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버지 자체가 기록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게 가능한 일일까? 철저한 시스템에서 찾을 수 없을 정도면 대체 뭐가 뒷배로 있는 걸까? 정계의 거물? 아니면 자본가? 어느쪽이든 너무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렇지만 두렵지 않다. 늘 그렇듯이 해낼 것이다. 경찰은 민중을 지탱하는 지팡이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같은 일을 겪는다고 해도 해내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끝이 비극일지언정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못할까. 진한 파인애플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젤리는 달았고, 향은 깊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다. 그래도 이 조그마한 걸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으니, 내일은 출근할 때 큰 봉지로 하나 사야겠다. 그녀가 히어로를 좋아한다며 뭔가 발사하는 시늉을 하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웃음을 작게 흘리곤 손사래를 쳤다.
"에~이. 부끄러워 마요. 누가 히어로를 꿈꾸지 않았을까요? 저도 히어로가 꿈이었는 걸요. 물론 정말로 초능력을 가질 줄은 몰랐는데.."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곧 있으면 1년인데 아직도 익숙하지 않네요." 하고 짧게 덧붙인 그는 작은 봉지를 벌려 붉은 곰젤리를 검지와 엄지로 집어올렸다. 딸기맛이다. 그리고 달라붙어 딸려온 노란색 레몬맛. 두 젤리를 한번에 털어넣고 씹다가 의미심장하게 눈을 접어 웃는다. "그렇구나, 소라 씨는 여러번 볼 정도로 좋아하는구나?" 그는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뭐더라, 히어로가 연합해 지구를 위협하는 우주의 적을 맞서는 대서사 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던가. 그는 젤리를 삼키고 빙글빙글 웃었다.
"히어로 영화가 더 많이 개봉해야겠는 걸요. 소라 씨가 다 해결해준다니 믿음직하잖아."
농담을 던진 그는 여전히 은근한 미소로 "그런데 소라 씨, 그거 알아요?" 하고 운을 뗀다. 잠시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그가 초록색 곰젤리를 집어들고 한번 말랑말랑하게 눌렀다.
"이번에 배우들 내한 한대잖아요. 이거 비밀인데 포레스트 워커 역할을 맡은 배우가 청해 시로 올 거예요."
그는 포레스트 워커를 떠올린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고고학자인 아버지가 연구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유물에 몰래 손댔다 고대 자연의 신과 접촉하고 힘을 받아 우주적 존재에게서 세계를 지키는 막중한 사명을 안게 된다고 했던가? 그는 배를 잡고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브리가 초록색 수트를 입는다니! 그는 은근하게 윙크했다.
>>402 순하고 유들유들하게 생겼지만 내면은 강인한 소라...걸크 소라..😎 혹시 소라는 자신의 귀여운 외모..눈망울을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한 적이 있을까요?(??) 으악 필기의 신이라니 예성좌 존경스럽습니다..........(리스펙) 예성이의 필기는 그렇다면 정갈하고 예쁘기보다는 엄청 빽빽한 편이었겠네요😮😮😮
운을 떼는 그의 말에 소라는 귀를 기울였다. 굳이 저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절대 가벼운 이야기는 아닐터. 무슨 이야기인것일까?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는 도중 들려오는 내용에 소라가 몸을 움찔했다. 포레스트 워커 역할을 받은 배우가 여기로 와? 진짜? 순간적으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소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빠른 반사신경으로 소라는 핸드폰을 꺼내서 오늘 날짜를 확인하고 자신의 근무날짜를 확인했다. 이 날은 근무, 이 날은 근무, 이 날은 근무. 이 날은 휴일. 이 날은 근무. 그러고 보니 연차 몇개 남았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와중 그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싸인 받아줄까요? 싸인 받아줄까요? 싸인 받아줄까요?
"...뭘 원하죠?"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진지했다. 이렇게 진지한 목소리는 작전 지시때나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지금 그녀는 정말로 너무나 진지했다.
"연차를 원하나요? 아니면 다른 혜택을 원하나요? 제 권한을 넘어서는 뭔가를 할 순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선이라면 연차를 다이렉트로 통과시켜줄 수도 있어요."
싸인을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할테고, 그 시간을 위해서라면 연차를 써야 할테니 그 연차를 다이렉트로 통과시켜줄수도 있었다. 그건 불법도 아니고, 문제가 되는 사안도 아니었다. 경찰로서 불법을 저지를순 없지만 이런 것쯤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않은가. 자신의 권한으로.
"그 말에 거짓이 조금이라도 있으면...알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다가간 후에 그녀는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리고 정말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올려 초롱초롱한 눈빛 공격을 날리면서 두 손을 모으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말하는거죠?! 뻥 아니죠?! 거짓말 아니죠?! 아. 기왕이면 사진도 한 장 찍어줬으면 좋겠는데! 아. 싸인에데가 제 이름 같이 써주는 거 잊으면 안돼요! 알죠?! 꺄아~ 집에 케이스가 남는게 있었나? 손상되면 안되니까 잘 보관해야하는데. 포레스트 워커 피규어 옆에 장식하면 될까. 하지만 거긴 자리가 좁은 것 같고.. 어차피 집도 내 거니까 그냥 못을 박아서 액자에..."
그러다 순간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얼굴이 새빨개진채로 기침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 날씨에 가디건이라니, 다소 춥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굳이 말을 얹지는 않았다. 모름지기 말보다는 행동, 대신 뜨끈한 칼국수로 속을 뎁혀 주면 되리라. 만약 그걸로도 부족하다고 한다면... 내 코트라도 벗어주지 뭐!
"에이, 나야 뭐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사실 마지막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잘 기억도 안 나."
누군가는 아무리 그래도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구체적인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 것은 단편적인 장면들과 그 순간의 감정, 그리고 한발 늦게 찾아온 어마어마한 통증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를 거의 죽일 뻔했던 것은 범인이 아닌 다음날 찾아온 근육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자기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자기가 아니었다면 난 손도 못 썼을 거야."
그녀는 과장되게 어깨를 떨며 고개를 내저어 보였다. 그 말대로, 상대가 전격을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반격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나이팅게일 표 전기 통구이가 되었겠지.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자기. 자기는 자기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해 줬다구."
자꾸 그러면 일주일 내내 점심을 나랑 같이 먹는 벌을 내릴 거야! 장난스럽게 말하며 어느새 도착한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훈훈한 공기와 함께 코를 반기는 냄새에 저절로 침이 고였다. 한창 붐빌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제법 많았지만 다행히도 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그는 긍정의 대답을 듣자마자 담뱃갑을 열어 위로 치켜올리듯 툭툭 손목을 쳐올렸다. 유달리 위로 튀어나온 검은 궐련 한개비를 고개를 숙여 입에 대충 문 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고 주저없이 불을 붙였다. 헤이즐넛 향이 난다. 잠깐의 정적 이후로 그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연기를 뱉었다. 다리를 꼬며 푹신한 의자 등받이에 기댄 그는 숨을 들이마신다. 진한 연기를 한번 뱉고는 흐린 눈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궐련 끼워둔 팔 내려둔 채 허공만 줄곧 응시한다. 그리고 연초 3분의 1정도 타들어가자 느릿느릿 입을 뗀다.
"무슨 개소리냐 했을 거예요. 나는 신을 안 믿거든요. 종교는 누군가 기대기 위한 허상이에요."
그의 몸이 점점 파묻힌다. 등받이의 중반에 고개와 목이 이르고 나서야 그가 다시 연초를 입에 가져다댄다.
2.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 중 하나를 양보한다면?」 > "맛있는 거요. 내가 맛있다고 생각한 음식을 남도 먹고 맛있어 하면 기쁠 거야."
그는 기력 없이 연기를 훅 뱉는다. "그런데 맛없다고 하면 조금 상처받을 것 같아요. 입맛이 안 맞는다 해도 혹평은 듣기 싫거든." 하고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3. 「중요한 일을 위해 가는 길에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면?」 > "……."
그는 침묵했다. 한참의 침묵 이후 그가 실소한다.
"자랑스러운 조국의 안을 지키는 사명을 가진 내게 그런 걸 볼 여유는 없어요. 아름다운 풍경도 언제 테러 현장이 될 지 모르니,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죠. 그런 의미없는 질문 말아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예쁘다고 잠깐 생각이라도 했겠지만..모르겠다. 나 더이상 대답 안해요."
입을 벌려 혀를 내민 그가 연초를 거칠게 한번 비벼 껐다. 아주 무례하게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가보라는 듯 손 한번 까딱인다. 당신이 나갈 때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는 분명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였다.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내는 어둠 속에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달빛에 비치고 있는 사진에는 젊은 남녀가 다 합쳐 5명이 찍혀있었다. 그 중 한 명을 제외한 다른 4명에게는 얼굴에 붉은색 X표가 쳐져있었다. 그 중 남성의 몸에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있었다. 그 사진을 바라보는 사내의 날카로운 눈매에는 살기만이 가득 실려있었다. 이를 빠드득 가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사내는 사진에 담겨있는 이들을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약속을 깨고, 나를 배신하고 '킹'을 봉인해버린 더러운 놈들."
목소리에 비치는 것은 검은 살기였다. 허나 곧 상관없다는 듯, 사내의 입가엔 검은 미소가 스윽 깃들었다. 달빛에 비친 눈동자는 광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광기는 오로지 사진으로 향해있었다.
"다들 살아남겠다고 얼굴도 이름도 바꿔버린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칠순 없어. 이미 하나가 목숨을 잃었고 남은건 세 명. 그리고 또 하나가 발견되었으니 남은 둘도 시간문제겠지."
이어 사내는 씨익 웃고 있는 사진 속, 백의를 입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꺼낸 후에 지도앱을 켰고 어느 한 포인트를 바라봤다.
"배신자에게는, 나를 배신한 이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 아무리 숨어도, 숨기려고 해도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 마. 킹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게 될테지. 순리대로, 있어야 할 형태로. 그리고... 원래 존재해야 할 이유로."
"아. 저승에서 볼 수 있다면 말이야."
"이제 더 이상 연락하지 말자. 그게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야."
최근 성공적인 흥행을 위해 내한은 필수라는 말이 나돈다. 그렇지만 포레스트 워커는 서울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포레스트 워커를 맡은 브라이언 A. 베르너는 그에게 잠시 한국에 머물러 청해시에 사흘정도 머무르고 귀국하겠다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가 그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상의냐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가 "브리, 너 스케줄 있다며." 하고 말해도 이 형 말 지지리도 안 들어먹는 말썽꾸러기는 "누나의 특명이야. 술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감시하랬어!" 하고 되레 호통을 쳤다. 덕분에 그는 며칠간 금주를 해야하고, 애물단지 동생을 집에 이틀이나 둬야 한다며 푸념했지만 지금은 좋은 열쇠다. 눈앞의 여성이 보인 반응 때문이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고, 연차를 확인한다. 거기다 이제 먼저 뭘 원하냐 묻지 않은가.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저한테 특혜를 주려 하면 어떡해요! 이러다 저 잡혀간다구요."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연차 다이렉트는 구미가 당겼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기로 했다. 가족을 이용해 특혜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남들 바쁠 때 연차를 쓸 생각도 거의 없다. 그는 연인도 없고, 가족은 멀리 있으니 신년 휴가 이전 남들 다 내는 순간에 같이 낼게 뻔하다. 그는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듯 양 손을 절레절레 흔들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릎까지 꿇을 일인가? 하는 눈치로 당황스러운지 주변을 부산스럽게 쳐다보다 속사포로 쏟아지는 팬심에 입을 작게 벌리며 그대로 굳었다.
고등학교 시절 유달리 WWE를 좋아했던 친구가 있다. 학교의 아이돌 말리나다. 그녀는 아직 NXT에 있던 그의 누나 나탈리를 보며 분명 크게 될 거라고 일장연설을 하고 싸인까지 미리 받고 싶다 했다. 그 그립던 친구의 모습을 여기서 겹쳐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시 어색하게 웃던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을 귀엽게 보면 무례하다고 안 된댔는데, 하물며 상사인데도 이 모습이 귀여워 참지 못한 것이다.
"맙소사, 소라 씨!"
숨이 넘어갈듯 웃을뻔한 걸 겨우 참은 그는 초록색 곰젤리를 입에 집어넣고 잠시 고개를 돌려 비죽비죽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진정시켰다. 젤리가 입안에서 조금 녹자 혀를 움직여 볼 한구석으로 치우고 걱정 말라는듯 손을 두어번 까딱였다.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거짓말 아니에요."
그는 잠시 고민하다 운을 뗐다. "제 동생이거든요." 하고 멋쩍은듯 제 볼을 한번 쓸어보곤 아직도 여운이 안 가신듯 의미심장하니 다시 터지려는 웃음을 미소로 포장한다.
"제가 한국에 있으니 며칠 묵다 가겠다고 했어요. 시간대도 맞는 것 같으니까 근무처에 한번 데려와도 괜찮을까요? 사진이 찍고 싶다면 제가 열심히 부려먹어야죠."
어디까지나 합법적인 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행하는 것이기에 절대로 특혜는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강조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은가. 불법도 아닌데. 거기다가 다른 이들도 엄밀히 누릴 수도 있는 건데! 애초에 연차 통과시켜주는 것은 자신인데! 그렇게 항변하듯 이야기를 하는 그녀는 그만큼 이성을 잃은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배우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말에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몇걸음 물러섰다.
"마, 말도 안돼! 우리 서에 그 배우의 형이 있었다니! 거기다가 그 사람이 지금 제 눈앞에 있다니! 아. 아. 그, 그..반갑습니다? 만나서... 아니아니! 이게 아니라... 근무처는 안돼요. 일단 여기, 일반 사람들은 출입금지 구역이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녀는 그건 좀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특수수사대인만큼 일반인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것은 조금 곤란한 모양이었다.
"예성이가 허락을 안할 거예요. 그리고 저도 일단 지휘자로서... 거기까지는 힘들 것 같아요. 건물 앞이라면야 가능하겠지만요."
그 정도까지는 아마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나름대로 타협을 보려는 듯이 그에게 제안했다. 마침 바로 앞에 카페도 있겠다. 거기서 커피를 마시면서 사진을 찍으면 딱 좋지 않겠는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든 계산이 끝이 났다.
짧고 굵은 인생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죽으면 월급도 못 받는데 특진이 무슨 대수람? 하마터면 월급 대신 순직 보상금을 받을 뻔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실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못 막은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자기! 자기가 있어서 그나마 위력이 크게 줄었던 거라구."
상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며 말했다. 저렇게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실제로도 상대에게 전격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은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이전에 역량의 차이가 워낙 크기도 했고 말이지. 상대의 탓이 아니라는 뜻이 최대한 많이 전해졌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호, 그렇게 하면서까지 나랑 점심 먹기가 싫다는 거야, 지금? 이거 혼 좀 나야겠는걸!"
대사가 무서우면 뭐하나, 말투가 영락없이 어린애 겁주는 초등학생인데. 참고로 말하자면, 당연히 순도 백 퍼센트의 농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