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울겠다~. 나 이제 아주머니한테 혼나는거야? (랑은 아무렇지 않았다.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분명 다른 사람에 비해서 약간의 배려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겠지만, 랑은 그렇지 않기 위해서 연습했다. 당신은 지금 미안해하고 있을까 싶지만, 그 이유없는 미안함은 닿을 곳이 없다. 오히려 랑은 당신을 놀리는 말과 함께 방긋 웃었다.) 응- 그러면 아파- (당신이 아랫입술을 깨문 것을 보더니 손을 뻗었다. 볼을 꼬집으려고 한건데, 그러면 입술을 못 깨물지 않을까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입술을 깨물지 않게 하려던 것 뿐이니 아프게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꼬집고 있던 볼은 이어지는 당신의 말을 듣을 때도 쭉 꼬집히고 있었는데, 다 듣고나니 볼을 쭉 당겨 버린다.) 배려는 고맙지만, 배려를 넘으면 그때는 이렇게 꼬집을거야. (랑은 당신이 친구이길 바라고, 보호자가 되길 원치 않았다. 말하기 겁나던 이유들 중에는 분명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지금 먼저 주의를 건넨다. 그렇게 엄하게 말하는 것처럼 하더니 말을 끝내면 꼬집던 볼을 놓았다.) 안 그럴 거라고 믿지만! 많이 아파? 미안해- (꼬집고 있던 부분을 살짝 쓰다듬는다. 병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나 집에 혼자 간다고도, 내일 데이트 안 간다고도 말 안 했는데~. (랑은 먼저 자신의 집 쪽으로 움직였다. 당신보다 작고 느린 그 보폭의 이유를 알게되어서 신경쓰이지 않았으면 했다. 아침처럼 그저 걸음이 느리니까 보폭을 맞춰주면 하고서 바랐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울긴 뭐가... (꼭 꼬집어서 쭉 늘리니 탄탄하게 늘어난다. 탄력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좀더 타이트한 느낌. ...평소라면 당황해서 또 얼굴을 붉히거나 툴툴대는 소리를 하거나 둘 다 할 만한 스킨쉽이었지만, 함께 건네어진 말이 말이라 현민은 그렇게 가벼운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배려심이 어디까지가 배려심이고 어디까지가 간섭인지 아직 그는 미숙했다. 랑이 뺨을 탁 놓고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건네는 말에 현민은 있는 대로 솔직히 말했다.)
...일부러 그렇게 굴지는 않겠지만, 어디까지가 배려고 어디까지가 간섭이 될지 그 경계선을 정확히 몰라. 그래서 앞으로 뺨 꼬집을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해. 그러니까 그런 때가 오면 사정없이 꼬집어야 돼.
(현민은 집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랑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보폭은, 랑이 아침에 느꼈던 보폭 그대로였다. 랑의 보조에 맞춘 좁고 느린 보폭. 미숙한 점이 많아 스스로가 불안한 현민이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해왔던 배려를 계속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집에 혼자 간다고도 데이트 안 간다고도 안 했는데- 하는 말에, 현민은 대답했다.)
* TMI 현민이도 대충 랑이 체육시간 빠지는 이유를 짐작할 것 같으니 추가설명 랑이는 오른쪽 귀가 안 들리니까 모든 소리가 왼쪽 귀에서 들려 그래서 오른쪽에서 피해! 라고 소리쳐도 왼쪽에서 들리니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여 아니면 어느쪽으로 피해야하나 확인하려다 이미 늦어버리고 사고나기 쉽지 균형감각 떨어지는 것도 한몫해 걷는 것도 느리게 하는 정도니까 일반인들 속도로 걸으면 걷다가 잠시 멈춰서 균형을 잡아야 해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체육 시간에 수업하는 건 힘들어
>>588 운동장, 축구장, 농구장, 강당 다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축구부라고 축구장만 쓰는 건 아니고, 모의경기가 아니라 체력훈련의 경우에는 운동장이나 강당에서 진행하지만 역시 축구장이 좋으려나 인조잔디나마 잔디도 깔려있고(상관없음)
서프라이즈로 오면 그에 걸맞은 반응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마 축구장에서 모의경기 수비훈련 끝난 직후일 테고 현민이는 다른 축구부원들이랑 함께 체육선생님께 피드백받고 있을 거야 랑이가 도착할 때쯤에는 피드백 끝나고 오늘은 해산! 이라는 말을 듣고 삼삼오오 흩어지는 축구부원들 사이에서 자기 짐 챙기고 있겠네
이건 도움이되라는 TMI 왼쪽 귀가 어느 정도 들리냐면 일상대화는 ok 그래도 연습 겸 혹시모를 상황을 대비해 입모양을 보고 있기는 해 목소리가 원래 작거나 속삭거리는 경우는 꼭 입모양을 읽어야해 이어폰은 남들보다 볼륨이 많이 커야합니다 전화할때는 들리긴하지만 애매모호 헷갈리는 단어가 많다
(랑은 아직 도서관에 있어야할 시간이다. 당신을 기다리면서 공부를 하고 있어야할 시간이지만 축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단 첫번째 이유로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로 인해 공부가 손에 잡히질 않아서가 있다. 데이트를 한다고 하면 뭘 하는지만 생각해도 해본적이 없으니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로는 당신이 랑에게로 오겠다고 한 말이 어젯밤부터 계속 머물렀다. 그래서 랑은 당신은 모를테지만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어차피 공부도 안 되고, 당신은 축구부 훈련 때문에 밖에 있으니 자신이 찾아가는게 하교가 빠를거고, 굳이 훈련을 하고 피곤할 당신이 도서관까지 번거롭게 왔다갈 필요도 없고,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해줬으니까 라는 여러 합리화가 붙었다. 그렇게 이유를 여러개 붙이지 않으면 당신을 보러 축구장으로 간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서 못견딜 것 같았다.) (어제 외투를 당신에 집에 두고서 와버렸기 때문에 오늘은 마땅히 외투가 없었다. 대신 자켓까지 꼭 입고서 목도리를 하고 나왔다. 당신의 후리스는 오늘 아침 등교전에 세탁에 건조를 돌린 채로 얌전히 집에 있다. 이따 데이트에서 돌려주면 되지 않을까. 축구장으로 가는 내내 당신과 관련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축구장을 가는 일도 드문 일이다. 구경만 해봤다. 가까이 갈수록 축구장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랑은 넌 여기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만 뛰어다니고 있지는 않았다. 타이밍 좋게 왔는지 흩어지는 축구부원들이 보였다. 아마도 오늘 훈련은 끝난 모양이다. 아직 선생님이 붙잡고 있는 모습이었다면 하얀 선 위로 발을 못 넘겼을텐데, 성큼 넘어버린다. 당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이름을 불렀다. 목도리가 입가까지 올라와서 한 손으로는 목도리를 내렸고, 다른 한 손은 당신에게로 흔들었다.) 현민아- (깜짝 놀라지 않을까 기대를 하니 자연스레 웃음이 나서 미소지었다.)
선생님 아직 현민이가 경기뛰는 장면 못보셨잖아요 랑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현민이 못보셨잖아요 겨울 주말에 늦잠자다가 이불 사이에서 ( 3 3) 상태로 밍기적거리는 현민이도 못보셨잖아요 봄에 벚꽃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서 다리 흔들며 기타치는 현민이도 못보셨잖아요 여름에 현민이 수영복차림도 보셔야죠
>>607 학교 축구팀 지역결승전 응원하러 나가서 현민이만 바라보는 랑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밴드 형들이랑 인사 나누고 기타 이고 내려왔더니 웃으면서 기다리는 랑이 겨울 주말에 푸들된 현민이 몰골을 보면서 함박웃음지으며 흔들어 깨우는 랑이 벚꽃나무 그늘 아래서 현민이 뒤 잡고 눈 샥 가리면서 누구게~ 하는 랑이 여름에 수영복 랑ㅇ... (체포당함)
(역대급으로 체육선생님의 피드백이 귀에 안 들어오는 날이었다. 도서관이 있는 A관 쪽을 힐끔힐끔 보고, 시계를 보고, 분침이 원래 저렇게 느려터진 놈이었나 속으로 불평도 해보고, 채현민 니 포지션 이야기 아니라고 안 듣냐? 하는 체육선생님의 야단도 맞고 나서야 사후강평이 끝났다. 원래같으면 채현민은 다른 축구부원들이 다 빠져나갈 때, 체육선생님을 따라 사후강평과 전술강의에 사용한 화이트보드나 운동용품 따위를 치워드리는 일을 도와드린 다음에 느긋하게 자기 짐을 챙겨 떠나곤 했다. 축구부 활동이 끝난 직후의 라커룸은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가 되기 마련이었고, 현민은 그걸 썩 좋아하지 않았기에, 선생님을 도와드리며 다른 축구부원들이 얼추 옷 갈아입고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는 평소의 관례를 무시하고 빨리 라커룸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급히 챙겼다. 아니, 챙기려고 일어서는 참이었다. 그 때였다. 현민아- 하고 명랑하게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퍼진 건.)
(저마다 빨리 짐 챙기고 하교할 생각에 어수선하던 축구장이, 잠깐 멈췄다.)
(현민은 어정쩡하게 일어나다 만 자세로 어안이벙벙한 얼굴로 랑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체육 선생님은 랑과 현민을 한 번 번갈아 바라보더니 입모양으로 '저놈 저거 어디다가 정신머리를 팔고 있나 했다' 하고 탄식을 했고, 축구부원들은 저마다 삼삼오오 흩어지려다 말고 뜬금없이 축구장을 찾아온 당돌한 1학년생을 보고 잠깐 상황판단을 했다. 이 잠깐의 침묵, 교실에서 다함께 떠들다가 일순간 별 이유도 없이 조용해지는 침묵. 유럽권에선 이걸 보고 천사가 지나갔다고 하던가? 그리고, 현민의 얼굴이 보기좋은 감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이─여어어얼~ 채현민~~" "야 넌 주장한테 보고도 안 하고 연애를" "와 찐쇼크네 무슨 돌하르방처럼 해가지고 연애랑은 담쌓을것처럼 하던 놈이" "채현민 얼굴 빨개진닼ㅋㅋㅋㅋ 와 사람 얼굴이 이렇게까지 빨개지냐"
(현민의 곁에 있던 축구부원 두셋이 현민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생각해보라. 오늘은 11월 11일이다. 빼빼로데이에 자기 부원을 당돌하게 찾아온 여자애? 빼빼로데이에 데이트를 하는데 연인이 아닐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축구부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축구부원들 중에서도 솔로가 아닌 축구부원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애인들은 보통 축구장 밖이나 자기 반, 아니면 미리 약속해놓은 장소에서 상대를 기다리게 마련이고, 축구부원들이 다 집합해있는 축구장 안으로 성큼 들어서서 자기 애인(?) 이름을 덜컥 불러버리는 건 드문 센세이션이라 할 만했다.)
아니, 좀 빠져봐 미친 놈들아... 그런 거 아냐... 주장님 저 가보겠습니다. 아니 한번만 놔주십쇼...
(현민은 몇 차례의 거친 몸싸움 끝에 장난어린 악우들의 무수한 헤드락의 요청을 뚫고 축구부원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이제 현민의 축구부 생활의 약 3할 정도가 놀림으로 채워지게 생겼다. 그렇잖아도 곱슬거리는 머리는 더 엉망진창이 돼 있었고, 어깨에 체온보존용으로 덮어놓은 후드티는 어디로 도망갈 뻔한 걸 겨우 손에 쥐었다. 긴 소매의 축구부 셔츠에, 반바지와 긴 양말, 축구화. 그리고, 홍시 풍년이라도 온 듯한 보기좋은 홍시색으로 물들어 있는 얼굴. 랑은 현민의 등번호가 14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민은 후드티를 잡지 않은 쪽 손으로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겨우겨우 정돈했다.)
웬일로 축구장에까지 왔어. 도서관에서 안 기다리고. ...지금 땀냄새 날 텐데.
(빨개진 얼굴로, 조금 머뭇거리는, 최대한 무뚝뚝하게 내려 애쓰는 목소리. 그렇지만 수줍음과 설렘이 숨겨지지 않는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