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말에 그녀의 의기양양하던 눈빛이 단박에 추욱 처진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정당하다. 애초에 그녀 때문에 생긴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걸 수습했다고 해서 칭찬의 말 같은 걸 듣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걸 이해 못 하는게 지금의 그녀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상심을 달래려는 듯 꼬리 끝부분을 슬슬 만지작거렸다. 한 손으로 쥐고 남은 손의 손가락으로 끝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손장난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그러다 그가 지친 목소리로 이제 그만 하라고 하니 휙 놓아버렸다. 절대 안 놔줄 것처럼 굴 땐 언제고 지금은 왜 이럴까. 이유는 물을 것도 없었다. 꼬리를 놓은 손으로 자신의 배를 한번 쓸어내리며 중얼거린 말이 있었으니.
"배고파.."
그 말이 허투가 아니라는 것처럼 그녀의 배에서 작게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제 보니 그가 힘들어해서 놔준게 아니라 배가 고파져서 관심사가 돌아간 것 뿐인 듯 하다. 이 정도면 지능이 바닥을 치는거 아닌가 싶을지도.
"...저거, 먹자."
배고프다고 말한 그녀는 그대로 가버리는게 아니라 이번엔 그의 팔을 잡으려 하며 말했다. 저거 라고 말하며 가리키는 방향엔 소와 돼지를 통구이로 걸어놓고 구워진 살점을 잘라서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커다란 석쇠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고깃덩이를 보며 침을 한번 꼴깍 삼킨다.
"먹자아.."
혼자 가면 될 걸 왜 그에게 그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건 확실하다. 여기서 떨궈내지 않으면 더 귀찮아질지도 모른다는 거.
실컷 주물러지던 꼬리가 놓아지자 드디어 이 여편네가 말귀를 알아먹었나 싶었다. 근데, 그게 아니고 배가 고프단다. 심지어 혼자 먹으면 될 것을 왜 나한테까지?!
"갑자기 뭔 소리야…"
기운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무런 저항 없이 팔을 붙잡히고, 그걸 내칠 힘도 없었다. 그도 소리를 빽빽 질러댄 탓인지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여성의 눈길을 따라 길거리 노점상에 시선을 두니, 그곳엔 너무나도 맛있어보이는 살코기들이… 아니다, 현혹되면 안 된다. 그렇게 시달려놓고 이걸 따라가면 바보다.
"…돈 있냐?"
…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말은 전혀 다른 거지. 사실 루프레드는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고기의 유혹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의 안위 혹은 푸짐한 고기반찬, 너무 어리석게도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노점상을 쳐다보자 마치 소와 돼지가 이쪽으로 오라고 웃으며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자기를 먹어달라는데 그냥 가는 것도 예의가 아닐 거다.
그녀는 저항 없이 잡힌 팔을 흔들흔들 움직이며 채근했을 것이다. 먹자, 저거 먹자, 하고. 여기서 그냥 떼어내고 가버리면 그대로 끝이었겠지만 이미 지쳐버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마음껏 그의 팔을 흔들어 더 지치게 만들었겠지만.
잠시 고민한다 싶더니 돈 있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행동을 딱 멈춘 그녀. 금방이라도 돈? 그게 뭔데? 라고 되물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감돌 듯 하다가 그녀의 끄덕임으로 삭 사라진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뒤적하더니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걸 몇개 꺼내서 보여준다. 하얀 손바닥에 올려진 동그란 그것은 반짝반짝한 금빛이었다.
"모자라면, 더 있으니까..."
손을 오므려 돈을 쥔 그녀가 중얼거리며 그의 팔을 잡아당기려 했다. 그대로 순순히 끌려왔으면 노점상까지 같이 가고, 아니면 아닌대로 그녀 혼자 노점상으로 가서 구운 고기를 두둑하게 사들고 왔을테지.
그 노점상은 초벌구이된 고깃덩이를 그 자리에서 다시 구워 기름 먹인 종이로 감싸서 팔고 있었다. 그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제일 맛있는 부위를 골랐다. 값은 물론 그녀가 가진 돈으로 치렀고. 푹 익어서 그냥 들고 뜯어먹어도 된다는 주인의 말과 함께 받아들고서, 조금 더 큰 덩이를 그에게 주려 했다.
"...꼬리, 재밌었어..."
주면서 하는 말이 그랬으니, 이래저래 괴롭힘 당한 값이라 생각하면 될 듯 했다. 다른 말로 하면 병주고 약주고, 일까.
그래, 남의 꼬리나 만지는 맹한 녀석한테 돈이 있을리가 없지. 루프레드는 잡힌 팔을 슥 빼려다 상대의 끄덕임에 멈칫한다. 곧 눈 앞에 금화 몇 푼이 보인다. 진짜 있었다고, 그것도 금화가.
"뭐야… 있었네."
그럼… 사준다는 건가? 사준다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기에, 순순히 그녀에게 끌려간다.
노점상에 가까이 다가가자 군침 도는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고기 보는 안목도 있었는지, 그녀가 고른 건 크고 윤기가 줄줄 흐르는 부위였다. 심지어 큰 덩이를 건네주기까지하자 그는 얼떨결에 받아든다.
"쳇."
재밌었다는 말에 루프레드가 혀를 찬다. 그리고 곧바로 고깃덩이를 뜯는다. 반응은 즉각 전해졌다. 온 입 안에 퍼지는 향… 쫄깃하고 촉촉한 살점… 맛있다. 엄청 맛있다. 이건…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천상의 맛이다. (과장 조금 보태서.) 만족한 듯 그의 꼬리가 천천히, 붕붕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