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랄한 평가였다. 아이언맨이 멋있다는 사실에는 그녀 역시 이견이 없었지만, 안타깝게도 문제의 '히어로'는 멋과 위엄 양쪽 모두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슈퍼히어로 슈트가 멋있는 건 어디까지나 카메라와 CG의 도움 아래서만 가능한 일이다.
"경찰로서 말하자면, 위험해 보여. 공권력에 대한 적대심과 자경단의 조합이 별로 바람직한 것 같진 않네."
단순히 뉴스를 보며 경찰의 무능함을 욕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현행법상 엄연히 공무 집행 방해죄에 해당하고, 게다가 다짜고짜 이쪽을 욕하면 욕 먹은 입장에서도 난감한 법이었다. 요 근래 경찰이 크게 문제를 일으킨 사건이 따로 있었나?
"어느쪽이건 여러분들도 그렇게 유쾌하게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네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히어로는 멋지지만 저건 히어로가 아니에요. 그냥 민폐 빌런이지. 자기가 무슨 박쥐남자인줄 아나."
적어도 소라는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지 괜히 투덜투덜거리면서 화면에 비치고 있는 자칭 히어로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예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컴퓨터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전화가 걸려오자 그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 모드로 돌렸다. 이어 스피커로 들려오는 것은 프로키온의 특유 기계음 목소리였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이번엔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서 전화를 걸었다. 자칭 뉴스에도 나오는 그 K마크 달린 히어로...를 알고 있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눈에서 빔을 쏘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괴력을 보이는 그 히어로 말이다만. 며칠 조사를 해본 끝에 A급 익스파 파장을 내뿜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그 녀석은 익스퍼다. 그래서 요원들이 이전에 교육을 시키기 위해 찾아갔지만..모두 얻어맞고 말아서 말이야. 면목이 없군.
"......" "......"
소라와 예성은 아무런 말 없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프로키온은 한숨을 내쉬는 듯이 후우- 소리를 내뱉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청해 해수욕장에서 겨울 바다를 즐기고 있는 여성을 헌팅하는 남자들을 모두 바다속으로 처박고 있는 모양이다만. 가서 제압하거나 혹은 설득이라도 좀 해 줄 수 없겠나? 일단 익스퍼니까 이쪽 담당이라고 생각한다만.
화연은 어이가 없는 지 커피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웃음 참고 있었다. 분명 당하는 사람은 난처하고 분노하지만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는 제 3자 입장에서는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는 경찰이었다. 객관적으로 그는 체포해야할 범죄자이며 그의 위범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진 아무도 모른다.
"대체 뭐하는 녀석인진 모르겠지만 말로 혼내거나 무력으로 혼내면 듣지 않을까요?"
이내 헌팅하는 남자들을 바다 속으로 처박고 있다는 말에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죄송해요. 크크. 물론 나쁜 행동은 맞는데...이게 뭐랄까...네...웃기는 놈이군요."
헌팅. 물론 난파ナンパ*는 악용되기도 하지만 다짜고짜 바다에 박는 것도 조금 아니지 않나......? 건전한 헌팅에서 비롯한 운명의 사랑 이야기도 여럿 들어본 신은 이 로맨스 파괴러가 정말 괘씸하게 느껴졌다...! 로맨스 파괴러는 천벌 받아야지, 아무렴 그렇고 말고. (?)
"그 사람은 타인의 차를 못 쓰게 만들었고 나무를 부러트렸으며 건물을 파괴하고 심지어 보호해 마땅할 사람조차 함부로 다루는 범죄나 다름없는 행보를 보였어요. 선線을 넘었지요, 네에."
게다가 사랑도 방해했고...
"능력은 빔을 쏘고 하늘을 날고 괴력을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요? 예상되는 하나 되는 능력은 없는지요."
-그렇게 해서 해결이 된다면 참 좋겠지만.. 아무튼 무슨 익스파인진 알 수 없어. 적어도 저 장갑 안에 들어있는 이가 누군지 파악되기 전까진 말이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빔을 쏘는 것도, 하늘을 나는 것도, 괴력을 보이는 것도 전부 다 저 장갑때문이 아닐까라고도 하고 싶지만.. 솔직히 이야기하지. 저 자칭 히어로에게서 발산되는 익스파 페턴은 총 15개다.
"....?"
"15개? 무슨 소리입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렇기에 무슨 익스파인지 알 수 없다는거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내 쪽에서 특별히 어떻게 도움을 줄 수가 없어. 미안하지만 말이지.
사람 한 명당 발휘할 수 있는 익스파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허나 저 문제의 히어로는 총 15개의 익스파를 다루고 있다고 하니 그저 소라는 물론이고 예성 역시 당황스럽고 황당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대원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일단 프로키온은 부탁한다고 이야기를 하며 통신을 끊었고 소라는 모두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세 번 한 후에 이야기했다.
"일단 이변이라면 이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모두들 해수욕장으로 출동해주세요. 만약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면 체포를 하는 것도 감안해주세요."
문제의 청해 해수욕장에 도착했다면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대원들은 눈앞에서 질아 안 좋아보이는 금발 머리 남성이 마치 무뽑히듯이 TV에서도 나온 적이 있는 히어로에게 들려져 바다로 던져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풍덩!! 그야말로 제대로 바다에 던져졌고 거리와 속도로 봤을 때 보통 힘이 아님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도움을 받은 여성들도 그렇게 좋아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크게 당황하며 도망치는 이들이 다수였으나 자칭 히어로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는 듯 발을 옮겼다. 철저한 기계로 이뤄져있는지 움직일 때마다 특유의 우웅-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을 것이다.
"슬슬 정리가 되었나. 그렇다면 다음은."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TV에서도 들었을 기계음 목소리였다.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알 수 없는 변조음이었다.
"가령- 저 장갑을 뚜껑 열어도 아무도 들어 있지 않고 텅텅- 인 것은 아니겠죠. 영화에서 자주 그러던데."
멍하니 눈을 치켜 올리며 신은 어린 시절 급우와 봤던 모 영화를 떠올렸다... '저것은 영화라서 그런 것이에요?', '아니? 실제로 저렇게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많은걸.' 그때 신은 생각했던 것이다, 와- 기계란 오묘한 원리로 혼자 움직이기도 하고 정말이지 알 수 없구나- 하고. 그러니 저 자칭 히어로도 혹시 모르는 것 아닐까.
신은 제 몸을 해로부터 지키는 예의 보호를 걸고 '히어로'에게 접근하려 했다. 도망치는 사람을 거슬러 걸어가 발을 멈출 때 짤랑, 하고 주의를 돌리기 위한 방울 소리 한번. 꿈쩍도 안 했다면 멋쩍음을 삼켜내고 저기요- 했을 것이다...
"경찰인데요, 제가 꽤나 사리에 어두운 탓에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잠시 괜찮을까요? '경찰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 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반대로 제대로 일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사리에 꽤나 어두워서,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당신이 친히 가르쳐준다면 진심으로 좋겠다고 생각한답니다."
화연의 물음에 프로키온은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애초에 페턴이 15개인거지. 그 페턴이 무슨 익스파인지까진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안에 있는 존재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그 안의 존재를 알 수 없는 한, 상대가 어떻게 등록되어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자신을 체포하겠다고 다가오는 화연을 히어로는 아무런 말 없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곧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신을 바라보며 히어로는 또 아무런 말 없이 뚫어져라 바라봤다. 어느 쪽 말에도 특별히 대답하는 일 없이 히어로는 아무런 장치도 없이 공중으로 붕 떠오른 후에, 조금 거리를 둔 곳의 해변 모래밭 위에 착지했다.
"확인 완료.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익스파 범죄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결성된 팀이었나?"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을 바라보며 히어로는 기계음 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이야기했고 딱히 다가오거나 공격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계하는 모습도, 공격태세를 갖추는 일도 없이 그저 제자리에 서서 모두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를 체포하겠다고 했나? 허나 체포당하지 않는다면 어쩔참이지? 너희들은 나를 체포할 수 없어. 경찰이 제대로 일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사건이 일어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허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어 히어로는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멤버들을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바로 너희들이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초면에 실례되는 발언이긴 하나 확실하게 말하지. 너희들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너희들이 믿는 정의 따위 이 세상에 꽃피울 수 없다."
히어로가 아무말 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보자 화연은 그가 순순히 체포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히어로는 공중으로 떠오른 후 해변 모래밭 위에 착지했다. 화연은 해변가 건물들을 등지고 서서 히어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딱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경계하지도 공격하지도 않고 그저 제자리에 서서 모두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건 부탁이 아닌 통보입니다. 순순히 당하지 않겠다면 서로가 다칠뿐이죠."
히어로가 위그드라실 팀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며 비난하자 화연은 답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 군요. 경찰은 당신 같은 범죄자가 이 안전한 세상을 흔들지 못하게 막고 안전한 세상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직업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