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는 아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면서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다. 첫 졸업식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졸업식에는 먹는것에 집중했다. 세 번째 졸업식때는 싸움이 벌어져 거기에 뛰어들었고 이번 졸업식에는 선서를 하려는 사람에게 소리를 쳤다. 다음 졸업식이 있다면 토마토를 던져야지. 주의를 받은 레오는 붸- 하고 혀를 삐죽 내밀어보였다.
" 쟤네는 뭐에 돈을 걸었대? 하여튼 이상한 녀석들이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
분명 술이 아닌 음료수일뿐인데 무언가 취한듯한 기분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분위기에 취한 것이겠지. 자기가 한 말을 들었는지 이 쪽으로 시선이 꽂히자 레오는 이대로 한 판 붙겠다는 생각인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뭐, 어쩔건데' 하고 말했다. 두 세걸음 나아갔을때 제 친구들이 말리고 저 쪽에서도 눈에 흉터가 있는 그 녀석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수그러들자 레오는 '싱겁긴' 하며 또 웃을 뿐이었다.
" 자자, 일어서라신다. "
잔을 들고 일어선 레오는 의자를 밟고 올라가 더 높은 자리에 섰다. 한 손엔 음료수 병을 들고 있던 레오는 자기 잔에 흘리던 말던, 넘치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콸콸콸 붇고는 잔이 비어있는 사람을 찾아 의자를 밟고, 테이블을 밟으며 다가가 또 그 잔에 음료수를 부었다.
" 자~ 주궁! 잔 들어라! "
이렇게 말하는 레오파르트 로아나는 6학년 학생대표 따위가 아닌 일개 4학년 학생일 뿐이다.
선서를 마쳤다. 머리를 쥐어짜내 쓰고, 어딘가의 위대한 참치신에게 계시를 받아 덧붙여 인용한 것이 제법 잘 먹힌 모양이다. 그는 교감의 인도를 받아 주어진 자리로 향하려 했다. 그간 고개를 돌려 보였던 광경은 많은 인파에서도 그를 향한 내기가 있었다는 것과, 원내는 평화로운 것이다. 그는 예의 굳어진 그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걸로 됐다. 이제 많은 것이 변했으니 지켜야 할 때다. 봄날이 보고 싶고, 내가 언젠가 누군가와 함께 했으면 하며, 조금이라도 유해졌으면 하고 중얼거리던 네 얼굴이 그립다.
— 사람들이 도련님을 조금 더 사랑해주면 좋을 텐데요. — 어림도 없는 소리. — 박수라도 받았으면! —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 아, 박수만이라도요! 제발!
그는 작게 실소한다. 네가 바라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넌 알까. 답지않은 생각을 하며 돌아가면 널 화장하여 창공으로 보내주리 다짐한다. 너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이제 네 한을 풀었기 때문이다.
먼저 토를 시작한 것은 레오였다. 한 번더 무지개를 뱉어낸 레오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하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생각해보면 작년 졸업식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었다. 레오는 잔을 집어던졌다. 그것을 신호로 레오의 친구들도 잔을 집어던졌다. 잔이 바닥에 나뒹굴고 레오는 음료수 병을 들고 꿀꺽꿀꺽하고 들이키곤 제 친구들에게 병을 넘겼다.
" 이렇게.. 나오시겠다... "
그리곤 물병을 집어들었다. 무언가 대단한 세례라도 하듯 제 머리위에 물을 붓고 제 친구들의 머리에도 주르륵 주르르륵 하고 물을 부었다. 그리곤 쿵, 쿵. 하고 단상위로 올라가듯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 들어라 주궁!!! "
제 가슴을 쾅쾅 친 레오는 주궁의 모든 학생들의 이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지팡이를 뽑고 목에 대고 '소노루스' 하고 주문을 외웠다.
초랭이탈은 여전히 마법부 장관 자리에 앉아있으며, 그에게는 아직도 많은 폴리주스가 존재합니다. 마법부 장관의 머리를 전부 밀어버리고 사형시키라 한 그는 사형 직전에 진짜 마법부 장관을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가뒀습니다.
여전히, 그의 정체를 알아챈 자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비탈은 아즈카반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주인님을 모시려는 건지, 아니면 그가 또 다른 매구가 되려는 건지는 모릅니다.
양반탈은 아즈카반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호크룩스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잠들어있습니다.
백혜향 교수는 교수직에서 내려 와, 자신이 매구의 추종자라 밝혔고 아즈카반에 수감되었습니다. 그의 최종 판결은 디멘터의 키스였고 그는 디멘터의 키스에 당하자마자, 간수의 손에서 지팡이를 빼앗아 아브라케다브라를 스스로에게 겨누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한 자의 끝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모두 미안해요. 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할미탈은 제갈 가에 대해 불문에 부치고 진짜 제갈 윤을 돌보고 있습이다. 불문에 부치는 조건으로 집의 가주가 되기로 했다나요?
손탈이기도 한 제갈 가의 당주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부네탈은 초랭이탈에게 많은 양의 갈레온을 뜯어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제 친구의 묘비를 세우는 데 썼습니다.
이번 졸업생들 중 기린궁에 속한 대다수의 학생은 도사가 되는 걸 택했습니다. 무기 사감은 그들에게 안녕을 빌어주고 선계로 보냈습니다.
그는 잔을 들었다. 마시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는 혜향 교수의 사임 소식에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생각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매구의 추종자이자, 더이상 추종자가 아닌 이상 그 삶을 좌지우지 하기 어려움을 알고 있다. 원하지 않았던 삶임도 알고있다. 그럼에도 동정한다면 예의가 아닐 것이다. 심심한 위로를 속으로 던진 그는 건배하며 먼저 고통받는 학생과 교수를 바라본다. 역시 그가 옳았다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을 바라보며 놀란듯한 시선에 손거울을 꺼내 자신을 바라본다.
"아-"
검은 머리는 맞지만 주변에 연한 형광 자주빛이 맴돌아 후광처럼 빛난다. 그는 작은 탄성을 뒤로 입가를 가리고 혼자 잘게 떨더니, 이내 소리높여 웃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직 아이의 것처럼 청명하게 소리내 활짝 웃었다. 청궁의 습격이라며 난장판을 만드는 주궁의 학생도, 비명을 지르는 기린궁의 사람도, 그는 모두 지켜보며 때묻지 않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었다. 한참을 웃던 그의 표정이 천천히 사그라든다. 온화한 미소로 표정을 굳힌다. 이 평화가 부디 오래 가기를 기도하듯 차분하고 온화한 눈으로 아수라장을 지켜본다. 많은 것이 변했고, 변할 이 삶을 내 숨으로 조금이나마 지탱할 수 있기를. 이윽고 그는 속삭인다.
"새로이 시작하자꾸나. 모두 새로 시작하는 거야."
어깨 위의 정인에게 속삭이며 수라장의 구석을 바라본다. 늘 그렇듯 물결치듯 새파란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너. 그런 넌 수수하게 미소 짓고는 손을 흔들고 사라진다. 한도 없어 이곳에 남지 않고 가버린 것인지 생각했던 네가 날 피해다녔을 줄 누가 알았을지. 잠시 쓸쓸한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구석을 쳐다보던 그는 이내 지팡이를 든 채 앞으로 나섰다. 짧은 웃음소리를 뒤로 코트를 휘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