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상단을 이루려면, 그만큼 시장조사도 철저히 해야 하는 법! 여느 영애들처럼 사용인 몇 명에게 일부러 빈 박스나 가방 따위를 들게 한 채. 클로에는 조용히 상가를 거닐고 있었다. 현재 유행하는 디자인이나 소재는 물론, 앞으로 유행을 선도하게 될 지 모를 다양한 아이템들까지.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고, 만져 보고, 자세한 관찰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실제로 손 떨리는 지출을 해 가면서까지 철저하게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맴돌았을까. 구두 따위를 신고 또각거리는 것도 발이 아프고, 슬슬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즈음. 문득 거리가 소란스럽다.
곁에 서 있던 이에게 조용히 눈짓하니, 그새 상황을 대강 파악한 사용인이 귓가에 무어라 속삭여 준다. 요컨대 살집이 있는 남성이 수인 남성에게 도둑 혐의를 씌우고 있다는 것. 오호라, 그것 참.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던 클로에의 눈썹이 흥미를 품고 작게 들썩였다. 물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제국의 상점가였으니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지 않느냐는 소리를 들을 법도 하지만, 클로에는 이상하게 이런 일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특히 돈 많은 자식들이 가난하거나 취약한 사람들에게 온갖 패악질을 떠는 것 말이야. 난 그게 그렇게 밥맛일 수가 없더라. 꼭 뭘 해 줘야 직성이 풀리더라고. 유난히 우아한 발걸음으로 은빛 머리칼을 살랑이면서, 어느새 사건의 현장 가운데로 다가온 클로에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까딱.
“오늘따라 제국의 상점가가 유난히도 소란스럽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모르는 체, 순진한 웃음을 얼굴에 띄우면서 신참 경비병과 덩치 큰 남성, 그리고 수인 남성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겠지.
한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멈춰서서 구경하는 행인보다, 흔한 일이려니 하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 빨리 붙잡지 않고 뭐하는 거요?!
남자가 경비병에게 소리를 꽥 지른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던 경비병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루프레드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유려한 구두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경비병은 얼빠진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뚱뚱한 남자는 그녀를 보고 과장된 제스처와 함께 상황을 설명했다.
- 아니 글쎄, 이 더러운 놈이 내 주머니에 손을 댔단 말이오!
손을 이리저리 휘휘 저으며 어이없음을 표현하지만, 이게 연기라면 남우주연상 감이다. 더 어이없는 건 당연히 루프레드였다.
"참나…"
그는 기가 찬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오해라고 설명할 힘도 없다. 애초에 오해조차도 아니었으니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다. 이 뚱보는 분명 어떻게든 건덕지를 잡아 제 머리카락 한 올까지 탈탈 털어먹을 게 분명했다. 약자의 빈틈을 노리는 전형적인 악덕 부자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니까 그냥 가던 길 가시죠, 아가씨."
루프레드는 비아냥대며 팔짱을 꼈다. 어쩜 이리도 일이 안 풀릴까. 소란에 난입한 여인은 어떤 귀족가의 영애처럼 보였다. 귀족은 다 똑같다. 이 아가씨도 하층민인 자신을 비난하며 뚱보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티르의 예상대로 그녀는 귀찮다고 말한다 해서 순순히 떨어져 줄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니 볼을 잡아당기는 것보다 강한 힘으로 떼어내면 마른 낙엽처럼 떨어져 나갔겠지만, 그러지 않았으니 그녀의 팔은 더욱 티르에게 엉겨붙었을거다. 겨우내 벽을 지키는 겨우살이 덩쿨처럼.
"흐응..."
손에서 풀려난 그녀의 볼은 잠시간 붉게 부어있다가 눈 한번 깜빡할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자체적인 치유력이 높은걸까. 머리를 기댔던 손이 없어지자 기울였던 고개를 원래대로 움직인다. 그 뒤 다시 닿았을 때 다시 기댄 건 당연했지만.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에 그녀는 작게 소리를 흘리며 한순간이나마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조용히 눈을 굴려 티르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르고, 자연스레 티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순조롭던 이 흐름을 끊은 건 역시나 그녀의 말이었다. 너는 누구냐는 그 물음. 그녀의 말에 티르가 표정을 구기며 까먹은 거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눈만 깜빡깜빡 한다. 어쩌면 들었다는 사실까지 전부 잊어버린 걸지도. 여기서 다행인 건 티르가 성인과 같은 이성으로 화를 내지 않고 다시 한번 물었다는 점이었다.
".....티르...."
그녀는 다시 알려준 그 이름을 되내이며 제 기억을 헤집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어느새 망각의 장막이 드리우려 하는 기억들을 재차 꺼내어 한장 한장 되돌아본다. 연달아 넘어가는 기억의 장 속에서 그녀는 그 이름에 이어지는 빛을 하나 찾았다. 황홀한 금빛의 두 눈동자를. 그리고 고통과 포식의 순간 또한 기억해냈다.
"..이번엔.. 마왕이라고, 안 부르네..."
기적적으로 그를 떠올린 그녀가 눈을 떠 티르를 보며 한 말은 그랬다. 이번엔, 이라는 걸 보니 겨우 떠올린 모양이다. 반가운 듯한 말에 만면의 미소, 까지는 없었지만 눈가가 희미하게 휜 것을 보니 웃는 것 같았을지도.
"그 때, 투기장...이었나.. 여기인거야..?"
티르를 떠올림과 동시에 명함을 받은 것과 투기장에 대한 것도 떠올린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있는 곳에 대한 걸 물으며 집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움직이는게 불편했는지 티르를 보고 툭 말했다. 머리에 손을 대준 것처럼 제 몸도 받쳐달라고.
일부러 놀라는 체 하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쉰다. 유난히 과장된 몸짓. 음~ 구라 한 번 열정 가득하게 까네. 가득한 경멸감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 것 같은 얼굴 뒤로 숨기면서, 연기력에 드릉드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네가 연기를 그렇게 잘 해? 오냐, 한 번 해 봐.
“말씀하신 것이 진실이라면, 그것 참 큰일이겠군요. 그런 자는 당장에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는 법이지요.”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일부러 낭창한 목소리를 내어 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렇지요? 따위의 동의를 구하는 말을 첨가하여 민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덤이다. 본디 이런 일은, 보는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치명적인 법. 비아냥대는 어조로 팔짱을 낀 채 선 수인 남성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서 다시금 말을 이었다.
“미천하지만, 상단 가문의 여식인 몸. 예전부터 도둑질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배워 온 입장으로서 더더욱 그렇지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게 진실이라면요.”
진실이라면요. 마지막 마디에는 일부러 힘을 더 실어 이야기했다. 그러고선 빙글, 사람들을 향해 있던 몸을 틀어 덩치 큰 남자에게로 향한다. 자애롭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두 손을 모은 것이, 퍽... 정말로 정의로운 해결을 바라는, 해맑은 영애의 모습으로만 비추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토록 간곡하게 주장하신다면ㅡ 그것을 입증할 증거는 당연히 가지고 계시겠지요?”
상인의 딸로서, 돈이 걸린 중요한 일에는 거짓말 또한 용납될 수 없다고 배웠답니다. 웃는 눈매가 짙어졌다.
“의심이라니요! 저는 그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려는 것 뿐이랍니다. 제 진심을 알아주지 못 하시니 마음이 아프군요.”
무구하게 웃던 얼굴은 금새 서글픈 마음을 담고 움츠린 모습이 되었다. 살짝 올려 뜬 자홍색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울망한 눈이 되었다. 물론 진짜로 겁을 먹었다거나 울음을 터뜨릴 마음은 파리 솜털만큼도 없었지만.
“그렇지만 이 많은 행인 중에서, 이 남성분이 돈을 훔치는 것을 ‘직접’ 봤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나요? 그렇게 주장하시는 것은 공, 한 사람 뿐인걸요.”
그렇다. 주위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그저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을 뿐, 어느 누구도 증인 역할을 하려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들 수군거리며 뭐야, 돈을 훔쳤다나 봐, 떼잉쯧! 같은 소리만 해 댈 뿐. 클로에는 그들을 보며 일부러 몇 마디를 더 해 댔다. 정말로 저 자가 주머니에 손을 댔다면 공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무언가가 틀림없이 저 자에게서 나올 것이라던가. 그 외에도 필시 무언가 하나라도 증거가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하고. 큰 일을 칠 사람은 못 되겠구나. 제대로 사기를 치려거든 뒷일도 미리 생각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 뒀어야지. 속으로 남몰래 비뚜름한 웃음을 지어냈다.
“저는 어디까지나 공정하고 싶을 뿐이랍니다. 저기 서 있는 ‘미천한 놈과는 다른’ 공이시니, 넓은 아량으로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시겠지요? 공께서 말하시는 것이 진실이라면요.”
자, 다음은 어떻게 할래? 도망이라도 칠래? 예를 갖춘 모습으로 한껏 약을 올리며, 조용히 덩치 큰 남성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ㅡ 괜찮습니다! 천천히 주셔도 좋아요 :) 사실 제가 이제부터 잠깐 할 일이 있어서, 답레는 한두시간쯤 뒤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T...
더욱 엉겨붙는다고 해도 티르는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다만 시안을 빤히 보고는 있었겠지. 알다시피 티르는 그 포악한 성정을 가진 탓에 그를 아는 이들 중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가까이 접근하는 이도 없는 마당에 하물며 이렇게 엉겨붙어온다? 그런 겁없는 존재가 있을리가. 그렇기에 자신의 성격을 겪고도 계속해서 엉겨붙는 시안이 티르에게는 신기하게만 보였다.
"호오. 마법인가?"
눈 깜빡할 사이에 붉었던 볼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을 보자 티르는 살짝 감탄사를 내뱉는다. 자신의 경우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능력은 미약한 편에 속했기에 신기했던 것일까. 그러다 자신의 손에 눈을 고정하다가 이윽고 자신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티르는 시안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려고 했다. 빛에 따라 바뀌는 두 푸른 눈은, 그의 항상 황금빛으로 빛나는 두 눈에 비하면 훨씬 시선이 끌리는 것이었다.
대답 없이 눈만 깜빡깜빡 하는 모습에는 이미 체념했다는 듯 시선을 살짝 돌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무엇이 문제였으려나. 다행히도 그녀는 곧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아니, 뿐만 아니라 자신과 만났던 일까지 모두 기억해냈다. 티르에게는 분명 행운이었을 것이다. 까딱했다가는 그날의 일이며 자신의 이름이며 모두 설명하느라 진을 뺐어야 할 테니까.
"네가 싫다고 했으니 따라주는 것 뿐이다."
시안은 분명한 강자였고, 티르는 강자들을 존중해주는 성격. 마왕이라 부르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었을 것이다. 눈가가 희미하게 휘며 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이번에는 티르 쪽에서 고개를 가만히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웃음을 받는 것도, 이세계에 와서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정답이다. 저번에 말해주었던 내 투기장이지. 원래는 네가 찾아오면 차근차근 설명해주려 했으나, 어쩌다보니 내 집무실부터 구경하게 되었군."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명함이 있는 것까지 기억했다면 이야기는 편했다. 티르는 답지 않게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해주다가 제 몸을 받쳐달라는 시안의 말에 또 한번 귀찮다는 듯 시안을 바라본다. 뭐, 그래봐야 거절은 못 했지만.
"귀찮게 구는구나. 이 내가, 이렇게 특별히 대접해주는 것은 네가 유일할 거다."
티르는 시안의 뺨에서 손을 떼고는 허리에 팔을 둘러 그녀를 받쳐주었다. 움직이는 것에 지장이 없도록 다리의 간격을 조금 좁히고는 다리 위에 걸터앉으라고 말한 것은 덤이었다. 시안이 편한 자세를 취한 다음에 시안에게 들려온 것은, 티르의 어이없다는 목소리였을 것이다.
결국 그의 말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어버렸다. 남자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빨개져서, 궁지에 몰린 쥐 같았다. 루프레드는 그제서야 팔짱을 풀고 그 뚱보의 면전에 한 마디를 던진다.
"왜, 차라리 내가 눈속임 마법도 썼다고 그러지?"
- 젠장… 저 여편네만 없었어도…
"잘 됐네, 이 돼지야."
끝내 남자는 혀를 쯧 차더니, 재빨리 달려 현장을 벗어났다. 그 무거운 뱃살을 흔들면서 달리는 꼴이 꽤나 웃겼다. 경비병은 다시 쭈뼛거리며 자리로 돌아가고, 행인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인다. 결백하게만 보였던 남자에게 숨겨둔 꿍꿍이가 있었다니, 꽤나 좋은 가십거리겠지. 한낮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루프레드는 남자가 떠난 자리를 흘겨보다, 눈 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뭐, 고마워, 도와줘서."
인사를 건네는데도 그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도와줄 마음이 없었더래도, 결과적으론 도움을 받은 셈이기에.
그녀의 회복은 너무나도 방대한 마나에 의한 것이지 그녀가 의식해서 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 티르가 마법인가, 하고 중얼거려도 별다른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눈을 깜빡이며 붉은 입술을 한번 달싹이기만 했다. 이쯤 되면 일부러 말을 안 하는가 싶기도 하다.
얼굴을 아주 살짝 돌리기만 해도, 시선을 아주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매번 다른 빛을 내는 푸른 눈을 마주했을 때, 어쩌면 티르라면 보였을지도 모른다. 잠잠한 눈빛 너머에 어렴풋이 비춰지는 메마른 황야의 풍경 혹은 그 가운데를 도려낸 듯 존재하는 공허를.
모든 것을 불살라 허무 밖에 남지 않은 존재를.
"...그 땐, 싫다고 해도, 공격했으면서.."
거절은 거절한다, 라며 무대포로 주먹을 때려박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걸 들어주는지. 티르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 이채가 감돈다. 옅은 미소에 잠시나마 빛이 깃들 듯이. 그 뒤 그녀가 여기가 그 투기장이냐고 물으니 티르는 보기와 다르게 친절하게 그렇다고 얘기해주었으나 그 말투가 금방 바뀌었다. 이번에도 그녀 때문이다.
이제는 귀찮다고 내칠 법도 한데 그는 투덜대면서도 그녀의 불만을 받아준다. 편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게끔 해주기에 그녀는 사양하지 않고 티르의 다리 위에 걸터앉았다. 앉을 곳도 등을 기댈 곳도 있으니 한결 편해졌는지 몸의 긴장을 슥 풀며 작게 숨을 내쉰다. 언제 공격하거나 내칠지 모르는 상대를 두고 어떻게 이리 무방비해 질 수 있는걸까. 그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힘을 풀어 늘어뜨린 팔다리가 유독 희게 보였을지도.
"...나...잡혀온 거였어...?"
자리 잡기도 끝났겠다, 대화를 좀 해볼까 했더니 시작부터 복장 터지는 소리가 나온다. 저도 몰랐다는 듯 티르를 빤히 바라보며 되묻는 말이 그랬으니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그래도 이번엔 마냥 답답하게 두진 않을건지 그녀 나름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음... 하는 소리를 잠시 흘리더니 아마... 라며 운을 떼었다.
"마지막 기억이... 어느 산길을, 걷고 있던 건데... 비도 오고 하니까.. 엄청 졸렸단 말야. 걷고 있는데... 그래서, 졸면서 걷는데.. 갑자기 달콤한.. 그런 향이 나고, 눈 앞이 어두워져서, 어... 잠들었어...."
그리고 깨어보니 티르의 집무실이더라, 라는게 그녀의 길고 긴 설명이었다. 달콤한 향이라는 건 아마 마취제였겠지. 거기까지 말하고 그녀는 더 설명이 필요하냐는 시선을 티르에게 향했다.
시아나의 눈을 들여다보고 알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공허였다. 단순한 공허가 아니다. 티르는 오랜 세월을 살며 많은 경험을 했고,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평범한 공허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것을 불사르거나, 혹은 타인에 의해 희생당하여 오직 공허만이 남은 허무한 눈이라는 것을.
이런 눈을 한 놈들은 보통 두가지 부류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폐인이거나-
-그 특유의 공허함으로 '무엇이든지' 해버리는 특히 위험한 부류거나.
"그 때는 너에 대해서 몰랐다. 허나 지금은 너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지. 그 차이일 뿐이다."
별 거 아니라는 듯 태연히 말한다. 그 때는 일단 인사차 주먹을 건넸을 뿐이다. 허나 지금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 하는 것 뿐이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시안이 자신이 인정하는 '강자'이기 때문이기는 했지만.
긴장을 푼 시안의 몸을 대신 지탱해주며, 티르 역시 작게 숨을 돌린다. 드디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또 이어진 말은 슬슬 티르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그대는 정말 내 속을 긁는 것에 타고났다고 볼 수 있겠군..."
저도 몰랐다는 듯 바라보는 표정이 티르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했지만, 티르는 전생의 자신이 남긴 이성을 최대한 끌어내어 화를 억누른다. 잡혀온지도 모르는 것은 조금 심각했지만... 시아나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내심 스스로를 납득시키면서.
"결국 네가 부주의해서 그런 것이라는 말이로군. 그렇지 않나? 이 망할 녀석."
달콤한 향이라는 말에 그녀석이 쓰던 마취제를 떠올린다. 그 마취제는 분명 이 투기장에서 나눠주는 물건이었지. 향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 정도의 강자라면 그런 것 따위는 통하지 않을텐데, 시안이 통한 것을 보면... 그냥 그녀가 졸았기 때문이겠지. 갑자기 얄미워져 시안을 째릿 노려보았다.
"그래서, 기왕 투기장에 온 김에 뭔가 해보고 싶은 거라도 있는가? 오랜만에 이곳에 온 '손님'이니 뭐든 시켜줄 의향은 있다만."
>>23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씨 뻘하게 터졌네 ㅋㅋㅋㅋㅋㅋ 입 꼬집으면 도망은 안 가지만 삐질 확률이 갱장히 높다는 것만 말해두지! 딱밤은 걍 째려보고 흥, 하는 정도로 끝나려나. 이그으으 왜 벌써 세시냐.... 빨랑 밀린 숙제해야겠다.. 답레는 다 하고 올릴거니까 슬슬 자라구 티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