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그린 표정을 보며 티르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날아가는 날파리를 보며 멍하니 있던 녀석이 갑자기 감정을 드러낸다... 뭔가를 건드린 건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트리거가 눌린 것 같긴 한데. 잠시 고민하다가 그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걸로 시안 또한 제대로 할 마음이 생긴 것 같았으니까.
"네가 뭐라고 하든 넌, 마왕이다. 그건 네가 부정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
그렇다면 조금 더 긁는다. 긁고, 긁어서 좀 더 짙은 감정을 드러내게 만든다. 감정을 드러낼수록 투쟁의 순도 또한 올라갈테니, 결과적으로 티르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티르는 철퇴를 내리치려다가 순간 들려온 강한 목소리에 표정을 찡그렸다. 귀가 터질 것 같은 강한 소음은, 의외로 시안의 입에서 터져나온 것이었다.
이정도로 격렬한 반응이라니. 그의 얼굴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드러난다.
"배고프냐? 나 또한 그렇다. 그러니 원하는 게 있다면 힘으로 빼앗아봐라."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티르의 코앞에 나타나더니 불길한 기운이 담긴 손을 내뻗는 시안.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 했지만 티르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마법사의 손일지라도, 이것은 닿으면 위험하다. 하지만 닿으면 위험하다고 해서 피하는 것은 티르의 취향이 아니었다.
"좋아, 여기까지 날 밀어붙였으니 보여주마. 내가 네게 주는 최고의 간식이다."
배고프다는 말을 자신처럼 싸움에 목이 마르단 뜻으로 인식했던 그는 시안의 손을 맞잡는다. 손톱을 뾰족히 세운 손과 손가락 사이사이에 억지로 손을 끼우고는 그대로 붙잡았다. 검푸른 기운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시안의 손을 그대로 고정시키고는 나머지 한 손으로 시안의 팔꿈치 부근을 붙잡는다.
그리고 이내- 티르의 파괴적인 금빛 투기가, 시안의 팔을 타고 흘러들어가 내부부터 그녀를 파괴하려고 했다.
거듭된 부정을 다시 부정하고 밀어붙이는 티르의 말은 원했든 아니든 그녀의 트리거를 건드리고 성질을 긁었다. 제아무리 텅 빈 황야라도 불꽃을 던져놓으면 한순간은 타오르는 법. 이미 다 타서 남은 것이 없다고 해도, 불씨에 따라 재의 흔적조차도 다시 불타게 만들 수 있다.
이미 꺼진 곳에 새로이 불을 당겼으면 그 뒷감당 역시 자신이 해야 하는 법이다.
힘, 싸움, 지금은 그다지 원치 않는 것들을 강요하는 그를 마주할수록 그녀는 그 의도에 끌려갔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관심은 서서히 거부와 분노로 바뀌어가고, 차츰 그녀를 잠들기 전 상태로 되돌려가는 듯 했다. 날개에 눈까지 변했으니 일부는 예전에 가까워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티르는 물러나는 걸 생각하는게 좋았을거다. 전승만이 그녀 과거의 전부인 것은 아니었으니.
"..뭐, 하는....?"
그녀의 손이 티르의 손에 붙잡히자 아무리 그래도 놀랐는지 멈칫, 하고 손을 본다. 그녀의 손보다 한참 큰 티르의 손이 깍지 끼워지자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한번 빼려는 시도를 해봤다가 티르가 재차 팔을 잡자 움찔 하고 굳는다.
"간식...?"
이 상황에 무슨 간식?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선이 티르에게 향했다. 그 직후 잡힌 팔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티르의 투기가 그녀의 내부를 강타했고, 그녀의 입에서 컥, 하는 고통스러운 소리가 터졌다. 검붉은 피 한줌도 같이.
"아, 으, 흐, 윽, 아, 아, 아..."
아아아아악!
조금 전 짜증에 받친 외침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명이 그녀의 전신으로부터 쏟아졌다. 난폭한 투기가 몸 안을 헤집는 감각은 결코 평온하지 못 했을거다. 그녀는 팔을 붙잡힌 채 몸을 떨고 고개를 뒤로 꺾다시피 젖히고 절규했다. 검은 피눈물이 눈에서 흐르고, 처음 뱉었던 피의 잔재가 입술과 턱에 메말라붙는다. 금방이라도 숨 넘어갈 것처럼 고통에 떠는 와중에... 그녀의 날개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마치 마나를 더 먹은 것처럼.
"아아악! 아악, 아, 하, 하하, 하흐흐흐..!!!"
돌연 비명이 광기 어린 웃음소리로 바뀌고, 그녀가 고개를 내려 티르를 마주한다. 검게 흐른 자국들로 엉망이 된 얼굴에 두 눈이 기묘하게 빛난다. 천천히 눈을 접어 웃음을 짓는 그녀. 그 순간부터 상황은 반전된다. 티르가 일방적으로 투기를 밀어넣는 것에서 그녀가 오히려 그의 힘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사실 그녀가 처음 손에 둘렀던 검푸른 기운은 이걸 위해서였다. 티르를 향해 히죽 웃은 입이 천천히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간식... 네가 준다고 한거다...?"
그러니 원망하지 말라는 듯, 그녀가 힘을 빨아들이는 것이 가속화한다. 그녀는 티르가 쉽게 벗어나지 못 하게 하려는지 남은 손을 뻗어 아예 티르의 목에 팔을 두르려 했다. 그대로 전부를 집어삼켜버릴 것처럼.
어느 허름한 오두막 안, 보헤미안은 입맛을 다시며 손에 쥐어져있는 감자 같이 생긴 채소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니, 물론 이세계에는 감자와 똑같은 작물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이 지역의 특산물인 듯 보였다. 감자치고는 싸길래 샀는데, 이렇게 단 감자일 줄이야. 아직 완벽히 익숙해진 것이 아닌 만큼 외견으로 밖에 판단이 안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단맛을 살릴 방법이 있을까. 제 양 볼을 손바닥으로 꾹꾹 문지르며 조금 고민하다, 보헤미안 잡지 57호에 실린 요리를 떠올려본다.
“음, 음, 음~.”
주변에 아무도 없겠지…? 불을 써야하니 팔을 살짝 걷어붙이고, 휴대용 조리도구를 꺼내든다. 악취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땐 부싯돌로 불을 피우고, 주변의 풀들을 조금 집어 태운다. 팬을 달구는 동안, 단 맛이 나는 감자를 큼직큼직하고 비스듬하게 썰어둔다.
“킁. 치즈향 너무 좋다!”
치즈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야. 이 치즈도 이 지역의 특산물인 것 같지만 가격이 싸지는 않았다. 고급스런 곡물향이 배어있어 구우면 더 맛있으리라는 강한 직감이 내려온다. 넓직하게 썬 감자의 단면 위에 같이 썰어둔 소세지를 올려두고, 몰랑몰랑한 치즈로 빙글빙글 말아 꼭꼭 붙여준다. 마치 한입거리 크래커 같네. 예로부터 치즈는 단 맛이랑 잘 어울렸으니까. 치즈향이 향긋하게 퍼져나가며, 보헤미안의 입가에도 침이 줄 모일 찰나.
“─!?”
오두막 입구에 선 호령이가 본 것은 아마도, 당신을 향해 침을 흘리는 구울의 모습이리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보헤미안은 새하얘진 얼굴로 당신을 올려다보다, 딸꾹질을 한다. 딸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