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허름한 오두막 안, 보헤미안은 입맛을 다시며 손에 쥐어져있는 감자 같이 생긴 채소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니, 물론 이세계에는 감자와 똑같은 작물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이 지역의 특산물인 듯 보였다. 감자치고는 싸길래 샀는데, 이렇게 단 감자일 줄이야. 아직 완벽히 익숙해진 것이 아닌 만큼 외견으로 밖에 판단이 안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단맛을 살릴 방법이 있을까. 제 양 볼을 손바닥으로 꾹꾹 문지르며 조금 고민하다, 보헤미안 잡지 57호에 실린 요리를 떠올려본다.
“음, 음, 음~.”
주변에 아무도 없겠지…? 불을 써야하니 팔을 살짝 걷어붙이고, 휴대용 조리도구를 꺼내든다. 악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땐 부싯돌로 불을 피우고, 주변의 풀들을 조금 집어 태운다. 팬을 달구는 동안, 단 맛이 나는 감자를 큼직큼직하고 비스듬하게 썰어둔다.
“킁. 치즈향 너무 좋다!”
치즈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야. 이 치즈도 이 지역의 특산물인 것 같지만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고급스런 곡물향이 배어있어 구우면 더 맛있으리라는 강한 직감이 내려온다. 넓직하게 썬 감자의 단면 위에 같이 썰어둔 소세지를 올려두고, 몰랑몰랑한 치즈로 빙글빙글 말아 꼭꼭 붙여준다. 마치 한입거리 크래커 같네. 예로부터 치즈는 단 맛이랑 잘 어울렸으니까. 치즈향이 향긋하게 퍼져나가며, 보헤미안의 입가에도 침이 줄 모일 찰나.
“─!?”
오두막 입구에 선 호령이가 본 것은 아마도, 당신을 향해 침을 흘리는 구울의 모습이리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보헤미안은 새하얘진 얼굴로 당신을 올려다보다, 딸꾹질을 한다. 딸꾹!
물러나는 것. 그것은 티르의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도망을 혐오했고 죽는 한이 있어도 투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시안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도 두려워 하기보단 기뻐했다. 더 즐거운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티르의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뭐..."
듣기 좋은 비명은 곧이어 광기 어린 웃음소리로 바뀌어간다. 갑자기 바뀐 소리에 당황했는지 잠시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하려 했지만 이미 늦다. 밀어넣고 있던 투기가 오히려 끌어당겨지면서, 그의 다리와 팔힘도 서서히 풀리고 있던 것이다.
티르의 문제는 바로 시안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오직 전승뿐이었다는 것.
시안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애초에 무관심했다. 그렇기에 고통을 흩뿌리고 다니는 마왕이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마나를 먹고, 흡수하는 체질이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결과는?
바로 지금과 같이 그녀의 수법에 당하는 상황으로 이어져버렸다.
"젠장, 벗어나야..!"
뿌리치려고 했으나 목에 팔이 둘러지며 동시에 힘을 흡수당하는 것이 가속화된다. 티르는 뿌리치려는 듯 팔을 붙잡고 잡아떼내려는 듯 끌어당겼지만 변함은 없었고, 오히려 힘이 점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나가 아닌 마나, 투기는 티르를 지탱하는 힘이었지만 그것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가고 있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가지.
십무十武 - 회回
시안이 잡고있던 티르의 팔이 순간 회전한다. 인간은 꺾이지 않을 방향으로 팔이 꺾이며 그대로 한바퀴 돈다. 아니, 정확히는 티르는 자신의 팔을 잡고 있던 시안의 몸에 저절로 회전하는 성질의 투기를 불어넣어, 그녀의 몸을 공중에서 한바퀴 돌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 투기를 곧이곧대로 흡수한 시안은 순간적으로 공중에서 한바퀴 빙글 돌아버렸고, 그게 마치 시안에게는 티르의 팔이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시안이 회전하는 순간 마찰 때문에 붙잡는 힘에 틈이 생겼고, 그 틈을 타 티르는 붙잡힌 팔을 빼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단숨에 다가오기 힘들 정도로 거리를 벌렸다.
"이정도로 많이 먹으라고 주진 않았는데..."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시안을 바라본다. 그 얼굴은 검붉은 피눈물과 자국들, 그리고 히죽 웃은 눈과 입으로 인해 도저히 정상인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투덜거림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투기. 그 많던 투기는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안이 자신의 투기를 흡수한 탓, 이겠지... 그는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시안을 빤히 노려보았다.
>>392 ‘어떡하지. 저 사람 입장에선 인간 한 마리 뚝딱 꿀꺽 잡아먹고 애피타이저로 감자 요리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려나? 또 신고당하면 어쩌지? 아, 근데 향기 너무 좋다. 저 사람, 손에 과일도 들고있네. 과일 안 먹은 지 진짜 오래 됐는데. 아니, 이게 아니라…….’
놀람으로 인해 굳어버린 모습 그대로 뻣뻣하게 당신을 바라보던 보헤미안은 타탁, 하고 타는 장작 소리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래도, 하고 있는 요리를 주면 한 번은 봐주지 않을까? 사나워보이는 인상도 아니고, 무작정 해를 끼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지만…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눈동자를 굴린다. 당신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보이자, 긴장한 기색으로 침을 꿀꺽 삼킨다.
“아……요리가요? 후꾹.”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요리를 보고 하는 말일까. 그래도 대답하는 보헤미안의 얼굴에는 긴장이 조금 가신 듯 보였다. 무작정 비명을 지르거나, 공격을 해오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그래도 눈 앞의 사람은 바로 공격해올 것 같진 않으니까……그래도 딸꾹질은 멎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코를 한 번 훌쩍인다. 침도 좀 닦고. 이어진 당신의 말은 요근래 들어본 말 중 가장 상냥한 말이었다. 1. 먼저 사과를 해준다. 2. 자신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3. 맛있는 냄새가 나준다고 했다! 거기까지 다다랐을 무렵, 허둥지둥 팔소매를 다시 당기고, 후드도 꾹 조여 신체 중 눈만 겨우 보이게 만든다. 조금 더 수상해진 구울은 당신을 가만히 바라보다,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거렸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뻗은 손을 살짝 붙잡고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휴.
“저, 괜찮으시면 같이 드셔도 되는데. 후꾹. 재료를 조금 많이 샀거든요! 분명 이렇게 찾아오신 것도 아르모스 님의 축복일 거에요.”
경계심이 풀린 보헤미안은 당신의 칭찬에 기뻐진 듯, 조잘조잘 떠들며 배낭 안에 들어있는 길쭉한 유리병 안에 든 올리브 기름의 뚜껑을 뽁, 하고 뽑는다. 충분히 달아오른 팬에 능숙하게 두르고, 치즈로 돌돌 만 달달한 감자와 소세지를 굽기 시작한다. 그 어떤 밑작업도 없이, 썰고 굽기만 하면 되니 아주 간편한 요리니까 더 고생할 것도 없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치즈 베이컨 웨지 (달달)감자 완성! 몇 개를 집어 그릇에 옮겨담고, 양손으로 붙잡아 당신에게 내밀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