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는 그녀의 뒤로 다시 한번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아까처럼 내려찍히는 느낌이 아니라 근처의 지면을 울리는 듯한 느낌일까. 그 탓에 멈춰선 그녀의 눈에 호수로 돌아가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티르가 숲 곳곳에 떨어진 물고기들을 되돌렸나보다. 호수로 떨어지는 소리가 또 한 차례 주변을 울린다. 힐끔 돌아본 호수에 은빛 비늘들이 헤엄치는 걸 확인하곤 다시 길을 가려고 했다.
다시 불러세우는 바람에 또 멈칫했지만.
"...나.. 날거는 안 먹는데..."
그녀가 티르를 돌아보자 사죄라면서 손에 물고기를 얹어주었다. 분명 그에게 밟혔던 녀석이다. 멀쩡해진 물고기를 보고, 그녀가 한 말은 그랬다. 날생선은 안 먹는다고. 어이가 없어 쳐다보면 물고기를 휙 던져 호수로 넣어주는 그녀가 있다. 던진 물고기가 제대로 헤엄쳐 가는 걸 잠시 지켜보다가 티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언제 서먹했냐는 듯 태연히 말한다.
"나 배고파... 먹을거..."
먹을 걸 달라는 건지 어쩌라는 건지 몰라도 저번처럼 귀찮게 굴려는 건 확실해보인다. 저 봐라. 금방이라도 잡을 듯이 뻗는 손을. 저 희고 가는 손에 잡히면 분명 저번처럼 내킬 때까지 붙들고 칭얼거릴게 분명하다. 그 손을 마저 뿌리치고 갈지, 잡아서 번거로움을 감수할지는 티르 본인에게 달려있었다. 그녀의 손은 아무런 마법의 기운도 없이 그저 잡으려고만 하고 있었으니까.
그대로 떠나려고 했으나 손에 얹어주었던 물고기를 향해 날거는 안 먹는다는 말에 시안을 빤히 쳐다본다. 정작 그녀는 호수를 향해 물고기를 던져 넣어주고 있었지만. 아까의 서먹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시안의 행동은, 아까보다도 더 머리가 아팠다.
먹을거를 달라는 듯 손을 뻗는 그녀를 보았다. 티르는 고민에 빠졌다. 여기에서 뿌리치고 가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책무는 사과를 한 것에서 끝났으니까. 평소라면 사과도 굉장히 큰 책임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런데도, 그냥 떠나기에는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관자놀이를 꾹꾹 짚으며 고민하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유모를 책임감인지 죄책감인지 헷갈리는 감정에, 결국 손을 내밀어 시안의 손을 맞잡는다. 희고 가는 그녀의 손과는 반대로 크고, 굵고, 거친 손이 시안의 손에 얽혀들어가더니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낀다.
"내키는대로 먹어라. 이번만 허락해주마."
저번처럼 투기- 마나를 먹어도 된다며 조용하게 말하는 티르. 지금 당장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 남는 거라고는 자신 뿐이었다. 뻗은 손을 예의주시하던 티르는 시안의 손이 붙잡히자 다시한번 눈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녀의 손이 아무런 기운도 띄지 않았다는 건 그냥 그를 잡으려고 했다는 거였다. 그냥, 잡으려고. 그대로 뒀다면 팔짱이라도 끼지 않았을까. 아니면 팔을 잡고 저번마냥 매달렸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티르의 행동으로 그 모든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제 손을 깍지 끼워 잡는 그를 보고, 소리없이 눈매를 휘었다. 그리고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후훗.."
하고. 마주 보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숨소리였나 하고 지나갈만큼 흐릿하게 웃었다. 웃음기가 남은 얼굴로 말했다.
"그게 아닌데... 뭘 자꾸, 먹으래... 먹히고 싶은거야...?"
그렇게 원한다면... 이라고 중얼거리며 그녀가 다가온다. 그와 깍지 낀 손을 꼬옥 잡고서 사뿐사뿐 걸어오더니 잡지 않은 손을 뻗어 허리춤에 두르려 한다. 그걸 피했든 그냥 두었든, 거리가 저번마냥 가까워지자 짧게 주문을 외워 둘의 몸에서 찝찝한 물기와 한기를 사라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봄날 언덕의 따스한 바람 같은 기운이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그녀도 그도 말끔해져 있었겠지.
"..그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입이 좀 심심해서... 널.. 씹을 순 없잖아..? 아니면 그쪽이 좋나아..."
슬쩍 올려다보는 눈이나 혀로 입술을 훑는 행동이 어렴풋하게 장난을 치는 듯한 기색을 보인다. 순 맹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듯 하달까.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의 그녀는 좌우를 한번씩 돌아보더니 어느 한 곳을 보고 저쪽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티르를 보고 덧붙였다.
"일단 갈건데, 싫음 말해... 보내줄테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묻기도 전에 그녀는 그를 데리고 자리를 옮긴다. 단 한번의 텔레포트로 둘이 있던 숲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근처로 간 거다. 먹을게 없으면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그런건가. 하긴, 예전의 그녀도 그러긴 했지만. 이동한 후에 제대로 왔는지 주변을 둘러보곤 그에게 묻는다.
"너... 어쩔래.. 먹으러 갈지, 말지..."
저번엔 극구 해달라고 칭얼대던 거에 비하면 좀 덜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의 대답에 따라 훌쩍 가버릴 것 같은 분위기는 그대로였겠지만.
흐릿하게 웃는 모습에 티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시안을 바라본다. 드문 모습이었다, 그가 그렇게 당황하는 것은. 티르가 뭐라 항의할 시간도 없이 시안은 그에게로 다가와서 허릿춤에 팔을 둘러버렸고, 덕분에 그는 도망칠 수 없었을까. 물릴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또 한번 들었지만 착각과는 다르게 시안은 티르의 몸을 말릴 뿐, 별다른 짓은 하지 않았을까.
"네녀석... 날 놀리는 것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구나..."
자신을 씹을 순 없다며, 혹은 그쪽이 좋냐며 잔망스럽게 놀리는 시아나의 모습에 티르는 눈을 질끈 감으며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장난은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내게 이런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었던가? 눈을 살며시 뜬 그의 눈 앞에 혀로 입술을 훑는 시안의 모습이 보인다. 명백히 자신을 놀리는 행동. 자신이 곤란해하는 것을 보며 즐기고 있었다. 티르는 그 모습에 이상하게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그녀의 허릿춤에 제 팔을 감으려고 했다.
"자꾸 먹는 것으로 장난치면,"
깍지를 낀 시안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이미 꼬옥 쥐고 있었기에 당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몸을 최대한 밀착한 뒤, 얼굴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귓가에 한번 속삭이고는.
"내가 널 먹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거라."
시안의 목덜미 근처에서 송곳니를 한번 드러냈다가, 작게 으르렁거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태연하게 고개를 든 그는 어느샌가 주변의 경치가 바뀐 것을 본다. 이곳은 마을인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알 수 없었다. 시안 역시 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위험한 장소는 아닌 듯 했다. ...애초에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그녀였긴 하지만, 그 점은 차치하고 말이지.
"이곳까지 끌고 온 이상 선택지는 별로 없구나. 배가 고프기도 하고, 여기서 무엇을 파는지 궁금하기도 하니 말이다."
먹으러 가지. 라고 덧붙인 그는 조용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방금 힘을 쓴 탓에 배도 고파졌고,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음식을 판다는 것이 신기했으니까. 먹고 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