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뜻밖의 비유에 현민이 눈을 치뜬다. 푸들도 체급이 여러 가지고, 스탠다드 푸들은 진돗개급의 중형견이긴 한데... 보통 '푸들'이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랑이 푸들이라는 말을 꺼내면서 생각한 푸들은 조그맣고 귀여운 미니어처 푸들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어찌됐건 뜻밖의 비유인 건 맞고, 졸지에 푸들이 되어버린 까만털 푸들쉑은 까만 눈을 어이없다는 듯이 깜빡이는 것이다.) 귀엽다니 대체 귀엽다는 기준의 상태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귀는 빨개진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 스스로는 자신이 누군가한테서 귀엽다느니 하는 말을 들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다른 누군가한테서 그런 애정어린 표현을 듣는 것을, 그런 말이 오가는 평범하고 푹신한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기도 했고. 그래서 반대방향으로 치고 들어오는 랑의 두번째 질문에 현민은 조금 움찔했다.) 아니. 싫어해도 돼. 그거야 네 취향이니까. (평소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상에 동요하다 못해 동조하고까지 있었던 자기 자신이 들킨 것 같아 귓바퀴가 빨개지고, 하드케이스 여는 걸 도와주다 자신이 무심코 낸 작은 소리를 따라하는 랑의 행동이 다 들통났어- 하는 것만 같아 더 무안해진다.) 내 옷? 입고 싶으면 한 벌 빌려줄게. (해서, 랑이 하드케이스 안의 내용물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현민은 옷장 서랍을 열고는 부들부들한 검은색 후리스 한 벌을 꺼내어 랑의 어깨에 덮어준다. 대박 오버핏이지만 부들부들한 게 기분좋게 따뜻하다. 랑이 해골인형 피어싱을 갖고 만지작거리는 걸 보자 현민은 그걸 들어올려 보였다.) 어 그거.. 움직이지. 힙해보여서 비싸게 샀는데, 그게 귓가를 가려서 이어폰을 못 끼겠더라고. ...보여줄까? 착샷. 너랑 데이트할 때 그걸 끼고 나갈 것 같진 않아서.
푸-들. 커다랗고 검은 푸-들! (당신의 반응을 보아하자니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말해주었다. 깜빡거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이다가, 당신의 귀가 붉어지는 것을 보고서 갸웃거리는 건 멈추었다. 잘못 들은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보인 반응이었나보다 생각하고서는 푸스스 웃는다. 그리고 랑은 응- 하고서 짧게 고민하는 소리를 내었다.) 하긴. 귀엽다보다는 멋지다를 많이 들었겠다. (원래도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당신이니까, 더 자주 들어보지 못했을 칭찬에 이런 반응은 당연하겠다 싶다. 당신이 귀엽다보다는 멋지다를 많이 들었으리라는 생각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서 낸 결론이다. 부끄럼쟁이인 모습을 모르고서 학교에서 지내는 모습을 본다면 귀엽다보다는 멋지다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부끄러운 말이었어? 출석부에서 너 이름 부끄럼쟁이로 바꿔야겠다. 채부끄럼쟁이~. (생각보다도 더 쉽게 부끄러움을 탄다 라는 문장이 랑이 정리한 당신의 프로필에 추가되었다. 그러고 있는데 어깨 위에 무언가 덮혀진다. 흠칫 놀란 랑은 그저 후리스일 뿐임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랑이 당신처럼 눈을 깜빡인다. 한 번 입어보기는 하는데, 손도 제대로 다 나오지 않는 소매길이에 랑은 확신했다. 일어서면 허벅지까지 내려올 거라고.) 이거 맞아? 장갑은 필요없겠다. (손이 숨어있는 소매자락을 팔락거리면서 웃는다. 루즈핏도 오버핏도 아니고, 누가봐도 남의 옷 뺏어입은 핏이다. 부들부들해서 기분좋기는 했지만 담요를 입은 기분이 들었다. 어깨선이 팔뚝에 위치하고 있다.) 이거 다 사서 모은거야? 우와. (해골 인형 피어싱이 들어올려진다. 랑은 당신이 보여주겠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는데, 고개를 끄덕이면서 숙여버린다. 눈도 질끈 감아버린데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다 끼면 볼래. (무서운 걸까? 혼자서는 피어싱을 다시 못 낀다고 하더니 그 이유가 무서워서 인가보다. 귀는 어떻게 뚫었는지, 타투하겠다고는 어떻게 생각한건지 싶을 정도다. 랑은 당신이 봐도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꼭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을 생각이다.)
시끄러워잇. (채부끄럼쟁이~ 하고 놀려먹는 의도가 명확한 랑의 명랑한 목소리에, 현민은 괜시리 역정을 내면서 랑의 어깨에 후리스를 덮어씌워버린다. 어깨 선이 팔뚝까지 내려가서, 얼굴 뜨거운 와중에 쿡 하고 웃었다. 자기 몸에는 딱 맞는 후리스인데 랑의 몸에 걸쳐지니까 거의 가운 사이즈다. 랑이 손을 덮어버리고도 한참을 남는 소맷자락을 팔락거리면서 웃자, 현민은 손을 뻗어 랑의 옆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소매를 쭉 걷어 랑의 손을 소매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었다. 여러 가지로 담요를 입는다는 표현이 그럴듯하기도 하다.) 그러고 있으니까 너 어제 담요 뒤집어쓰고 있던 거 생각난다. (하면서, 현민은 랑에게서 해골 인형을 받아든다. 그러다 다 끼면 볼래~ 하고 얼굴을 쑥 가려버리는 랑의 모습에, 현민은 의아하게 눈을 깜빡인다. 그러나 왜 그러는지는 딱히 캐묻지 않고, 해골인형의 손 부분의 피어싱만을 귀에 건다. 조그맣게 딸깍 하는 소리가 조금 들리곤,) 이제 됐어. (하고 눈을 떠보면, 현민의 귓바퀴- 귓불 라인을 따라 홀을 낸 쪽의 귀에 그 해골인형 피어싱이 채워져 있다. 아니, 채워져 있다기엔 불쌍한 해골이 사력을 다해서 현민의 귓바퀴를 움켜쥐고 매달려 버티고 있는 모습이다...?) ...거기다가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왠지 이거 하고 다니면 웃는 애들이 있더라. (웃을 수도 있겠다.)
하나도 안 시끄러운데- (까르륵 즐거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시끄럽다 했을 때도, 당신의 후리스를 입으니 품과 소매가 남아도는 걸 보여주었을 때도 즐거운 소리를 낸다. 그러다가도 당신의 손이 옆머리에 닿았을 때는 조금 멈칫거렸다.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이었을 뿐인데 멈칫해버린게 과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랑은 덧붙였다. 피어싱을 뚫은 쪽의 옆머리였다면 피어싱 때문이라는 말을, 머리를 땋아넘긴 쪽이라면 머리 망가질까봐서 라는 말을 했다. 그게 조금 신경쓰였을 뿐이라고. 다음은 다시금 웃었고, 소매가 걷어진 두 손을 잼잼 쥐었다 핀다.) 오, 손 등장~. (그마저도 소매 폭 또한 넓어서 금방 흘러내릴 것 같았지만 우선은 손이 보이니 잼잼 거린다. 치렁이는 불편할텐데 소매를 걷어올리지 않는 건 입고 갈 생각이 없어서였다.) 그 담요는 너한테도 커! 진짜로. (잠시 당신이 피어싱을 끼는 시간 동안 얌전히 눈을 가리고 있던 랑은 당신이 이제 되었다고 하면 손을 천천히 치웠다. 다행히도 당신이 끼던 도중에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랑은 바로 해골 인형 피어싱을 당신에 귀에서 찾았고, 발견하고는 왠지 웃는 애들의 심정을 이해한 채 웃어버린다.) 해골 불쌍해~! (손을 쭉 뻗더니 해골이 하드케이스에 있었을 때처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여본다.) 해골 괴롭히는 기분이야. (쿡쿡 웃더니 손을 내린다. 안 그래도 당신의 귀에 대롱대롱 힘겹게 매달려 있는 것 같은 해골은 건들이니 나쁜 짓 같았다. 해골이 정말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땅에 반쯤 묻히다 맘) (잡고 있는 것도 귀여워서 오히려 못죽는..) 지금은 현민이가 얼굴빨개지느라 바쁜데, 나중에 전세역전(?)되면 허니버터뚝뚝떨어지는 주책멘트 현민이 입에서 마구 나올테니(추측) 각오하시라 아니 몸은 피곤하지만 정신은 아직 안 피곤하니까 몇 레스 정도는 더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해
조심하고 있으니까. (그의 말마따나 그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더 조심할게, 하고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랑의 소매를 걷어주었다. 랑이 손을 쥐었다 폈다 잼잼하고 있는 게 귀여워서, 현민은 그걸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정수리께를 조심스레 쓰다듬어보았다. 품이 큰 옷이니 다시 벗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현민도 당신이 그 옷을 입고 가겠다면 기꺼이 빌려줄 생각을 하고 있을 뿐, 당신이 정말로 그걸 입고 갈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담요가 자신한테도 크다는 말에 현민은 문득 땅바닥에 질질 끌리던 담요자락이 생각났다.) 그 담요 세탁은 제대로 하고 있냐? (하고, 무심코 나이들어 보이는 잔소리성 질문을 하고 만다. 그 바람에 귓가에 힘겹게 매달려있는 해골이 대롱거린다. 랑마저도 웃어버리자, 현민은 거울을 곁눈질해 본다. 그리곤 랑이 고양이처럼 툭툭 버릊는 손길에 애처로이 흔들리는 해골을 보고 마찬가지로 웃고 만다.) 이거 완전 클리프행어잖아. (현민은 손을 들어올려서 가볍게 귀 뒤편의 피스를 떼어내고 해골을 조심스레 들어올려 귓가에서 구해주고는, 그걸 피어싱 함에 넣는다. 갑자기 집 밖에서 대문 열리는 삐이걱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 어... 엄마 오셨나 보다. (그는 케이스를 닫지도 않고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기 무섭게 현관 쪽에서 삑삑삑 하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문 열리는 삐리릭 소리가 난다.) 잠깐 어머니한테 인사드리고 올게. (현민은 랑을 두고 일어서서 방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 얌전히 기다릴 수도 있고 따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살짝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인 것이 랑이가 따라나가면 현관에서 현민이랑 현민이네엄마랑 랑이랑 삼자대면하는 거고, 랑이가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현관에서 랑이 신발을 발견한 현민이 엄마가 이 막내아들쇅ㅎㅎㅎㅎㅎㅎ 이러면서 주책바가지웃음 한가득머금고 현민이네 방으로 올라옵니다 장소만 바뀔 뿐 삼자대면을 하게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조심하고 있다는 말에 말없이 살짝 눈웃음 지었고, 더 조심하겠다고 중얼거리는 입모양을 읽으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꼬리도 미소지었다.) 응- 고마워. (당신의 손길이 다시 한번 머리에 닿는다. 옆머리가 아니라 윗쪽에 닿았고, 랑은 멈칫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쓰다듬는 손길을 반기듯 헤실거리는 웃음을 보였다.) 우와, 잔소리. 하고 있어- (추워지면 가끔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데, 겨울철이 되야 담요를 꺼내기 때문이다. 담요를 세탁하러 집에 들고 왔다갔다거리는 쇼핑백이다. 그러다 당신도 해골 인형 피어싱이 어떤 모습으로 당신의 귀에 있는지 알고서 웃으면 쿡쿡 거리던 웃음이 조금 커졌다. 꺄르르 웃더니, 당신의 손이 귀로 올라가면 설마하고서 조금 놀란다. 설마하던 생각대로 당신이 피어싱을 빼면 눈을 꼭 감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때부터였다. 랑이 정신없어지기 시작한 건.) 아. 나도 같이 인사, 아니다. 인사드리고 이제 갈게! (당신의 어머니도 귀가한데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꽤 많이 놀았는지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랑은 앉은뱅이 책상에 있던 자신의 물건들을 가방에 서둘러 챙겼다. 교과서와 노트들, 필기도구까지 차곡차곡 가방에 넣었는데, 이때 깜빡한 건 외투다. 방 밖으로 나간 당신을 쫓으려다 하필 외투를 깜빡해버렸다. 당신의 후리스를 입은 채로 발을 재촉해서 당신을 쫓았다. 원래 입고 왔던 외투는 처음 방에 들어서서 옷걸이에 걸어둔 채, 그대로 남게 되었다.) 같이 가- (랑은 당신의 소매라도 붙잡으려 했다.)
(자신은 인간관계에 퍽 회의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지만- 만일 이렇게 될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은 가질지언정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은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자기딴에는 조심하게 되었다.) (랑이 헤실헤실 웃자 현민은 잠깐 이대로 영원히 이러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생각은 도어락 소리에 끊기고 말았다. 뭐야,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 (하다가, 현민은 잠깐 아 이걸 어쩌지? 하는 말을 온 얼굴로 하는 것 같은, QHD 화질로 선명하게 난감해하는 표정을 온 얼굴에 띄웠다. 그러나 그도 잠시 현민은 곧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소매를 후다닥 붙잡아오는 랑의 손을 고쳐쥐어, 손을 부드럽게 맞잡았다.) 그래, 그럼. (현민은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쥐고 계단을 내려갔다.) 다녀오셨어요 어머니. 오늘은 좀 늦게 오셨네. "그래- 요즘 세관이 하도 시끄러워서 나도 도무지 정신이 없는, 이거 누구 신발이니?" (현관으로 들어서는 늘씬한 여인이 있었다. 겉보기로는 삼사십쯤 되어 보일까? 입다물고 있으면 무게잡는 것처럼 보이는 현민과는 달리 얼굴에 명랑이라는 글자를 써붙인 것 같은, 현민의 가무잡잡한 피부의 출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눈이 랑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에 딱 멎었다. 그리고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반짝이는 노란 눈동자가 들려올라왔고... 자, 그러면 이제 당신이 나이터울이 많이 나는 두 형제를 슬하에 둔 50대의 여인이며, 그 중 맏이는 적잖이 사랑꾼 기질이 있어 연애를 잘 했는데 둘째는 좀 꽉막힌 성격이라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치자. 그런데 학창시절에 연애도 제대로 못해볼 것 같았던 둘째아들이, 조그맣고 귀여운 동급생의 손을 꼭 맞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이 때 당신이 할 반응으로 알맞은 것은?) "어머." (현민과 랑을 번갈아 바라보던 가무잡잡한 피부의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곤 온 얼굴에 보기 좋은 함박웃음이 핀다.) "뭐야 채현민~ 제 형이랑은 달리 무슨 절간에라도 들어갈 것처럼 굴어서 걱정했는데, 그런 예쁜 친구가 집에 놀러온다고 하면 엄마한테 톡이라도 한 마디 남겼어야지~ 케이크라도 사다둘 걸 그랬네." (현민의 얼굴이 죽상이 됐다. 맞잡은 손이 실시간으로 따뜻해지는 게 랑에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러니까 얘는- 내 공부 도와주러 온 거야. (얘는- 이후에 조금 뜸을 들이고 나서야 현민은 간신히 대답했다. 공부 도와주러 온 거라는 말이 딱히 어려운 말은 아닐 텐데.) "그렇구-만-?" (다 안다는 듯이 싱글벙글하면서 고개를 까닥 기울이는 아주머니를 현민은 불퉁스레 쏘아보았다.) 아무튼 얘는 하랑이... 배하랑. 공부 잘하는 애야. 하랑아. 저 분이 우리 어머니. (소년의 얼굴을 보면 올 가을에 홍시가 풍년이다.) "그렇구나. 하랑이라고 하는구나? 우리 아들이 실례되거나 눈치없는 짓은 안 했으려나 모르겠네~"
(커다란 후리스 위에서 가방이 헛돌았다. 랑은 당신이 소매를 잡은 손을 고쳐쥐어서 맞잡았을 때도 후리스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고,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후리스 위에서 한쪽 가방끈이 정처없이 어깨 아래로 주륵 흘러내릴 때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파르다는 계단을 당신의 손에 의지해서 다 내려왔을 때. 이때 가방끈을 어깨 위로 올리며 고쳐 메다가 눈치챘다. 손에 왜 부드럽고 따뜻한게 닿았는지 모르겠다. 코트에 털이 있기는 하지만, 안감으로 있는 양털이다. 교복 자켓까지는 챙겨놓고 정작 외투는 까맣게 잊어먹었다. 다시 외투를 챙기러 올라갈 수도 없고, 이미 당신의 손을 잡고서 당신의 어머니와 마주해버렸다.) (당신의 어머니에 시선이 랑에 닿았다. 번갈아 바라보던 시선이 랑에게 왔을 때, 방긋 웃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총 다섯 글자일 뿐인데도 구김없이 성격 좋고 밝다는 것은 캐치할 수 있을 만큼 사람 좋은 인사였다. 동글한 눈은 시선을 거두기 전까지 꼭 눈을 맞추고서 웃어보였다.) (그리고서 랑은 모자의 대화에 끼어들 수는 없어서 대화에 귀기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화는 당신이 낯 붉히기 충분한 이야기여서, 언뜻 당신을 올려다보자니 예상이 빗겨나갈 일은 없었다. 손에서도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도 그에서 비롯됐겠고, 랑은 기어코 당신이 불퉁스런 눈길을 보내는 걸 보고 말았다.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나도 투명한 당신의 반응에 웃음지어지고 말았다. 웃음소리라도 안 낸게 다행이다.) 앗, 네!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아주머니라고 부를게요- 현민이가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요. (짓궂은 소리를 하면서 살풋 웃는게 당신에게는 얄미워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늦게까지 있어서... 실례했습니다아. (이번에도 꾸벅 허리를 숙였다. 사과의 의미를 담은 인사 후에는, 아마 더 대화가 길어졌다가는 괴로운 건 당신 뿐일 것 같아 바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도 지금 가보려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후리스 이야기가 언급되면 그건 랑도 부끄러울 것 같았다.)
(첫 인사부터 랑이 어떤 아이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고, 더군다나 저 여인은 비뚠 구석 없이 구름마냥 몽실몽실한 아이가 자기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아주 흡족한 모양이다.) "현민이 넌 해열제 하나 먹어야 되겠다." (짐짓 걱정하는 어투지만 얼굴에는 흐뭇한 웃음이 걸려있는데, 빨개지는 거 놀려먹는 건 이 아주머니도 랑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의도치 않게 취미의 공통분모를 찾았다?) "실례는 무슨. 우리 집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얘. 아주머니가 많이는 못 준다만 이거라도 받아서 맛있는 거라도 사먹고 학용품도 좀 사렴." (그리고 자연스레 열리는 지갑. 신사임당 여섯 장이 덜컥 건네진다. 현민이 귀뜸한다.) ...안 받으면 네 소매에 쑤셔넣으려 하실 테니까 받아둬. (지금 가보겠다는 랑의 말에 현민의 어머니는 손목을 들어서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조금 걱정스럽게 말한다.) "그러네, 벌써 시간이 꽤 늦었네. 부모님께 연락은 드렸니?" (하고는, 그녀는 현민에게 시선을 돌리곤 말했다.) "이 늦은 시간에 친구를 밤길에 혼자 보낼 생각은 아니지?" (어머니의 말에 현민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집까지 바래다줄 생각이었어요. (하며, 현민은 풀어놓았던 져지의 지퍼를 지익 올렸다. 그리고는 랑을 돌아보며, 아까 랑이 했던 말을 랑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같이 가. "그래야지. 바래다주고 오렴." (현민의 어머니는 랑이 입은 후리스를 잠깐 바라보고는 웃으며 덧붙였다.) "현민이네 집에는 언제든지 와도 괜찮으니까 언제든 부담없이 와~ 다음번엔 티라미수라도 준비해 놓을게." (하고 흐뭇하게 웃은 현민의 어머니는, 난 이제 방해하지 않을게~ 하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방 쪽으로 사뿐사뿐 멀어진다. 현민은 랑에게 이제 가자는 듯 랑을 돌아보았다. 손은 여전히 꼬옥 잡은 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