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품 안쪽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랐다. 남이 떠먹여주는 것을 삼켰고, 남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았고, 남이 느끼는 것을 느꼈다. 커다란 저택에서 루힐은 몇 년간 그렇게 컸다. 그리하여 완성된 은빛 머리에 황금을 품은 듯한 두 눈. 루힐의 외양은 마치 부호가 소장하고 있을 것 같은 인형 같아서, 성질이 못돼먹은 몇몇 종들은 지 부모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은을 발라주고 눈에 넣을 수 있는 귀한 금덩이를 구해다 준 거라며 조롱했다. ……그럴 때마다 루힐은 자기 연민으로 빈속을 유장히 채워나갔다.
모종의 이유로 루힐은 비복 다섯과 함께 공기 좋고 한적한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적응도 덜 된 채 어영부영 흘러버린 하루, 이틀. 아직 곳곳을 다 둘러보지도 못한 루힐은 우렁잇속 같은 마음에 켕기는 것이 하나 있었다. 기차를 타고 이곳으로 오고 있을 때, 귓가에서 들린 목소리. 혹시 도련님은 양을 좋아하세요?
“그 애, 분명히 동생이 있을걸.” 하는 주변의 추측은 잘만 들어맞았다. 릴리벳에겐 동생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지금도 어리지만—더 어렸을 때에는 남들 예상에 딱 들어맞는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언짢기도 했지만, 지금의 릴리벳은··· 글쎄. 특별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동생들이 제 방 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은근하게 세심한 구석이 있다. 머리 위로 조용히 떨어진 낙엽을 떼어주거나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손에 묻은 흙을 호호 불어주는 일을 쉽게도 했다. 그대로 조용히 한 번 씨익 웃어주었다면 제법 신비한 구석이 있는 여자애로 기억이 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릴리벳은 참지 못하고 꼭 한 마디씩을 덧붙였다. 잔소리로 여겨 질린 얼굴을 하는 걸 보고서도 말은 목구멍 뒤로 넘어가질 않았다. 딱히 각 잡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도 은연 중에 제 말 받아치곤 까르르 웃어주는 애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이사온 지 겨우 한 달. 생일이 지나기도 전에 낯선 곳에 떨어진 탓에 미묘하게 심기가 불편하다. 가끔은 이번 생일은 외톨이로 보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다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 아프니 입을 꾹 다물어보기로 했다. 불안할 때에는 눈물도 나지 않으면서 코를 한 번 훌쩍이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또 넘어진 우는 아이에게 손을 뻗고, 칠칠치 못하게 물건 흘린 아이 불러다 가방까지 잠가주고 나면, 또 제가 던진 한 마디에 웃어주는 한 명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53cm, 그닥 크지 않은 체구와 아직 앳되어보이는 얼굴 탓에 한두 살 어리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은 단정하게 땋아내린 고동색 머리카락과 선명한 호박색 눈. 짙고 선명한 눈매 덕에 똘똘하게 생겼다는 말도 꽤 많이 듣곤 한다.
거대양 사람들이 대체로 친절하니까 인상이 나쁘지는 않겠죠 🤔... 근데 릴리벳 성격에 사춘기까지 겹치다보니 거대양 종교 자체에는 관심 없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그냥 좀 특이하네 싶은 정도? 거기 소속된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꺼리진 않아도 어울리기 위해서 발 담가보려는 시도는 안 할 것 같습니다!
깜찍하게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여자아이가 기차에서 소리쳤다. 통통한 손가락으로 삿대질까지 해가며 소리쳤다. 루힐은 조금 놀란 탓에 몸을 움츠렸다가, 시선을 최대한 바닥으로 내리깔고 자리에 앉았다.
“아 귀여워. 도련님, 저 여자애가 도련님 가방이 마음에 드나 봐요! 저번에 마님이 주신 거 맞죠?”
말 많은 여종의 귓속말. 기차가 출발하려는 소리. 그 여자애가 뒤뚱뒤뚱 걸어오는 소리. 너무 시끄러웠던 루힐은 양쪽 귀를 다 막으려다가, 여종이 자신의 오른쪽 귀에 대고 얘기하고 있어서 왼쪽 귀만 막았다. 왼쪽 귀가 금방 울긋불긋해졌다.
“······응.”
루힐은 여자애가 지나가는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고서 여종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루힐의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건지 애초에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건지 여종은 창밖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으니 루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루힐은 방금 여자아이가 지나가면서 중얼거린 말이 더 신경 쓰였다. “좋겠다.” 최대한 그 여자애가 하는 말은 안 들으려고 했는데 들어버리고 말았다. 뭐가 좋다는 건지.
덜컹대는 기차 안. 수마가 몰려온 루힐은 저항 없이 눈을 감았다. 여기서 얼마나 가야 된다고? 두 시간. 아, 드-럽게 오래 걸리네. 음흠흠- 야! 넌 노래 좀 그만 불러! 아직 깊게 자고 있지는 않았으니, 루힐의 귀로 온갖 잡음이 들어갔다.
“안 자시죠?”
루힐의 바로 옆에서 또 누군가 속삭였다.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혹시 도련님은 양을 좋아하세요?”
루힐이 눈을 떴을 때는 하늘의 색이 주홍색이었다. 잠시 멍해진 루힐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아까의 엄청 시끄럽던 분위기와 딴 판으로 다들 축 늘어져 자고 있었다. 루힐은 차분히 감긴 눈 10개를 번갈아보면서 잠결에 들었던 목소리를 상기시켜보았다. 두통만 얻고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루힐과 5명이 기차역에서 내려 마을까지 걸었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니 웬 사람 한 명이 무척이나 반가운 듯 팔을 휘적이고 있었다. 루힐은 조금 떨떠름했지만 그 사람과 인사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집의 열쇠를 받는 것은 다 자신의 몫이 아니었기에 늘 그랬듯 조용히 있었다. 루힐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올려 그 사람을 보았다. 파리한 낯에 더러운 몰골. 움직일 때마다 나는 쉰내에 루힐은 그만 눈썹을 찌푸리고 말았다. 티 내면 예의가 아닌데. 루힐이 그 사람의 눈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당혹과 함께 황망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리면서, 그 사람의 넝마 같은 옷에 그려진 양을 보았다.
릴리벳은 눈앞에서 불쑥 다가오는 손에 무심코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손의 주인을 확인한 뒤에도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다. 쭈뼛대며 서 있던 릴리벳이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쿠키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온순한 양의 얼굴을 한 쿠키. 양만큼이나 둥글고 온화한 듯한 사람. 릴리벳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탓에 더 사근사근하게 굴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 민망하고, 아주 약간은 미웠다. 하지만 가끔은 행동의 이유를 본인이 알 수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불쑥 다가온 손에 릴리벳은 놀랐다. 상냥한 얼굴을 보고선 뒷걸음질쳤다. 한 톨의 적의도 없는, 아주 새하얗고 매끈한 얼굴을 보고.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 릴리벳이 한 거라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하곤 멀뚱히 서서 받은 쿠키만 만지작거린 게 전부일 것이다. 누군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있으면 더 가져가도 돼. 신도가 쭈뼛대는 아이 앞으로 더 서슴없이 쿠키 바구니를 들이밀었다. 상대가 놀란 것 같이 보이면 멋쩍은 반응을 내비치기라도 할 텐데 그런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눈이 보이기는 한 건지. 둥글게 접혀서는 펴질 줄 모르는 눈이 귀신같다. 신도라는 이름과 맞지 않게.
“저쪽에 성전이 있으니까 편하게 놀러 오렴. 알았지?”
신도가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성전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처럼 뒤편을 슬쩍 보았다. 솔직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마을에서 눈에 확 띄는 건물을 말해보라 하면 누구나 그곳이라고 얘기하매.
천천히 주세요~ 다음 주 정도까지는 저도 바쁠 것 같아요 🥲... 그 다음은 또 연말연초라 이벤트가 또 있네요... 헉 루힐주 불쾌한 말 들으셨나요? ㅠㅠ 저는 그런 때에는 좋아하는 간식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화분에 물도 주고요, 이것저것 좋아하는 일 하면서 시간 보내는 편이에요. 또 샤워하면서 물에 많은 것들 쓸려보내기도 하구요. 부디 마음 많이 상하지 않으셨다면 좋겠어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기분도 더 나아질 거예요.
종이 입혀주는 대로 옷을 입은 루힐이 문 앞에 섰다. 그렇지만 루힐은 직접 손잡이를 잡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금색 손잡이가 명쾌한 소리를 내면서 다른 이의 손에 열렸다. 충분히 공간이 생기자 루힐은 여린 발걸음을 내디뎠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살짝살짝 빛나는 금색 눈동자는 오늘따라 그림자가 많이 드리워져 있었다. 잠자리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을 설친 것일까. 그렇다기엔 누구나 한 번 보면 뒤로 자빠질 고급 침구가 무색했다. 설마 어머니와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루힐의 근처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낏 인형을 쳐다봤다.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에 사람이 들어왔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자신의 길을 똑바로 나아가면서 동시에 결연한 눈빛으로 앞을 봐야한다. 루힐은 이 간단한 것을 못 했다. 땅만 보며 걸으면 넘어지기 일쑤인데, 원래의 집에서도 땅 보고 걷지 말라고 수십 번은 들었는데, 루힐이 넘어졌다. 뺨과 땅이 쓸릴 때 나는 따가운 소리가 꽤 짙게 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단순히 넘어진 것이라면 생채기 정도만 나있어도 되는데 누군가 제대로 아로새긴 것처럼 긴 상처가 생겨있었다. 어디 낙원에서 단물만 먹고 살아온 마름꽃 같은 얼굴에 생생한 피가 흘렀다.
후아 저 드디어 큰 고비 몇 개 넘겼어요...... 다음 주쯤 되면 정말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것 같습니다 🥲... 답레는 주말 지나고 가져올게요! 루힐주 이번에도 고생 많으셨구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다음 주 크리스마스인데 크리스마스 준비도 잘 하시구요 🎅🏻🎄... 그러고보니까 클리프랑 벨리타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겠네요 ㅋㅋㅋㅋㅋ
릴리벳은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는 릴리벳의 걸음이 나이에 비해 무거운 데가 있다고 했다. 릴리벳은 내심 제 몸에 보기 싫게 살이 붙은 걸까 고민했지만, 삼 일 정도 지나고 나니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아무리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봐도 릴리벳 허니포드는··· 그냥 릴리벳 허니포드였다.
손에 쿠키를 쥔 릴리벳은 계속 걸었다. 집에 가면 분명히 바쁠 것이다. 쿠키를 향해 달려드는 동생들에게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 된다는 말을 삼백 번째 해야 할 것이고, 어쩌면 식사준비를 도와야 할 수도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숙제를 해야 했다. 정말 지겨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지극히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게 지내며 공부하는 일상은 때때로 지루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런 일을 간절히 바랄 수도 있겠지만, 릴리벳은 이제 겨우 열다섯이었다. 가끔은 제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를 바라곤 하는. 그러나 릴리벳은 안다. 저는 주인공이 되기엔 지나치게 평범했다. 주인공을 꿈꾸려면 적어도 제 앞에 보이는 머리색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반짝이는 은빛······.
“···얘!”
릴리벳이 앞으로 달려갔다. 제가 생각한 주인공이 갑자기 기울어지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닥을 보고 걸으니까 넘어지지.”
릴리벳이 동생 다그치듯 말하며 빈 손을 내밀었다. 잡고 일어나라는 의미였다. 주인공의 얼굴을 보던 릴리벳은 짧게 눈을 크게 떴다가, 대놓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메리 연말연초라고 인사할 때네요! 루힐주도 올해 고생 많으셨구요, 행복한 새해 맞이하셨으면 좋겠어요 🥰 또...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올해의 벨리타는 클리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겉옷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싶구 🤔 아무래도 다분히 충동적인 여행이니까 좋은 옷 하나 정도는 필요할 테니까, 따뜻하고 멋진 새 코트를 선물했을 것 같아요!
피! 붉고 뜨거운, 하지만 루힐에게는 생소하고 차갑기만 한 그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루힐은 본능대로 손등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쓰라렸다.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쓰라렸다. 어쩌면 좋지. 내가 손수건을 가지고 나왔던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흘러나오는 피가 멈추지 않는 것만 같아 꽁꽁 얼어있던 루힐은 내밀어진 손에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만년빙에 금이 갔다. 자신의 앞에 있는 환한 손. 헛것이 아닌 틀림없는 사람의 손. 호박에 금빛이 스며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을 잘도 뚫어져라 쳐다보던 루힐은 이내 손을 잡았다. 확신이 없어 미미한 악력을 가진 손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이라고, 손 하나 잡고 나니 느즈러졌다.
“어?”
되물을 것도 없는데 멍청한 음성이 나왔다. 어찌 됐든 릴리벳의 도움을 빌려 두 다리 딛고 일어섰다. 고맙다는 인사를 언제쯤 해야 하는 건지, 손은 지금 놓으면 되는 건지 고민하는 루힐. 안절부절못한 꼴이 감춰지지도 않고 다 드러났다.
과한 스케줄과 음주에 시달리다 인사가 늦었네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루힐주 🎉🎉🎊🎊🎉🎊💥💥 올해에도 각자 페이스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예쁘고 즐겁게 우리 스레 꾸며나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ㅎㅎ 워낙 옷걸이가 좋으니 벨리타에겐 이것저것 입혀보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클리프 선물 받곤 기분 좀 묘했겠어요... 이런 장신구 줬던 건 보통 앨런이니까... 작은 함에 담아서 보관하고 가끔 밤에 열어보는 시간 가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ㅋㅋㅋㅋㅋ
손을 뻗은 채 기다리던 릴리벳은 이 애가 다소 굼뜨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그 다음으로 손이 닿았을 때에는 상상 이상으로 유약함에 놀랐다. 제 막내동생과 겨뤄도 쉽게 질 것 같은 힘이었다. 뜬금없이 되물어오는 물음까지. 릴리벳은 이 애가 분명히, 저보다 최소한 두 살은 어릴 거라고 생각했다. 어리다면 그럴 수 있었다. 제 동생들을 보며 다져온 생각이다. 아직 미숙하니까, 그보다는 나은 내가 이해할 필요가 있어. 아직도 미숙한 릴리벳이 생각했다.
"너 상처에서 피가 난다구."
제 뺨을 톡톡 두드린 릴리벳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특별할 것 없는 낡은 손수건이었다. 한쪽 귀퉁이에 해바라기 자수가 놓인 것만 빼면. 저 인형 같은 애가 이런 물건을 쓸까? 목소리도 제대로 안 들려주는데, 괜히 까탈스럽게 굴면 어쩌지? 다친 아이를 돕고 싶은 선의와 괜한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했다. 릴리벳이 금색 눈을 마주쳤다. 아마 그때, 그렇게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릴리벳은 그냥 손수건만 쥐여준 채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릴리벳이 한 걸음 다가가 쥐고 있던 손수건을 아이의 뺨에 가만히 댔다. 아프지 않게 살살 주변을 닦아낸 릴리벳은 다시 한 걸음 물러서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다, 쥐고 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빨리 가서 치료 받아. 혹시 피가 흐르면 이걸로 조심조심 닦고. 그리고 이건··· 울지 말라고."
손수건 위로 양 쿠키를 올려두었다. 개수가 하나 모자라게 되었지만, 제가 먹지 않으면 되니까 상관없었다. 이 정도 양보쯤이야.
해바라기가 흔들렸다. 루힐도 흔들렸다. 태어난 이래 타인의 손길이 제 몸에 닿았던 적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진짜 ‘타인’이 저와 이어지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루힐은 해바라기의 꽃잎이 뱃속을 괴롭히는 것 같은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무척 이상했다. 그렇다고 거북하거나 난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기분은 도대체 무엇일까. 저택으로 돌아가서 고민해야 할 것이 생겼다.
시선을 아래로 두어서 그런지 해바라기가 시야의 윗쪽에 걸쳐졌다. 고개를 살짝 들어 릴리벳이 내밀고 있는 게 무엇인지만 확인하고 다시 숙였다. 이대로 얌전히 있었다면 릴리벳이든 누구든 ‘이건 뭐지’라고 생각했겠지만 다행히 루힐은 손만 움직여서 손수건과 양 쿠키를 잡아 품으로 가져갔다. 고마워············ 약한 바람도 쉽게 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음성이 나왔다. 루힐은 상처가 크게 나면 목소리도 작아지고 얼굴이 죄다 뜨거워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수건은······.”
누군가의 손수건을 처음 받아본, 그래서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 애초에 받아도 되는 건 맞는지 수백 개의 물음표가 생긴 루힐의 웅얼거림.
남자애에 대한 릴리벳의 인상은 굼뜨다에서 유약(연약?)하다를 거쳐 아주아주 수줍음이 많다로 끝이 났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물건만 쏙 빼가는 모습이 얄미울 법도 한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 좋게도 바람이 멈춘 순간이라, 릴리벳은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던 덕이다. 오히려 릴리벳은 이 애가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구도 저와 비슷한 데다, 천방지축인 남동생들보다야 훨씬 나아보였으니까!
“다시 피가 난다고 문질러 닦으면 안 돼. 아까 내가 해준 것처럼 살살. 알겠지?”
동생 가르치듯 얘기한 릴리벳이 눈을 마주치려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냥 가져도 되는데. 우리집에 그런 거 많거든.”
어머니는 어린 남매들이 싸우기라도 할까—보통 손수건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도— 같은 자수를 놓은 손수건 따위를 꼭 세 개씩 준비해주셨다. 그러니 이 손수건 하나 없다고 해서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이미 해바라기 손수건은 두 개나 있으니까.
“그래도 돌려주고 싶으면 저쪽 마당 있는 빨간 지붕 집으로 와도 되고, 다른 애들한테 릴리벳 어딨냐고 물어봐서 돌려줘도 돼.”
잠깐 고민하던 릴리벳이 말문을 열었다. 그치만 또 언제 마음이 바뀌어 꼭 이 손수건을 되찾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넌 이름이 뭐야? 어디에 살아? 처음 보는 것 같아. 물론 나도 여기 온 진 얼마 안 됐지만.”
루힐에게 순종은 들숨이고 날숨이었다. 사람은 남의 말에 계속 끄덕이다 보면 되려 역으로 반발심 같은 게 오를 수 있다고 아무개가 그랬지만 루힐은 역시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분류된 것인지, 아직 제대로 된 저항 의지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단순 호불호에서 나오는 거부 정도야 ‘때때로’ 보였다. “빨간 지붕, 알겠어.” 지금 상황에서 루힐에게 다가오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본인은 모르겠지만) 호. 태양을 쫓는 꽃과, 찰나에 보았던··· 정말 태양 같던 눈. 루힐은 무엇에 촉진되었는지 이제서야 대화하기 쉽게 고개를 뻣뻣이 들어 올렸다. 눈을 마주치려고 충분히 노력해준 릴리벳의 결실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루힐 빌르레튼······!”
일 년 치 분량의 용기를 계획도 없이 다 짜낸 걸까. 주먹까지 꽉 쥔 루힐은 봉오리가 터지듯이 말을 했다. 제 이름을 다 발음하고 난 뒤에는 이상한 애처럼 보였을 것 같아 다시 얼굴이 홧홧해졌다. 상냥하고 상냥한 내 앞의 여자애가 이런 것으로 문제 삼지는 않을 거라는 걸 은연중에 이미 알고야 있었다만, 뺨이 붉어지는 생리는 어쩔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 그곳에만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보였다.
루힐은 손가락을 펴서 자신이 방금 나온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고민이 뒤따랐다. 나이까지 얘기해줄지 말지. 상대의 나이가 궁금했던 루힐은 몇 초 후에 자신의 나이를 알려주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릴리벳은 해바라기 손수건을 되찾을 의지를 잃어버렸다. 해바라기는 호박보단 화사한 금빛과 더 잘 어울렸다. 오늘 장미가 수놓인 손수건—유감스럽게도 이런 손수건은 가진 바 없지만—을 들고 있었다고 해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테지만. 릴리벳은 루힐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읊어보았다. 태어나 처음 펼쳐보는 책에 적힌 낯선 단어를 읽는 것처럼. 아마 금색 잉크로 쓰인 글씨일 것이다.
“난 릴리벳 허니포드야.”
릴리벳은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정도로 웃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이었으므로 보는 입장에선 어땠을지 모른다. 아무튼, 릴리벳은 호의적인 태도였다. 이름 하나 말했다고 얼굴 붉히는 수줍은 소년을 미워할 이유라곤 티끌 만큼도 없었으니까.
“···세상에.”
빠르게 두 번 눈을 깜빡인 릴리벳이 무심코 감탄사를 내뱉었다. 뱉고 난 직후에는 본인조차 그런 말을 한 줄 몰랐을 정도였다.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나는 네가··· 조금 더 어릴 줄 알았거든.”
릴리벳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체구가 저와 비슷해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내 또래 남자애들은 너보다 까맣고, ···무엇보다 엄청 왁왁대거든.”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소리지르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아마 평생 이해 못 할 테고 딱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루힐은 새로이 알게 된 이름을 몇 번 중얼거렸다. 나중에 만나 인사할 때 이름 하나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참사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릴리벳의 이름이 낯선 발음으로 남아있지 않게, 확실히 외울 수 있게 루힐은 애썼다. 혀가 구를 때마다 어디선가 꿀 향이 나는 것도 같고, 환한 빛깔이 시야에서 나부끼는 것도 같고.
여타 다른 또래 남자애들의 모습이 루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상대의 생각이 무리는 아니었다. 확실히 그네들의 평균과 루힐은 동떨어져 있었으므로. 루힐이 릴리벳의 사과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응······.”
릴리벳이 웃었던 것처럼 루힐도 최종적으로 웃음을 보여주었다. 이국의 상인이 무엇을 준대도 바꾸지 않을 귀중한 보물이 된 손수건과 쿠키는 루힐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릴리벳, 허니포드. 마당 있는 빨간 지붕. 루힐은 중요한 것들을 기억의 앞섶에 바르게 새겼다. 그리고 릴리벳의 잔소리가 세워낸 검지를 살짝 건드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나 이번에도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 릴리벳, 하면서.
난 그렇게 바쁜 것도 아닌데 먼가 빡빡하게 느껴지네.. 릴리벳주 바쁘겠지만 자주자주 숨 돌려주고💪💪 행복해야대!!
고런 감성 좋당ㅎㅎ 그럼 그런 느낌으로 가구! 그렇게 진행하다가 애들 좀 보내고 릴리벳이랑 루힐 둘만 남긴 다음에, 둘이서 거대양 보는 그런 장면 돌려보까? 방금 생각 하나가 떠올랐는데 루힐 집에서 일하는 애들 중에 하나가 루힐을 제물(사이비집단에서 좋아하고 집착하는 고런 느낌의 존재 잇잫아) 그런 느낌으로 하려고 한다 해도 갠찮을 것 같구.. 릴리벳은 거대양 같이 봐도 좋고, 루힐만 보고 릴리벳이 정신차료! 같은 느낌 해도 좋을 것 같구 🤟❤️🔥
헉 좋아요,,! 루힐에게는 좀 잔인한 생각인데 왠지 진짜 귀하고 예쁜 제물(...)이라고 생각할 것 같고 그래요 🥲 ㅋㅋㅋㅋㅋㅋ 앗 거대양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가요? 존재는 하는데 그냥 존재하는 건데 사람들이 혼자 믿고 따르는 걸까요...! 일단 처음에는 루힐만 보는 게 좀 더 끌리네요 ㅎㅎ 또 평범하게 놀고 있는 애들이 양모양 손가락 인형이나 가면이나 솜인형 같은 거 가지고 있는 것도 좋을 것 같구... 은은하게 양에게 지배된 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