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레드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거나, 아니면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던 와중이었거나, 누구와 대화하고 있었거나... 요컨데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티르는 그에 상관 없이 갑자기 루프레드를 향해 말을 걸었다. 큰 키의 루프레드보다 조금 더 컸던 그 남성은 루프레드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오며 금빛 안광을 형형하게 내뿜었다.
"드래곤의 냄새가 나는구나."
말을 건 남성, 티르는 중얼거리며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드래곤의 냄새. 어떤 드래곤인지는 정확히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그 특유의 냄새가 코 끝에 스쳤다.
저벅저벅 다가오던 티르는 갑자기 루프레드의 앞에서 멈춰선다. 고작 손 한 뼘 내지는 두 뼘 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네게서 드래곤의 냄새가 난다!"
그 흔한 싸우자는 말 한 마디도 없었다. 굳이 그 말을 할 필요는, 적어도 티르 입장에선 없었다. 루프레드의 몸에서 드래곤의 냄새가 나고 있다... 그 말은, 루프레드는 인간의 형상을 한 드래곤인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드래곤 나이트라 불리는 이상한 놈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놈들도 분명 강할테니까.
지금 눈 앞에 있는 수인은 그런 말을 할 필요도, 누구인지 들을 필요도 없이 강한 녀석인게 틀림없었다.
티르는 눈 앞에 있는 루프레드를 향해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러 옆구리를 때리려고 했다. 부웅- 하는 흉악한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이 옆구리로 날아들었다.
청년은 오랜만에 밑아보는 자유의 향기에 흠뻑 취해, 외진 밤길을 걷고 있었다. 인간들 눈에 띄면 좋을 게 없을 거라, 열심히 사람 냄새를 피해 거친 오솔길까지 빠져나온 참인데. 악마 냄새는 맡지 못한 게 분명하다. 아니면 잠깐 한눈을 팔았거나. 루프레드는 저 멀리서 보이는, 떡하니 서 있는 사람 그림자를 뒤늦게 발견했다. 그 인영은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왔는데… 루프레드는 도망치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치면 쫄보가 된다. 그리고 겨우 한 명이고, 인간이 세봤자 얼마나 세다고. (하지만 인간이 아니다.)
다가온 인간(처럼 보이는) 남성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드래곤 뭐? 반문하기도 전에 냅다 주먹이 날아왔다. 그 속도는 엄청났지만, 루프레드의 반응속도보다 빠른 야성적 본능 덕에 반사적으로 회피할 수 있었다. 남성과의 거리는 일순 멀어진다.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남성의 행태에 루프레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지, 이상한 놈인가? 그… 양판소에 흔히 나오는 드래곤 슬레이어? 라그나로스한테 헬프를 쳐야하나?? 하지만 헬프를 치는 건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무슨 동네 형한테 두들겨맞고 엄마 불러오는 잼민이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도 위기를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다!
"뭐야, 짜증나게."
그는 혀를 차며 욕설을 내뱉었다.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 솔직히 싸움은 이제 질린다. 그래서 루프레드는 좋은 말로 해보려고 했다.
과연, 피하는가. 손대중은 이만하면 충분했다. 이정도로 쓰러질 녀석도 아니고, 가볍게 피하면 힘을 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보통은 첫 주먹조차 피하지 못 하니 피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았다. 그래, 나쁘지 않아.
티르는 허릿춤에 메어져있던 건틀렛을 양 손에 씌운다. 철제 건틀릿은 티르의 양 손을 전부 감싸면서도 손바닥의 일부는 드러나 있었고, 손가락을 전부 감싼 금속, 정확히는 손등 부위에 강철 스파이크가 박혀있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힘으로 쫓아내봐라. 네 의지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관철할 수 있으니."
한번 실력 좀 볼까.
드래곤의 힘을 가진 이를 적당히 상대하는 것은 자만. 처음부터 투기를 끌어올렸다. 티르의 몸이 투기로 감싸져 이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변에서는 스파크와 같은 투기가 점점 튀며 위압감을 자아냈다. 이녀석이 드래곤이라면 정면으로 돌진해봤자 쉽게 피하겠지. 그렇다면..
십무十武 - 선先
티르의 모습이 일순 사라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빠른 속력은 티르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감춰버렸다.
티르가 이동한 방향은 앞도, 뒤도, 옆도 아닌- 위. 루프레드를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서 그는 치켜든 손을 넓게 펴고 투기를 모았다. 모은 투기는 엄청난 규모의 스파크를 만들어내며 척 봐도 저걸 맞으면 위험할 거라는 인상을 강력하게 내비쳤다.
십무十武 - 파波
모아진 투기의 구체는, 티르가 루프레드를 향해 손을 내뻗자 그대로 터진다. 아까의 루프레드가 피한 것을 감안한, 광범위한 공격. 응집되었다 다시 퍼지기 시작한 투기들은 자신의 경로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파지지직-!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은 무심한 공격. 마치 넓은 범위에 치는 벼락과 같은 투기의 물결이, 루프레드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