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온천이 제격이라는 말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소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붉은색 레쉬가드를 입고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근 소라는 기분이 좋은지 정말로 풀린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와. 정말 좋아. 좋아. 온천 좋아.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가깝다면 들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못 들었을수도 있지만.
밖으로 나가면 혼탕 같은 곳도 있긴 했으나 지금은 여성들만이 이용하는 이 공간에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싶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눈을 감은채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자신의 몸에 살짝 뿌리면서 따스함을 온 몸 가득 즐겼다. 이럴 때 바나나 우유가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진 않아. 그녀는 괜히 벽으로 이동하며 더 편하게 등을 기댄 후 따뜻한 물을 즐겼다.
그러던 와중 물이 살짝 첨벙이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아 그녀는 눈을 떴다. 어쩌면 잘못 들었을수도 있지만. 아무튼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이 예전에 스카웃했던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과 동갑에 같은 경찰대 출신. 그다지 친하게 지낸 것 같진 않지만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의 멤버들은 모두 자신이 스카웃한만큼, 일단 저쪽도 자신을 어느 정도 인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녀는 가만히 손을 흔들어보였다.
"안녕하세요. 설화 씨도 온천 즐기러 오셨나요?"
물론 이름으로 편하게 부를까 했지만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진 알 수 없었기에 일단 그녀는 존칭을 붙였다. 유진이나 예성이 같은 경우라면 편하게 불렀을지도 모르나 그녀는 아직은 알 수 없었으니까.
/시트를 읽으면서 느낀거나 소라와 설화가 동갑이었고..소라도 경찰대 출신이니 아마 서로 존재는 알지 않을까 해서 써봤지만..전혀 안중에도 없었다로 처리해도 상관없답니다! 일단 팀 멤버는 모두 소라가 직접 스카웃을 하기 때문에 소라는 설화를 알고 있어요!
온천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지네. 설화는 담배를 문 체 생각에 잠긴 체로 속으로 중얼거렸다. 워크샵이란 명목하에 이끌려온 휴가나 다름 없는 이 행사는 설화에게도 썩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능력을 쓸 일 없이 쉬다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는 일은 빈혈을 달고 사는 설화로선 대환영이었다. 온천을 하고나면 피부가 나름대로 좋아질테니. 달콤한 향이 감도는 회색빛 연기를 천천히 뱉어내며 머리를 쓸어넘긴 설화는 필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비벼끄곤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한적한 시간대인 만큼 편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확실히 한적한 시간대에 들어왔기에 설화의 바램대로 느긋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을 듯 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선객이 먼저 몸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지만. 얇은 몸에 새하얀 타월을 두른 체 온천으로 가느다란 다리를 담글 때, 들려오는 인사말과 손짓을 보곤 게슴츠레 뜨고 있던 눈이 잠시 커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언가 생각을 하듯 타월을 한손으로 잡은 체 소라를 바라보며 서있다 천천히 물을 가로질러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 설화씨는 무슨 설화씨야. 그냥 편하게 말해. 나도 편하게 할테니까. 윗사람이긴 하지만 지금은 휴식시간이나 다름없으니 이해해줄거지? "
안 해주면 어쩔 수 없고, 설화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고는 몸을 좀 더 깊숙히 담근다. 창백해보이는 피부가 물에 담겨 더욱 새하얗게 보였지만 딱히 그것을 신경쓰진 않는 듯 물에 젖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돌려 소라를 바라본다. 적어도 소라가 편하게 대해도 불편하게 여기진 않을 모양이었다. 어쩌면 소라가 방금처럼 굳이 존칭을 붙이는 쪽을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 ...그나저나 겨울에 온천이라, 덕분에 온천에 몸도 담그고 좋네. "
굳이 소라를 옆에 앉혀두고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생각은 없는지 멍하니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가, 도로 소라에게로 되돌리며 말을 이어간다. 따스한 온천 덕분에 창백한 설화의 얼굴에도 홍조가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그녀의 모습에 소라는 의외라는 듯이 두 눈을 깜빡였다. 당연히 거리를 조금 둘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착각인 것일까. 조금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소리 없이 웃었다. 이어지는 편하게 말하라는 그 말에 소라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몸을 움직이면서 첨벙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소라는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자신의 피부에 조심스럽게 뿌렸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적 자리니까 나도 편하게 할게. 유진이는 그렇다고 쳐도 너는 어떨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편하니까 사양은 하지 않을게. 아. 괜찮아. 괜찮아. 공적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어도 나도 사적 자리에서까지 그렇게 따질 생각은 없어. 그렇게 따지는 것은 영 내 스타일도 아니거든."
친하게 지냈냐 여부를 떠나서 그녀와 자신은 동기라면 동기였다. 그렇기에 자신도 이런 쪽이 조금 더 마음이 편했다. 공적인 브리핑 자리나 서 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라 역시 설화아 매한가지였다.
"너는 최근에 와서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요 근래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거든. 그래서 다들 피로가 많이 쌓여서 말이야. 나도 그렇고. 서에 돌아가면 꽤 바쁘게 돌아갈지도 몰라. 요즘 이상한 범죄조직으로 추정되는 이들도 있어서. 하지만 일 이야기는 여기서는 안할게."
지금은 그녀의 말대로 휴식시간이나 다를바 없었으니까. 여기까지 와서 일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지냈어? 그보다 익스퍼 경찰 리스트에 네 이름도 있어서 어? 하는 마음에 스카웃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응해줄줄은 몰랐는걸?"
" 왠지 다들 피곤해 보이기는 하더라. 뭐, 일 이야기는 돌아가서 제대로 들어둘테니까 접어둘게. 너도 별로 하고 싶진 않은 것 같고. "
소라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설화는 게슴츠레 뜬 체 앞을 바라보던 눈을 소라에게로 돌린다. 물을 떠서 자신의 피부에 조심스럽게 뿌리는 그 모습을 잠시 응시하다 조금은 힘을 주어 눈을 뜨고는 이어진 소라의 말에 피식 웃어보인다. 자신도 지원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소라가 자신이 응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흉터가 가득한 손가락을 매만지며 잠시 다물었던 붉그스름한 입술을 연다.
" 그냥, 뭐라고 해야할까. 삶의 전환? 환기? 그런거야. 원래 근무하던 곳은 뭐라고 할까 별건 없었거든. 매일이 똑같은 삶, 그러던 와중에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오라는데 어쩌겠어. 뭐라도 달라질게 있을까 싶어서 지원했지. 내가 할 일이 있단 말을 들었으니까."
내가 온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 설화는 자신의 말을 비웃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더한다. 어깨를 으쓱이자 찰랑거린 물이 소라에게 도착해 찰팍하는 소리를 냈다. 어째서 오려고 생각했던걸까. 스카웃을 받았을 때에는 사실 거창한 이유같은 것은 없었다. 굳이 길게 생각하지도, 어렵게 생각하지도 않고 몇분만에 결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딱히 후회하거나 걱정도 없었다. 할 일이 생긴다면 그걸 할 뿐이니까.
" 아는 사람이 팀장을 하고 있다니까 좀 더 편할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거든. 내가 일부러 너랑 친하게 지내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얼굴을 아는 사람이란 건 썩 나쁘지 않잖아? 게다가 비슷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지. "
내껀 그닥 멋대가리도 없고, 귀찮기만하지만. 물어뜯거나, 자그마한 칼로 벤 흔적들이 가득한 자신의 손가락을 물에 담궜다 꺼내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소라와 눈을 맞춘 체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나 스카웃 해온건 후회 안 하겠어? 열정적인 팀원은 아닌데 말이지. "
다리를 모아 턱을 괸 체 고개를 돌려 소라를 바라보며 속삭인다. 장난스레 손을 튕겨 몇방울의 물을 네게 튕기면서.
"여기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은데. 단지 원래 하던 일에서 익스퍼와 관련된 범죄가 전담으로 맡겨질 뿐이지. 그래도 다들 한 개성하니까 지루하진 않을거야. 오히려 요즘은 조금이라도 더 지원해주는 이가 있다면 환영하고 싶은 분위기니까."
잡혀온 범죄자들은 모두 '신'의 축복을 받았니 뭐니 하면서 주장을 하고 있지. 얼마전엔 라타토스크라고 지칭하는 이가 나타나서 골치가 아프지. 생각해보면 팀을 결성하고 난 이후부터 다이나믹한 사건들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쓴 미소를 지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경찰은 현실에 존재하는 히어로가 아니던가. 그런 히어로로서 시민들을 구하고 범죄를 대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라에게 있어선 삶의 보람, 그 자체였으니까.
찰팍하는 물소리와 함께 둥그레 퍼져나가는 파장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그 파장을 잡아보려는 듯, 물 속에 잠겨있던 손을 꺼내 잡아보려고 하지만 당연히 파장이 손에 잡힐 일은 없었다. 오히려 둥근 파장은 다른 원을 형성하며, 또 다른 곳으로 파장을 전달했고, 그 파장을 따라 그녀의 눈동자가 또르르 옆으로 굴렀다.
"나는 너무 빡세게 일을 시키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편하게 할 생각이지만 내 보좌인 예성이는 마냥 그렇지 않을걸? 뭐, 그 애가 일 관련으로 잔소리를 조금 해도 이해해줘. 일단 나도 어느 정도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애는 워낙 일 관련으로는 FM스타일이니 말이야. 봤을진 모르겠지만 걔가 기르고 있고 서로 데리고 오는 앵무새인 셀린에게 비스킷을 주고 심부름을 시키면 아마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긴 할거야. 그 앵무새. 연구소에서 실험을 받아서 일단 지능이 중학생 정도까지 성장했다고 하니까. 무엇보다 익스파도 쓸 수 있는 앵무새기도 하고."
인간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대.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소라는 곧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방울의 물이 살짝 튀겨지자 소라는 장난스럽게 자신 역시 살짝 손가락을 퉁겨 그녀에게 물방울을 몇 방울 반격하듯 보냈다.
"후회 안 해. 나는 내 눈을 믿으니까. 이래보여도 정으로서 스카웃하고 그러진 않거든? 나름대로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성장 가능성, 업무 스타일 등등.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고 있어. 적어도 난 엘리트급 아니면 이곳으로 부르지도 않아. 여긴 특수수사대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너도 엘리트급.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소라는 밖으로 빼낸 손을 물 속으로 다시 쏘옥 집어넣었다.
" 원래 풀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조이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뭐, 나도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걱정하진 마. "
소라의 충고 섞인 말에, 그렇구만 하는 중얼거림과 함께 대꾸를 하며 생각에 잠긴다. 이전 직장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었으니,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적당히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자고 마음 먹는 설화였다. 이러나 저러나 부딪침이 생기면 귀찮아지고 피곤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설화 본인이었으니까. 맡은 바 일만 충실히 한다면 딱히 터치를 받을 일도 없으리란 것을 잘 알고 있는 설화였다. 그녀가 적당히 적당히 살아온 경험이 괜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 아하하, 정이라고 할게 뭐가 있겠어. 딱히 특별하게 기억나는건 없지만 넌 다가오려고 하고, 난 밀어내려고 했을건데. 그시절은 지금보다도 더 주변을 귀찮게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우스운 일이지. "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는 듯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를 흘리며 턱을 괴고 있던 것을 풀곤 늘어지듯 앉는다. 쇄골 부근까지 몸이 잠기는 것을 느끼며 위를 응시하다 도로 널 바라보며 잠시 입을 다문다.
" 그래도 동기 부끄럽게 만들 일은 하지 않을테니 평상시에도 너무 신경쓰지는 마. 몸은 이렇지만 그래도 1인분은 꼬박꼬박 하거든. "
"그랬었나?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시절엔 어떻게 보면 경찰이 되어야 하니 이것저것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아서 정신없던 시기니까. 무사 졸업해서 경위를 따겠다고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벌써 꽤 예전 이야기네."
자신은 스물 여섯. 대학을 스물 넷이 된 해 초에 졸업했으니 벌써 시간이 꽤 지났구나라고 생각하며 소라는 괜히 신기하다는 듯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참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경위가 되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던 대학생이 지금은 한 팀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자를 맡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얼핏 듣자하니 자신은 또 한 계급 특진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관련은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으니 일단은 말을 하지 않기로 하며 소라는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
"무리는 하지 말아줘. 동기 여부를 떠나서, 역시 일이 쉽지 않고 생명 수당까지 나올 정도로 일이 힘든만큼, 무리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안 그래도 최근에는 정말로 위험한 범죄자가 나타났기도 했고."
또... 뭔가 말을 하려는 듯 했으나 이건 다음에 서에 가서 모두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소라의 표정이 아주 살짝 어두워졌다. 허나 곧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곧 그녀의 말에 소라는 빠르게 대답했다.
"좋아. 좋아! 하지만 신기하네. 너,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와 조금 달라졌어. 아. 나쁘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난 이쪽이 더 좋아."
설마 그녀가 영화나 밥을 이야기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에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이내 그녀의 취향이 궁금한지 바로 설화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어떤 영화를 좋아해? 난 히어로 영화. 물론 액션도 좋아해!"
괜히 뿌듯하게 이야기를 하며 소라는 자신의 가슴가를 톡톡 치면서 다시 손을 물 속으로 풍덩 집어넣었다. 따뜻한 기운이 몸을 타는 것인 좋은지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더욱 등을 벽에 기대며 좀 더 자신의 몸을 따뜻한 온천 속에 푹 담궜다.
" 열심히 하기는 했지. 적당히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곳에 발령받을 수 있게 말이야. 네 말마따나 꽤 되긴 했네. "
그랬는데 자진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다니 사는 것은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설화였다. 적당히 적당히 하자는 것이 삶의 모토였던 그녀였기에, 앞으로의 일이 어떨지 모르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딱히 걱정을 하진 않는 듯 태평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고민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지만.
" 그땐 정말 귀찮았으니까. 내 할 일 하기도 바쁘고. 지금은 사회인이니까 그때랑은 다를 수 밖에. 게다가 난 여기에 아는 사람이라곤 우리 팀원 몇이 전부인걸. "
타지에서 살아오던 설화였기에, 앞으로 오랫동안 보면서 지낼 소라와 거리를 좁히려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기도 했다. 애초에 설화는 매사에 무덤덤한 듯 했지만, 아예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소라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긴밀한 관계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나도 히어로 영화 좋아해, 액션 영화도 말이지. 이번에 나온 영화 'OO'도 꽤나 스케일이 커서 재밌던데. "
가슴가를 톡톡 치며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소라를 보며 눈을 깜빡이다 희미한 미소와 함께 답을 돌려준다. 정확히는 딱히 영화를 즐겨보는 편도 아니었고, 좋아한다고 할만한 장르도 없었지만 여기선 소라에게 맞장구를 쳐줄 생각인 듯 했다.
" 또 오면 되는데. 꼭 팀원들 다 데리고 오지 않아도 말이지. 온천 같은 곳에 혼자 오기 뻘줌하고 그러면 같이 와줄 수도 있어. 너만 편하다면 말야. "
술도 곁들이고 해야겠지만, 온천 같은 것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설화는 쉬는 것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래? 그렇다면 다음에 하나 개봉하면 같이 보러 가면 되겠다! 아. 물론 그럴려면 쉬는 시간을 맞춰야 하니, 조금 운도 필요하겠네. 근무 날짜는 내가 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 관련은 일단 예성이에게 전임하고 있기도 하고."
자신보다는 그가 좀 더 그쪽 방면에서는 편파없이, 불공평하지 않게 짤 거라고 확신했기에 전임한만큼,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자신들은 경찰이었고, 경찰인 이상 모두가 다 같은 날에 쉬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운이 좋으면 비슷한 시기에 쉴 수 있지도 않을까. 혹은 연차를 낼 수도 있는 거니 조금 두고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지금 내가 연차가 몇 개가 있었더라? 비슷한 시기에 맞출 수 있을까? 등등. 적어도 한 팀을 이끄는 지휘자가 할 법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뭔가 당분간은 상당히 바쁘게 돌아갈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지만, 뭔가 이 팀이 만들어진 이후, 정말 말도 안될 정도로 위험한 집단과 엮여버린 것 같거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익스레이버를 말살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을 납치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가짜 범인까지 만들어서 자살처럼 위장해서 독살하려고 한 통칭, 라타토스크의 나이트를 떠올리며 소라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확히 어떤 집단인지 아직 밝혀진 것은 없으나, 보통 위험한 집단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괜히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다 전신에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에 다시 녹아내리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음에 시간이 되면 권할게. 다른 여성진들도 모여서 여성진들끼리만 놀아도 재밌을지도 모르겠어. 물론 남성지들을 따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여성진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적어도 그녀는 같이 와준다고 했으니 나중에, 정말로 나중에 자리를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소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소식이라면 그.. 짐작하셨을 분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제가 대충 9월 말쯤부터 계속 힘쓰던 일이 어떻게 잘 된 덕에.. 좋은 곳에서 기쁜 제안을 하나 받았다는 것이고 나쁜 소식이라면 이걸 평소 소화하던 일과 병행하고 안정시키려면 당분간은 취미에 불과하는 상극은 포기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네요.
자세히 말하진 못해도 제가 아직 사회 속에서는 그닥 안정된 위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제게 있어서는 이것이 크나큰 기회나 다름없어서요. 놓치면 빡머가리다 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아,,그렇다고 스레를 놓는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네요. 특히나 이 스레에서는 부캡틴을 자처해서 맡기도 한 만큼. 음.......그래서 저녁 내내 고민이었어요. 그뿐이네요. 😇 말주변이 없는지라 강제 장문이 되고 말았네요 읽느라 힘드실 분들께 미안함미다 흑흑
(그리고 진짜 난데없지만 그사이에 족발이 온 고로 족발을 좀 몇 입 먹고 오겠습니다......)(???)
>>274 레스 읽었어요. 상황극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게 신주에게 있어서 고민이 되고 정말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부캡틴이라고는 해도 현생보다 더 중시될 수는 없으니까요. 당장 좋은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붙잡는게 맞다고 저는 생각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택은 신주의 몫이니, 신주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길 바랄게요. 설사 익스레이버를 그만둔다고 해도 원망하거나 하진 않을테니까요! 여기에 계속 있고 싶다면 어느 정도 사정은 봐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어느 쪽이 신주에게 있어서 후회하지 않고 좋은 선택일지를 잘 생각하고 고르길 바랄게요! 일단 일이 잘 된 것은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족발 맛있게 드세요!
"크게 바뀔거야.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시기니까. 어쩌면 지금도 적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다고 경찰이란 경찰은 다 끌어모을 수도 없으니 최악의 경우엔 다른 서에 있는 익스퍼 경찰들과도 힘을 합쳐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때의 이야기이기에 그녀는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지금 있는 멤버들을 잘 이끌어서 치안을 지키면 되고, 범죄조직이건 뭐건 대처하면 될 일이라고 소라는 생각했다. 네거티브한 자신은 안녕! 포시티브한 자신 와라! 속으로 크게 외치며 소라는 다시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자신의 팔에, 목에, 얼굴에 아주 살짝 뿌렸다. 따끈따근한 열기 때문인지 소라의 얼굴이 살짝 붉게 달아올랐다.
"가능할거야. 물론 어려운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두와 다 좋은 관계로 지내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힘들지도 모르잖아? 자신에게 잘 맞는 이가 있고 잘 안 맞는 이도 있으니까. 혹시 알아? 나도 누군가에게는 엄청 안 맞는 이일지도 모르는걸."
물론 그게 누구인진 알 길이 없으나, 그래도 대원들 중 한 명은 자신을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반대로 예성이, 혹은 설화를 불편하게 여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재미라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자신과 그녀의 관계는 어떨까. 속으로 생각하며 여러가지 구도를 그려보나 아직까지 확실하진 않았다.
하품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소라는 장난끼가 살짝 돌았는지 그녀를 향해 아주 약하게 물을 휘저으며 파동을 일으켜 원을 그녀에게 보냈다. 닿는다고 해서 아플 일도 없고, 그저 진동이 아주 약하게 전달될 정도의 정말 가볍고 가벼운 장난이었다. 이어 다시 제대로 앉아 아주 살짝 자신의 얼굴을 물 속으로 쑤욱 넣어 잠수를 하다가 곧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단은 온천이었기에 열기가 있었고 그 안에서 오래 얼굴을 집어넣긴 힘든 모양이었다.
>>277 앗 캡틴 어서 오세요~~~ 음..음... 따뜻한 응원의 말씀 그리고 조언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족발도 맛나게 먹었답니다) 제 상황에 대한 캡틴의 입장은 이러하다~ 로 받아들여도 문제는 없겠지요? 안 그래도 현재 판단은 동결 쪽으로 해놓자... 로 기울고 있었거든요. 얼마 안 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스레와 병행은 불가능에 가까워질 테고(한다면 머지않아 낯선 천장이다,, 를 시전하게 될지도🙄🙄) 그렇다고 스레를 곧바로 완전히 놔버리기엔 제 미련이 멈춰를 외치고 있는지라...음.... 사실 지금 들뜬 탓에 판단 기능이 마비된 것 같아서() 혹시 천천히 처사를 결정해도 괜찮을까요? 최대한 후회를 하지 않을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네요.
이런 애였나? 하는 생각이 문뜩 소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허나 곧 아무렴 어때?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와 친근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에게 완전히 기대서 쉬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설화의 말에 소라는 괜히 웃음소리를 내며 별 상관없다는 듯이 자신의 어깨를 살짝 그녀 쪽으로 갖다댔다.
"아주 가끔이라면 얼마든지!"
물론 기댈지 말지는 그녀의 자유였다. 동성 친구와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단은 소라였으니까. 확실한건 온천의 따뜻함 때문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보는 동기의 정 때문인지. 적어도 소라는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고 정말로 생각하고 있었다. 온천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만약 이게 온천의 열기 때문이라면 좀 더 이 따스함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을 하지만 나중에 서에서는 또 말 바뀌는 거 아니지? 아. 물론 공적인 자세라면 바뀔 수밖에 없지만. 나도 바뀌어야 하고. 한창 일하는데 편하게 부를 수는 없는 거니까. 물론 예성이는 내 보좌니까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괜히 그렇게 합리화를 하면서 소라 역시 설화의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괜히 낯간지러운지 웃음소리를 내면서 그녀는 괜히 더 편하게 등을 벽에 기댔다.
"지금도 그러고 있어. 오기 전부터 얼마나 편하게 쉬고 있었는지 몰라! 뭉친 어깨가 다 풀리는 것 같은걸?"
뒤이어 소라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여긴 여자들만이 쓰는 스페이스. 그리고 여기선 안 보이지만 남자들만이 쓰는 스페이스가 있을 것이고 저 창문 너머는 남녀가 함께 쓰는 공용 스페이스였다. 온천물을 이용하고 있어 따뜻하게 이용할 수 있는 워터파크 시설들이 눈에 비쳤다. 나중에는 저기도 가볼까 생각을 하며 소라는 좀 더 시선을 그 쪽에 고정시켰다.
소라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설화는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여 소라의 곁으로 다가간다. 그리곤 자연스레 네 어깨에 머리를 기댔고, 젖은 머리카락이 자연스레 그 위로 흘러내린다. 살며시 맞닿은 어깨로 온천의 열기에 달궈진 체온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지금 몸이 한결 편안해지게 만들어주는 요소에 불과했다.
" 말 안 바꿔. 오히려 서에서 건방지다고 한 소리나 하지마. 난 편하게 마음 먹으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사람이거든. "
뭐든 연기 하는 것은 익숙하니까, 라는 말은 그저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몸을 기댄 체 눈을 감고 대답을 돌려준다. 한결 자세가 편안해진 것인지 좀 더 편안하고 평온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물에 잠겨 있는 뮴도 편하게 풀려 있었다.
" 볼 곳이 많긴 한데 온천이 너무 좋아서 지금 당장은 모르겠다.. 이대로 여기서 녹아버릴지도 모르겠는걸. "
고개의 위치를 조금 옮기려는 듯 고개를 움직이자 푸른빛을 띈 머리카락이 살랑인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눈을 뜨곤 눈을 살짝 올려 널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 뭐, 그건 나나 너나 다를 바 없는 것 같네. 당장은 나갈 생각이 없는거. "
급할 것도 없으니 서둘러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이곳이 한적한 만큼 쉬기엔 가장 좋을 것이란 생각도 들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