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은 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짐짓 다른 데로 돌리고 말했다.) 보러 오면 되잖아. (...목적어는, 일부러 말하지 않는다. 작은 욕심이라면 욕심일까. 이건 욕심이자 동시에 체념이기도 하다. 랑에게는 이 '보러 오면 되잖아'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자신이 이야기를 꺼낸 깐쵸에 대한 이야기인 줄로 들릴 테니까. 현민이 '보러 오라' 는 말에 담은 마음은, 그것보다 좀더 포괄적인 이야기였지만.) (뭐 가보자, 하며 가볍게 말하면서 현민은 랑의 손을 쥔 채로 현관을 나선다. 그러다 랑이 팔락거리는 누가봐도 남의 옷 뺏어입은 핏의 후리스를 보고 눈을 깜빡인다. 가만, 그러면 쟤가 원래 입고 있던 옷은 내 방에 있다는 이야기잖아.) (다시 가지러 가지 않아도 되겠어? 하고 되물을까도 했지만, 현민은 그냥 그것을 손대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뒀다가 내일, 아니면 그 이후로라도 시간날 때 랑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그래서 현민은 랑의 원래 외투 이야기는 안 하고, 세탁해서 돌려주겠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어디 넘어져서 찢어먹지만 않으면 돼. (대문이 다시 열린다. 삐이걱 하고 대문을 열고 나오자, 사거리에 면해 있는 현민이네 집 담장 밖으로 나온다. 사거리의 맞은편 귀퉁이를 보면 아까 깐쵸가 돌아갔던 슈퍼가 있다. 슈퍼의 창고 쪽으로 다가가면 익숙한 사람 발소리라는 걸 알아챈 건지, 깐쵸가 상자에 난 입구로 털북숭이 꼬리를 높게 치켜들고는 부시럭대며 걸어나와 기지개를 한번 쭉 피고는 두 사람의 발치로 다가온다.) 얘가 네 발소리를 기억했나 보다.
(언제 또 볼지 모르잖아 라는 문장에서 가르키는 건 깐쵸가 맞았지만, 당신과의 등교길과 하교길을 포함하고 있었다. 등교길에 만난 깐쵸는 당신을 만나게 했고, 하교길에 만난 깐쵸 또한 당신과의 하교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당신과 언제 등하교를 같이 할 지는 모르니 언제 또 볼지 모른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좋아해주면 그럴텐데. 간식이라도 챙겨 다닐까~. (랑은 당신이 쥐고 있는 손을 후리스 주머니 쪽으로 향했다. 후리스 주머니 속에 서로 잡고 있는 손을 넣으려고서 한 행동이었다. 밤공기에 손이 찰까봐서 자연스레 한 행동이다.) 오늘은 안 넘어져. 손 잡았잖아- (누가 손을 잡아주고 있는데도 넘어질 만큼은 아니라는 듯 조금 툴툴거렸다.) (대문을 지나서 슈퍼 쪽으로 다가갈 때만 해도 깐쵸가 자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깐쵸가 상자에서 나오더니 기지개를 피고서 다가와준다.) 깐쵸는 자기 귀여운 거 알고 있겠지? (발치까지 다가와준 깐쵸를 보고서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진짜? 정말 기억해준 거면 좋은데~.
(당신이 깐쵸를 보러 올 수도 있지만 깐쵸가 당신을 찾아올 수도 있다.) 계속 보면 좋아하게 될 거라 생각해. 나도 그랬으니까─ (하다가 현민은 자신의 손이 어디로 쑥 딸려들어가는 걸 느꼈다.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걸 보니 후리스 주머니인가 보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현민은 별 반항 하지 않고 허리를 조금 구부정하게 숙여서 높이를 대충 맞추어주었다. 랑이 깐쵸를 발견하고 쪼그려앉자, 현민도 그 옆에 쪼그려앉았다.) 자기 아는 발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내다보거든. (깐쵸는 꼬리를 세운 채로 다가와 랑과 현민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몸을 부벼, 길다란 털을 한가득 묻혀놨다. 조그맣게 골골 소리가 들린다.) 아마 알고 있을 거야. 사람들이 자길 좋아해주는 거. (문득 현민은 깐쵸가 부럽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을 지우고, 손을 뻗어 깐쵸의 정수리를 살살 문질러주었다. 깐쵸의 골골대는 소리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너도 쓰다듬어볼래?
그럼 깐쵸한테도 출석해야겠다. (그러다 의아함을 느낀다. 당신이 낮아졌다. 랑은 당신이 왜 낮아진 건가, 올려다보는 각도가 낮아짐에 고개를 갸웃이다 자신 때문임을 알았다. 후리스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고, 당신의 손을 잡고 있지 않던 남은 손으로 당신의 손을 폭 감쌌다.) 미안, 손 시릴까봐 그런건데 내가 너무 작네- 까치발 해볼까? (잠깐 까치발을 들었지만, 잘 넘어진다면서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금방 다시 내렸다. 까치발 하나마나 좁혀지는 효과가 별 없는 키차이인 탓도 있다. 별로 달라지는게 없는 키차이에 푸스스 웃었다.) 깐쵸 대단하네- 오늘 하루만에 내 발자국 소리 외운거야? (깐쵸가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몸을 부비는 것에 간지러움을 타는 듯하다. 간지러워하며 웃다가, 당신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서 깐쵸를 쓰다듬어본다.) 여기서 계속 놀고 싶다~.
그것보단, (현민은 랑의 손을 조금 더 들어올려 자기가 입은 트랙탑 주머니에 자기 손과 마주쥔 랑의 손을 쏙 집어넣었다. 부들부들한 재질이 아니라 매끄러운 재질이라 조금 아쉽다마는- 이것도 그럭저럭 따뜻하다. 늦가을 저녁바람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만큼.) 걔 되게 똑똑해. 명절이 되면 명절이란 것도 알아채는걸. (랑의 다른 손이 깐쵸를 쓰다듬자, 깐쵸는 꼬리를 살래살래 저으면서 숫제 랑의 손에 자기 머리를 꾹꾹 밀어대며 골골대고 있다. 랑의 말에 현민은 랑을 바라보다가 깐쵸에게로 시선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ㄸ.. 또 놀러오면 되잖아. 또 놀러와. (그러다가 아무래도 시선을 피하는 건 아니다 싶었는지, 현민은 용기를 내어 다시 랑에게로 시선을 올렸다.) 언제라도 좋으니까.
응, 이게 낫다. (트랙탑에 들어간 손을 꼼질거린다. 주머니 손에서 손으로 장난치듯 움직이고는 배시시 웃어보인다. 랑은 당신이 계속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게 잘 넘어진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서, 그래서 그것을 배려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런 배려로 내밀어 잡고 있는 손이 시려울까봐, 당신의 손이 시려웁지 말라고 그런 것이었다. 당신이 편한 자세로 손도 시립지 않게 되었으니 만족했다.) 내년에 우리 후배로 입학해도 되겠다~. 깐쵸 후배님. (깐쵸가 머리를 꾹꾹 밀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열심히 쓰다듬어본다. 쓰다듬는게 좋아서 하는 행동이 맞는건지 긴가민가해보인다.) 놀러오면 안 돼. (시선을 피했던 당신이 랑을 바라보면, 랑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이 곧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면 랑은 눈웃음으로 처음 답했고, 입을 열어 다음 답을 했다.) 공부하기로 했잖아. 이렇게 공부 빼먹으려고~.
>>470-471에서 좋을 대로 선택하면 돼- 라고 한 이유는 그런 명문 운동부가 있는 고등학교는 체육선생님이 2분이나 3분씩 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 현민주네 학교는 딱히 일반학생 체육과목 전담/운동부 전담 같은 구분 없이 체육선생님들이 모두 학년별 일반학생 체육지도랑 운동부 지도를 조금씩 분담해서 하셨어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드는 쌀쌀한 아침에 투실투실한 솜이불을 휘감은 채로 쉰 목소리로 뭐냐 너 언제 왔냐... 웬일이냐... 하면서 텐션낮은 대화를 따끈따끈 나누는 이 장면 복되거든요 그러다 이제 현민이가 무심결에(무심결에 하는 행동이라기엔 엄청난 급발진이지만) 이불자락 들쳐서 랑이도 이부자락 덮어버리고
(꼼질거리고 있자면 트랙탑 주머니 안도 퍽 따뜻하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제법 따뜻해서. 이거 원래 이렇게 따뜻했던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쉽사리 얼굴이 확확 붉어지는 걸 보면 이 소년은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쓰다듬자, 확실히 기분이 좋은지 깐쵸는 머리를 들이밀다 말고 아예 식빵자세로 앉아서 손길을 만끽한다, 더 쓰다듬어 보면 발라당 뒤집어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배는 만지지 마. (하고 현민의 경험자의 조언(?)이 덧붙여진다. 놀러오면 안 된다고 랑이 딱 잘라 거절하자, 현민은 랑을 바라보며 미간을 구겼다. 현민의 얼굴 조형은 이목구비 윤곽이 두드러져 꽤 사나워보이는 편이었고, 그런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면 상황에 따라선 충분한 위협이 될 법도 했으나, 지금 랑의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는 현민의 모습은 '성이 났다' 는 느낌보단 '토라졌다' 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니까 놀러오라는 말이 진짜 놀기만 하러 오라는 말은 아니잖아. (그는 툴툴거렸다.) 그리고 공부 다 하고 놀러오면 되잖아. 우리 집에서 공부해도 되고. (확실히 그의 말에는 근거가 있었다. 오늘은 도서관이 아니라 그의 집에서 꽤 열심히 공부했고, 학과 공부에 대한 현민의 취약점을 파악하는 성과도 거두었으니.)
(그렇지만 현민은 자신의 말에 사사로운 욕심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오늘 하루, 랑과 보낸 저녁이 그에게는 너무도 별나고 포근한 것이었기에.)
앗. (헤실헤실 웃는게 깐쵸만큼이나 랑도 기분이 좋아보인다. 깐쵸를 맘껏 귀여워하고 있다, 아예 깐쵸가 발라당 뒤집어지니 이것 좀 보란듯이 당신의 소매를 쿡 집어당겼다. 분명 당신이랑 같이 깐쵸를 보고 있는데, 신나서 그러는 모양.) 응- (당신의 충고에 조심조심 머리만 쓰다듬는다.) 뭐어. 나도 할 줄 알거든. (당신이 토라진 듯 미간을 찌푸리자 랑은 그것을 따라했다. 얼굴을 꾸깃꾸깃 접는게 어색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우스워보이기도 하는게 서투른 흉내다. 똑같이 미간을 찌푸리고서 바라보는 표정이 삐져도 안 된다고 말하는 듯 하다.) 난 진짜 놀러오라는 줄 알았지~. (당신이 툴툴거리는 소리는 내니 꾸겼던 표정을 피고서는 웃는다. 확실히 웃는 표정이 잘 어울린다. 생김새가 그랬다.) 깐쵸~. 깐쵸는 나 자주 오면 좋겠어~? (깐쵸랑 장난치면서 답을 미뤘다. 깐쵸와 잠시 장난을 치고, 깐쵸와 치는 장난이 간지러운듯 웃다 당신을 바라본다.) 집 가다가 생각나면 올게. 그대로 지나치면 되니까- (하교길에서 집을 지나쳐버리면 올 수 있는 곳. 정말이지 붕 떠 있는, 확실한 것이라고는 없는 기약이다.)
지금 시점 랑이라면.... 현민이가 먼저 잠들면 이불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아둥바둥하는게 첫번째 못 빠져나가면 현민이를 깨우려는게 두번째 (꼬집는다) 현민이가 안 깨면 포기하고 깨는 걸 기다리다가 깜빡 잠드는게 세번째 깨면 너 잠버릇 큰일나- 조심해- 하고 잔소리하는게 네번째
(길고양이가 아닌 동네 고양이인지라, 다가가기 퍽 쉬웠다. 깐쵸는 쉽게 랑을 친구로 받아주기로 한 모양이다.) (랑이 그 말랑한 얼굴을 애껏 꾸깃꾸깃 접어보이자, 오히려 불만스레 구겨져 있던 현민의 미간이 탁 풀렸다. 현민은 랑을 따라 킥킥대고 웃었다. 부끄러워하고 불퉁스레 툴툴대는 모습만 자주 보여서 그렇지, 현민의 얼굴도 웃음과 꽤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진짜 놀러와도 좋아. 방학이 있잖아. (공부에는 끝이 없다지만 적어도 학과 진도에는 끝이 있다. 공부가 끝나면 쉬는 시간도 있을 테고. 랑이 깐쵸에게 질문을 던지자, 깐쵸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액옭, 하고 울음소리라기보단 딸꾹질 소리에 더 가까운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꼬리를 휘적여서 랑의 팔을 톡톡 건드린다. 깐쵸 나름대로의 대답인 모양이다. 현민은 랑의 대답을 듣곤 랑을 가만히 바라본다. 정말이지 하랑이다운 대답이라고, 현민은 생각했다.) ─올 때 전화 한 통 줘. (그는 말했다.) 내가 다른 데에를 갔거나... 늦게 오면 내가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현민은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핸드폰과 이어버드를 꺼내서는 한 짝을 랑의 귀에 톡 꽂아준다.) (노래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