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으로 덤벼오는 상대에겐 주먹이 약이다. 루프레드는 조용히 주먹을 치켜든다. 남성이 무기를 차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흥, 잘난 척은…"
참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다. 네놈이 뭔데 내 의지를 판단해? 그럼에도 한 번 물려버린 이상, 좋든 싫든 상대해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 괴물같은 힘은 대체 뭐지, 마법? 이전에도 마법을 쓰는 녀석들을 몇 상대해본 적이 있다. 허나 그 위력은 고작해야 조그만 생채기 내는 게 전부였고. 이렇게 본격적인 마법(맞나?)은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루프레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할 줄 아는 건 주먹질과 속임수 뿐. 드래곤의 사랑을 받는다 한들 아직 그녀에게서 힘을 빌린 것도 아니다. 그저 수인의 압도적인 순수 근력으로 승부를 볼 뿐이다.
결의를 다지는 것도 잠시 남성이 사라진다. 루프레드는 꼴사납게 주위를 둘러보는 대신 육감으로 상황을 인지한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자, 그의 머리 위에서 남성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
루프레드가 꼬리를 바짝 세운다. 입술을 벌려 야수 같은 치아를 드러낸다. 벼락이 그의 머리 위에서 터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늑대가 뛰어오른다. 짐승의 도약력은 뛰어나다. 짐승의 피를 이어받은 수인도 마찬가지다. 허공, 남성과 눈높이가 맞을 정도의 높이에서, 루프레드는 균형을 잡고, 재빨리 남성의 허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내지른다. 목표는 이 재수 없는 놈을, 벼락이 사그러들지 않은 지면을 향해 내쳐버리는 것.
투기의 파도를 루프레드에게 쏘아내는 순간, 루프레드는 뛰어올랐다. 파도를 피하며 자신을 향해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은 티르에게서 살짝 감탄사를 뱉게 만들었다.
'과연 늑대의 수인인가.'
루프레드의 몸을 이 높이까지 떠오르게 만드는 각력. 속도라는 면에서 자신의 투기를 넘어서는 민첩성.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며 위기까지 감지해주는 육감... 확실히 수인의 신체능력은, 무시할게 못 되었다.
흥미로운 상대다. 티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내뱉다가, 이어진 반격에 흥미로운 눈길을 보낸다.
"호오."
루프레드의 반격은, 바로 허리를 향해 내질러진 돌려차기. 티르는 공중에서 한쪽 팔을 몸 안쪽으로 굽힌 채로 허리 부위를 가드하여 발차기를 막아낸다. 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그는 공중에서 추락해 땅으로 박혀버렸다. 확실히 거기까지는 루프레드의 의도대로였다.
하지만...
"아쉽군. 이게 진짜 벼락이었다면, 타격이 있었을텐데 말이지."
티르가 땅바닥에 박히면서 생긴 흙먼지가 걷히자, 그는 멀쩡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멀쩡하다못해 땅에 사그러들지 않은 투기를 흡수하며 사용했던 힘을 어느정도 보충하고 있었다.
스파크처럼 땅에 흐르던 투기들은 어느샌가 티르의 몸으로 흘러들어갔고, 그는 충만해진 기분에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이것은 투기. 벼락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내 힘이다. 내 체질에 의해 변형된 마나가 아닌 마나지."
그는 몸 주위에서 다시 투기를 뿜어낸다. 금빛의 스파크가 그의 몸 주변에서 탁탁 튀어오른다.
"그리고 이게, 진짜 벼락이다."
팔괘八卦 - 진震
티르의 몸 주위에서 흐르던 투기는 어느샌가 푸른빛의 번개로 바뀌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방금의 스파크가 그저 점화기에서 튀는 스파크 정도의 크기였다면,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번개나 다름없었다.
"이번에는 네 의도대로 진짜 벼락으로 가주지."
그는 주먹을 쥔다. 주먹에 벼락으로 바뀐 투기가 모이고, 모여, 결국 주먹 또한 하나의 벼락이 되어버린다. 본질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투기가 모인 모습만으로도 그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십무十武 - 창槍
티르는 달렸다. 처음 티르가 루프레드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날린 것과 같이, 주먹을 정면에서 정직하게 날렸다. 하지만 방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속도가 궤를 달리했다는 점. 번개와 같은 속도로 움직인 티르는 루프레드의 코앞까지 인지하지도 못 할 새에 다가와, 그의 가슴팍에 힘이 집중된 주먹을 날려버렸다. 그 기세는, 어쩌면 루프레드의 가슴팍을 꿰뚫으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의 공격은 역으로 성공했다. 남성은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했지만… 오히려 보란 듯이 벼락을 흡수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말이 많아."
가볍게 착지한 루프레드가 쏘아붙였다.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술술 내뱉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자기 힘에 취해있나보다. 곧 남성이 다시 스파크를 두른다. 그 힘에 놀랄 새도 없이-빛이 순식간에 변하고, 거대한 벼락이 되어갔다.
본능이 위험하다며 신호를 보냈다. 루프레드는 반격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남성의 속력은 그의 인지마저도 아득히 뛰어넘었다.
주먹이 흉부를 타격한다. 그 사이에서 펑, 하는 파열음마저 들렸다. 남성의 공격을 꼼짝없이 받아낸 루프레드는 충격으로 저 멀리 나가떨어진다. 흙먼지가 요란하게 일었다… 그는 길 한복판에 손을 짚은 채 간신히 상반신을 지탱했다. 꼴이 참 볼품없었다.
"큭…"
루프레드가 신음했다. 그 뒤에 거친 욕지거리가 따라붙었다. 피 섞인 침이 턱을 타고 흘렀다. 그제서야 통증이 가슴을 타고 찌릿하게 올라왔다. 내장이 뒤틀리고 피가 역류하는 느낌이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전투의 열기에 흥분하기는 커녕 괴로워 죽을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싸움이 싫었다. 고통이라는 놈이 몸을 잠식하는 게 너무 불쾌했다.
머리가 울린다. 입가에서 흐른 묽은 피가 모래 사이로 스며든다. 그는 말을 듣지 않는 몸을 힘겹게 움직인다. 마치 밟힌 벌레의 꿈틀거림 같다. 루프레드가 남성을 흘겨보며 읊조렸다.
"댁은… 지나가던… 개*끼 나부랭이… 이겨먹어서 좋겠네…"
말이 끝나자마자 루프레드는 길바닥에 쓰러졌다. 흙과 자갈이 다물지 못하는 입 속으로 새어들어온다. 텁텁하다. 오랫동안 밭은 기침만이 이어졌다.
그는 아직도 의식을 잃지 않았다. 의지력이 마지막 남은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다. 여기서 눈을 감으면 진짜 끝일 것 같아서. 루프레드는 이를 꽉 악물며, 스쳐오는 주마등 비슷한 걸 떨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