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은 기쁘다는 말을 하는 대신, 조금 더 붉어진 얼굴로 입을 꼭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무슨 말을 해도 자승자박이 될 것 같기에. 그렇지만 차마 맞추지 못하는 시선에도 쉽게 붉어지는 뺨을 보니 그 더 많이 응원해주겠다는 말은 십대 소년에게 좀더 말랑한 의미로 가서 닿은 모양이다. 애초에 랑이 그런 의미를 실었거나. 그러다 랑이 고민섞인 말을 중얼거리자, 현민은 피하던 시선을 랑에게로 다시 옮겼다.)
쓸 만큼 쓰고, 남으면 나중에 또 쓰면 되잖아.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번 데이트가 끝이 아니니까. 데이트 한 번에 다 쓰지 못할 돈이면 다음 데이트에도 쓰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다 랑이 톡 하고 책상에서 내려오자, 현민은 랑의 움직임을 시선으로 쫓는다. 랑이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한 호기심 반, 혹시 몰라 기울이는 주의 반이었다. 그렇지만, 빼빼로를 꺼내들고 쫄래쫄래 다가오는 랑의 모습에 그만 다시 빨개지는 현민. 사춘기 남자애의 뇌란 단순해서,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나누어먹는다는 행동을 곧잘 그런 감정에 결부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현민을 더더욱 할말없게 만드는 건...)
(붉은 꽃이 더 피었다.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 랑은 대화를 할 때 소리와 관계없이 입 모양을 읽어버릇해서, 눈을 맞추고 싶었다. 부끄러운 당신은 눈을 맞추지는 못하니까, 랑은 자신이 부끄러운 말을 많이 하나 생각했다. 아니면 부끄러운 행동이라거나.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과 행동으로 옮긴 랑에게는 의미없는 고민이다. 그래서 랑은 부끄러움을 타는 당신에게 물어보았다.) 나 부끄러운 짓 많이 해? (아까는 별 말 하지도 않았는데- 더 많이 응원하겠다는 말이 어디가 부끄러울까-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랑이 여자애라서 라는 추측.)
으응, 아니이. 피어싱 그 돈으로 사도 되니까. (당신이 피어싱을 골라주는 것만으로도 랑에게는 이미 크게 뜻깊은 것이었다. 피어싱이라는 것 자체가 랑에게는 큰 의미이니.)
(랑은 당신이 부끄러운 것도 있겠다만, 당황한 이유는 아무래도 매점에서 들었던 이유 때문인가 생각했다. 이온음료밖에 사주지 못했던 이유. 그래서 랑은 자신이 입에 물고있는 빼빼로를 다 먹을 때까지 현민이 받아주지 않으면, 이 빼빼로도 랑이 먹어야겠다 생각했다. 오독오독 빼빼로의 길이는 줄어들어가고, 포기해야하나 싶었는데 당신이 받아주었다. 랑은 헤실헤실 웃어보였고, 당신의 뒷자리에 앉아 당신을 바라본다. 빼빼로를 나눠먹으려면 책상에 앉는 것보다 의자에 앉는게 나을 것 같았다.) 응? (새 빼빼로 하나를 오독오독 꺼내먹던 랑은 사실은- 하는 당신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였다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진짜? 왜? (당신의 손에 들린 빼빼로를 보니 그 이유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역시 운동해도 빼빼로데이니까 빼빼로는 먹고 싶었구나! (그런 이유겠지- 생각한 랑은 빼빼로를 하나 더 건넨다.) 많이 먹어-
(알궂다. 태어난 이래로, 이렇게까지 열세에 몰려보기엔 처음이었다. 모든 행동이 다 눈에 띄고, 몽실몽실하게 흐르는 구름 같은 그 모든 감각이 낯설어서, 이런 것을 함부로 손대어도 좋을까? 하는 수줍음이 얼굴을 붉히게 만들고 시선을 피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구름을 잡아보고 싶어서 헛손질과 바보짓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얼굴이 빨개지게 만든다. 그러나 소년은 말주변이 워낙에 서툴러서, 랑의 행동에서부터 자신의 얼굴이 빨개지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할 만한 말재주가 없었다. 현민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발갛게 된 얼굴을 무릅쓰고 랑과 마주보는 것이다.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싫은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목이 탔는지 현민은 가방을 뒤적여 생수통 하나를 꺼내고는 까드득, 하고 비틀어열어 물을 몇 모금-병에 입을 대지 않은 채로-마시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_
같이 쓰는 거면 그 돈을 쓰면 되지만, 너한테 선물할 거면 내 돈으로 내고 싶어서.
(이상한 고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에게 남을 선물이라면 그 편이 조금 더 의미에 남을 것 같다고 현민은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피어싱이라고 해봐야, 주얼리가 셋팅되거나 유명한 메이커에서 만들거나 한 게 아니면 가격이 그렇게 심하게 세거나 하지도 않으니까. 현민은 랑이 내어주는 빼빼로를 받아들고 오독오독 먹었다. 그러나, 자신이 조심스레... 마치 어떤 고백이라도 하듯 꺼낸 빼빼로를 너무도 단순한 이유로 납득해버리는, 랑의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퍼펙트 플레이에, 탄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멀리 가야 될 수도 있겠다고. 현민은 오만상을 구기며 빼빼로를 받아들고는 툴툴댔다.)
이걸 이렇게 받는다고?
(언젠가 한번 들어본 적 있었던 말. 이번 빼빼로는 오독오독 먹는 게 아니라 와작와작 먹어버린다.)
으응- 그럼 나를 말하는 감자라고 생각해! (묘안을 내놓았다 생각하는지 뿌듯한 표정이다. 감자가 옆에서 부끄러운 짓을 해봤자 감자일텐데, 부끄러울 수가 있을까. 당신이 부끄럼쟁이인 것을 안다. 부끄럼타라고 일부러 짓궂은 말을 하기도 했다. 당신을 전화번호부에 저장한 이름부터가 채부끄럼쟁이이다. 랑은 당신이랑 친해지면, 그럼 편한 사이가 되어서 부끄럼을 덜 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뛰어와줄 때 당신을 향해 뛰어가지는 않지만 계속 와주기를 바라서 그런 말을 했다.) 알아- 너 나 좋아하잖아. 나랑 같이 있는 것도 좋고, 손 잡는 것도 좋다며.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하나 당신에게로 잼잼 쥐어본인다. 둥그런 눈매가 접혀서 상냥한 눈웃음을 지었다.)
응- 그럼 잘 어울리는 걸로 골라줘. (부득 우기고 고집을 부려서 그 돈으로 사자고 할 생각은 없다. 피어싱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당신에게, 랑에게 피어싱은 무슨 의미를 갖고 그래서 골라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설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랑은 당신의 예고된 선물을 조금 기대하기로 했다.)
먹고 싶어서 가져온 거 아냐? (와작와작 빼빼로를 먹는 당신을 보면서 랑은 오독오독 빼빼로를 먹었다. 들어본 말이다. 당신의 데이트 신청에 도서관 데이트 하기로 했었다며 답했을 때.) 그럼 나 주려고 가져왔어? (그런 감정은 전혀 배제한다. 친구끼리 의리로 챙겨주는 빼빼로라고 생각하는 랑은, 또 빼빼로를 집어 입에 넣으려다 멈칫했다. 랑은 친구끼리 챙기려고 해도 친구를 만들지 않아 이런 기념일을 챙길 일이 없었다. 이번에서야 당신과 하나 나눠먹으며 기분은 내보자- 하고 하나 사서 오독오독 먹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당신이 랑을 위해 빼빼로를 가져왔다는 추측을 하니, 랑은 당신에게 줄 빼빼로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들었던 빼빼로라도 입에 가져가지 않고 멈춘 것이다. 빼빼로를 들다 만 자세로 어정쩡하게 멈춰서 당신의 답을 재촉하듯이 바라본다.)
(감자라고 생각하라는 가벼운 말과, 너 나 좋아하잖아, 하는 당당한 말에 대한 결연한 대답이었다. 인생에서 처음 접해보는 떨림인데 감자 같은 단순한 사물로 치부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감자로 치부한다면, 현민의 인생에 남은 가장 귀엽고 특별한 감자가 될 것이다. 꼭꼭 쥐어보이는 랑의 손짓을, 현민은 가만히 손을 내밀어서 잡는다. 그리곤, 마주쥔 손 위로 랑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앞으로도 좀 많이 우물쭈물대고 빨개질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기다려줘.
(언젠가는 피어싱의 의미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전해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랑이 의도치 않게 전해지게 될 수도 있고, 어쩌면 그가 스스로 깨닫게 될 수도 있겠지. 지금 그 의미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은 순전히 랑의 권리다. 랑과 현민은 납득할 수 없는 감정으로 맺어진 낯선 관계니까, 하루아침에 그게 그렇게 쉽고 편하게 통할 리가 있겠는가. 감정은 극적일수록 소중한 법이다.)
정확히는, 너랑 같이 먹고 싶어서 가져온 거야.
(랑의 질문에 그는 뭐라 둘러대지 않고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애초에 그는 그렇게 뭔가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기에는 너무 순박하고 단순한 녀석이었다. 뺨은 조금 더 빨개진다. 한 봉지 안에 든 간식거리를 반씩 나누어먹는다는 단순한 행동에, 현민은 랑이 부여하지 않은 어떤 의미를 부여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걸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그는 말주변도 좋지 않았고... 거기다가 태연하게 방실방실 웃고 있는 랑의 모습에 심통도 났다. 나는 너 때문에 어젯밤에 네 꿈까지 꿨는데. 하고. 그러나 현민은 그것도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일단 그게 대단히 불합리하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심통이라는 사실을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하겠는가?)
...지금 이렇게 나눠먹고 있는 것처럼. 뭐, 다 먹고 더 먹으면 되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도 먹을 수 있고.
고구마는 어떻냐고 물어보면 안 되겠지? (랑이 꺼낸, 입에 담았던 좋아함은 가벼운 것이었다. 당신이 랑과 같이 있는 게 좋다고 하는 것도, 손 잡는 게 좋다고 한 것도 가벼운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과는 애플파이로 먹는게 좋다거나, 잼으로 먹는게 좋다거나 하는 그런 좋아함과 별 다를 게 없는. 누군가 랑을 좋아한다고 하는게 믿을 수 없는 일이라서 랑은 그랬다. 함부로 그 좋아함의 무게를 멋대로 덜어내고 마음을 재단했다. 당신에게 손이 잡힌 랑은 살갑게 웃는다.) 응. 나 기다리는 거 잘해. (당신이 잡은 손을 당신이 놓을 때까지 놓지 않는다.) 오래 기다리게 해도 돼- 너 빨간 거 좋아. (연신 짓궂은 소리다. 그래도 랑은 처음으로 좋다는 표현을 했다. 그래서 랑도 조금이나마 빨갛다. 조금씩이나마 가끔씩이나마 진심을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은 분명 좋은 징조가 아닐까.)
그럼 나랑 똑같네- (랑은 멈췄던 빼빼로를 다시 입으로 가져간다. 오독이는 소리가 난다. 랑은 당신의 속은 모르고서 생글생글 웃고 있다.) 자. (또 빼빼로 하나를 당신의 입가로 가져가나 싶더니.) 아. (손을 거둔다.)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당신이 가져온 빼빼로조차도 먹고 싶어서 가져온게 아니고, 랑과 같이 먹기 위해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니 랑은 건네는 손길을 멈췄다. 살찌면 곤란하다고 했고, 빼빼로는 살찌기 좋은 간식이다. 빼빼로를 먹는 걸로 기분은 냈고, 당신까지 억지로 먹을 이유는 없다. 당신에게 주려던 빼빼로를 입에 문다. 오독오독 소리가 끊기지 않는다.) 나 지금 다 먹을 수 있는데~. (빼빼로가 양이 많은 과자도 아닐 뿐더러, 당신은 모르겠지만 랑은 대식가다. 딱히 가리는 것도 없을 뿐더러 한 번 먹을 때 먹는 양도 많다. 두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한 끼니를 먹을 때 많이 먹어버릇하더니 생긴 식습관이다.)
탈인간ㅋㅋㅋ 안보여줘도 현민이만 볼거야 걷는 것도 조심스러운 랑이한테는 빨리 달리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하니까 장애물달리기는.......랑이가 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한테 가라고 거절할거 같아 ㅇ.ㅇ 현민이 속도에 맞춰 뛸 수 있을리가 없고 그럼 당연히 꼴지로 질게뻔하니까
(현민은 미간을 구기며 툴툴댔다. 별생각 없이 꺼낸 소소한 논박이었지만, 그건 어쩌면 랑이 멋대로 재단한 마음의 크기에, 랑이 생각하고 있었던 이 소년과의 미래에 정면으로 반박을 던지는 한 마디일지도 모르겠다. 벚꽃잎 한 장이 드리운 것 같은 랑의 분홍색 미소에, 그는 잠깐 말을 잃었다... 이삼 초 동안, 현민은 말없이 랑의 손을 맞잡은 채로 랑을 마주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닩둘이 서로 얼굴을 붉힌 채로 손을 마주쥐고 있는 이 한 쌍. 놀랍게도 아직 커플은 아니다.)
...그거면 됐어.
(현민은 당신의 턱께로 시선을 떨어뜨리며 당신의 손을 놔준다. 지금 다 먹을 수 있는데~ 하는 랑의 가벼운 말에, 현민은 랑에게 시선을 둔 채로 반문했다.)
저녁식사는 괜찮은 데서 먹고 싶은데, 지금 빼빼로를 두 봉씩 먹으면 저녁식사 할 수 있겠어?
(물론, 현민은 아직 랑의 식사량이 얼마나 엄청난지 모른다. 축구부도 식사량이 일반 학생 대비 상당한 편이고, 무엇보다 현민이 랑과 제대로 무언가를 같이 먹어본 건 크로플이 전부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랑의 식습관이 그렇게 불균형한 걸 알았다면 현민은 당장 랑의 식습관부터 뜯어고치려 들 것이다.)
그럼 옥수수~. (구황작물의 대표 삼인방이 다 나왔다. 까르륵 웃어버린 랑은 속도 없다. 당신이 보고 있을 때 눈을 마주친 분홍빛 미소, 그 미소에는 분명 부끄러움이나 수줍음도 있었지만 짓궂음도 함께 했다. 랑도 알고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포근하고 따스한 감정을 느끼고 있고, 랑은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애정어린 것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랑은 겁이 나서 기다리는 쪽을 택하고, 본인이 느끼는 감정조차 밀어냈다. 이기적이게도 그럼에도 당신은 다가와주면 했고, 얄궂게도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꺼내보았다.) 응- (당신이 그 작은 조각 하나로도 되었다고 해주어서 다행이다. 랑은 이삼초 되는 시간 동안 당신이 그나마 덜 상처받기를 바랐다.)
할 수 있는데에. (오독오독. 랑은 빼빼로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빼빼로 두 봉지가 많은가에 대한 고찰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피타이저라고 밖에 못하겠다. 먹깨비 랑이 먹은 만큼 컸다면 당신보다 키가 컸을 지도 모른다.) 응- (다음 목적지는 라커룸. 밖에 서있으면 되려나- 라커룸은 어딨더라- 생각한다. 라커룸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들어갈 수 없는 걸 안다. 축구장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 난리법석이었는데, 라커룸까지 외부 학생이 들어갔다가는 큰일나겠지 싶다. 무엇보다 옷 갈아입는 곳이고.) 진짜 선수같아. 14번 채현민 선수~. (랑에게 운동에 대한 동경은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서 문득 그런 말을 했다.) 나중에 경기 같은 거 하면- 보러가도 돼?
아니 가지가지 다 나오네. (와중 빨간 건 하나도 없는 게 얄미워서 툭 덧붙인다.) 아주 사과나 딸기까지 나오시겠다.
(랑이 그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그래서 도망가거나 밀쳐내지 않는다면, 이 관계가 행복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다면, 그런 상처는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정말로 행복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도망가거나 밀쳐내지 않는 게 호의 때문인지 강압 때문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따금 자신감이 떨어지고 이따금 이것이 맞는지 의심하게 될 뿐이다. 절망과 의심은 무지에서 나오니까. 연애라곤 해본 적도 없는 쑥맥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렇기에, 랑이 그 개구진 웃음에 실어주는 조그만 수줍음 한 조각씩이 이 쑥맥에게는 어떤 이정표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 쪽이구나.)
아, 뭐 그러면야... (현민은 망설임없이 두번째 봉지를 뽁 터서는 하나를 집어들고, 이번에는 자신이 랑의 입에 내밀어보았다.) 이거 다 먹고 나면 애들이 다 집에 갔겠지.
(그러고 보면 교실에서 이렇게 붙어앉아 빼빼로를 까먹고 있던 이유가, 애초에 다른 아이들이 다들 환복을 끝내고 제 갈 길로 흩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라커룸 옆에서 랑이 얼쩡댄다고 얼레리꼴레리 메들리를 부를 장난꾸러기는 없을 것이다. ...역시 들어가는 건 곤란하지만. 라커룸이라는 스포티한 용어를 써서 그 센시티브함을 체감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한자어로 바꾸면 "탈의실" 이다.)
원래 등번호는 잘 안 부르지만, 네가 불러주는 건 좋네.
(만일 진짜로 프로리그에서 뛰게 되면 등번호는 14번을 달라고 해야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현민은 빼빼로를 오독오독 먹으면서, 문득 창가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아이들이 얼마나 남아있나 내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현민은 중얼거렸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이런 풍경이구나.
(너는 이렇게 날 바라보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있던 현민의 귀에 랑의 질문이 낭랑하게 와닿는다. 현민은 조금 말을 더듬었다.)
응, 어? 어, 괜찮아. (그리고 조금 생각해본다.) 근데 보러 올 거면 톡 하나 넣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