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황해서 그녀의 손을 두었지만 그녀는 순순히 허리춤을 내주었다. 그녀가 먼저 다가갔으니 내치지 않는다는 걸까. 서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한 손은 맞잡은 모습이 꼭 춤이라도 출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오가는 말은 모습과 영 거리가 멀다. 그녀의 장난을 그저 받아주기만 하진 않을거라는 듯, 속삭이는 말과 작은 으르렁거림에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그의 옷을 꾹 쥔다.
"...할 수나 있으면, 말이지..."
그러면서 할 말은 다 했다. 그러려면 각오 좀 해야 할 거라고. 갓 깨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정신상태가 멀쩡...하진 않나. 아무튼 가만히 먹혀줄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 뒤 마을 근처로 이동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 같이 가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데리고 오긴 했지만, 여기서도 돌아가겠다고 했으면 그냥 놔주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를 만난 것 자체가 예정이 있던게 아니었으니. 그녀의 생활에 일정이라는게 있기야 하겠냐만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부분이다. 생각해봐야 골치만 아프지.
그녀는 티르에게 둘렀던 팔과 잡은 손을 잠시 풀었다가 다시 손만 잡는다. 방금처럼 잡고 있으면 같이 걷질 못 하니. 나란히 걷기 편하게 손을 잡고서 느긋한 걸음으로 마을에 들어간다. 높은 벽은 있지만 문지기는 없는 관문을 지나 들어가니 그럭저럭 마을 구색은 갖춘 풍경이 나온다. 그녀는 주변에 길을 묻거나 하는 일 없이 계속 걸어가 딱 봐도 술집처럼 보이는 건물을 찾아 들어간다. 어서옵쇼, 하는 상투적인 인사를 들으며 빈 테이블 하나에 앉는다. 손은 그 쯤에서 자연스럽게 놓았을거고.
손을 놓으며 자리에 앉는 짧은 사이, 그녀의 눈이 티르를 스쳐지나갔다. 놓는 손에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얼굴까지. 일순간의 시선. 단지 그 뿐이었다.
"...고기랑 술.. 말고... 더 필요해...?"
와본 적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앉은 그녀가 티르를 보며 물었을거다. 안쪽에서 주문을 받으러 오고 있었으니 대답을 들으면 그대로 얘기할 듯 보였다.
할 수나 있으면, 이라는 말과 함께 옷이 끌려가는 느낌이 들자 티르는 피식 웃었다. 그녀 역시 가만히 먹혀줄 생각은 없다는 뜻은 잘 전달되었으나, 그 역시 자신 있었으니 말이다. 입매를 살짝 올리며 시아나를 내려다보고는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래, 그럼 그 때를 기대하도록 할까."
언젠가 잡아먹는 때를. 그는 뒷말을 일부러 삼켜버렸다. 굳이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손을 잡고 걷는 걸음은 어딘가 어색했다. 이것 역시 처음 하는 것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전생에서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본 기억은 없던 것 같았다.조그마한 마을 풍경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는 좀처럼 걸음걸이를 안정시키지 못하다가, 끝내 어색한 발걸음으로 술집에 도착해버렸다. 테이블에 앉으며 손을 놓자 낯선 기분에 놓은 손을 몇번 쥐락펴락한다.
일순 시선이 지나갔을 때 그는 보지 못 했을 것이다. 그의 시선은 잠시동안 손에 고정되었으니.
"이곳에 자주 온 적이 있나?"
능숙한 모습이군. 시안을 지켜보던 그가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모습에는 낯선 장소에 온 사람 특유의 거리낌이 없었다. 언제나 거침없던 그녀였지만 이 모습은 성격보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것에 가까웠다. 티르는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대기 시작하더니, 몸을 쭉 펴기 시작했다. 그의 긴 신장 탓에 테이블 반대편의 시안의 다리와 살짝 닿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거면 됐다. 양만 충분하다면."
술과 고기를 즐기는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양이 조금 걱정된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 그가 먹는 양만큼, 이런 작은 술집에서 내오기는 어려울테니. 어차피 배를 채울 생각보단 요깃거리 정도에 그칠 생각이었으니 큰 상관은 없겠으나, 그래도 양이 조금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마을에 들어서 술집에 오기까지, 티르의 걸음이 어색한 것에 대해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도 가는데 문제는 없었으니까. 딱히 발을 맞추어 걷던 것도 아니었으니, 잘 따라오기만 하면 됐던 거겠지. 같이 걷고 있어도 그녀가 이끌어가는 쪽이었으니 말이다.
술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그가 물었다. 자주 온 적 있냐는 물음에 고개를 갸웃 하더니, 잠시 후에 반대로 갸웃 한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일까. 이 때의 그녀로부터 술렁술렁 하는 느낌이 의식을 타고 희미하게 전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잠시간을 고민하다가 겨우 고른 듯한 답을 내놓았다.
"이번이 두번... 아니, 세번째인데.. 그게 자주인지는, 모르겠어..."
늘상 떠돌아다니는 그녀 치고는 자주인 편이었지만 그런 걸 의식하지는 않나보다. 이전엔 두번 간 곳은 없었기도 하고.
양만 충분하면 상관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어느새 테이블 가까이 온 주인장을 보았다. 주인장은 또 왔냐며 같은 걸로 주냐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문은 그걸로 끝이었다. 좀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주인장은 가버렸다. 그녀도 작게 하품을 하며 테이블에 기댈 뿐이었다.
티르가 몸을 뻗는 사이 그녀는 테이블에 한 팔을 괴어 턱을 받치고 있었다. 맹해보이는 눈을 깜빡이다가, 그의 다리가 그녀에게 닿자 눈이 아래쪽으로 휙 내려간다. 겉으로는 그냥 뭐야, 하는 듯한 반응이었지만 또 슬슬 흐르기 시작한 의식의 흐름은 여러 소리들을 내고 있었다.
'...다리가 닿네. 길어. 긴가? 나보다는 길어. 그런데 닿네. 건드려볼까. 걸칠 수 있을까? 걸어보자...'
혼자 속으로 무슨 말들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그 전까지의 적막함이 거짓말 같다. 그렇게 떠들기만 하면 모를까. 건드려보자던 생각대로 그녀의 다리를 움직이더니 곧 그의 다리에 대놓고 스치는 감각이 든다. 약하게 눌리기도 하는 걸 보면 가벼운 발장난을 치는 듯 하다. 내려다보면 그의 다리에 사뿐히 걸친 그녀의 다리가 보였겠지. 자세 탓에 조금 들린 다리의 검은 스타킹 끝에 검은 가터의 끈이 살짝 보였을지도 모르고.
그녀의 생각 없는 행동을 그가 그저 받아주고 있었을지 뭐라고 한마디 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음식이 나올 때까지의 충분한 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어느 사인가 다가온 주인장이 갓 구운 고기를 뭉텅뭉텅 썰어 한가득 담은 그릇을 테이블 한가운데 놓고, 제법 큰 술잔도 둘 앞에 놓고 갔으니.
먹을게 나오자 그녀의 의식이 딱 조용해지고 그녀도 턱을 괴던 팔을 내린다. 멍-하게 풀려있던 눈에 반쯤 이채가 감돌며 작게 꿀꺽 하는 것도 보였을거다. 일단 식기가 있었지만 쓰는게 번거롭다 여겼는지 가장 가까운 고깃덩이를 집어가 한입 문다. 그리고 우물거리며 입 대신 눈으로 말하고 있었을거다. 너도 먹으라고.
시안의 의식이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확실히... 전달보다는 내보내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하나. 이녀석도 그렇게 말했고. 그렇다면 그 용도는 아마도...
티르는 그녀가 고민하는 동안 마법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아무래도 평범한 의도의 마법은 아닌 듯 싶었으니까. 물론 그는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생각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던가.
"그정도면 꽤나 자주 다닌 것 아닌가. 주인장과도 아는 사이 같고."
또 왔냐며 주문을 하는 대화를 지켜보며, 티르는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두세번 온 것 치고는 시안의 모습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으나, 잘 고민해보니 시안의 겉모습은 상당히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을까. 한적한 주점의 기운에 드물게도 긴장이 풀려 늘어졌더니, 티르의 발 끝에 다른 감촉이 느껴졌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흘러들어온 시안의 의식에 그녀를 바라본다.
"생각보다 수다쟁이인 것인가..."
의식의 흐름인 것을 감안해도 꽤나 수다스러운 의식이었다. 표현을 잘 안 할 뿐인 것인가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다리에 감촉이 느껴지는 범위가 넓어졌다. 그러고보면, 걸어보자와 같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던데-
몇번 다리와 발이 스치고, 눌리자 티르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발을 피하지는 않았다. 이정도 장난은 받아주지 못 할 것도 없었으니까. 이따금 발장난에 어울려주듯 발을 놀리다가 발장난이 멈추자 그는 의아함에 테이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이자 보인 모습은 꽤나 노골적인 광경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그녀의 스타킹이 감싸는 발 끝이었으나, 시선이 올라가며 보인 것이...
"...그러고보면 네녀석, 차림새를 조금... 단정히 할 필요가 있어보이는군."
티르는 자세를 바로하며 다리를 거두었다. 그 탓에 걸쳐져 있던 시안의 다리 역시 거두어졌겠지만, 그게 바로 티르가 의도한 것이었나. 티르는 장난이 아닌 뜬금없이 복장에 대해 한마디 하고는 음식이 나오자 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슨 생각 속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는... 아쉽게도 시안은 모르겠지. 그는 그녀처럼 무의식을 흘려보내진 않았으니까.
뭉텅이로 썰린 고기는 육즙이 흐르는 모습이 꽤나 맛있어보인다. 시안의 눈빛에 티르 역시 손으로 고깃덩이를 가져가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예상대로, 맛있는 고기였던가.
"술, 좋아하나?"
그는 시안의 답을 듣지도 않고는 큰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버렸다. 도수 낮은 에일인지 아니면 도수 높은 위스키인지 모를 술이었지만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별로 상관 없었기에, 확인하기도 전에 따른 것이겠지. 티르는 술이 가득 든 술잔을 하나 시안의 쪽으로 밀어 건네주고는 자신의 잔을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마치 건배하자는 듯이 들어올린 술잔을 가볍게 내밀었다.
어머나, 생각보다 훨씬 더 배짱 없는 놈이로고. 남자가 달려 사라지는 모습이 온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순수하게 어리둥절한 얼굴로 일관하고 있던 클로에는, 곧 소란스러운 주위의 풍경 속에서 몰래 비뚜름한 웃음을 흘려 묻었다. 한심하기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목격했으니, 아마 한동안은 제국 상점가에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신세가 될 터였다. 아마 식당에라도 갈라치면 구멍 뚫은 빵 봉투라도 뒤집어 쓰고 다녀야 할 걸.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야 하겠지만.
이윽고 소란이 점차 흩어져 주위의 풍경이 평소의 상점가 모습으로 어느 정도 돌아왔을 때 즈음. 수인 남성이 건네는 감사인사에 자세를 살짝 낮추어 화답하곤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넨다.
"별 말씀을. 미천한 소녀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랍니다."
그건 그렇고, 제국 수도의 한가운데에서 이토록 용감한 수인을 보는 것은 또 처음이다. 아니, 어쩌면 오랜만일 수도? 사실 그 이전에 강렬히 기억에 남는 수인이 딱히 없었다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남성은 수인이 틀림없었고, 이 세계의 빌어먹을 인간들 사이에서 수인은 하나의 멸시대상에 가까운 존재가 틀림 없었으니까. 그래,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 전생에 지독하게 겪었던 빌어먹을 멸시와 조롱의 시선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말이야.
괜히 시선을 피하는 남성을 보면서 클로에는 생각했다. 괜히 마음이 쓰이는 것 같은 기분은 단순히 도망친 덩치 큰 남자가 재수 없는 밥맛이었기 때문이야ㅡ 하고. 그러니까, 죄 없는 사람을 도우려는 알량한 정의감이었을 뿐이라고. 그냥 그거지, 그거. 사이다 정의구현! 같은 거.
"혹여나, 협박 말고 다른 피해를 입은 부분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이 정도 오지랖은 괜찮지 않을까. 아직은 일반인이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정상범위잖아. 괜히 상냥한 척 걱정을 건네 본다.
일상 도중 상대 캐나 캐주의 동의 없이 조종하늗 거에요. 예를 들면 초면인 상대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날려 기절시켜버렸다. 같은 문장을 쓰고 그 상황이 일어났다고 단정짓는다거나.. 이건 극단적인 예시이기는 해도 이런 느낌으로 상대의 반응도 보지 않고 자기 레스에서 상대의 다음 행동까지 정해버리는 느낌?
그러니 웬만하면 ~에게 ~를 했다. 같은 완결형 문장보단 ~하려 했다. 같은 문장을 사용하는게 더 좋아요. 오너간 합의에 따라선 완결형으로 써도 큰 문제를 삼지 않기도 하지만 이게 기본적으로는 매너인 느낌.
그녀의 상냥한 물음에 루프레드는 고개를 젓는다. 퍽이나 친절한 귀족이다. 귀족들은 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줄 알았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겠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꼬리도 축 늘어진다. 다행히 그녀의 도움으로 별 피해는 없었지만, 기운이 있는 대로 다 빠져버렸으니. 뚱보가 그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선빵을 날렸다면 정당방위라는 명목으로 실컷 때려줄 수 있었을 거다. (이 세계에도 정당방위라는 개념이 있을진 모르겠는데.) 루프레드는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여인을 바라본다.
그의 생각처럼 그녀의 외모는 상당히 눈에 띄었다. 어디가 그런가 하면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 자체가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튀었다. 그럼에도 그다지 시선이 끌리거나 하지 않는 건 그녀 스스로에게 존재감을 흐리게 하는 마법을 걸어둔 덕이었다. 안 그랬으면 마을을 걸어오는 사이 제법 시선을 받아 그닥 유쾌하지 못 했겠지.
그런 식으로 제 기척을 최소화하고 다니는 그녀였으니, 가게 주인이 그녀를 기억한다고 한들 별 감흥은 없었다.
"...안 오게 되면, 금방 잊을 걸..."
누구나 그랬으니 말이다.
그녀는 발장난을 치느라 티르의 중얼거림을 못 들었는지 그의 말에 되묻거나 하지 않았다. 들었어도 의아해하기만 하고 별 말은 없었을거다. 그녀는 자신이 수다스럽다던가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 탓에 무의식이 그렇게 시끄러워진 걸지도 모르지만, 그의 생각으로 여기까지 유추하기는 어려웠을터다.
그가 다리를 거두자 그녀도 자연스레 다리를 내려 자세가 고쳐진다. 그래봐야 조금 엄한 자세가 고쳐졌을 뿐이지, 그녀의 옷이 바뀐 건 아니다. 그녀는 제 차림새를 언급하는 말에 스스로를 내려다봤다. 개방도가 높은 옷 덕에 이곳저곳이 고스란히 드러나 조금 숙이는 것만으로 굴곡이라던가 보인다. 그녀의 기준으로는 제대로 입었다고 생각했는지, 옷자락을 살짝 들며 중얼거린다.
"..입을 건 다 입었는데..."
그 시점에서 고기가 나온 건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다행인 일이었다. 안 그랬으면 본격적인 옷정리에 들어갔을지도.
먼저 고기를 물었던 그녀는 술 좋아하냔 물음에 글쎄- 라고 답하듯 눈을 깜빡였다. 술을 술로써 즐겨본 적이 없기 때문일거다. 식사와 같이 마시면 좋은 음료, 정도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들고 있던 고깃덩이를 물어 찌익 뜯어내며 그가 잔 가득 술을 따르는 걸 본다. 뜯어낸 고기를 우물거려 삼키고, 쓰지 않은 손으로 티르가 밀어준 잔을 들었다. 잠시 어색하게 들고 있다가 티르의 잔과 부딪혀 가볍게 소리를 내자 출렁, 하고 흔들린다. 그러니까, 잔 속의 술이 말이다. 넘치지 않을 정도로만 건배를 하고 한모금 마신다. 차가운 에일에선 상큼한 과일의 맛과 향이 나, 느끼한 고기를 먹는데 곁들이기는 제격이었으리라.
"...이러는거, 엄청.. 오랜만이야..."
고기에 술을 곁들여 먹던 도중, 잠시 입을 비운 그녀가 지나가듯 흘린 말이었다. 그냥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고 다시 고기를 먹으며 말이 없어진다. 먹는데 어지간히 집중하고 있는지 그 동안은 의식도 조용했을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