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클래스의 범죄자가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읽으며 소라는 조금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인력이 가지 못하도록 도로를 막았던 존재도 S클래스건만, 전의 그 사건의 범인 역시 S클래스라니. 첫번째 의문은 익스파 랭크였다. 데이터베이스에선 C로 등록되어있었고, 실제 첫 접촉때도 C로 포착되었다고 그녀가 받은 보고서에 적혀있었다. 허나 갑자기 S 랭크의 힘을 냈다니. 어떻게 익스파를 억제했단 말인가. 자신이 아는 바, 익스파의 힘을 아무리 낮게 낸다고 할지라도 S랭크가 C랭크로 측정될 순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 의문은 바로 라타토스크라는 이름이었다.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무언가와 충돌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익스레이버를 결성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지는건지.
여러모로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문을 열고 나오자 대원들이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들 많이 피곤하고 힘들텐데 정말로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대견한 마음이 살며시 떠올랐다.
탕비실이나 가서 조금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탕비실 문을 연 후에 그 안으로 들어섰고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근처에 있는 간식거리를 눈여겨보다가 조금 이후에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와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
"어머. 휴식하려고 왔어요? 눈치보지 말고 앉아요."
물론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눈치보고 나갈까 싶어 그녀는 편하게 있어도 된다는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엔 왜 월요일이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왜 수요일은 일주일의 반이나 되면서 이틀이나 더 일을 해야하는 걸까. 그는 7일 중 5일을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주말은 온전히 쉬는게 아니라 여차하면 출동을 준비해야 하는 대기근무가 있다. 경찰이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마음 편히 쉬고 싶은데 세상의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도무지 선해질 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지역엔 적당히 선한 사람만 모였는지 살인사건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늘어질 정도로 평화롭다. 바깥은 관광객과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날씨는 끝장나게 좋다. 라타토스크와의 싸움 이후로 이렇다 할 범죄는 못 느낀 것 같다. 덕분에 정리할 서류가 산더미인게 흠이다. 그는 세상살이를 비관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참이다. 검은건 글씨고 흰 건 종이다. 그의 눈이 흐렸다. 움직이는 건 손이고 보는 건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보고서 작성을 위해 사건 현장에 들러 땅에 손을 짚었다 오는 길이다. 지금껏 본 일을 남김없이 기억했으니 남은건 타이핑을 해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의 보고서는 남들과 달리 특별하다. 상황의 시간대 별로 무슨 일이 있었고, 피해자의 기억엔 무엇이 있었고, 무엇을 보았고, 누가 무슨 대화를 했는지 숨소리 하나 빠짐없이 모조리 기억하기 때문이다. 시간대와 누구의 발언인지까지 전부 떠올려내며 한글자씩 쓰니 정신은 피곤하고 보고서는 빽빽하다. 이정도의 정성이면 기계도 울겠다 생각하며 막 엔터를 치던 그가 무언가 이상해 모니터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Ah, What the-"
그는 모니터를 확인하고 고개를 쭉 뺐다. 휴가를 낸 회색머리의 유부남처럼 그도 비슷한 탄식을 뱉는다. 프로그램이 응답하지 않는 것 때문에? 아니다. 다른 프로그램에 썼기 때문도 아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어가 모국어다. 피곤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건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였고, 가족과 문자할 때도 당연히 영어로 대화한다. 그가 탄식하는 이유는 앞서 말하듯 20년 이상 학습된 언어가 무의식에서도 쓰이며 한국어는 뒷전이기 때문이다. 보고서도 다를 바가 없다. 어쩐지 술술 읽히더니, 영어로 타이핑을 쳤다. 키보드를 쾅 때리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조금 쉬다 와야할 것 같다.
탕비실의 문을 열면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열었던 탕비실 안에 선객이 있다. 그의 상사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대부의 조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참이다. 널 이곳에 받아주는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정하니 괜한 말썽 피우지 말거라. 그런데 이걸 어쩌나.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술을 마셔 기억이 나지 않고, 이미 팀에 들어왔고, 그는 말썽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거라고 합리화를 시도한 것이다. 상사와 있으면 으레 불편한 법이라지만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활짝 웃으며 "감삼다~" 하고 운을 떼버리는 것이다. 테이블 근처로 다가간 그는 과자를 흘끔 본다. 부스러기도 없고 쓰레기도 없으니, 왜 안 먹나 싶은 것이다.
"보고서를 처음부터 다시 쓰기엔 하도 피곤해서요. 소라 씨도 좀 쉬려고 오셨나봐요?"
그는 쭉 기지개를 켠다. 목을 좌우로 기울이자 두둑 하고 소리가 나니 딱봐도 오랜시간 앉은게 분명하다.
"천천히 써도 괜찮아요.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제가 아는 바, 그렇게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없지 않아요? 너무 오래 앉아서 일하진 마세요. 그러다가 몸 상할라. 아니면 예성이가 딴청 피우면 뭐라고 하나요? 그럼 이야기해요. 제가 너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얘기할테니까."
그녀는 정말로 해야 할 땐 일을 빡세게 해야한다고 생각을 하나 지금 같은 시기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바쁜게 없는만큼 조금 느슨하게 해도 된다고 보는 주의였다. 물론 예성은 조금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나 그가 뭘 어쩌겠는가. 자신은 그의 선배이고 일단은 상사였다. 조만간에 일계급 특진이 있으면 더더욱 그렇게 될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소라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정리를 한 후에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라타토스크의 나이트..라고 했나요? 이전에 도망친 범죄자 말이에요. 정말로 아무 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에요. S클래스는 생각 이상으로 막강하니까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S클래스 중에서도 범죄자는 있겠지만, 하필 그 자리에 있었던게 C클래스의 힘을 낼 수 있는 S클래스였다니 말이에요."
만약 처음부터 알았다면 단번에 자신이 달려갔겠지만 나리는 틀림없이 측정기에서 처음엔 C 클래스의 힘을 보여줬다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본 보고서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어떨 것 같나요? 라타토스크의 나이트. 그렇다는 것은 라타토스크라는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판단해도 좋을 것 같나요? 전 그때 현장에 없었으니 현장에 있었던 분의 말을 듣고 싶네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더라도 빨리 해두는게 좋으니까요. 그리고 저 몸 엄청 튼튼해요~ 이렇게 보여도 특공대 출신이라구.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몸선이 제법 낭창해 남들처럼 빵빵한 근육자랑은 할 수 없지만 장난처럼 한쪽 팔을 들었다. 사복근무로 왔기에 오버핏 소맷단 때문에 근육이 보일 확률 전무하다. 그리고 "예성 씨가 대부님한테 그랬을진 몰라도 아직 저한텐 안 그랬으니 너무 쪼진 말아요~" 한다. 발언하기 이전에 어? 하고 키득거리며 웃었기 때문에 어쩐지 장난치는 어투가 됐지만.
이윽고 그는 손을 뻗어 쿠크다스 두개를 집어든다. 둘다 붉은색 포장인걸 보니 누구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센스 한번 좋다. 아직 그는 먹어보지 못한 한국 과자지만 붉은색 과자 포장은 신뢰의 색이다. 치토스도 붉은색, 프링글스도 붉은색, 도리토스도 붉은색 포장이니까 이것도 맛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녀를 향해 건네려 했다. "하나 드세요." 하고는 본인은 포장을 뜯지 않았다. 뭔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게요. 아무 일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아무도 죽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았잖아요."
그는 포장지를 빤히 내려다본다. 쿠크다스. 어원을 알기 어려운 글자를 읽고는 포장지의 빈 부분을 엄지로 눌렀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아무 일이 없을 거란 보장은 없을 것 같아서 좀 답답하네요."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높지 않은 천장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만 그 일의 규모를 알지 못하니 답답한 그의 마음처럼.
"한참 공부하고 놀고 웃고 떠들 학생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고 경찰의 목숨을 위협했고 그 학생을 구하는 조력자가 있었으니, 그 다음엔 죽이라고 종용한 사람도 나오겠죠."
그는 포장을 뜯기 위해 손톱으로 포장지의 끝을 집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증언은 귀하다. 같은 경찰끼리도 보고 느낀것이 많아 종합할수록 큰 정보가 된다. 그는 잠시 고민한다. 말을 더듬지 않아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게끔, 최대한 신중하게 단어와 문장을 골랐다.
"소라 씨. 우리는 기밀로 움직이는 거잖아요. 적어도 우리와 협력하는 경찰청 관계자나, 그런 분들에겐 우리 존재를 알렸지만 민간인은 우리를 평범한 경찰로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그는 포장을 뜯었다. 쿠크다스의 포장은 대략 2mm 뜯겨 반대편으로 뜯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쿠크다스의 포장과 씨름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이트라는 사람은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껏 싱크홀 사건, 지하철 폭주 사건, 아이돌 테러 사건을 비롯한 갖가지 사회적 약자라는 폰을 내세웠지요. 이건 우연도, 허세도 아니라고 봐요. 신화상의 의미에서도 라타토스크와 위그드라실은 연관이 깊으니까요."
그는 반대편 포장마저 희미하게 뜯기자 인상을 구겼다. "라타토스크라는 조직이 있고 우리를 노린다고 판단해도 좋을 거예요. 아, 이거 왜이리 안 까져? Easy-Cut이라며! 이게 어딜 봐서 Easy야?"
"예성이는 너무 일을 열심히 해서 탈이에요. 조금은 쉬엄쉬엄해도 될텐데. 요즘은 여러모로 계속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아직 안 쪼았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말을 마치며 소라는 그가 내미는 쿠크다스를 받아들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포장을 까며 그 내용물을 밖으로 끄집어낸 후, 그녀는 천천히 먹으면서 그 맛을 즐겼다. 허나 뒤에 이어지는 꽤 긴 그의 생각을 들으면서 입을 움직이는 속도가 조금씩 조금씩 늦춰지고 있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그의 생각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자신과 생각이 일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조각을 자신이 채워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눈을 잠시 감고 고민하다가 이야기했다.
"보고서에 쓰여있던 범인. 유나리라고 했던가요? 그 애에 대한 기록은 지금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아요. 그녀가 다녔다는 학교에서도, 그리고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이도 없어요.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에요. 하물며 인적등본을 조회하려고 해도 없는 사람으로 결과가 뜨고 있어요. 이상하죠? 분명히 존재한 이에 대한 기록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는게 말이에요. 마치 그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쿠크다스를 다시 한 입 깨물면서 잠시 말을 고민하던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묻는 질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적어도 민간인들에게 있어서 우리들은 그저 평범한 경찰이에요. 허나 우리 팀의 이름과 존재까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부류도 있었죠. 아마? 물론 익스퍼들 사이에서 소문이 떠돌지도 모르지만 공식적으로 공표한 적은 없어요. 즉, 어쩌면 우리들은 정말 상상 이상의 무언가와 대치하고 있는걸지도 몰라요."
이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그 안에서 물을 꺼냈다. 컵 두 개를 꺼낸 후에 하나씩 따르고, 컵 두 개를 가지고 돌아온 그녀는 그 중 하나를 그의 자리에 내려놓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앉는 자리로 가져왔다.
"라타토스크는 이름없는 수리와 니드호그 사이를 이간질해서 싸우게 하는 청설모에요. 어쩌면... 이게 그들의 목적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요."
"네에, 이제야 그나마 대답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말씀을 돌려주십니다. 파도 곡하는 소리 받느라 능숙지도 못한 대화에는 어울릴 경황조차 없으시던 분이?"
대답을 돌려 받으니 그야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을 노니는 사람이다. 일장춘몽만을 노니는 사람이다. 깨어나는 법이 없으니 그가 자력인가 타력인가는 속단할 수 없을 노릇이지만... 선線을 넘었음은 여실하지 않은가. 신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달리아의 검은 눈에 제 시선을 맞췄다.
"무덤서 갓 기어나왔니 죽은 바 다름없는 시체니 덧없는 은유에 그치는 말씀은 현재 우리 관계로는 단숨에 납득키도 어렵거니와 설여하시지 않는 이상 곁으로 미뤄두는 것으로 하고요, 그리 당신의 입장과 특성을 깊이 헤아려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면 으레 반대편에도 그만한 정성을 보여야 하는 법이에요. 큰 것이 필요하지 않죠, 남 이야기 엿들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능력을 파도보다는 사람 소리에도 조금 나누도록 하고, 사소한 물음이라도 타인이 당신에 향한 호의로 내주었다면 마땅한 까닭 없이는 묵살치 아니하고... 예, 한두 번 무시한 일로 걸고 넘어지는 제가 속된 말로 쪼잔해 보이나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역시 제 입장이자 특성이니까요. 이해를 바라는 당신이 우리를 보는 이 바다와 같은 아량으로 마찬가지로 예쁘게 이해해주신다면 좋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눈매를 접어 꼭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신이 보드랍게 미소했다. 유순하고 멍하게, 때로는 어리바리하게 구는 부드럽기 그지없는 평소의 이즈미 신과 한 점 다를 바가 없었다. 신은 이어 두 손을 가볍게 모았다. 조금만 강했다면 짝, 소리라도 났을 것처럼 말이다.
"아, 그리고요, 저는 말이죠, 미덕에 관한 정의를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미덕이란 사람마다 입에 올리는 내용이 다른 법이라서요... 음, 그러니까아... 내 저력이 닿지 않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기필코 이루고 닿는 것이 사람이 지닐 미덕이 아닐까요? 날개가 없다고 일찌감치 포기하여 오늘날 하늘에 여러 비행기 뜨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달리아 씨는 어떠세요?"
//신놈이...너무나도 설교충이라서........🤦♂️ 다시금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달리아주.....🙇♂️🙇♂️🙇♂️ 저는 달리아의 신비로운 매력을 사랑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