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러니까 제가 아직 가문에서 수련에 매진하면서 정략 결혼이니 뭐니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지낼 때의 일입니다. 몸이 약하셨던 오라버니는 평소엔 검술 수련에는 잘 나오지 않으셨지만 그날에는 어째서인지 하루 종일 저와 함께 놀아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라버니는 제가 수련에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근처에 있던 나무 그늘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제가 가끔 그쪽을 바라보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시고는 했습니다. 그런 사람입니다. 몸이 약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약한 게 맞는 걸까요. 어린 시절의 저는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모릅니다. 억지를 부려서 오라버니를 수련장으로 끌어냈고 열 댓판에 이른 결투 끝에 오라버니가 체력을 너무 많이 쓴다며 항복을 선언할 때까지 저는 계속해서 땅을 굴렀습니다. 분명 그런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는 않았기에 뾰루퉁한 얼굴로 앉아있으니, 오라버니께서는 주위를 살피다가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지금 울지 않고 참을 수 있으면 나중에 멋진 것을 보여줄게.” “멋진 것 말입니까?” “그래. 너도 보면 깜짝 놀랄거야.”
그렇게 말한 오라버니께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시고는 이내 쓰러지셨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씩 있던 일이기에 익숙해진 저희들은 오라버니를 방으로 옮기고는 다시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입니다. 잠자리에 들려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가려고 하니 창문 바깥에서 무언가가 두들기는 듯한 소리를 냈습니다. 유령이든 뭐든 검으로 베어낼 수 있다는 베스터 가문 특유의 자신감 때문일까요. 저는 검을 들고서는 바로 창문 가까이에 붙었습니다. 바람이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였을 겁니다. 분명 제가 잘못 들은 것이 확실한 느낌이 들어 조금 긴장하고 있으니 이내 창문이 열리고 오라버니께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래 기다렸지? 좀 더 따듯하게 입어. 아직 밤은 추우니까.” “이게 무슨…?” “말했잖아, 멋진 것을 보여준다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알면 놀라서 호들갑을 떠실 테니까. 이렇게 몰래 온 거야.” “…오라버니가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걸 알면 모두가 걱정 할겁니다.”
오라버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능청스럽게 웃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싫지는 않았지만 걱정이 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말일 겁니다.
“아무튼 빨리 따라와. 멀리는 안 가니까.”
의심쩍은 눈초리로 오라버니를 바라보다가 이내 오라버니는 몇 번을 해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집념이 강한, 가장 베스터가문 다운 소년이라는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걱정한다고 포기할 사람은 아니니까요. 오라버니가 제 손을 끌고 간 곳은 저택의 옥상이었습니다. 먼 곳은 아니라는 말은 확실히 맞았습니다만 이럴 거라면 차라리 다락을 통해 가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자, 너는 나무 타기도 안 좋아하고, 애초에 높은 곳이라고는 질색을 하니까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을거야.” “…내려가도 되겠습니까.” “괴롭히려는 게 아니니까 안돼. 무엇보다, 넌 아래를 보면서 걷잖아. 마치 하늘이 무서운 것처럼. 그러니까 오늘은 저 위를 보면 돼. 우리에게 평온을 가져다 주신 닉스님께서도 너를 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말도록.”
오라버니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은 하늘이었습니다. …확실히 제가 가진 기억이 진실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어스름한 기억이 뇌리에 스치고 난 뒤로부터 제대로 하늘을 바라보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덤으로 말하자면, 하나뿐인 동생이 매일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수련을 하는게 마음에 안 들어. 너는 좀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어.” “하지만 제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가문은…”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니까 패스. 너보다 유능한 내가, 너보다 오래 못 살리 없잖아. 그런건 신경 끄고 너는 좀더 네 또래 여자애들이 원할 만한 걸 해도 돼.”
그래서 뭐가 하고 싶어? 오라버니는 평소와 다름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조금은 쌀쌀맞지만 언제나 햇빛처럼 감싸주는 듯한. 그런 목소리.
“저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몇 년 만일까요. 오랜 만에 바라본 닉스님의 옷자락에는 마치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별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렇게 반짝거리고, 마치 보석과 같은 그것이.” “…음, 확실히 아름답지. 저 별들은 그 어떤 절세 미인이 오더라도 아름답게 빛을 낼거야. 하지만, 저건 그저 반짝이고 있기에 아름다울 뿐이야.”
오라버니는 입고있던 망토를 제게 덮어 주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고보니 마을에 엄청 유명한 과자점이 생겼었지. 같이 가려고 했는데. 네가 별이 된다고 한다면 갓 구워낸 쿠키도 먹지 못하게 될테고.” “아, 아니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응, 무슨 일이야?” “분명, 아니 확실히 반짝거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 바삭 바삭한 걸, 잔뜩 먹고 싶기도 합니다.”
오라버니는 그제서야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짓고는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처음부터 놀려진 모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