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 내의 일이니 특혜가 아니라는 말만큼 신빙성이 안 가는게 또 있을까? 이러다 정말 연차라도 내면 다른 팀원에게 눈초리 받기 딱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특히 예성 씨. 대부님께서 예성 씨를 특히 주의하라 했는데 벌써부터 찍히면 곤란하다. 이후의 고해성사 떄문인지 잠시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냉장고의 웅웅대는 소음 뒤로 그녀가 의외라는듯 쳐다보자 그는 눈을 마주하고 멀뚱멀뚱 쳐다보며 입안에 있는 젤리를 씹어 삼키기만 한다.
"안 닮았죠?"
이제 보니 그와 브리는 닮은 점이 많다. 포레스트 워커를 맡은 브리, 그러니까 브라이언도 비색 머리에 붉은 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잡하고 자유분방한 인상의 퍼디난드와 달리 브리는 얌전하고 수수한 미소년이다. 둘을 붙여두고 닮게 만들기 위해선 퍼디난드의 머리를 곱게 단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뒤로 몇걸음 물러서는 모습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지 말아요." 하고 부드럽게 한번 말하고는 하리보 봉지를 봤다. 벌써 다 먹었다. 빈 봉지를 바스락거리며 손에 쥐고 쓰레기통에 휙 던져넣으며 말을 잇는다.
"그러지 말고 편하게 대해요. 어차피 아역배우 출신이든 배우의 형이든 레슬러의 동생이든 지금 제가 경찰인건 안 달라지니까요. 으음, 그것보다 여기는 일반인 출입금지구나. 아쉽네요."
브리 성격으로 봐선 형이 일하는 곳은 어디야? 하면서 이전에 뉴욕 수사국을 이곳저곳 다 둘러볼 기세로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할게 뻔하다. 잘 타이르면 말을 잘 들을 테니 걱정은 안 되지만 아무래도 아쉬워 할 건 그쪽에서 해결할 수 없다. 그는 "이해해요. 기밀도 많고 그럴 텐데." 하고 사람 좋게 미소 지어보이곤 타협점에 뭔가 생각하다 답을 찾았는지 요사스레 웃으며 답한다. 소라 씨, 생각보다 팬심을 계획적으로 채우려는 면이 있구나.
"아주 좋죠. 참고로 브리는 망고 스무디를 좋아해요."
그는 잔망스럽게 윙크하며 "난 아무것도 몰라요? 근처 카페에서 뭐라도 먹여봐요~" 하고 농담을 던졌다.
"이런저런 것들이 많으니까요. 익스퍼에 대한 자료라던가 익스파에 대한 자료라던가. 일단 저희 팀은 익스퍼 범죄자들 전담 팀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는 것은 사무실 안엔 원래는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들이 제법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만큼 사무실 내는 기본적으로 출입금지였다. 물론 민원을 받는 곳도 있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 사무실 안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며 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망고 스무디를 좋아한다는 그 말에 소라는 정말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카페 메뉴에 있었던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살며시 바닥을 바라봤다. 그 아래에선 지금도 카페가 운영되고 있었고, 모두는 모르겠으나 프로키온이 거기서 일하고 있었다. 오너로서.
"그 정보 참고할게요. 고마워요."
허나 그렇다고 무작정 데리고 가는 것도 조금 애매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소라는 괜히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 와중에 사건이라도 벌어져서 모두 출동하게 되면 역시 어쩔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터져나왔고 그녀는 괜히 투덜투덜 이야기했다.
"라타토스크인지 라타토스트인지. 그 기간에는 절대로 활동을 안했으면 좋겠네요. 하아."
/그리고 제 생각이지만 아마 그 시즌때... 비설의 그 분을 스토리에서 적절하게 출연시켜보는 것으로.. 네. 일단은!
아직 익스퍼에 대한 정보는 극비니 어쩔 수 없다. 그는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자신이 익스퍼라 해도 가족은 비익스퍼고,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는 대략 알지만 그 이후 따라오는 부작용에 대해선 모른다. 더 알게 두어서도 안 되고, 다른 사람이라면 더더욱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는 바닥의 시선을 따라보려다 그만둔다. 투시 능력이 없어 바닥을 봐도 카페 메뉴에 스무디가 있는지 확인도 못하니, 지금은 정보만 주는게 좋겠다. 그는 장난스럽게 "망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열대과일 대장인데 자기만 몰라." 하고 덧붙이더니 이내 작게 웃는다. 동생을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한 것 같으니, 베르너 집안은 매체에서 보이는 그대로 별 트러블 없이 단란한 가족임이 분명하다.
"고맙긴요. 저야말로 감사하죠."
말썽쟁이 하나를 집에만 두지 않아도 된다. 집에 있다면 하루종일 그를 귀찮게 할게 뻔하다. 그렇다고 나가면 또 제멋대로니, 차라리 서내 사람이라도 만나볼래? 하고 안전한 사람을 떡 붙여둬야 그의 마음이 좀 편안할 것 같다. 이러나 저러나 아직 브리는 16살이다. 그와 7살이나 차이가 나고, 나이차가 제법이라 걱정되는 동생이기도 했다. 그녀의 푸념에 그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활동한다면 소라 씨만 아니라 저도 화가 날 것 같아요."
휘말리게 둘 수는 없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봐서 라타토스크가 과연 자국인 외국인 가릴 조직이던가. 동생이 어디 털끝 하나라도 다치면 총기가 불법이래도 그 자리서 쏴죽일 마음이 단단하다. 그는 자리에서 툭툭 털고 일어난다. 쉴만큼 쉬었으니 슬슬 영어로 쓴 보고서를 다시 한글로 바꿔야겠다. 아직 모르는 한글 단어도 많은데! 곤란한지 비대칭으로 싹둑 잘린 머리를 한번 귀 앞으로 쓸어넘기고 기지개를 켠다.
'여고생 테러리스트 습격... 경찰 5人 순직' 같은 헤드라인을 상상해본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익스퍼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런 기사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그 이전에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무장한 경찰들이 고등학생 한 명에게 뼈도 못 추렸다니, 길거리 가판대에서 파는 B급 찌라시도 그런 기사는 안 싣겠다.
"그렇게 띄워 주니까 부끄러운걸? 그리고 자기가 막아 줬으니까 그 정도로 그친 거라구."
상대가 없었더라면 분명 제가 어떻게 손을 써보기도 전에 쓰러진 사람이 나왔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부상을 치료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었으니.
"뭐야 그건, 때리고 회복시킨 다음에 다시 때리는 거야? 자기, 엄청 무서운 생각을 하네!"
그럴 리가 없잖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고작 밥 먹기 싫다고 했다는 것만으로 그런 잔인한 처사를 내리면 이쪽에서 먼저 경찰 뱃지를 내려놔야 한다. 자연스럽게 웃어보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좋아! 그럼 여기 바지락 2인분이랑 만두하고 빈대떡 주세요. ...음?"
주문을 마칠 무렵 들려온 질문에 그녀는 잠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다가 곧 폭소를 터뜨렸다. 퍽 진지한 태도치고는 질문의 내용이 너무 귀여웠던 탓이었다.
"아하하하하!!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자기라고 불러서 그러는 거지? 이건 그냥 말버릇이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물론 자기, 아니지, 연우 씨가 불편하다면 그만둘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했다. 자기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사귀기로 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다니, 너무 귀여운 거 아냐, 자기?
그도 그렇고 자신도 그러하니 그 시기에는 아무 일도 없지 않을까. 그저 그녀는 그렇게 바랄 뿐이었다. 절대 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왕이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끝나고 해결되는 것이 좋은 법이니까. 경찰의 존재가 설사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피해를 안 입고, 치안이 절로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그것만큼 좋을 일이 또 있을까? 자신은 이 일을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될 일이기도 했고.
아무튼 슬 가보겠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의 말에 소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신은 좀 더 여기서 쉴 생각이었다. 복잡한 서류를 지금 당장 보는 것은 그녀로서도 피하고 싶었기에.
"아니요. 저는 조금 더 쉴게요. 이 참에 조금 쉬지. 언제 쉬겠어요? 오늘도 예성이와 나란히 야근을 할 것 같거든요."
요 근래 있었던 사건들에 더불어 지난번 사건까지. 이런저런 방향으로 조사를 해야 할 게 많았다. 예성은 자신이 할 테니 먼저 퇴근하라고 하겠지만 어떻게 그것을 그대로 두고볼 수 있을까? 자신도 이것저것 도와야한다고 생각하며 소라는 괜히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푹 쉬다가 천천히 하세요.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없으니까요. 일 힘내세요."
가려고 하는 그를 배웅하듯,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살며시 오른손을 들어 그를 향해 흔들었다.
때는 점점 쌀쌀해지는 어느 날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평화롭게 그지 없는 순간이었으나 그 평화는 한순간에 모두를 지휘하는 지휘자인 소라가 자신 전용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나서부터 깨져버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워크샵이라던가 그런 건 안했죠? 요즘은 사건도 없고 평화로우니 한번 단체로 가봐요!"
그 이후 장소가 정해지는 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해시 외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청해 온천랜드'가 워크샵 장소로 지정되었다. 자연계획도시 청해시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는 온천인만큼 물이 상당히 깨끗하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중 하나였다.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는 호텔은 물론이며, 래쉬가드를 착용해서 성별 구분없이 다양한 탕에 몸을 담글 수 있었으며 스파시설이 있을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온천물을 이용해 따뜻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수영장도 있을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야외탕으로 나가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이른바 명품 랜드마크였다.
경찰인만큼 오래 있을 순 없으나 2박 3일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고 하니 그 시간동안 이것저것 다양한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이번주 토요일부터 다음주 토요일까지 즐길 수 있는 온천랜드 이벤트에요! 그냥 가볍게 쉬는 느낌으로 온천을 즐겨봅시다! 여러분!! 물론 작중 시간은 2박 3일이니까 그것만 잘 지켜주세요! 일주일째 여기에 있었다. 이런 건 곤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