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오후, 한 여자가 울창한 숲의 수풀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행색이었다. 허나 물건을 훔쳤다거나, 범죄를 저질렀다기엔 번듯한 차림새다. 체력이 좋지 못한 듯 주저앉아 심호흡을 하던 여자가 별안간 화들짝 놀라 몸을 굽힌다. 그리곤 입을 꾹 다물어 인기척을 죽이는 게 아닌가. 뒤이어 건장한 사내 몇 명이 우루루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갑옷 한 가운데 새겨진 하인리히 제국의 휘장이 햇빛에 번쩍였다. 하인리히 제국의 기사인 모양이었다. 개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청년이 한참이나 수풀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뒤따른 이들에게 휙 손짓을 한다.
" 됐어. 여기엔 없으신 거 같으니 민가 쪽으로 나가봐! "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숲 속을 두리번대던 청년 역시 그들을 따라 뜀박질을 시작한다. 한참이나 그 광경을 훔쳐보던 여자는, 그들이 멀찍이 떨어졌음을 두어번 확인한 뒤에야 잔뜩 굽힌 몸을 필 수 있었다. 바스락대는 소리와 함께 수풀잎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옅은 금빛 머리칼이 엉켜 삐죽인다. 에이씨, 이게 뭐야. 여자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제 옷가지를 털어내며 숲의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수풀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여자의 얼굴이 훤히 드러난다. 바로, 하인리히 9세의 네 번째 자식, 달시 하인리히였다.
황녀가 지저분한 수풀 속에 몸을 숨기다니, 그 사이 쿠데타라도 일어난 것일까. 저 멀리 숲 너머로 화려한 궁전의 모습이 보인다. 평온한 궁전의 모습을 보니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황녀는 왜 이리 다급히 누군가에게서 달아나는 것일까.
" ...아, 그냥 다시 돌아갈까? "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 판타지 세계의 황녀 역시 그 진리를 비켜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당신에게 마을사람들이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며 배웅합니다. 하지만 어쩐지 불안해보이는 얼굴이군요. 당신을 신뢰하면서도, 역병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은 잊을 수 없는것 같습니다. 그토록 잔학했던 역병이니.
당신은 마수들이 있던 곳으로 텔레포트하여, 증거가 될만한 물품을 찾아봅니다. 하지만 증거가 될 만한 물품들은 보이지 않는군요. 주변엔 시체, 그리고 시체 뿐입니다. 무엇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22
당신은 드래곤의 입을 두 손으로 잡아, 전력을 다해 드래곤을 들어올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분명히 당신은 전력을 다했는데도, 드래곤은 일말의 미동조차 없습니다. 한참을 시도해보았지만, 드래곤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드래곤이 귀찮다는듯, 성가시다는듯 눈을 뜨고는 가만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머릿속에, 아주 오래된 룬 언어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해독이 힘들었지만, 곧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직접 당신의 머릿속에 말을 거는 이질감과, 변화하는 룬 문자의 탓에 머릿속이 가려운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 하데스의 작은 피조물아, 내 단잠을 방해하지 말거라. '
>>23
" 이렇게 삐쩍 곯아서야 누가 널 보고 튼튼하다고 하겠느냐! "
힘 할범이 통크게 웃으며 당신의 등을 팡팡 두드립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머리가 다 울리는군요. 취기가 좀 더 오르는것 같습니다.
" 흐음, 주먹이라... "
힘 할범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습니다.
" 어이, 장로. 늘그막에 제자라도 들일 셈인가! "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만, 조롱하는 듯한 투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보고 웃는것같군요.
" 자네는 왜 주먹을 쓰는가? "
그가 사뭇 진지하게 묻습니다.
>>27
" ... "
그가 궐련 연기를 깊게 내뱉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 5년 전, 살인 사건이 있었다. 광장에 한 사내가 지금처럼 죽어있었지. 마치 전시라도 해놓은듯, 잔혹한 광경이었어. 그때부터 놈이 나타난거야. 그 뒤로, 우리는 총력을 다해서 녀석을 잡으려고 했지만... 잠잠하다 싶을때마다 사건이 계속 일어났어. 첫 해엔 3명. 그리고 2년간 잠잠하다가, 4년째에 두명. 그리고 올해엔 이게 처음이다. 이번엔 기필코... "
일부러 인적이 드문 곳으로 나타난 것이 무색하게, 잔뜩 성난 실프들의 칼바람이 그녀에게 몰아쳤다. 일제히 떠드는 소리들을 보아하니 그녀가 마족이니까 죽인다 그런 거 같다. 여전히 세상은 마족에게 박하고 마족 역시 제멋대로인가보다. 그녀는 매서운 바람을 피하지 않고 받으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건, 싫은데..."
그야 누가 좋아하겠냐만은.
잠시 서서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까 생각이란 걸 해본다. 강행돌파를 하느냐 아니면 저들과 대화를 하느냐. 예전 같은 감정이 없는 지금은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면 대화겠지.
>>25 마리안은 느낄 수 있었다. 손끝에 느껴지는 짜릿한... 전율... 그러니까.. 어... 사랑! 그래, 맞다. 사랑. 오늘도 세상에 사랑을 나눠주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이쪽에 '사랑'이 느껴졌는데 상대한테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뿌듯하다. 마리안은 그런 감각을 느끼며 성큼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음?"
어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마도, 모든 것은 마리안의 오해였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저 소녀 상인의 고객이고, 마리안이 보고 있던 것은 정당한 거래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리안에게 잘못은 없다. 생각해 보라, 마리안에게 있던 것은 세 개의 선택지 뿐이었다. 회피는 선택할 수 없었다. 남은 선택지는 교섭과 교전 뿐이었다. 하지만, 교섭을 할 수 없게 됐다면 교전을 택하는 수밖에 없다. 교섭을 할 수 있던 거 아니냐고? 아니다. 취객과는 교섭을 할 수 없다. 마리안이 교섭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으니 교전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세상에 사랑을 퍼트리기 위한 위대한 계시로부터 이루어진 합리적이고 올바른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걸 보라, 저자들은 마리안이 선빵을 쳤는데도 교전이 아닌 교섭을 시도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취객과는 교섭을 할 수 없다는 당연한 법칙을 잊어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사과는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없는 일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 공평히 모두를 공격해 기절시키고 모두를 치료해 주면 +- 제로가 되는 게 아닐까요? 공격합시다.
>>39 으으으음... 외적으로는 키 큰 흑발이었으면 조켓습니다... (사심) 성격은 캡이 편한대로 해주셨음 좋겠습니당 약간 아 왜 자꾸 탈출하십니까 애들 고생하는 거 안 보이심까.... 하면서 까칠하게 틱틱대도 좋고 그냥 묵묵히 시키니까 일한다..... 타입이어도 좋고 전부 좋습니당 ㅎ-ㅎ
드래곤 레어에서 살다가 이제 막 사회에 한발을 내딛는 기염을 토한 제니퍼는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나무를 짚으면서 숨을 몰아쉬고는 맥이 풀린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텔레포트야 할 수는 있지만- 아니 할 수 있나. 어찌됐든 제니퍼는 지금 숲을 빠져나가서 대도시로 향하는 길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시골 소녀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구 이거. 아니 뭐 아예 못빠져 나가지는 않겠지만 앞을 못보는 상태에서는 여러모로 힘들 뿐이다. 그렇다고 불만은 없지만 말이지.
" 네? 익숙하다뇨. 저도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운데요? 그래서 좀 재밌고 그래요. 당신은요? 재미 없나요? "
그녀가 좀 재밌다는듯 당신을 바라봅니다. 마치 흥미로운 보물을 발견이라도 한 듯한 표정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 뭐, 소란이 벌어지면 잔뜩 혼내주면 되죠. 그게 모험가잖아요? 죽지만 않을 정도로 때려주자구요. "
그녀가 키득거립니다. 그리고 접수창구의 여직원이, 당신과 서류를 번갈아보다가 묻습니다.
" 음, 마쿠즈님? 혹시 검사이시지 않나요? 직업란을 비워두신데에 특별한 이유라도? "
그리고 그녀가 좀 궁금하다는 얼굴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33
오늘의 오후는 완벽합니다. 햇살도 화창하고,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하인리히 제국의 황녀인 당신이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는, 놀라운 사실만 제외한다면, 참으로 완벽한 하루군요.
지저분한 수풀에서 몸을 일으키는 감각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나뭇잎들, 따스하게 머리부터 감싸는 햇볕, 그리고 기분 좋게 불어오는 숲의 냄새. 흙을 밟는 그 느낌까지.
" 황녀 전하, 황녀 전하! "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군요. 검은 머리가 돋보입니다. 그러다,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 황녀 전하, 도대체 왜 그러시는겁니까? 이게 몇번째입니까... "
그는 거의 죽을것같은 얼굴이군요.
>>36
당신이 모래 구슬을 꺼내보이자, 곧 실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당신에게로 천천히 날아옵니다.
' 친구? ' ' 친구! ' ' 침구? 잠? ' ' 낮잠놀이! 와! '
곧이어 실프들이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사라집니다. 아무래도, 모래 정령이 당신에게 준 것은, 우호의 상징인것 같군요. 이걸로 지긋지긋한, 저 작은 암살자들에게 노려지는 일은 없을것 같습니다.
한숨을 돌린 당신은 곧 주위를 둘러봅니다. 수도 근처의 작은 숲이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자그마하게 인간 제국의 수도, 레온하르트가 눈에 들어옵니다.
>>38
당신은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사내들이 다친 그들을 들쳐업고 냅다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 우왁! 이거 진짜 순 미친놈이다! " " 우효옷... 이정도면www... 촌내, 아니, 제국 내 최고로 미친놈 아니냐구 어이어이www... " " 크윽, 두고보자! "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당신을 보는 소녀가, 깜짝 놀랍니다.
" 어.. 어라? 잠깐만요, 우리 말로 합시다. 말로.... 말(물리)로! 에잇! "
그리고 그녀가 냅다 당신에게 상태이상 포션을 던지는군요. 그리고 머릿속에서 그녀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 ... 마리안...? '
빤히 쳐다보는것같은 시선이 느껴지는군요.
>>45
당신은 제국의 최북단, 얼음의 드래곤의 둥지에서 빠져나와, 여정을 시작했고, 숲을 건너는 중이었습니다. 대도시로 향하는 길을 찾는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당신에겐 조금 버거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보면, 숲지기나 엘프들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큰 숲에서 빠져나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앞이 보인다고 하더라도요! 당신은 험난한 추위속에서도, 약간의 쌀쌀함만이 느껴집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당신의 볼을 간지럽히고, 기분 좋음이 느껴집니다. 달콤한 숲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히고, 뽀득거리며 눈을 밟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울립니다.
달시는 그녀가, 망할 기사단을 완벽히 따돌렸다고 생각했다. 고귀한 황녀님은 더러운 수풀 뒤로 숨지 않을 것이란 그들의 편견은 달시가 몸을 숨길 바리게이트를 만들어주었다. 바보들. 진짜 황녀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휴, 달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가 달시 하인리히였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숲을 떠나 모험을 펼칠 예정이었다. 사실 모험의 목적은 없었다. 그냥 무작정 떠올린 생각이었다. 어디 한 곳에 묶여 사는 것은 지긋지긋하니까, 여느 판타지 영화처럼 멋진 여정을 즐기고 싶었다. 허무맹랑한 어린아이의 꿈처럼 느껴지는가? 대책도 없이 지르고 보는 한심한 인간처럼 보이는가? 달시가 전하길, 신경 끄고 네 할 일이나 하시란다.
아무튼, 그녀의 계획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거의.
" 뭐, 뭐야. 어떻게 쫓아온거야! "
달시가 놀란 듯 주춤였다. 정말이지 상상치도 못했다는 얼굴이다. 한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달시가 난처한 듯 우물쭈물 하다, 오히려 배짱을 내세우며 당당히 소리친다.
걷다보면 나오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제니퍼는 체감상 크게 느껴지지 않는 숲을 꽤 오래 걸었다. 한번씩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질 뻔하기는 했지만 다치지도 않았다는 건 신기하기는할거다.
기분좋게 느껴지는 정도의 바람. 발 밑에서는 눈이 밝히는 소리까지. 적당한 쌀쌀함만이 촉각과 후각, 청각에 와닿는 걸 느끼며 제니퍼는 잠깐 걸음을 멈추며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내려서 후드와 로브에 조금 쌓인 눈을가볍게 털어내고 제니퍼는 다시 후드를 눌러썼다. 숲 냄새가 청량하고 발걸음마다 뽀득거리는 눈소리가 즐거워서 제니퍼의 걸음은 아까 힘겨워보이던 것과 다르게 꽤 경쾌해졌다- 는 아주 잠깐이다.
"어, 사람인데요."
부스럭거리는 소리. 제니퍼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갸우뚱-하고 고개를 기울인 채 제 뺨을 긁적이며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담담하게 중얼거린다.
" 볼품없는 이유구나.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라그나로스님의 간택을 받고, 나와 만난건 자네가 이 운명을 타고났음을 뜻하는거겠지. "
그리고 그가 부드럽게 화주를 삼킨 뒤,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 애송아. 사람들은 무기를 쓴다. 왜일까? 우리는 짐승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짐승들에겐 매서운 엄니가 있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으며, 꿰뚫는 발톱이 있지. 그러나 우리에겐 그것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기를 사용하여 강함에 맞선다. 그러나- "
그가 곧 주먹을 불끈 쥐어보입니다. 그러자, 당신의 머릿속이 조금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취기가 가실 정도로 뚜렷한 힘이 보입니다.
" 진정한 강함에는 송곳니도, 엄니도, 발톱도, 하물며 완벽한 무기조차 필요없다. 우리 드워프들이 만든, 최고의 걸작조차, 다루는 이의 솜씨가 형편없으면 어떻겠느냐? 그렇기에 진정한 강자는 우선 자신의 신체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한다. 힘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면, 설령 미스릴로 만든 방패라고 하더라도 손쉽게. "
그리고 그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습니다. 그러자, 쿵- 하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하늘에 깔려있던 구름에 동그란 구멍이 생깁니다.
" 깨부술수가 있느니라. 애송아, 너는 무기를 안 줘서 주먹을 사용했다고 했지? 그게 아니다. 네가 주먹을 쓰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곧, 무기를 쓸 필요가 없어서 주먹을 쓰게 될 터다. "
내가 너를 단련시켜 주겠다. 그가 가만히 당신을 바라보다가, 악수를 청하며 손을 뻗습니다.
>>50
" 네? 아뇨, 그럼 설마.. 율리안 님- "
어라? 시야가 이상하다.
당신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작은 방에서 수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핑크빛의 작은 침실이다. 분홍색, 얇아 속이 비치는 커튼이 달린, 부드러워보이는 분홍빛 침대. 작고 아리따운 베개들과, 자그마한 인형들, 그리고 작은 창이 뚫렸는데, 시시각각 그 창 너머의 풍경이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앞에,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한다. 분홍빛 긴 머리칼, 풍만한 몸매.
" 와~ 안녕, 꼬마야? 너 진짜 대단하다! 내 신전에서 수녀에게 작업을 걸다니, 정말 못말린다니까~ 확실히 요즘 애들은 당돌해. 수녀와 금지된 사랑이라니~ "
키득거리며 그녀가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그러다 일순 인상을 가볍게 찌푸리며, 당신의 미간을 살짝 손끝으로 건드립니다.
" 그래도, 남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만 치면 안된다구? "
>>53
드래곤은 당신의 도발에, 가만히 당신을 바라봅니다.
' 하데스의 작은 피조물아, 분에 넘치는 힘에 취해 오만함으로 마음이 가득 찬 어리석은 아가야, 너는 네 눈가에 거슬리는 먼지가 떠다니면 그것을 내쫓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하느냐? '
드래곤이 입을 쩍 벌리며 길게 하품하자, 당신은 어느새 그녀의 코에 탄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 나는 널 막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네 공격은 내게 닿지 않느니라. 그것도 모르는게냐? 너는 하데스의 피조물이요, 그는 죽음의 신이라, 내가 곧 죽음이다. 나와 그는 동등함에, 어찌 작은 피조물의 공격이 내게 닿겠느냐. 너는 죽음을 들어 옮길수 있느냐? 너는 죽음을 때릴수 있느냐? 부질없음이라, 어리석은 아가야. 투정을 부리며 장난감을 찾으려면 다른 이에게 가거라. 귀찮구나. '
그리고 드래곤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입니다.
>>55
" ... 뭘 하겠다는거냐? 네 힘으로, 심장 조각가를 잡기라도 하겠다고? "
그리고 그가 곧 진지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 그만둬. 난 너만한 아들이 있었다. 꼬마야, 내가 반드시 그놈을 잡을거니까. 내게 또 꼬마를 잃는 슬픔을 겪지 않게 해다오. 진심으로 부탁하마. 남자 대 남자로써. "
>>56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넘쳐흐른 사랑이 손에 쌓여서,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손이 들어올리기 힘들어졌다. 더는 와인이 흘러넘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손을 잡아당기는 중력에 이끌려 팔을 늘어트리며 손아귀의 힘도 조금 풀린 채로───
쨍그랑, 소리를 맞았다. 뭐야, 할 수 있잖아, 교전. 그러면... 그러면. 어라......
방금 전까지 빠르게 롤러코스터했던 생각을 태엽처럼 빠르게 다시 되감듯이 생각이 흘러갔다. 마리안은 잠시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확 하고 밝아지듯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마리안은 허리를 숙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럭저럭 침착하게 돌아온 것 같았다. 이 사과가 빤히 쳐다보는 누군가를 향한 것인지, 적어도 아직 폭력의 대상이 되진 않은 소녀를 향한 것인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이 뒤죽박죽인 머릿속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지, 그런 생각은 아무 것도 온전히 갖춰진 게 없었지만. 가벼워진 손에 아직 술병은 쥐어져 있었고, 뜨끈뜨끈한 피로 부풀 듯했던 손목의 핏줄이 식자 미지근한 물기 위로 바람이 불었다. 혼란 속에 마리안은 단 한 가지를 떠올렸다. 빨리 쫓아가서 마저 제거하지 않으면 후환이... 아니, 이게 아닌데, 아니, 맞긴 맞는데, 아니, 아닌가? !사과를 하고 쫓아가도 늦지 않지 않을까요?
나는 큰 가방을 열어서 그 안의 인형들을 확인했다. 문제는 없고, 수도 충분하다. 장비도 잘 정리되어 있으니 싸울수 있다. 직사각형의 날이 달린 칼과 인형 크기로 만들어진 창에 망치, 원거리 무기는 없지만 이건 바라는 쪽이 치사하다. 가방을 닫고 인형을 어깨 위에 올린 뒤, 가방 위에 앉았다.
"유감스럽게도 부탁은 들어드릴 수 없겠어요."
생글 웃었다.
"말했잖아요. 나는 화가 난 아이라고.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몰래 나가는 일은 의외로 흔하답니다. 아마 지금 억지로 내보내도, 혼자 돌아다닐 거에요."
무얼 선택하실래요? 나는 핸들을 쥔 채로 물어보았다. 이대로 내보냈다가 그가 없는 곳에서 죽게 둘지, 아니면 데리고 다니면서 최소한 지키기라도 할지. 나는 웃으면서 대답을 종용했다.
드래곤이 하품을 하자 그는 코웃음친다. 나는 그녀에게 고작 먼지 정도의 존재일 뿐인 것인가. 아니, 그래서 좋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녀는 9마리의 로드 중 하나. 자신 정도는 먼지 취급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상대이기에 투쟁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내 육신은 하데스의 피조물이나 혼은 하데스의 것이 아니니, 네게 닿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던 자. 속하지 않은 자. 그렇기에 내 인생은 삶보다 죽음을 갈망한다. 속하지 않은 세계에서의 삶이란 단 하룻밤의 여흥과도 같으니. 목숨을 던질 수 있다. 전생에서의 기억, 그리고 현생에서의 육체. 그 둘의 차이는 맞물리고, 엇갈려, 결국 비틀렸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티르. 즉, 자신이었다.
"헛소리 마라. 넌 죽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래곤이다. 죽음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하지만 너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죽음은 죽일 수 없으나, 너는 죽일 수 있지 않겠는가?"
티르는 그녀의 코 위에서 뛰어내리고는 착지하여, 정면에서 드래곤을 마주보았다. 그의 몸 아랫쪽에서 쇳덩이가 튀어나오며, 그의 몸을 덮었고, 불길한 검은색을 띠는 쇳덩이는 흉악한 갑옷의 형상으로 티르를 둘러버렸다.
"나는 죽음과는 싸울 수 없지만, 드래곤과는 싸울 수 있을 터. 드래곤이여, 네가 내 투쟁에 않겠다면 그렇게 하여라. 그것 또한 나보다 네가 강하기에 갖는 권리일테니."
티르의 등에서 거대한 대검이 뽑혀나오고, 허릿춤에서 철퇴가 뽑혀나온다. 그의 몸을 두르던 쇳덩이는 그 두 무기를 향해 액체처럼 흘러들어가더니 둘을 감싸고, 녹이고, 합치고 다시 감싸더니 거대한 양손 철퇴의 형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난 영원의 시간동안 여기 있을 것이며, 내 투쟁을 막을 방법은 오직 네 손으로 내게 죽음을 사하는 것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