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것은 전에 걸어놓은 텔레파시 마법. 처음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텔레파시 마법을 걸어두긴 했어도 뭔가 연락할 내용이 있던 것은 아니었기에, 티르와 시아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오고가지 않고 그저 마법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시아나 쪽에서 걸려온 말에 티르는 의아해했다. 뭔가 말을 건 것 같긴 한데, 그 내용이 너무나 짧았으니까. 티르는 의아해 하면서도 머지 않아 진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전달된 내용은 연락이 아닌, 시아나가 보내는 자신의 생각, 일종의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을. 티르는 당분간 내버려두기로 했다. 어차피 혼자라 적적한 참이었다. 가끔 이렇게 누군가의 목소리라도 듣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비록 마왕의, 고양이를 발견한 것과 같은 잡생각이라 할지라도.
그래, 분명 그랬어야 했을 터였다.
처음에는 가끔가다 한번 보내던 것이 어느순간 빈도가 늘어났다. 아니, 사실 빈도는 늘고 있었다. 점차 늘어간 것이기 때문에 쉽게 눈치채지 못 했던 것일 뿐. 배고프다, 졸리다와 같은 생각이 전송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참으려고 했으나, 그녀가 꿈꾸는 것까지 전달되어 머릿속으로 들어오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였으니까.
그렇기에 시안이 무엇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티르는 그 육중한 강철로 된 날개를 펴고 시안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이윽고 쾅.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시안의 코 앞의 거리에서 착지했을까.
인내심의 바닥이 어딘지를 본 티르가 그녀를 찾아왔을 때, 그녀는 어느 이름 모를 숲 한가운데 자리한 호숫가에 있었다. 거기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뭍에 앉아서 가까운 수면을 첨벙거리거나 물 속의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보려 하는 둥 정말 의미 없고 쓸모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쉼 없이 쓸데없는 의식의 흐름을 보내고 있어서 찾기는 쉬웠을 것이다. 그걸 도움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내는 첨벙거림 말고는 기껏해야 새소리만 울리던 호숫가에 별안간 큰 소리가 났다. 소리와 위압감에 놀란 근처 동물들이 한차례 요란스레 달아나고, 그녀가 잡으려던 물고기들도 쪼르르 도망가버려 아쉬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치잇. 짧게 혀를 찬 그녀가 그제야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거기 서 있는 티르를 보고, 고개를 갸웃함과 동시에 생각했다.
'쟤가 왜 여깄어...?'
하고. 그리고 이 생각 역시 티르에게 흘러들어가 짜증을 더 부추기면 부추겼지 잠재우진 않았을 듯 하다. 그런 그의 심정을 단 1도 모른 채 의아한 표정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안녕, 그러니까... 티르."
이번에는 한박자 늦긴 했어도 제대로 이름을 기억해 부르고, 이미 의식으로 들렸을 질문을 꺼냈다. 그리고 한마디 불만도 같이.
"너어... 여기서 뭐해...? 너 때문에.. 물고기.. 다 도망갔잖아..."
그가 보기에 적잔하장으로 왜 왔냐며 따지는 듯이 보였지 않을까. 그야 제 할 말만 하고 다시 호수를 보며 물고기... 하고 중얼거리고 있었으니까.
아쉬움에 호수로 손을 뻗는 그녀의 앞으로 빠르게 무언가 지나갔다. 손끝을 짜릿하게 스치며 지나간 그것은 호수 아래로 가라앉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호수의 물과 생물들을 날려버렸다. 방금 전까지 첨벙거리며 놀던 호수는 그렇게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후두둑 떨어지는 호수물에 젖은 건 그녀도 예외가 아니었다. 폭발을 따라 치켜들었던 고개 탓에, 위를 향한 얼굴로 차가운 물이 인정사정 없이 쏟아진다. 얼굴만이 아니라, 바닥에 늘어진 머리카락과 주저앉은 몸도 물에 담근 것 마냥 적셔버렸다. 오늘도 역시나 노출이 많은 옷차림이라 물이 제법 스며들었을텐데 찝찝하지도 않은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한 모습이 누가 거기 놓아둔 인형 같다.
물이 맺혀 무거운 눈커풀을 내리 깔고 비어버린 호수를 보던 그녀는 티르가 제 앞으로 와 고함을 질러대서야 다시 시선을 주었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머리카락에서 흐른 물이 볼과 턱을 타고 흘러 그 아래로 뚜욱 뚝 떨어지는게 선명히 보인다. 젖은 걸 빼면 전과 다를 바 없이 멍한 눈으로 티르를 보는데, 그 순간만큼은 오싹하리만치 아무런 생각도 그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를 보다가, 시선을 내려 그의 발밑에 짓이겨 죽은 물고기를 보고, 재차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끊어줄게..."
그가 말한 건 그런게 아닌데, 그녀는 그냥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다시 내렸다. 멍한 눈으로 티르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얼마간을 석상마냥 가만히 있다가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며 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주문을 읊는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한가닥 엉겨드는데, 그것의 양 끝은 각각 그녀와 티르의 머리에 이어져 있었다. 그 실을 본 티르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저것이 지난번에 건 마법이자 텔레파시의 원흉이며 저걸 끊으면 마법도 끊길 거라는 걸.
"끊으면, 안 들리겠지..."
그 직감이 맞다는 듯, 그녀는 다시금 중얼거리며 끈이 감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실이 팽팽히 당겨져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만 같았다.
인형같은 모습의 시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심한 짓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 역시 흠뻑 젖은 모습이었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호수가 있던 자리를 가만히 보고 있었으니까. 머리가 조금 식은 뒤 이성이 돌아온 상태에서 어떤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가, 이내 저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뭐?"
이어진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들은건가 싶어 생각을 읽어보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전달되는 생각은 없었다.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티르는 시안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에서, 팔로, 손 끝으로 이어진 시선은 어떤 실 같은 것을 붙잡는 그녀의 모습을 봤다. 그는 당황하였는지 급하게 억센 손길로 시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쪽으로 살짝 당기면서.
"무슨 짓이냐 이게."
다시 한번 시안을 노려보았다. 그 실은 그녀와 자신을 잇는 텔레파시 마법의 근원이었다. 다시 말해, 저것이 끊어지면 텔레파시 마법도 끊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티르가 원한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경고만 하려고 한 것이었으니.
"난 끊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연결해두되, 그런 의미없는 생각들을 보내는 것을 그만두라고 했지."
티르는 시안의 손을 붙잡고는, 그녀의 멍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황금빛 눈이 공허한 바닷빛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어째서인지 저 너머에서는 더이상 생각이 들리지도 않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도 없는 눈이었다. 말 그대로 공허한 감정. 그렇기에 티르는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떤 의도였든 간에, 그는 이 연결이 끊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막는 거기도 했지만.
"끊지 마라. 이것 역시 경고다."
으름장을 놓으며 붙잡은 손에서 힘을 조금씩 뺐다. 시안이 줄을 끊으려고 했다면 그대로 손에 힘이 들어가 막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