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집에서 볼수도 있는거니까요. 저도 이건 정말 영화관에서 봐야해! 라는 생각이 드는 것만 보러 가는 편이에요. "
요즘엔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게 기술이 발전해서 개봉하고서 조금만 기다리면 VOD로 구매하여 간편하게 볼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서라운드 스피커와 큰 화면을 집에서 구현할 수는 없으니 영화관은 그 고유의 맛이 있는 법이다. 친구들이 가자고 할때도 가고. 하지만 청해시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이렇게 영화관에 누군가와 함께 오는 것은 오랜만이다.
" 자는 모습 구경이라니 ... 조금 부끄러운데요? "
침을 흘린다거나 하는건 아니겠지. 내 자는 모습을 누군가가 바라본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시리 창피해진다. 근데 정말 그러다가 침이라도 흘리면 어쩌지 ... 오늘부터 입을 꾹 다물고 자기 위해서 턱근육을 단련하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영화가 시작되는 것을 기다린다. 그리고 내 속삭임에 놀란듯한 그녀가 되묻자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 거짓말 아니니까요. "
그렇게 방글대는 웃음을 지은채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영화가 시작되려는쯔음 덮쳐오는 졸음을 나는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졸음이라는 것이 결국 내 몸의 통제권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 고개는 흔들흔들거리다가 이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이의 어깨에 톡, 하고 기대게 되었다.
음,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담고 싶지 않았지만 사정이 생겨 대자代子를 통해 편지를 남겨. 부디 놀라지 않았으면 해.
좋아. 일단 나는 긴 휴가를 냈어. 은퇴하지는 않았지만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야. 위그드라실에 질렸다느니, 일하기 힘들다느니 그런 건 아니야.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경찰 일 자체를 병행하기 힘들더라고. 더 자세한 건 나중에, 언젠가는 얘기해줄게.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야. 내가 이 부끄러운 직업을 털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 뿐이지.
그동안 고마웠단 얘기를 전하고 싶어. 자기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긍정적인 자기 덕분에 나도 좋은 영향을 받아 자유로워졌어. 그리고 많이 미안해. 실망시켜서도 미안하고, 여러모로 많은 점에서 자기에게 상처준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자기의 좋은 친구임은 변하지 않아.
늘 건강하고 행복한 일만 있기를.
변명이라기엔 뭣하지만 나를 대신해 일할 대자를 그곳으로 보내. 나와 같은 능력의 익스퍼기도 하니 부디 그 아이가 유용하길 바라.
추신. 그 아이는 제법....독특해. 부디 이상한 말을 하거나..촐랑대도 저런 또라이가 있나보다 하고 넘기거나..한대 때려줬으면 해.
남들이 못하는걸 가볍게 하기에 인싸란걸까. 그녀는 당신에게 기만자~ 기만자~ 하고 작게 놀리고는 미소지었습니다. 물론 그런건 큰 상관이 없었고 그녀는 그저 당신의 손을 꼭 잡으며 커다란 화면을 즐겼습니다. 잘 몰라도 아무튼 분위기란건 있으니까요.
"딱히 부끄러울건 없는데."
나중에 유진씨도 저 자는거 구경해요 그럼. 그녀는 무슨 교환조건마냥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자는 모습을 보이는게 그렇게 부끄러운건가 싶었으니까요. 무방비하니 습격의 위험은 있겠지만.. 아무튼 거짓말이 아니란게 또 무슨 소리냐고 묻고싶었지만.. 아마 힘들거 같아요.
"정말..."
톡. 하는 느낌에 옆을 보니 당신이 기대어오고 있었습니다. 자세를 좀 더 편하게 바꾸고 영화가 진행되든 말든 그녀는 당신만을 바라보며 잡고있지 않은 반대편 손을 뻗었죠. 사락, 잠이 깨지않게 조심조심 머리카락을 넘겨보며 그녀는 입을 달싹였습니다. 딱히 별걸 하고있는것도 아닌데.
진짜 기만자 아닌데. 가볍게 놀리는듯한 말투에 입술을 살짝 내밀고서 삐진척을 해보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다. 잡고 있는 손이 너무 좋아서 손가락으로 장난을 치려다가 이어진 그녀의 말에 나는 또 한번 잠깐 말을 잃었다.
" ... 네 그럴께요. "
유진아 이거 맞아? 맞냐? 진짜 맞는거야? 하는 물음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르르 올라왔지만 지금의 나는 그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없다. 일단 알겠다곤 말은 했지만 ... 나중에 그게 정말 이루어질지는 제쳐둔다. 그렇게 잠에 빠져버린 나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연우씨의 어깨에 기대서 사람들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깰 생각없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때까지 쭉 잠들어있었다.
" ... 저 잤나요? 정말 잤어요? "
그리고 사람들이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기색이 느껴지자 마법과도 같이 눈이 떠진다. 피곤할때의 쪽잠이 그렇게 상쾌하다던데 영화관에서 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상쾌한 잠을 잔 것 같다. 하지만 ... 연우씨 어깨에 기대서 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또 금방이었다.
" ... 저때문에 죄송하네요. 불편하셨을텐데 ... "
그래도 잡은 손은 그대로라 거의 다 남아버린 음료수와 나초를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 한 것도 없고 고작 자고 일어난 것뿐인데 허기가 지는 것이 딱 저녁시간인 것 같다.
" 영화는 다음에 집에서 봐야겠네요 ... 그럼 이제 저녁 먹으러 갈까요? "
음료수는 들고 나가면서 마실 수도 있지만 차가운 날씨에 얼음이 들어가있는 음료를 마시는건 극구사절이다. 거의 마지막으로 상영관을 빠져나온 나는 출구를 향해 가며 말했다.
비명소리 라던가, 날아다니는 팝콘(?)이라던가, 뭔가 상당히 소란스러웠던 느낌이었지만 당신은 눈을 뜰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피곤했단걸까요, 쉬어도 괜찮은걸 왜 오늘 만나자고 한건지. 그러나 지금만큼은 미안함도 잠시, 그저 영화는 신경쓰지 않고 당신만 보고있는 그녀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플레이 타임동안 정말 스크린조차 보지않고 그저 당신만을 관람하다 끝난 시간. 영화관만 아니었다면 분명 사진을 찍었을겁니다. 그러나 그 시간도 끝나고 엔딩크레딧과 함께 사람들이 일어나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녀가 깨울 필요도 없이 당신은 눈을 떴습니다. 그 사이에도 당신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겠지만, 그녀는 딱히 불편하지 않았다며 당신을 따라 일어났습니다.
"피곤하면 무리하지 않아도 됐는데.. 일단 식사하러 가요."
조금은 피곤이 풀리긴 했으려나. 저녁을 먹으러 갈까요? 하고 묻는 당신에게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메뉴는 뭐로할까 생각하며 상영관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생각한 메뉴대신 얼떨결에 출구 근처에서 천천히 느려지던 발걸음이 멈춘 그녀의 입은 전혀 다른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1. 에스더의 시 에스더의 시는 극중극으로, 설정상 애쉬가 '리리'라는 필명으로 집필한 판타지 범죄 소설 시리즈다.
우연히 초능력을 가지게 된 '에스더'가 살인을 실행하기 위한 계확과, 에스더의 뒤틀린 시선을 낱낱이 고하는 등 충격적인 전개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이며, 한국어 정발본도 있다는 설정.
해당 극중극은 애쉬 독백에서 서술트릭으로 사용 됐다.(위키 애쉬/익스레이버 항목에 기재 되었던 ASH, 감기, 장례식 독백의 문단.)
2. "리리야. 당신은 정말 잔인한 사람이야."
퍼디난드는 퇴근 후 애쉬에게 케이시의 말을 전하곤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간다. 샤워와 환복을 마친 뒤 소파에 앉아 맥주 캔을 땄다. 시덥잖은 건배사 이후 안주도 없이 맥주를 목구멍 너머로 때려붓는다. 그렇지만 그의 대부는 잔인한 사람이 맞지 않은가. 청량한 탄성 뒤로 소파에 냉큼 늘어진 다리를 꼬며 tv에 비친 자신을 본다.
"편지에 미안하다고만 써두고 용서해달란 말은 죽어도 안 적었잖아. 어쩜 그렇게 사람이 뻔뻔하담."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면서도 사과 하나 안 하는게 뉴욕 경찰국의 마녀가 맞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