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하인리히 제국의 어느 마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 거리는 활기로 가득차 있다. 수도나 큰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붐비는 정도가 상당했다. 특히 시장이 더욱 그랬는데, 곳곳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목청이 돋보이곤 했다.
방랑길에 이 도시에 들린 루프레드는, 어느새 군침도는 향기에 이끌려 정육점의 가판대 앞으로 다가선 참이었다. 그의 꼬리가 붕붕 흔들린다. 고기 단면의 마블링이 예술… 업진살 살살 녹겠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에겐 낭비할 여유 따윈 없었고, 무엇보다 정육점 주인이 혐오스런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털 날린다. 저리 꺼져.
주인은 손을 휘휘 저으며 대놓고 수인을 향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화가 슬슬 치밀어오름에도 루프레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여기서 시비가 붙었다간 경비대에 끌려갈 게 분명하다. 그저 꼬리를 바짝 세우며 가판대에서 멀어질 뿐이다. 구경도 못 해?
풀이 실컷 죽은 루프레드가 거리 구석에 쪼그려앉는다. 행인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수군대며 그 자리를 피해갔다.
티르는 탐지 마법이 펼쳐진 것을 느끼고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 근처에서 자신을 찾는 놈이 있다... 나라는 것을 아는 건 아닌 것 같고.. 마력의 파장을 생각했을 때 자신이 아는 이는 아니다. 아무래도 상관 없다. 자신을 찾는 놈이 있다면, 그 부름에 응해줄 뿐이었다.
십무十武 - 선先
마력의 근원지는 이곳으로부터 수 km. 하지만 수 km라도, 단 한번의 도약으로 충분했다.
"날 찾은 놈이 너냐?"
티르의 주먹이 말과 함께 호령에게 향하나, 그것은 곧 반사 마법에 막힌다. 단순한 쉴드가 아니라, 반사 마법인가. 주먹에 느껴진 충격으로 미루어보아 그렇게 판단한 티르는 피식 웃는다.
"재미있구나, 그 마왕 이후로 처음인가."
시안 더 페인. 그녀와의 만남 이후로 자신의 주먹을 반사 마법으로 막아내는 이는 그가 처음이다. 시안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일반적인 주먹은 통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탐색전을 할 필요 없이, 바로 투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형형한 투기는 티르의 몸 전체를 감싸며 황금빛으로 빛났고, 이따금 튀는 스파크는 투기의 위험함을 경고하는 듯 했다.
이윽고 투기는 오른손에 집중된다. 한 점에 집약된 투기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날카롭게, 날카롭게 벼려져 한 점에 집중된다.
십무十武 - 창槍
충분한 투기가 집약되어 투기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을 오른손이 빠르게 출수된다. 수백개가 겹쳐진 반사 마법이지만 한 점에 집중된 투기는 반사 마법 하나하나가 막아낼 수 있는 한도보다 궤를 달리하는 파괴력으로, 반사마법들을 찢어버리며 호령의 머리를 노렸다.
그녀는 답지 않게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좀 걸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면 졸려서 드러눕기 전까지 주구장창 걷기만 한 적이 수두룩했다. 편리한 능력들을 두고 굳이 걸은 이유는 아마도 갈 곳이 없어서 였을 거다. 어느 대륙, 어느 나라를 가도 주변 모든 것이 그저 지나치는 풍경들에 불과했다. 때때로 그곳에 사는 종족들조차도 오브제 취급을 하기도 했으니.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는 방랑 중에 그 마을에 들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걷다보니 마을이 나와서 그대로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겉모습만큼은 완벽하게 인간...이라기엔 좀 특이한 인간의 모습이었으니 대놓고 멸시받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무리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마나 특유의 기운이 그녀로부터 사람들의 걸음을 멀어지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흔들흔들 걸어가던 그녀의 앞에 그 장면이 보였다. 질색하는 정육점 주인과 그에게 쫓겨나는 한 수인의 모습이.
"...?"
길 중간에 멈춰선 그녀는 정육점 주인을 비롯해 명백히 수인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이는 주변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그녀의 눈에는 인간이나 수인이나 비슷비슷해 보였으니, 왜 그러지, 싶은 생각이 들었던걸까.
주변을 크게 둘러본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거리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그 수인이었다. 그녀는 모두가 피해가는 수인의 앞으로 걸어갔다. 타박타박 걸어가 바로 앞에 뚝 멈춰서, 마주볼 수 있게 쭈그려 앉고서 한다는 말이 그랬다.
"너어.... 귀, 만져봐도 돼..?"
그녀는 단지 그걸 원한다는 듯이 수인의 얼굴과 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듣기엔 따라선 사람 놀리는 건가, 싶겠지만, 그녀가 그런 걸 따질 리가 없었다. 그냥 저 축 쳐진 귀를 한번 만져보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