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내 예상대로 학창시절엔 인기가 많았다고한다. 하긴 저 외모면 고등학생때나 이럴땐 거의 학교 최고 미녀로 칭송 받아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일테니. 나는 그렇게까지 인기는 없었다. 물론 빼빼로데이나 발렌타인데이때는 조금 받아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내 주변 애들도 받던데. 근데 또 이런 얘기를 대학생때 했더니 기만자라고 욕을 먹긴 했었다.
" 소라랑은 대학 동기거든요. 경찰대에서 처음 만나서 4년동안 같이 과대표였어요. 졸업하고 한동안 안부만 주고받다가 갑자기 스카웃 되었다니까요. 그땐 얼마나 놀랬는지. 서에서는 엄연히 상관이니까 친분 상관없이 대우하고 있어서 잘 몰랐을꺼에요. "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서에서는 최소라 경위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석에서는 스스럼없이 이름으로 부를수도 있는 사이지만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해야한다는게 내 생각이기 때문에. 소라도 불편해하는 것 같지는 않고 말이다. 물론 내색을 안하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 그러게요 얼굴 보다가 못먹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저도 오늘 처음 들어봐서~ "
놀리듯이 얘기한 나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마주보고 있으니까 왜이리 예쁘고 귀여운지. 이젠 이런 스킨쉽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는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 여기는 소라를 빼면 평등한 관계니까 선배 소리를 별로 안좋아하는걸지도 몰라요. 저도 처음에 들었을땐 당황했으니까요. "
그러니까 이름으로 불러주는걸 더 선호할꺼에요.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금방 음식이 나왔다. 카레 두개와 사이드로 주문한 케밥, 그리고 밑반찬 몇가지와 주문한 콜라까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이 정도 속도라면 테이블 순환도 엄청 잘되는 곳인가보다. 인도 특유의 향신료 향이 많이 나는 카레였지만 로컬라이징을 해놓아서인지 내 입맛에도 거부감은 딱히 없었다.
뭔가 부풀린 상상을 하고있는듯 하지만, 그녀가 인기 있었었던건 1학년때 정도고 어느정도 그녀에 대해 알려지고 나선 그렇게 인기가 있진 않았습니다. 그녀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체 어느 사람이 고백하고 울면서 끝내고 싶겠나요. 그녀는 단지 음 이제 좀 편하네! 하고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을뿐인걸 아무도 모를겁니다..
"4년이나 과대표를 하다니 대단하네요..."
물론 대장님과 동기라는것도 놀랍긴 했지만 그녀로서는 과대표를 4년내내 했다는게 더 놀라웠습니다. 그런걸 4년이나 하다니.. 자기 경험에 의한 비뚤어진 편견이지만 그녀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걱정된다는듯 하기 싫은건 안해도 된다며 당연한 사실을 전도했습니다(?)
"어, 어딘가엔 있을거에요."
분명 세간에는 그녀보다 더한 사람이 많긴할테니까. 그녀는 부끄러워 하며 눈치를 보다간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깜박이며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여기 사람들이 별나서라고 생각하지만요. 이러한 환경이라도 자신을 뭐라도 높게 쳐주면 우쭐해지는 사람은 널렸잖아요?"
대학만해도 같은 나이에 같은 학번인데도 좋게 대우해주면 금방 본성을 드러내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당연히 모두가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비율상으로 봐도 이곳이 특이한거겠죠. 그녀는 담담하게 말하며 나온 음식을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인도와 같이 향신료가 강한 음식들 몇개는 꽤나 호불호가 갈리지만 여기는 괜찮아보입니다.
사건의 마무리는 순조롭다. 퍼디난드는 대부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대부님은 본인의 집 벽에 붙여둔 종이에 뭔가 쓰고 계셨다. 막힘없이 어떤 단어를 적어내던 대부에게 보았던 기억을 모조리 읽어보라는듯 손을 내밀었다. 대부는 망설임 없이 잡고 기억을 읽는다. 대부는 대단한 사람이다. 그 끔찍했던 순간에도 미동하지 않고 쓰는 걸 이어간다. 팀원이 목을 조른다고 해도 무감정하다. 짧은 시간이 지나자 손을 떼고 "수고했다." 하고 퍼디난드를 보지도 않고 종이에 집중하며 말한다. 그 뒤는 침묵이다. 대부님은 일과 관련해서는 어떤 칭찬도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은 일이라 칭찬이나 비난이 없어야 한다는게 대부님의 지론이다. 조금의 감정이라도 개입하면 흐트러지는게 사건이라 첫 투입부터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어도 위로하지 않는다. 알고 있고, 늘 넘기던 일인데 오늘따라 왜이리 서운하고 속이 상하는지 모르겠다. 대부님은 "더 할말 있나?" 하고 물었고, 퍼디난드는 고개를 저으려다 잠시 고민하고는 "케이시 씨가 전해달란 말이 있었어요." 하고 말했다. 대부님은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무슨 말." 퍼디난드는 발을 직직 끌며 더듬더듬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편지를 읽고나서 하신 말씀인데, 음, 직접 보실래요?" 대부님은 벽에 붙은 종이를 떼내 둘둘 말며 손을 내밀었다. "손 줘봐라. 직접 봐야겠다."
또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퍼디난드는 이쯤 되면 기억을 읽을 시간이 충분함을 안다. 그런데도 대부님은 손을 놓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서있다. 말린 종이를 손에 쥐고, 다른 손은 퍼디난드를 꽉 붙들고 있다. 표정은 알기가 어렵다. 대부님은 퍼디난드가 "저 손 아파요." 하고 말하자 느릿느릿 손을 뗐다. "케이시가 그랬구나. 그래, 수고했다." 하고는 그에게 종이와 크기가 제법 있어보이는 상자를 건넸다.
"퍼디난드, 돌아가서 펼쳐봐라. 이제 나머지는 네 일이다." "이게 뭔데요?" "군말 말고 가 봐라. 생각할 게 좀 있으니."
퍼디난드는 군말없이 나간다. 대부님께서 나가라 하면 나가야만 한다. 퍼디난드가 나가기 전 본 광경은 마카를 내려놓고 베란다로 향하는 대부의 뒷모습이었다. 대부님은 매정하게도 잘가란 인사 하나 없이 그가 문을 닫고 나가든 말든 베란다로 휙 나가버렸다. 퍼디난드가 밖으로 나가 도어락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애쉬는 안경을 벗고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피스텔로 돌아와 손을 씻고 적당한 자리를 찾는다.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중앙에 종이테이프로 종이를 펼쳐 붙인다.
사람 크기만한 흰 종이에는 대부님께서 종이에 라타토스크, 나이트, S급, 위그드라실, 킹메이커라는 단어를 써둔게 보인다. 그는 이후 크기가 있어 보이는 상자를 열어 펼쳤다. 체스 판과 종이테이프로 단단히 고정된 말이다. 퍼디난드는 궁시렁대며 불량한 태도로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마카를 집어든다. 대부님은 사건을 정리하고 추론할 때마다 이렇게 사건과 관련된 기물을 모으고, 사람만한 종이에 적어서 연결점과 일말의 공통점이라도 찾아내려 한다. 이걸 준 이유는 알아서 추리하란 뜻이 분명했다. 나쁜 사람! 내가 암만 수제자니 뭐니 해도 자칭이지 타칭이 아니란 말이다. 퍼디난드는 이걸 어쩔까 싶어하다 제일 먼저 킹메이커를 본다. 저번에 대부님께서 킹메이커는 어떤 인물일 거라 했더라? 퍼디난드는 뭔가를 적으며 중얼거렸다. "킹메이커.."
─ 철두철미하며 앞으로 나서지 않고 조직원을 내세울 계획과 목적이 있는 범죄자. 사회속에 숨어있고 사람을 휘어잡을 결속력이 있음.
그렇다면 지금 킹은 안달이 났을 것이다. 계획중 하나가 보기좋게 흐트러졌을 테니 분노했을 거고, 점점 더 강하게 옥죌 확률이 컸다. 퍼디난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름 단어를 쳐다봤다. 다음엔 라타토스크다. 안타깝게도 위그드라실도, 라타토스크도 모르는 영화에서 한번 보고 만 단어라 그는 핸드폰을 들어 검색한다. 위그드라실은 북유럽신화의 세계수, 라타..Ratatoskr? 퍼디난드는 위키백과를 스크롤 하며 중얼거렸다."위그드라실에 기생하여 줄기를 갉아먹는 청설모. 중상모략을 떠들어 분란을 일으키는 얼간이.." 그는 두 사이의 연결점을 알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컨셉에 심취한 녀석이 그새끼 말고 또 있는 거야? 뭐 이딴게 다 있어." 하면서도 쓸 것은 다 적어냈다.
─ 조직 자체가 단체의 설립을 미리 알고 있었거나, 위그드라실의 팀 자체를 궤멸시키겠다는 목표를 정식으로 잡았다는 뜻? ─ 비밀로 부쳐진 위그드라실을 알고 있음. 나이트의 공격에서 큐브웨폰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나 팀원의 정보를 알 가능성 높음. 정보전에서는 우리가 밀림. 최소 정계 인사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음. ─ 양치기와 연관이 깊지 않음.
이건 대부님도 알고 안심할 것 같다. 그녀석은 지금 뉴욕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이 라타토스크에 집중해도 될 것이다. 퍼디난드는 이번엔 나이트라 써진 단어를 향해 걸어갔다. 세걸음 정도 걷고 나니 나이트의 바로 옆에 S급이란 단어도 있었다. 퍼디난드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다 체스판을 내려다 보곤 망설임 없이 적어내리며 중얼거렸다."체스 말을 떠올린다면 킹, 퀸, 비숍, 룩, 나이트, 그리고 폰..폰은 아마 접선하는 사회적 약자를 뜻할 것이고, 킹은 우리가 노리는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높지만 퀸이……."
─ S급, '폰' 언급으로 보아 직위는 체스 말에서 따왔을 가능성이 높음. 나이트는 학생. 아버지가 킹? ─ 아버지=킹(킹메이커)의 가능성. 학생에게 살인을 시킬 정도의 또라이는 확실함. ─ 퀸, 실제 체스에서 룩과 비숍의 능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말. 변화무쌍하고, 가장 강력함. 아마 킹을 가장 근접하게 보좌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퀸은 킹의 트리거일 확률이 높음.
트리거.
─ 퀸은 현재 나서지 않음. ─ 어설프게 폰을 쓰러트리기 위해 내보낼 전력이 아님. 최소 S일 확률이 높음. 애당초 폰을 제외한 전체가 S일 확률도 있음. ─ C씨의 S급 익스파 파장 반응. 무엇 때문에? ─ 팀원의 성장 여지가 있음. 조건이 무엇인가? ─ 라타토스크는 성장의 때를 기다린다? 아니면 예상치 못한 변수?
퍼디난드는 엄지 손톱을 물어뜯는다. 이건 정보가 없다. 애당초 정보에서 밀리는 싸움이다. 확실한 건 뭘까. 모두 다 쓰러트리면 도망치는 일 없이 킹이 나선다는 점? 퍼디난드는 한참 머리를 싸매다 체스판 위의 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보전에서 밀리는 위그드라실, 팀원의 정보나 여타 위그드라실 체계를 알고있을 가능성이 높은 라타토스크, 그렇다면 폰은..
"빙고."
퍼디난드는 엄지를 입에서 떼더니 마카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체스판을 향해 손을 뻗더니, 고정된 체스말을 모조리 치웠다.
" 과대표가 바쁜건 1, 2학년뿐이지 그 이후부턴 그렇게까지 바쁘지는 않아요. 그리고 인맥 늘리기에도 좋으니까요. "
그리고 성격상 어느날 정신 차려보니 과대표가 되어있었다는 그런 얘기. 하늘색 머리와 붉은색 눈이라서 상당히 눈에 띄는 외모인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듯한 그녀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싫어하는 일은 나도 당연히 하지 않는다. 정말 싫어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 글쎄요. 우쭐해하는 사람들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이 별난게 아닐까요? "
나도 후배에게 선배님 소리를 처음 들을때는 뭔가 기분이 좋았지만 나중엔 그 호칭이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좀 친한 아이들한테는 차라리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런 호칭이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선배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었겠구나 싶다. 그래도 그런 소리를 듣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입장에선 왠지 꼰대처럼 느껴진다.
" 두번째 먹는 곳이지만 맛있단 말이죠. "
한입 크기로 썰려있는 새우를 카레와 함께 퍼서 한입 먹자 과하지도 않은 딱 맛있는 느낌이 싹 몰려온다. 카레가 먹고 싶을때 종종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식기 얘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 식기요? 갑자기 왠 식기? 부모님이랑 같이 사시니까 식기는 딱히 필요 없는거 아닌가요? "
화연이 수줍게 웃으며 한 여성에게 영화 티켓을 건넨다. 그에게 티켓을 받은 여성 또한 웃으며 수락한다.
"그래, 팝콘은 내가 살게."
서울 시내 고가의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연쇄 방화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졌고 놈의 은신처까지 특정한 상황. 이제 남은 것은 놈을 체포하여 감옥으로 보내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날 화연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팀원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화연은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읊조린다. "또 악몽을 꿨군.."
>>944 테이: 엥? 어, 어어? 아, 아, 아닌데?!(비스킷 오늘도 잔뜩 사왔음) 테이: 이건, 그러니까..그게..그.. 테이: 난 통통한 걸 좋아해 셀린!!(급기야 취향고백) 살집있는 개나 고양이나 새나 다 귀엽잖아!! 동물은 좀 확대시켜도 돼!!!!!! 애쉬: (그래서 날 보고 옛날과 다르다며 실망한 건가)(스플뎀) ..잠깐. 난 동물이 아닌데.
테이는 동물 친구들이 털찌거나 통통하다면 참을 수 없이 돌고래 비명을 지르며 으아악 귀여워!!!!! 할 사람이야~ 특히 햄스터가 통통하면 어떻게 저렇게 동그랗지..건강에 안 좋다 해도 너무 귀여운데..아..귀여운데 어쩌지..아...하지만 애 건강에..아.. 하면서 한시간 내내 자는 모습만 봐도 행복해함..
사람은 통통하든 마르든 다 좋아한다..인간좋아 퍼댕이..🤔 애쉬는 그당시 강아지상이었으니 살집 좀 있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거지..
테이: 푹신했는데~ 다른 대부도 좋아했잖아요. 애쉬: 내가 그것 때문에 맥주를 끊었지. (깊은 한숨) 테이: 엥? 그게 끊어진대요? (살 안찌는 체질) 애쉬: (진짜 재수없다는 시선)
" 아무래도 인맥이 넓으면 도움이 될때도 많고 ... 사회에서도 발이 넓은게 귀찮을때도 있지만 이익이 될때도 있으니까요. "
이런걸 인싸라고 부르나 싶지만 실제로 대학 시절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이것저것 도움을 준적도 받은적도 많았다. 과제를 해결할때라던가 무언가 급하게 필요할때라던가. 연우씨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요, 라고 대답하고선 이번엔 난을 하나 찢어서 카레에 찍어먹어본다.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색다른 매력이 있네.
" 그럴땐 저를 보고 힐링하면 되지 않을까요? "
장난 반 진심 반. 나름대로 바르게 살아오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까 연우씨에게도 걸러지지 않은게 아닐까. 사실 우리 팀들 전원이 다 괜찮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어지는 연우씨의 이야기에 한번 어깨를 으쓱하고선 케밥을 약간 잘라서 입에 넣었다. 그런건 그냥 개인적인 사항이니까 그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거다.
" 아 ... 벌써 그때를 대비하고 계시는거군요? "
어쩌면 생각보다 빠르게 어머님을 뵐거라는 사실에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보여줄 부모님도 없는데... 고아라고 싫어하시는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물론 연우씨 부모님이라면 그런 편견 같은건 가지고 계시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게 자기 자식의 일이 된다면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게 부모님의 마음이니까.
" 저는 ... 만약에 보여드린다면 제가 자란 보육원에 데려가는 것밖에는 없겠는걸요. "
거기가 내 집이고, 내 동생들이 있는 곳이고, 내가 부모님처럼 여기는 원장님이 계시는 곳이니까. 그런데 연우씨 먹는 속도 진짜 느리구나. 카페에선 마시는 것들이라 잘 몰랐는데 이렇게 식사 자리를 대면하고 앉아있으니 그 느림이 확실했다. 하지만 굳이 재촉하지는 않고서 나도 천천히 식사를 즐기면서 조금씩 다 먹어가고 있다. 그래도 먹는 속도가 내가 훨씬 빠르지만. 그렇게 내 몫의 카레를 다 비우고서 콜라로 입가심을 하며 식사를 마친다.
" 천천히 먹는다고 먹었는데 그래도 너무 빨리 먹은 것 같네요. 나는 기다려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
"네에, 비록 찰나 전에도 함께 있었지마는 다시금 처음 뵙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일대일로는 처음이 맞으니까요, 우리."
나... 방금 질문 무시 당한 건가? 손님 오셨다, 이 말로 미루면 먼저 여기 있었단 사실부터 이제야 아신 눈치기는 하지만... 조금만 부주의했으면 두 동공에 지진이라도 터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신은 신사 일을 거들며 별의별 사람 다 다스려온 짬바를 발휘하여 나름대로 유연한 자세로 대처했다. 어딘가 대화의 아귀가 틀어졌다면 거슬리지 않게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 대화 상대로서의 하나의 예의. 금방 꺼낸 말이 짓궂으면서도 재치 있는 농으로 잘 먹혔기를 바라며 신은 간단한 동작으로 모래벌판에서 일어섰다. 바닷물을 맛보며 수없이 파도가 무릎을 밀쳤을 것임에도 구김 없는 바지는 짠물도 모래 한 톨도 묻지 않고 깨끗했다. 완연히도, 타고난 능력의 신이한 수혜다.
"물론 좌석에는 명패 있고, 다른 분이 앞서 안내했을 수도 있음을 알지만 제가 따로 통성명을 드리지는 못했었지요? 그러니 굳이 소개하지만 일본 경시청에서 전직해온 순사부장 이즈미 신이라고 해요. 지금은 잠시 바람이라도 쐬러 바다에 나왔네요... 그러니까- 달리아 씨. 당신도 분위기 전환을 위해?"
꿈꾸는 듯한 인상과는 달리 야무지게도 이끄는 화법. 없는 일로 될 뻔했던 질문을 재차 수면 위로 건지는 태도에는 사근사근한 말투와 대비되는 묘한 집요함이 엿보이기도 했다. 물기 묻지 않은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신은 물렁한 미소를 낯에 걸었다.
기실 일대일로는 처음이 맞다고 해도 달리아 영 그것에는 신경쓰지 않을 터다. 달리아 그저 부유하듯, 몽상하듯 멍하니 해변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어쩐지 위태하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창백한 낯짝 위로 수살귀의 손이 겹쳐보인다. 금방이라도 피로 물들 것 같은 검은 코트, 그리고 너.
"일본에서 오셨군요. 저는 재미교포 3세랍니다."
상대의 말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짤막한 대답이었다. 그것과 더불어 시선조차 주지 않는 그 냉정과 삭막을 곁들인 태도는 정말이지 호감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들었나. 달리아 나붓이 손 내밀어 당신에게 내민다. 검은 면장갑 끼어있던 손은 하얀 살결만을 드러낸 채 허공에 멈춰선다.
"잘 부탁드려요. 아니, 부탁드렸어야 할 게 맞나요?"
달리아, 흑백으로 이루어진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비로소 두 눈이 이쪽을 향한다. 웃는다. 나비가 날아가듯 이채가 서린 웃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