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게 낫다. (트랙탑에 들어간 손을 꼼질거린다. 주머니 손에서 손으로 장난치듯 움직이고는 배시시 웃어보인다. 랑은 당신이 계속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게 잘 넘어진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서, 그래서 그것을 배려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런 배려로 내밀어 잡고 있는 손이 시려울까봐, 당신의 손이 시려웁지 말라고 그런 것이었다. 당신이 편한 자세로 손도 시립지 않게 되었으니 만족했다.) 내년에 우리 후배로 입학해도 되겠다~. 깐쵸 후배님. (깐쵸가 머리를 꾹꾹 밀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열심히 쓰다듬어본다. 쓰다듬는게 좋아서 하는 행동이 맞는건지 긴가민가해보인다.) 놀러오면 안 돼. (시선을 피했던 당신이 랑을 바라보면, 랑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곧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면 랑은 눈웃음으로 처음 답했고, 입을 열어 다음 답을 했다.) 공부하기로 했잖아. 이렇게 공부 빼먹으려고~.
>>470-471에서 좋을 대로 선택하면 돼- 라고 한 이유는 그런 명문 운동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체육선생님이 2분이나 3분씩 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 현민주네 학교는 딱히 일반학생 체육과목 전담/운동부 전담 같은 구분 없이 체육선생님들이 모두 학년별 일반학생 체육지도랑 운동부 지도를 조금씩 분담해서 하셨어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한 아침에 투실투실한 솜이불을 휘감은 채로 쉰 목소리로 뭐냐 너 언제 왔냐... 웬일이냐... 하면서 텐션낮은 대화를 따끈따끈 나누는 이 장면 복되거든요 그러다 이제 현민이가 무심결에(무심결에 하는 행동이라기엔 엄청난 급발진이지만) 이불자락 들쳐서 랑이도 이부자락 덮어버리고
(꼼질거리고 있자면 트랙탑 주머니 안도 퍽 따뜻하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제법 따뜻해서. 이거 원래 이렇게 따뜻했던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쉽사리 얼굴이 확확 붉어지는 걸 보면 이 소년은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쓰다듬자, 확실히 기분이 좋은지 깐쵸는 머리를 들이밀다 말고 아예 식빵자세로 앉아서 손길을 만끽한다, 더 쓰다듬어 보면 발라당 뒤집어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배는 만지지 마. (하고 현민의 경험자의 조언(?)이 덧붙여진다. 놀러오면 안 된다고 랑이 딱 잘라 거절하자, 현민은 랑을 바라보며 미간을 구겼다. 현민의 얼굴 조형은 이목구비 윤곽이 두드러져 꽤 사나워보이는 편이었고, 그런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면 상황에 따라선 충분한 위협이 될 법도 했으나, 지금 랑의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는 현민의 모습은 '성이 났다' 는 느낌보단 '토라졌다' 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니까 놀러오라는 말이 진짜 놀기만 하러 오라는 말은 아니잖아. (그는 툴툴거렸다.) 그리고 공부 다 하고 놀러오면 되잖아. 우리 집에서 공부해도 되고. (확실히 그의 말에는 근거가 있었다. 오늘은 도서관이 아니라 그의 집에서 꽤 열심히 공부했고, 학과 공부에 대한 현민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성과도 거두었으니.)
(그렇지만 현민은 자신의 말에 사사로운 욕심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오늘 하루, 랑과 보낸 저녁이 그에게는 너무도 별나고 포근한 것이었기에.)
앗. (헤실헤실 웃는게 깐쵸만큼이나 랑도 기분이 좋아보인다. 깐쵸를 맘껏 귀여워하고 있다, 아예 깐쵸가 발라당 뒤집어지니 이것 좀 보란듯이 당신의 소매를 쿡 집어당겼다. 분명 당신이랑 같이 깐쵸를 보고 있는데, 신나서 그러는 모양.) 응- (당신의 충고에 조심조심 머리만 쓰다듬는다.) 뭐어. 나도 할 줄 알거든. (당신이 토라진 듯 미간을 찌푸리자 랑은 그것을 따라했다. 얼굴을 꾸깃꾸깃 접는게 어색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우스워보이기도 하는게 서투른 흉내다. 똑같이 미간을 찌푸리고서 바라보는 표정이 삐져도 안 된다고 말하는 듯 하다.) 난 진짜 놀러오라는 줄 알았지~. (당신이 툴툴거리는 소리는 내니 꾸겼던 표정을 피고서는 웃는다. 확실히 웃는 표정이 잘 어울린다. 생김새가 그랬다.) 깐쵸~. 깐쵸는 나 자주 오면 좋겠어~? (깐쵸랑 장난치면서 답을 미뤘다. 깐쵸와 잠시 장난을 치고, 깐쵸와 치는 장난이 간지러운듯 웃다 당신을 바라본다.) 집 가다가 생각나면 올게. 그대로 지나치면 되니까- (하교길에서 집을 지나쳐버리면 올 수 있는 곳. 정말이지 붕 떠 있는, 확실한 것이라고는 없는 기약이다.)
지금 시점 랑이라면.... 현민이가 먼저 잠들면 이불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아둥바둥하는게 첫번째 못 빠져나가면 현민이를 깨우려는게 두번째 (꼬집는다) 현민이가 안 깨면 포기하고 깨는 걸 기다리다가 깜빡 잠드는게 세번째 깨면 너 잠버릇 큰일나- 조심해- 하고 잔소리하는게 네번째
(길고양이가 아닌 동네 고양이인지라, 다가가기 퍽 쉬웠다. 깐쵸는 쉽게 랑을 친구로 받아주기로 한 모양이다.) (랑이 그 말랑한 얼굴을 애껏 꾸깃꾸깃 접어보이자, 오히려 불만스레 구겨져 있던 현민의 미간이 탁 풀렸다. 현민은 랑을 따라 킥킥대고 웃었다. 부끄러워하고 불퉁스레 툴툴대는 모습만 자주 보여서 그렇지, 현민의 얼굴도 웃음과 꽤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진짜 놀러와도 좋아. 방학이 있잖아. (공부에는 끝이 없다지만 적어도 학과 진도에는 끝이 있다. 공부가 끝나면 쉬는 시간도 있을 테고. 랑이 깐쵸에게 질문을 던지자, 깐쵸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액옭, 하고 울음소리라기보단 딸꾹질 소리에 더 가까운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꼬리를 휘적여서 랑의 팔을 톡톡 건드린다. 깐쵸 나름대로의 대답인 모양이다. 현민은 랑의 대답을 듣곤 랑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말이지 하랑이다운 대답이라고, 현민은 생각했다.) ─올 때 전화 한 통 줘. (그는 말했다.) 내가 다른 데에를 갔거나... 늦게 오면 내가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현민은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핸드폰과 이어버드를 꺼내서는 한 짝을 랑의 귀에 톡 꽂아준다.) (노래가 나온다.)
나랑 놀고 싶어? (당신에게 물은 것인지 깐쵸에게 물은 것인지 애매모호했다. 랑은 깐쵸의 꼬리가 팔에 닿자 까르륵 웃었고, 그러고서 말했기 때문이다. 랑은 방학에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생각해보았다. 학기 중과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학교에서 시대 도서관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누군가 옆에 있을 수 있을까, 그러길 기대하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선을 그어둔 채 넘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문자는 안 돼? (주머니에 들어있던 폰을 꺼낸다. 잠금을 풀고서 키패드를 띄워 당신에게 폰을 건넨다. 번호를 입력해달라는 뜻이었고, 전화를 걸어 당신의 폰에도 랑의 번호를 남기면 된다. 번호 저장까지 당신 마음대로 랑은 굳이 그만두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귀에 무언가 꽂혔을 때 랑은 놀랐고, 노래가 나오면 이것이 무언인지를 알았다. 노래를 얼마 듣지도 않고 꽂아주었던 걸 다시 빼버린다.) 나 노래 이렇게 듣는 거 안 좋아해. (한 마디라도 제대로 들었을까. 곧바로 빼버렸다고 보는게 맞다.) 그냥 듣는게 더 좋아. (뒤늦게 덧붙인 문장은 말하기를 고민한 티가 난다.)
(나랑 놀고 싶어? 하는 말에, 문득 주머니 안에서 랑의 손을 꼭 쥐고 있던 현민의 손에 힘이 조금 더 실린다. 아플 정도는 아니고, 말 그대로 조금 더 꾸욱 하는 정도. 그것과 비례해서 조금 더 따뜻해지는 손. 주머니 속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쵸는 능청스레 랑의 질문에 액옭, 하고 또 그 우는 소린지 딸꾹질 소린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한 번 더 할 뿐이다.) (현민은 뭐라 말을 하지 않고, 랑의 핸드폰을 받아들고는 번호를 찍어준다. 그리고 번호만 다이얼에 찍어준 채로 랑에게 되돌려준다. 그러다, 도무지, 도무지 참지 못했는지... 현민은 더럭 대답해버리고 만다.) 응. 놀고 싶어. (딱히 노는 게 아니라도 괜찮았다.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분에 넘치게도, 외람되게도, 사고에 가까운 그 충돌로 더럭 가까이 다가온 랑이 현민의 일상에 가져온... 원래라면 현민의 삶에 없었을 그 폭신한 순간들이 그에게는 기꺼웠다. 랑이 그어놓고 맴돌고 있는 선을 더럭 넘어서려 시도할 용기를 내게 만들 정도로.) (그러나 그 시도는 철저한 도어슬램으로 끝나는가 했다- 손 위에 되돌려진 이어버드로 말이다. 그러나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다가 랑이 덧붙인 말에, 현민은 잠깐 숨을 고르고 표정을 가다듬고는 핸드폰 화면을 몇 번 더 눌렀다. 이어폰이 아니라, 핸드폰 스피커로... 더 위켄드의 Blinding lights가 이어폰으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덜 선명하게, 그러나 더 잔잔하게 두 사람의 사이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깐쵸는 느릿하게 일어나서는, 꼬리를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어준다. 헤어지면서 손을 흔들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깐쵸가 먼저 대답했다. 랑은 이대로 자신의 물음이 깐쵸에게 한 것으로 마무리 되는구나 했다. 이기적이게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제 당신과 부닥치기 전만 해도 랑은 원래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의 익숙하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 뿐이라고, 힘이 실린 당신의 손을 느꼈지만 뭔가 말할 수는 없었다.) (번호가 찍힌 폰을 돌려받으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부재중이 남을 수 있는 시간, 그 잠시만 기다린 후에 전화를 끊어버린다. 당신은 그 번호를 저장하면 된다.) 응? (늦은 답을 들었다. 놀고 싶다는 답을 들어버렸다. 랑은 당신이 용기냈으리라는 것쯤은 알았고, 그것마저 모른 척 훌쩍 당신과 거리를 두려할 수 있을 만큼 이기적이지도 않았다. 더 이기적이었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바라보아도 지금은 늦었다.) 응, 이렇게. (느릿하게 흔들리는 깐쵸의 꼬리를 보았다. 스피커로부터 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노래가 끝나갈 때까지, 랑은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벌어지는 일은 전부 자업자득이라고, 눈을 한 번 꾹 감았다 떴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는 기껏 3분 남짓한 시간인데 고민이 많은 듯 했다.) 현민아. (당신을 부르고서 당신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인다.) 난 이런 거 못 해. (작게 속삭인 말은 두루뭉실했다. 한마디를 속삭이고서 귓가에서 멀어진 랑은 배시시 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