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성을 내며 벌떡 일어나자 그녀는 왜 그러냐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쪼그려 앉은 채 두 손으로 턱을 괴고서 눈을 깜빡깜빡한다. 깜빡임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눈동자엔 악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호의도 없다. 오싹하리만치 순수한 흥미 만이 담겨있다.
대뜸 그런 말을 하니 화가 나는 것도 이해한다만, 그는 이 이상 귀찮아지기 싫었으면 그냥 귀를 만지게 해주는게 나았을거다. 욱해서 화를 내버린 바람에 그녀가 꼬리를 봐버렸으니까. 눈 앞의 수인이 화 내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한층 더 강해진 시선으로 꼬리와 귀를 본다. 잠시 그러다가 천천히 일어나 그의 시선을 똑바로 받으며 말한다.
"...노예, 하라고 한 거.. 아닌데...?"
그녀로서는 나름대로 정중하게(?) 물어본 것이기에 그의 이런 반응이 의아하기 그지없었다. 왜 화를 낼까. 예전 같았으면- 아니, 그 시절은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지금이다. 혹시 자신의 말이 오해를 일으켰나 싶어 노예 하라고 한게 아니라고 말하곤, 손을 들어 그의 꼬리를 가리켰다.
"귀랑 꼬리, 만지게 해주면... 갈게.."
은근슬쩍 귀에 꼬리까지 요구사항에 붙이곤 제발- 하듯이 빤히 마주본다. 그가 노려보는 시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눈빛이었을거다.
처음부터 이것을 노리고 있었나. 거대한 창이 머리 위로 떨어지자, 티르는 그것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일순, 티르의 살갗 밑에서 금속이 튀어나온다. 몸 곳곳에서 튀어나온 금속들은 티르의 몸을 순식간에 감싸더니 이내 육중한 갑옷의 형상으로 변한다. 그 뿐일까. 티르의 등에서는 날개가 돋아난다. 피막의 형태를 한 날개에도 금속들이 덧씌워지며 날개 역시 갑옷을 입은 듯 했다.
그가 진심을 다했으니, 티르 역시 진심을 다할 차례였다.
팔괘팔괘 - 건건
"꽤 임팩트는 있다만..."
그의 투기가 바뀐다. 휘몰아치는 바람에서, 잔잔하고 투명한,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육중한 갑옷과는 걸맞지 않은 조용한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십무十武 - 천천
그는 검을 버린다. 양 손에, 하늘의 기운을 담았다. 그리고 하늘의 기운을 담은 양 손으로 날아드는 창을 붙잡았다.
카운터
통상의 카운터와 달리 투기의 영향으로 마법에게도 통하는 카운터. 티르는 그 악마적인 감각과 마법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뇌제의 창의 틈새에 손을 끼워넣고 그대로 창을 찢어버린다. 우악스럽게 그것을 찢어버린 그의 양 손으로 잔류 전류가 흘러들어왔다. 창을 찢고 남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전류는, 마치 시안과의 전투 때처럼 그의 양 팔을 파괴하려고 든다. 하지만 그 금속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전류들을 흡수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는 파훼된 뇌제의 창을 뒤로 하고는, 위에 있을 호령을 빤히 바라본다.
"슬슬 끝내지. 전력으로 와라."
쿵.
그가 발을 구르자 땅이 진동한다. 오른손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다시 한번 집약된다. 투기를 모을 때와는 달리, 그것은 요란하거나 소란스럽지 않다. 단지 고요하게, 자신의 푸른 색을 천천히 더해갈 뿐이었다.
십무十武 -
티르는 주먹을 위로 뻗는다. 팔괘의 속성이 건乾을 향할 때,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십무十武.
천天
패도적인 푸른색 기와 그 여파가, 모든 것을 파괴할 듯 잡아먹으며 호령을 향해 승천하기 시작한다.
여행길에 오른지... 몇일인지는 잊어버렸습니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동행이 생긴것은 좋지만 조금 세간살이에 어두운 사람인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선 오늘은 여기에서 묵도록 하겠습니다. 저녁때 다시 만나도록 하지요... 이정도면 되겠군."
숙소를 잡은 뒤 샤워를 하기 시작한 동행을 뒤로 하고는 시내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마을에 온 것이니 미리 조사를 하는 것은 중요하니ㄲ...
"율리안님!!! 이쪽도 한번만 봐주세요!!!" "율리안님!!!!"
" 무슨 축제인건가...? "
특이한 문화를 가진 마을은 많이 있었습니다. 아니면 이곳의 토착신앙과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런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그 무리는 무언가를 감싸고 뭉쳐있었으니까요.
"신입들은 꺼져!!! 여기는 율리안님을 만나기 위한 전장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자니 열렬해보이는 신자가 이쪽을 보며 소리쳤습니다. 그렇습니까. 현인신일지도 모르죠 이곳의 신께서는. 오히려 궁금해졌습니다. 사람사이를 빠져 나가는건 어느정도 할 수 있으니 보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몸을 던졌다가 금새 사람들에 밀려 앞까지 밀려 나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이 조금 비어있는 것 같은게 아마 무리의 중심까지 밀린 것 같은데...
"어, 당신이 그 이곳의 신이신 율리안님입니까?"
신을 뵙는데에 머리를 드는 건 좋지 않겠죠. 넘어지기는 했지만 금새 자세를 바로잡았습니다.
티르 캐썰이라 하면 음... 생각보다 이름이 알려진 악마는 아닐 거라는 점? 왜냐면 얘가 싸움 거는 뮤습을 보면 상대방에게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싸우자! -> 싸웠다! 라는 느낌이라 이러이러한 망나니 악마가 있더라~~ 하는 카더라 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으요
오늘도 로프에서 잠이 깬다. 어쩔수없다. 이 곳이 제일 싼 숙소니까. 창 밖을 보면 보이는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자욱한 연기. 안개와 공장 연기가 섞였다거나 뭐라나하는 이야기는 있지만 나에게는 상관없겠지. 아침을 먹을 여유는 없다. 출근 시간이다. 오늘도 향하는 것은 공장, 10시간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부모님은 일을 할 수 없고, 동생은 몸이 안 좋다. 그저 일과 가족에 속박되어있을 뿐인 내 인생. 자유를 찾고 싶어도 찾을 여유조차 없는 더러운 삶.
"차라리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중얼거리며 11살으로 밖에 안 보이는 외모의 그는 공장을 향해 이동한다. 조금 친해진 이들과는 눈빛으로만 인사 나누며, 노동의 시작이다 . . . 힘이 빠진다. 쉬는 시간 같은 것을 말하는 사치스러운 녀석은 존재하지 않겠지.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내 몸은 이미 바닥에 누워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주변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아, 일해야 하는데 일하지 않으면 부모님과 동생ㅇ..
감긴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숲, 이해가지 않는다. 분명 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을텐데? 꿈인가? 그럼 얼른 깨지않으면..
'()'
...꿈이 아니라고? 웃기는 소리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이는 것은 그저 숲, 풀, 나무. 공장에서 이런 풍경이 보이는 것은 당연히 꿈이겠지. 내가 쓰러져서 힘이 안 들어간 것도 전부 꿈이었던 것일까.
'(...)'
..자신의 손을 보라? 내 손을 본다. 분명 굳은 살이 베기고, 부르텄던 손은 그런 것없이 깔끔한 손이 되있다.
"...이게 뭐야"
말하고 나니 들리는 것은 여자의 목소리. ..여자?
"아아"
말하자 다시 들리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여자가 된건가? 꿈이 아니라면 볼을 꼬집어봐라라고 그 녀석이 그랬던가. 볼을 꼬집어본다. 아프다.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