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다는 말에 티르는 일단 안심했다. 제가 아는 이들중에 텔레파시를 가르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있다고 해도 돌팔이 아니면 이런 일을 맡기는게 꺼려지는 상대 뿐이라... 시안이 맡아준다고 하니 안심할 수 있었지. 일단 실력은 검증이 되었으니까. 완전히 믿기는 힘들어도 아는 이들 중에서는 가장 믿을만한 사람, 아니 악마였을 것이다.
"가르칠 방법이라... 적당히 알려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만, 역시 마법은 어렵나보군,:
그는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상대하는 방법이라면 잘 알고 있었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전혀 모르는. 세번째인 하품을 하는 시안을 보며 그는 어딘가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충분히 잤음에도, 심지어 큰 움직임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음에도 그녀는 꽤나 졸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잠들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그녀의 체질인지... 나중에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그녀를 따라가며 안내해주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귀빈실로 향하는 와중, 시안이 이름을 부르자 그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까.
"...아."
그러고보니 시안에게는 말을 안 해뒀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이니..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네게 연락하기 위함이다. 네가 투기장에 왔을 때, 내게 연락하라는 용도이기도 하고."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시안을 귀빈실로 안내하며 지나가듯 말한다. 곧이어 귀빈실이 나타난다. 안쪽은 집무실과 크게 다를바 없는 고급스러운 풍경이지만, 서재가 없고 대신 쇼파가 두 개 서로 마주보는 형식으로 중앙에 놓여져 있었다.
"침대가 필요하면 하인에게 말하도록. 한동안 이곳을 자유롭게 써도 좋다."
하루만 있다가 가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잘 쓰이지 않는 방이기도 하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으로 티르는 방 안쪽으로 시안을 들여보내주었다.
마법이 어려운지 어떤지는 그녀도 잘 몰랐다. 태생적으로 마나량이 많고 마법에 선천적인 재능까지 있었다보니, 각성을 한 이후로 마법을 익히는데 문제가 없었다. 다소 강제적인 방법으로 흡수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제대로 사사받은 적이나 누군가에게 가르쳐본 적이 없다보니 자신이 아는 걸 타인에게 알려주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쩌면 현생 처음 겪은 어려움이었을지도.
가는 길에 그녀가 질문하자 티르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그 대답은 그녀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은 되었으나 동시에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얼굴은 앞으로 향한 채 눈동자만 굴려 티르 쪽을 본다. 반쯤 감긴 푸른 눈이 몇초간 그를 응시하다가, 다시 앞을 향해 굴러갔다. 그리고 작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서로 부를 일이... 있을까, 싶지만은..."
듣던가 말던가 식으로 흘린 말이니 거기에 대꾸가 돌아오든 안 오든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정면을 향해 시선을 유지한 채 느릿느릿, 티르를 따라 나아가기만 했겠지.
곧 안내받은 귀빈실은 집무실과 비슷하지만 좀더 휴식에 치중된 듯한 구조였다. 그는 한동안 자유롭게 써도 좋다고 했지만, 앞서 말했듯 그녀는 하루 이상 머무를 생각은 없었다. 여긴, 그녀의 집이 아니니까.
"소파, 있으니까... 침대는 됐어.."
돌과 흙이 구르는 바닥에 비하면야 소파만으로도 훌륭하다. 느릿느릿 움직여 방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멈춰서 티르를 향해 돌아섰다. 잠들기 전에 해주겠다고 했으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마법... 걸어줄게..."
아지랑이마냥 일렁일렁 움직여 티르에게 가까이 다가가 두 손을 뻗는다. 그새 식어서 차가운 손이 티르의 팔에 닿고, 천천히 쓸어내려가 그의 양 손을 잡아든다. 두 손의 손바닥을 각각 맞대고 깍지를 끼듯 살짝 겹친다. 잠시 양 손을 번갈아보고 이거면 됐다 싶은지 눈을 내리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문을 읊는다.
"그대의 의지를 내 곁으로, 나의 의지는 그대의 곁으로... 여기, 길을 이으리니..."
짤막한 주문을 따라 마주 잡은 손에서 마나가 일렁인다. 실처럼 생겨난 마나는 둘의 손에 휘감듯 엉기고 달라붙더니 이내 스며들어 사라진다. 마나가 스며들자 희미하게 무언가 이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걸로 끝인지 그녀도 눈을 뜨고 잡은 손을 무르려 한다.
"...됐어.. 그럼 나 잔다..."
잡을 때처럼 천천히 손을 떼며 됐다는 말만 남겨놓고, 몸을 돌려 소파 쪽으로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