞아 제대로 설 수 없었다. 회초리에 연한 살이 짓물려 피가 났지만 울 여유도 없었다. 재하는 맞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가사를 다 외웠다. 나는 비구니, 꽃다운 시절 사부에게 머리를 깎여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사내아이도 아닌데……. 루주는 그렇게 할 줄 알았으면서 왜 하질 못했냐며 재하를 나무랐다. 지금도 다리가 아물지 못해 아프지만 쓸 수 없다고 했다가 잘 걸어왔는데 왜 쓰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냐 할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젓는 수밖에 없었다. 루주는 재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몸단장을 하던 기녀 하나를 부르더니 재하를 성심성의껏 꾸미라 지시했다. 기녀는 재하의 상태를 보고 입술을 벌렸다.
"아직 재하의 다리가 아물지 않았사온데 이래도 괜찮을지……." "어차피 왕 씨 두시진만 있다 갈 것이니, 그동안 앉아만 있어 괜찮을 것이다." "루주, 재하는 아직 아홉이에요. 암만 왕 씨 어른께서 오신다 하셔도 버틸 리가 없사와요." "재희, 백화가 그렇다는데 너도 그리 생각하느냐?"
재하는 눈치를 잠깐 보다 다시 고개를 저었다. 루주의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백화라 불린 기녀가 재하를 안타깝게 쳐다봤지만 재하의 뜻은 달라지지 않았다. 몸단장을 마친 기녀가 주변 분위기를 잽싸게 읽고는 일어서 냉큼 재하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백화는 안타까운 듯 멀어지는 재하를 쳐다보다 루주의 눈초리에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곧 왕 씨 어른이 올 시간이다.
***
왕 씨는 살집이 두툼하고 체격이 큰 재력가다. 자칭 가인인 아내와 올해 지학에 들어서 자신은 천재인 것 같으니 입마관에서 무공을 배우겠다 떼를 쓰는 아들이 둘이나 있는 몸이기도 했다. 그런 왕 씨는 작은 상단 하나를 운영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기루의 가장 큰 손이기도 했으며 삼류이긴 해도 무공을 배웠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층에서 뱃살 출렁일 정도의 호탕한 웃음과 함께 두 여성의 웃음소리가 같이 흘러나왔다. 묘하게 갈라지고 낮은 웃음소리는 이 기루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은야의 것이며, 높지만 탁한 웃음소리는 백화의 것이다. 왕 씨는 두 기녀를 양쪽에 끼고 영원할 것 같은 밤을 즐기고 있었다. 허리를 간지럽히는 손길에 두 기녀의 진득한 시선이 잠깐 오고 갔지만 왕 씨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왕 씨 어른, 오늘 아주 진귀한 아이를 보여드릴까 하여요."
은야가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닥이자 왕 씨 흥에 겨워 얼굴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진귀한 아이?" 하더니 "아무렴 너희보다 진귀하랴!" 하며 두툼한 손 아래로 내렸다. 백화는 높게 콧소리로 아이 참, 하고 아양을 한번 떨어 보이고는 어깻죽지 고양이처럼 손 둥글게 말아 톡 쳤다. 왕 씨가 껄껄 웃자 은야는 점소이가 듣도록 소리를 높였다. "재희 들라 하라!"
"재희? 처음 듣는데. 채연이 뒤로 들어온 애더냐? 그래, 그러고 보니 채연이는 요즘 뭘 하고 지내길래 이 왕 씨 얼굴도 안 본다니?" "아, 채연이는.."
아양 떨던 백화와 은야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지자 왕 씨 눈을 둥글게 떴다. 웃는 걸로는 일품인 두 기녀가 왜 표정이 옅어졌을까? 질문하려던 찰나 방의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린 왕 씨의 눈이 커졌다. 조심조심 걸어 들어오는 어린아이 때문이었다. 백화가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귓가에 속삭였다.
"올해 여덟이지만 머리카락에 억겁의 세월 담기었으니, 그 신묘함 덕분에 기루 안에서 영물이라 불린답니다. 아직 어려 꽁꽁 숨기었지만.. 왕 씨 어르신께만 특별히 보여드리는 아이어요."
아이는 눈대중으로 흘긋 봐도 왕 씨의 허벅다리를 걸쳐 골반까지 키가 자라 있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얬다. 흰 비단 옷을 걸쳤고, 흰 장신구를 했고, 상아색 보다 더 옅어 유배 색에 가까운 머리는 곱게 빗어 반묶음을 했다. 영준하고 납작한 이마는 일부만 드러내며 한쪽 눈썹만 드러나 감정을 알기 어려웠고, 연지를 물지 않아도 입술은 붉고 희미한 우수 어린 미소가 담겨있었다. 옅은 홍조 어린 통실한 뺨 위로 자리한 두 눈동자만 오로지 두 색이 달랐다. 물 찬 제비처럼 길게 호선 그인 두 눈꼬리 밑의 구슬 같은 눈동자. 그런 아이가 무릎을 천천히 굽히며 고개를 기울여 인사하자 왕 씨는 긴장했는지 들고 있던 술잔을 세게 쥐어 깨트리고 말았다. 왕 씨가 손에서 피가 나는 것도 모르고 중얼거렸다.
"온통 새하얗구나. 온통 새하얘.."
하얀색은 죽음을 상징했다. 불길하기 짝이 없어야 했는데 한쪽 눈에 짙은 행운이 담긴 아이를 보니 그런 불길함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신묘한 모습에 왕 씨는 손가락이 베인 것도 몰랐다. 피가 고여 떨어지자 백화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어르신!"
그제야 왕 씨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지금껏 여러 여성을 만나보았지만, 아내를 봤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고작 여덟이라 하였지? 그럼에도 홀린다는 게 무엇인지 알았기에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다시 한 단어가 머리를 퍽 때렸다. 여덟. 아들놈 나이의 약 두 배 정도 된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함께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뒤엎어 화를 내고 싶었다. 어린아이에게 이 무슨 일이냐 하며 난동을 피우고 싶었지만, 과연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루주에게 얻어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데려와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하면 기루에 또 들렀다며 죽을지도 모른다. 혼란스러운 왕 씨의 앞에 천천히 재하가 다가왔다. 앉은 왕 씨의 키만 한 재하가 사붓히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 재하는 피에 젖은 손을 쥐었다. 두툼한 손가락 하나도 겨우 쥐지 못하는 그 작달만한 손에 부조화를 느끼던 왕 씨는 솥뚜껑만 한 손을 제 뺨에 가져다 대고 비비고 수심 젖게 웃는 재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리도 애교가 많다. 두 기녀처럼 가식을 꾸미지도 않았다.
"재희야. 어르신이 그리도 좋니?"
재하는 대답 대신 말갛게 웃더니 고양이처럼 품에 안겨버렸다. 백화가 재하의 다리를 보다 조용히 겉옷을 벗어 덮었다. 왕 씨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대체 이 요물을 어디에서 데려왔단 말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앞으로의 술자리에서 이 귀한 아이 계속 보고 싶다면 얌전히 술만 시키고 옷 벗겨먹는 짓은 못하겠거니 생각하며 루주의 약아빠진 계략을 깨닫고 한탄했다.
"에잉, 루주 이 약아빠진 놈… 고작 여덟인 애를……. 그래. 아저씨 품이 푸근하니 좋지? 에잉, 이 요물 같은 놈. 잠이나 자라!"
그럼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었다. 되레 술기운을 엉거주춤 내공으로 내몬 왕 씨는 품 안에 고개를 부비는 재하의 등을 능숙하게 토닥였다. 그리고 재웠다. 그날 기녀에게 잠든 재하의 몫이라며 절대 루주에게 뺏겨선 안 된다 단단히 이르고 무려 금화 두 냥을 쥐어주고 갔지만 그 금화가 재희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