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에서 만나는게 저런 철갑통이 아니면 좋을 텐데..의미없는 생각을 해봤자 이미 만난지 오래다. 그는 금태양 하나가 저멀리 날아가는 장면에 낮게 휘파람을 불며 다른 대원의 설득과 제압 시도를 본다. 그는 쉽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적어도 여러가지 정보가 있어야 말이 통할 것 같은 상대기도 했기에.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서는 것이다.
"잠시만요~"
그는 잠시 양쪽 다 진정하라는 듯 손을 들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리고 자칭 히어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선생님. 일단 저희 쪽에서 여쭙고자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희 팀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
일단 극비리에 이루어진 단체인데 왜 개나소나 다 익스레이버 거리는지 모르겠고. 둘째.
"아무리 못미덥다고 해도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거죠, 선생님. 저희도 법대로 움직이고 있고 선생님은 지금 기물 파손과 재물 손괴를 비롯해 여러 위법행위를 저지르셨어요. 이건 인정하셔야죠. 지금 던지신 분도 상해가 발생하면 특수폭행죄로 인정될 수도 있고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형 조금 더 줄이게 여기서 그만 합시다. 예?"
그리고는 잠시 멈칫한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가 잠깐 멈추다 중재하듯 작게 웃었다.
"에이, 참. 그건 겪어봐야 아는 거죠.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안 될 줄 알았는데 되는 일도 있더라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말로 풉시다. 예?"
"서로가 다친다? 아니. 다치는 곳은 너희들 뿐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라. 그것도 좋겠지. 허나 그 대신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겠지. 어찌할 도리 없이,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 어쩌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극소수를 제외한 모두가."
"법? 그런 건 흥미없다. 나는 내 눈으로 봤을 때 문제를 일으킨 이들을 처리했을 뿐이다.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피해따위는 흥미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을 방치하고 있는 이들이 치뤄야 할 죄값이다."
두 사람의 말에 각각 대답을 하며 히어로는 손에서 불꽃을 일으킨 화연의 모습을 바라봤다. 허나 특별히 어떻게 움직이는 일 없이 팔을 앞으로 뻗었다. 뒤이어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전원의 탐지기에서 A급 파장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이내 패널이 생성되어 히어로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모두가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군. 그러니까 나는..."
"......"
"......"
자신을 소개하기 전, 갑자기 말을 끊어버린 히어로는 뭔가 생각하는듯 침묵을 좀 길게 가졌다. 약 3분 정도 그렇게 말을 끊던 히어로는 다시 기계음을 이어냈다.
"귀찮으니까 그냥 '킹'이라고 칭하겠다. 일단 나는 그렇게 불리고 있으니까."
자신을 킹이라고 칭한 존재는 이내 뒤로 한 걸음 물러선 후, 대원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만나고 싶었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허나 이미 죽은 이가 하나 나온 시점에서 운명은 바뀌지 않겠지. 운명의 톱니바퀴는 이미 돌아가고 있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그냥 도망쳐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을 추천하지.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시행하고 있는 나를 막지 말고."
"선생님. 피해에 흥미가 없으시면 안 됩니다..건물이 무너져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어요. 법을 따라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적인 문제잖아요.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고 인간을 통제할 수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미소를 겨우 유지했다. 흥미가 없다는 말이 쓰게 다가온다. 누군가 다치는데 그게 왜 흥미가 없을까. 이건 윤리적인 문제다. 그는 패널을 보며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15개에 대해 생각하다 설마 자신의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신의 정신을 차단하는 듯 싶었다. 간섭을 피하기 위함이다. 약점을 들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선생님도 그..라타토스크 입니까?"
킹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퀸이 넘어지고 나서야 나타날 줄 알았는데..그는 체스에서 킹이 나서던 순간을 떠올리고 설마 하는 생각에 킹을 바라본다. 퀸이 아예 없거나 먼저 잡힌 건가. 아니면 그런 법칙조차 무시하는 건가.
"적어도 공격태세를 갖추지 않는 범죄자라고 칭하는 이를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공격하는 이보단 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만."
화연의 불꽃은 전혀 킹이라고 칭한 이에게 닿지 않았다. 패널은 너무나 가볍게 그의 공격을 막아섰고 킹은 그 패널을 치워버렸다. 뒤이어 킹은 화연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다른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대원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허나 부정한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까? 중2병. 과대한 설정을 현실인양 받아들이는 현상을 의미하던가? 너희들의 존재 자체가 이미 그런 것이지 않나. 내 말이 틀린가?"
뒤이어 킹이라고 칭한 이의 시선은 퍼시난드 쪽으로 향했다. 이어 라타토스크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침묵을 지키다가 곧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을 칭했던 것 같기도 하군. 일단 그럼 그런 것으로 쳐도 상관없다. 허나 나는 너희들에게 적대의식 따윈 없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볼 때 올바르지 않은 이들이 설치는 것을 막아섰을 뿐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너희들 익스레이버라는 족속을 제외하면."
뒤이어 침묵을 지키면서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던 킹이라고 칭한 이는 고개를 두번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지시받은 적은 없으나 나는 페어하지 않은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보를 주지. ...앞으로 3명 더 죽게 될거다. 그리고 그 3명이 다 죽게 되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될거다. 스스로 상대를 죽이면서 자멸하게 될 거다."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너희들이 바라보게 되는 광경은 그런 아포칼립스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자세한 것은 알려주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분명히 뭔가를 전달하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마냥 호의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정의를 실행하면서 지켜봤으나 바로 옆에서 피해를 입은 이가 있으나 손을 뻗고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모두들 그냥 무시하거나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존재할 가치는 있을까? 너희들의 생각은 어떤가?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안전한 세상을 유지하겠다는 경찰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존재가치가 없는 이들을.. 왜 너희들은 지키는거지? 왜 그 사건들을 일으킨 범인을 잡으려고 나서는거지? 너희들의 활약 따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터다."
그 말은 참으로 오만한 시선이었다. 마치 자신은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듯.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듯.
존재 자체가 이상하고 설정 과다인건 알지만 누가 이렇게 되고 싶었을까. 그는 아예 답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되고 싶다고 바란 적도 없었고, 생각 해본적도 없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저렇게 단정 지어버리는 사람과 대화 해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벽에 대고 대화를 하느니 집에 있는 식물과 대화를 하고 말겠다. 그는 네, 선생님 말이 다 옳아요.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른바 난 멍청한 사람의 말은 수긍해줍니다. 진짜요? 그럼요, 네 말이 다 옳아요 수법이다.
"소속은 했는데 동상이몽이다 그 뜻인가보네요. 올바르지 않다면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면 좋겠는데."
차라리 그 말을 하지 말 걸. 3명이 더 죽을 것이다. 희생자와 자멸이 있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미소를 거뒀다. 서글서글한 낯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웃지 않았다. 산산이 부서진 표정은 아무것도 담지 않고 눈빛만 이채를 띤다. 세상에 염증이 나고 제법 많은 걸 혐오하고 있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심호흡 한다. 바닷가를 보며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서글하니 웃는 낯으로 돌아온다.
인간이 단합할 수 없음은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이다. 아주 오래 전 성경에 쓰인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그렇고, 현대도 그렇다. 옆에서 누군가 다쳐도 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가 역으로 돌아올까 두려워 한다. 그만큼 세상은 악해졌다.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럼에도 그가 그런 사람을 지키고 범인을 잡는 이유는 그 마지막 균형이라도 잡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우리마저 손 뻗어줄 사람이 없다면 세상은 망가질 거죠. 활약을 몰라도 상관 없어요. 이미 몇번이고 겪었으니까요. 대단한 희생 정신 같지만 아니에요."
내 이기심 때문이지. 그는 킹을 보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였다.
"당신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개인의 신념을 꺾진 않았음 해요. 여긴 민주주의 국가고, 마지막까지 희생해보고자 하는 건 내 신념이며, 설령 좋지 않게 끝난다 해도 그 이전에 일어나는 사건을 막아냈다는 게 의미 있는 거니까요."
"이해불능. 어째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내 눈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들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들도, 그리고 피해를 입는 이들을 무시하고 가버리는 이들도. 그리고, 그런 이들을 지키겠다고, 세상을 지키겠다고 나를 적대하는 너희들도. 머지 않아 스스로 피 흘리며 자멸하게 될 존재가치가 없는 이들을 위해서 왜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지?"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기계음이었으나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외의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너무나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이내 킹은 화연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분노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킹은 무감정한 기계음을 이어냈다.
"설사 개입이 있었다고 한들, 그것을 택한 것 또한 너희들이 범죄자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압을 하는 과정에서 무슨 피해가 벌어지건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이미 그들이 그렇게 시행하고 있으니. 무엇보다 내 존재가치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처리하는 것이니까."
지키는 자와 처리하는 자. 비슷해보이지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 속에서 화연이 먼저 공격을 걸어오자 킹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화연의 뒤쪽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아마도...
"그럼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말했다시피 나는 너희들에게 관심이 있다. 그러니까 보여봐라. 그 지키겠다는 각오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보도록 하마. ...하지만 이러면 싸움을 거부하는 이도 있겠지. 그러면..."
이어 킹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거기엔 사람들이 멀쩡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었다. 그리고 킹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곳을 향해서 눈에서 빔을 발사했다. 그 레이저는 건물에 지격했고 벽을 일부 박살냈다. 인명피해는 아직 일으키지 않았지만 만약 그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더 가한다면 건물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아직 때가 아니어서 힘을 다 낼 순 없지만 저 건물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간단해. A급 익스파라면 얼마든지 방출할 수 있어. 자. 지키겠다는 히어로들이여. 나는 언젠가 이 세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처단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킹이다. 너희들의 지키고자 하는 각오. 보여봐라."
이어 킹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 상태에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또 다시 포착된 A급 익스파 파장. 그리고 그 너머에서 검은색 구체가 공중에 무수히 많이 생성되었고 그것은 위그드라실 팀을 향해 낙하하듯 떨어졌다.
/제압전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정말로 의외의 상대일지도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킹이 맞답니다! 12시 25분까지!
당신이 우리를 이해할 수 없듯 그도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 온전한 이해관계가 아닌 이상 대립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화로 풀 수 있을까 싶던 그는 거부하는 이도 있겠다는 언급과 함께 벌어진 짧은 일을 목도한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평범한 아파트 벽이 박살나는 장면은 평생이고 남을 것이다.
그는 이 상황을 타파하려 들지 않았다. 맞서 싸우지도 않았고, 반항하지도 않았다. 구체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그는 아파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자 이번엔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떨리기 시작했다. 건물이, 무너져서, 그 안에 있던 나와 우리가. 이번에 내가 싸울 의지를 보였다면 저 건물이 공격 받을 일이 없는데..
저 건물이 뭐였더라. 여긴 어디였지. 뉴욕은 어디인가. 이곳은 나의 고향인가. 이곳은 번화가의 건물 안이며 누군가 손을 뻗으며 외치는 소리가 귓가를 쟁쟁하게 울렸다. 너라도 살아. 퍼디난드, 너라도 살아.. 그는 귀를 더 세게 틀어막더니 그 자리에 웅크려 몸을 덜덜 떨었다.
이내 낙하하는 검은 구체는 일제히 폭탄처럼 터져나갔다. 쾅, 쾅, 쾅, 쾅, 쾅. 만약 연우가 친 방어패널이 아니었다면 그 폭발에 대원들이 흽쓸렸겠지만 그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일단 패널은 어떻게든 버텨냈으나 꽤 여러 번 폭발이 있었기에 금이 어느정도 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막았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화연이 전신에서 불꽃을 발산하자 그 불꽃의 일부는 킹에게 일부 명중했다. 입고 있는 장갑이 살짝 검에 그을리긴 했지만, 그 때문에 분명히 열기가 내부를 덮쳤을텐데도 불구하고 킹은 비명소리를 전혀 내지 않고 괴로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 정도의 힘인가. 허나 사명을 품은 이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군."
화연의 능력을 평가하는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킹은 이어 연우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묻는 물음에 기계음을 이어나갔다.
"기준.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다. 물론 지시 사항에 따라서 다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 대다수르 요 며칠 관찰한 결과,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콘서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졌지만 구하지도 않고 도망치는 이,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정신을 조작한 이, 자신의 직장 동료에게 갑질을 하는 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많은 사상자를 내려고 한 이 등등. ...그런 이들에게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 이전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별 차이는 없었겠지."
뒤이어 킹의 시선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퍼디난드로 향했다. 이어 킹의 눈앞에 포탈 구멍 같은 것이 열렸고 퍼디난드의 바로 뒤에서 또 다른 구멍이 생성되었다. 이어 킹은 오른손을 구멍 쪽으로 뻗었다. 뻗은 팔에선 레이저 같은 것이 번쩍번쩍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마도 별 대처가 없다면 레이저가 발사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반응레스를 써주시면 될 것 같아요! 다들 수고했어요! 다음 진행은 다음 일요일이에요!
그는 12월 5일 뉴욕 중심부 스트리트 건물에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는 아비규환이다. 그는 잔해에 눈두덩이가 찢어졌고, 건물이 무너질 때 동료가 손을 뻗어 안전한 곳으로 밀쳐진다. 패널에 잡힐 때 세상이 한번 무너지고, 그는..여기는 12월 27일 집안으로..그의 탁한 눈이 킹을 응시한다.
큐브웨폰을 숨쉬듯 자연스럽게 꺼냈다. 날선 가위를 쥔 그가 목을 몇번 더듬는다. 보기에 지극히 무력한 모습이나 정신은 빠져나오기 위해 애쓴다. 그는 눈앞의 킹이 두려웠다.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두 눈동자가 공허하고 아직 정신은 12월 27일로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위를 벌렸다 닫는다. 싹둑, 하고 허공을 자르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평소였다면 적당히 두려운 감정만 심어줬겠으나 앞서 서술하듯 그는 생각할 겨를 하나 없다. 날것 그대로의 것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