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었다는 무슨 말투야-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를 입에 담았다가는 당신은 계속 불타오르고 있을 듯 싶다. 부끄럼을 이렇게나 타는 당신이고, 문제도 풀어야하는데 계속 손이 얼굴을 가르고 있어서는 펜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조용히 쿡쿡 웃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초콜릿. 바닐라 먹었으니까! (당신에게 시험지를 건네고 나서는 포크를 집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만 떠먹고, 초콜릿의 단 맛을 느꼈다.) 초콜릿 좋아해? (타이밍이 엇갈렸다. 랑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당신이 움찔한 줄 알고서 당신을 바라보았다. 설마 옆에 앉았다는 것으로 당신이 그러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랑에게서 부끄러운 것에 순위를 매기자면 데이트 신청이 아무리 생각해도 1순위였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들은 알려줄게! 틀린 문제들 풀고나서 알려주면 되겠다. (쫀심 상한다는 말에 포크를 내려놓고 펜을 집은 랑은 당신을 바라보며 장난친다.) 밴드 빌려줄까? 가방에 많은데.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웃었다. 그럼 이제 랑은 당신에게 틀린 문제를 풀어줘야겠으니, 상체를 조금 당신에게로 기울였다. 랑과 당신 사이에 놓인 시험지 노트를 같이 보아야 하게 되었으니 의식치 않고 나온 행동이었다. 랑은 조곤조곤 문제를 설명하고, 틀린 답이 틀린 이유와 맞는 답이 맞는 이유를 설명한다. 당신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본 시험이 제대로 그 역할은 했나보다. 과하게 쉬운 설명도 아니었고, 이해하지 못하게 어려운 설명도 아니었다.)
초콜릿도 바닐라도 다 좋아해. (그러면 굳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건드렸다고 움찔한 것은 아닐지도. 사실 별 이유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랑이 짐작하지 못한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아침 당시 현민이 '태연하게' 데이트 신청을 해온 이유는 현민의 열 게이지가 극도로 차오른 나머지 과부하가 걸리는 바람에 열에 무감각해져 버린 탓이었다. 그러나 아침은 아침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차라리 게이지가 터져나간 김에 영영 터져나간 채로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아침이 지나기도 전에 고쳐져 버려서, 도무지가 오늘은 빨간 날도 아닌데 온통 하루 종일 빨갰다.) 밴드갖곤 안 돼. (현민은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기에 차라리 랑의 수업에 귀를 기울이는 게 머리가 훨씬 덜 복잡했다.) (아무래도 배웠는데 잘못 이해해서 틀린 게 아니라, 아예 배우지를 못해서 풀지 못한 것이라 배우는 데에 여러 가지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야 한 덕에 가르치는 게 조금 오래 걸린다. 국어는 단지 문맥을 실수로 건너뛰었거나, 문제 출제자 스스로 자화자찬해도 좋을 정도의 고급 훼이크에 보기좋게 속아넘어간 케이스뿐이었기에 설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고, 영어는 단어는 꽤 잘 알고 있는데 문법이 취약했다. 마치 영어수업은 잘 안 들으면서 단어장만 달달 외운 것처럼. 그렇지만 단어라도 잘 알고 있는 게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수학. 녹아가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크로플과 함께 씹으면서, 현민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여지껏 2학기 내내 배운 양보다 오늘 하루 너한테 배운 양이 더 많을 것 같은데. (그러다가 현민은 넌지시 말했다.) 좀 쉬다 하는 건 어때?
초콜릿 닮아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딸기 닮았나~.(분명 곧잘 빨갛게 익어버리는 것을 보고서 하는 이야기다. 초콜릿은 피부색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씁쓸하고 단 맛이 공존하는게 초콜릿이다. 당신을 보고서 장미꽃을 떠올린 것과 같은 흐름이다.) 그럼 호- 해줄까? (상처 위에 입바람을 부는 것. 자존심이 있는 곳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있는 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랑은 생각했다. 그리고 대부분 마음은 가슴 깊은 곳 어딘가 있다고들 취급한다. 호- 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받아줄 것 같지가 않은데 .이번 농담은 꽤 많이 짓궂었다고 스스로도 결론내렸다.) 그럴 리가. (한창 당신에게 공부를 알려주다가,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하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렇지만 이쪽도 쉬고 싶기는 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과 남을 알려주는 일은 달랐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려 남은 크로플이 불쌍했다. 공부하느라 먹지도 못 했네-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랑은 당신을 따라 크로플을 한입 물고서는 오물거린다.) 지금 몇 시지- (찌뿌둥한 몸에 위로 기지개를 쭉 펴나 싶더니 뒤로 넘어가버린다. 누워버렸다.) 조금만 놀까- (하고 누워 있다가, 문득 방안에 옷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걸어둔 랑의 외투를 제외하고서 있는 당신의 옷들을 보다가.) 내일 데이트할 때 뭐 입을 거야?
...그럼, 넌 초콜릿 좋아하냐? (딸기 닮았나- 하고 놀리듯 묻는 말에, 곶감색 얼굴을 찌푸리던 현민이 랑을 바라보며 반쯤 앙갚음삼아 던진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오후는 내내 이 잔망스런 클래스메이트한테 일방적으로 점수를 내주(?)기만 했다. 현민은 호-해줄까? 하고 드러누운 랑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호- 라니... (하고 툴툴대면서 랑의 옆에 얼굴을 랑의 쪽으로 향한 채로 모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융단이 퍽 부드러운 양탄자가 누워있기 썩 나쁘지는 않았다. 문득 랑의 머리를 뭔가 조심스레 들어올리려고 한다. 들어올리는 대로 들어올려 준다면, 랑의 머리 아래로 단단하면서도 익숙한 향기가 나는 것이 놓일 것이다. 머리를 들어올린 현민의 손이 랑의 머리를 내려놓은 것은 그의 반대쪽 팔뚝 위였다.) (그리고 현민은 랑의 손 하나를 잡아 자신의 정수리 위에 얹어놓았다. 이것은, 자신을 아끼지 않고 온몸으로 감행한 일종의 보복이이다... 될 대로 되라는 듯 현민은 다시 붉어지기 시작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꼭 감았다.) 알아서 하셔.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툴툴댔다. 생각보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가지는 않았다. 현민네 집에 오고 또 세탁기 돌리랴 크로플 구우랴 하다가 공부를 시작한 게 여섯 시 사십 분경인데 한 시간 동안 문제풀이를 하고, 해설을 사십 분을 좀 넘게 했을까. 시계는 이제 8시 40분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난데없이 랑의 삶에 톡 끼어든 이 운동부 깜씨와 노닥거릴 한 시간 정도는 남아있는 듯하다.) ... (랑의 질문에 현민은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는 숙인 채로 시선만을 올려 랑을 바라보았다.) 내가 뭘 입을 것 같은데? (벽에 걸려 있는 건 점퍼, 블루종, 재킷, 가죽재킷, 야전상의 등등... 외투에 중2병의 잔재가 아직 좀 남아있다. 그 옆에 걸려있는 랑의 외투가 앙증맞다.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방 한켠의 옷장의 존재.)
>>313 (티저에 묘비세움) 참... 잔망스럽고 귀엽고... 몽실몽실할 것 같아서 손 뻗어보면 만져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이 정말 구름이라는 말이 설명을 잘했어...... 랑이랑 돌리다 보면 동일인물로 가득찬 공동묘지가 생길 것 같아 피곤하면 무리하지 말고 같이 자자 ( + +) 나도 답레 못 보고 잠들 것 같아
응, 싫어하진 않아. 왜? 나도 초콜릿 닮았어? (랑은 초콜릿과 닮은 부분을 찾아보았다.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랑은 초콜릿이라고 하면 당신이 떠올랐다. 그러고 있는 사이 당신도 옆에 누웠다. 이쪽을 바라보고 눕는 당신에 몸을 틀어 마주보고 누우려고 했다. 그때 당신이 머리를 들어올렸다. 눈 깜짝할 새 당신의 팔을 베고서 마주보게된 랑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는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손 하나가 당신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신이 무슨 의도로 그런 것인지 궁금해 당신과 눈을 맞추려고 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고개를 숙이고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얼굴을 다시 붉히면서 그러고 있는 당신을 보니 덩달아 얼굴에 열이 오르는 듯 했다. 당신만큼 새빨갛게 오르지는 않은 것 같지만, 뺨을 붉혔다. 간질거림을 느꼈고, 때문에 이건 그런게 아니라고 조금 부끄러워했다.) 이건 호-가 아니라 쓰다듬어줘야 할 거 같은데~. (웃으면서 쓰다듬었다. 라기보다는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당신의 곱슬머리가 흐트러진다. 그리고 랑은 당신의 쪽으로 조금 움직였다. 조금더 당신의 팔 안 쪽을 베고서 누웠다. 호- 해주려면 거리가 가까워야만 하니까.) 호~. (가슴팍에 입바람을 불자니, 우스운 장면이라고 생각되어 쿡쿡거리며 웃었다.) 나야 모르지이. 근데 저거 입어주면 좋겠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랑이 입고 있었던 외투다. 안감으로 양털이 들어간 베이지색의 더플 코트. 어울리는 것은 고사하고 맞을 지도 모르겠다.) 피어싱은 어느거 할거야? 고르는 것도 일이겠다~. (그 서류가방만한 하드케이스에 피어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작은 랑이 조금이라도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심술궂은 앙갚음 시도였다. 그렇지만 왠지 이러고 있다 보니 뇌가 열에 익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이렇게 조금씩조금씩, 지금 '함께 있다' 는 느낌을 확인받는 것 같은 이런 욕심 가득한 간질간질한 접촉 하나하나가 앙갚음 수단이 아니라 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에 현민은 조금 어지러웠다. 홧홧한 단계를 넘어서서 얼굴에 뜨끈하게 퍼진 온기를 머금은 채로, 현민은 눈을 감고 랑의 손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것을 느꼈다. 별 항의는 하지 않았다. 다만, 가슴팍에 와닿는 한 모금 바람 같은 입김이 혹 하고 휘돌다가 쑥스럽게 쿡쿡대는 웃음소리에 흘러나가는 것을 느끼고는, 랑과 같이 마주 킥킥거리며 웃었을 뿐이다. 조금은, 그런 게 아니건 맞건 싫지 않잖아- 하고 얼버무리려는 듯이.) 너랑 닮아서 좋아하냐고 물어본 거 아냐. 그냥. 그냥 초콜릿 좋아하냐고. 물어본 거였어. (눈을 감은 채로 좋아해도 좋아하지 않아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좋아해준다고 하면-) (그러다 아랑이 저거 입어주면 좋겠다, 하고 어떤 옷인지는 안 말해주고 팔을 들어 가리키자, 현민은 감았던 눈을 뜨고 시선을 옷걸이 쪽으로 돌렸다. ...... 그리고 다시 랑의 손가락 방향과 옷걸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단 사이즈부터가 안 맞잖아. (현민은 툴툴댔다.) 옷장에 저 비슷한 게 있긴 할 텐데. (벽걸이에 걸려있는 옷들은 검은색 일색이었지만, 저 비슷한 베이지색 파카가 있었을 텐데- 하고 그는 회상했다. 아마 있을 거다. 괜찮을지도. 피어싱이라는 말에 현민은 옆에 있는 책상 모서리로 시선을 힐끔 돌렸다. 손을 뻗으면 책상 모서리에 걸쳐져 있는 하드케이스 손잡이를 넉넉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현민은 그보다 어떤 피어싱을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남 생각 안 하는 개성강한 녀석들도 있었고, 무난하고 귀여운 것들도 있었다. 현민은 책상 위의 하드케이스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느른하게 웃었다.) 저 안에 든 것들 중에서 골라서 할 거야. (생각해보니 귀가해서 씻고 나면 투명 피어싱을 귀의 구멍에 꽂아주는 게 일이었는데 오늘은 까먹었다. 뭐 됐다... 하루 정도 피어싱 안 낀다고 일이 년씩 된 구멍이 막히기야 하겠는가.)
TMI) 열어보면 알겠지만 현민의 취향은 중2병의 잔재가 좀 남아있는 느낌 펑크 계열 피어싱도 잔뜩 있고, 크롬하츠 실버 피어싱도 십여 점인가(대부분 형님이 물려준 것) 있고, 힙한 감성의 피어싱들이 많아 그렇지만 무난하고 깔끔하고 예쁜 피어싱들도 있어 대부분 금속으로만 만들어진 피어싱이고, 주얼이 박힌 건 몇 점 정도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바보 같잖아- (머리를 헝클어뜨렸는데도 정리할 생각은 없어보이는 당신이다. 같이 킥킥 웃는 걸 보자니 랑은 조금 더 길게 웃어버렸다. 그래서 랑의 손은 다시 당신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사락사락 본래 당신의 가르마대로 머리카락을 넘겨준다. 넘겨주고나서는 ) 그럼 좋아해. (초콜릿을 좋다 싫다로 나누자면 좋다는 쪽이었다. 바닐라가 제일 좋기는 했지만, 랑은 여태 그래왔듯이 본인의 이야기는 말을 아꼈다. 무엇이 제일 좋고 싫다는 가벼운 이야기조차도. 당신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공부를 도와주는 반 친구, 2학년이 되고 같은 반이 되면 모를까 떨어지게 되면 그렇게 다시 별 것 아니었던 사이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왜에, 맞을 지도 모르지~. (툴툴거리니 웃는다. 랑이 작기도 했지만, 당신이 크기도 했다. 당신이 만약 저 옷을 입는다면 팔이 제대로 다 들어가기는 할까 싶다.) 옷장- 구경할래! (당신의 팔을 베고 있다가 상체를 일으켜세운다. 그리고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구경해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는 건데, 이제는 피어싱으로도 튀었다. 당신이 눈짓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쫓아가 하드케이스를 발견한다. 피어싱이 들어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아 케이스를 가져오는게 퍽 조심스럽다.) 피어싱보다는 총 들어있을 거 같이 생겼어~. 아니면 돈? (케이스를 여는 방법을 몰라 헤매는 듯 하더니, 금방 케이스를 열었다. 다만 아예 활짝 펼치기 전에 멈칫하고서는 당신을 바라본다. 이미 케이스를 열어버리기는 했지만.) 구경할게! (허락을 구했다.) (그러고보니 랑의 피어싱은 작고 무난한 것들이었다. 귓볼에 삼각형 모양으로 위치하는 피어싱들은 각각 흔히들 보는 작은 볼 피어싱, 하얗고 조그만 큐빅 피어싱, 작은 링 피어싱이다.)
어련히 알아서 원상복구해줄 거라 생각했거든. (랑이 다시 머리에 손을 뻗자, 현민은 별 저항 않고 다시 랑의 손길에 머리를 내어주고는 눈을 감았다. 애초에 곱슬기가 꽤 있는지라 헝클어져도 헝클어진 티가 안 나는- 다시 말해 정리해도 별로 정리한 티가 안 나는 머리였지만 어쨌건 랑의 손길이 지나가니 그래도 어느 정도 랑이 기억하던 머리모양으로 돌아왔다. 눈을 뜨지 않고, 현민은 랑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좋아하는구나... 그럼 됐어. (좋아해, 라는 그 말에 실려있는 따스한 온기가 얼굴에스며들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좋아한다는 말이 자기를 향한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기에- 그는 마음 한 켠의 조그만 산들바람을 조그만 산들바람인 채로 놔둘 수 있었다. 그러다 랑이 실없는 소리를 하자 현민은 눈을 떴다.) 진짜 입는다? 입고 나서 옷이 어떻게 되는지는 내 책임 아님. (현민은 랑의 외투를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툴툴댔다. 현민의 몸은 상당한 근육질. 아마 랑의 코트를 억지로 껴입으면 한두 군데는 터질 것이다. 랑이 구경을 하겠다며 몸을 일으키자 현민도 비스듬히 몸을 일으키며 랑이 하드케이스를 꺼내는 양을 바라본다. 바닥에 놓인 하드케이스를 랑이 열려고 낑낑대는 것을 보며,) 야 거기 손잡이 옆에 걸쇠 있잖아. 응 그거. 위로 제껴. 반대쪽도 똑같이. (하고 여는 법을 알려준다. 랑이 그걸 열어보는 걸 말릴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반쯤 열다 말고 허락을 구해오는 랑. 거절하면 정말로 다시 덮을 것 같아서, 현민은 대답 대신에 손을 뻗어서 하드케이스를 열어준다. 다만, 하드케이스 모서리를 잡겠다고 뻗은 손이 우연히 하드케이스 모서리를 먼저 쥐고 있던 랑의 손과 폭 포개어졌고, 손을 포갠 채로 두 사람이 같이 케이스를 여는 모양이 됐다.) 아. (의도치 못한 실수에 다시 얼굴이 뜨끈해지는 것 같아서 현민은 재빨리 하드케이스의 내용물로 주의를 돌렸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거리는 금속성의 피어싱들이 한가득 하드케이스 안에 들어있다!) (대부분 별다른 주얼 없이 메탈 재질로만 되어있는 그것들은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었고, 무난한 것도 있었으며 파격적인 것도 있었다. 스파이크 모양이라거나 징박힌 개목걸이 모양, 해골 손 모양 같은 것들도 있었고, 그 중에서는 관절 있는 금속 해골 인형인데 사지 끝마다 피어싱이 달려있어 귀의 피어싱 구멍 네 군데에 걸면 사지가 못박힌 형상으로 귓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괴상한 것도 있었다. 개중에는 고딕 계통의 십자가나 백합무늬 같은 것을 형상화한 듯한 앤틱한 은제 제품도 몇 점 있었고, 팩맨과 유령, 평범한 볼피어싱의 볼에 더 작은 볼 두 개가 귀처럼 붙어서 미키마우스의 실루엣을 만들어놓은 피어싱 같은 깜찍한 물건도 있었다. 물론 평범한 피어싱이나 투명 피어싱 같은 평범무난한 것들도 있었다. 별나게도 그 중에서 보석이 박힌 건 네다섯 점밖에 없었다. 마치 커다란 피어싱샵의 진열장 하나를 통째로 떼어온 듯한 컬렉션이 하드케이스 안에 질서정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너 푸들 같아. 커다랗고 검은 푸들. (눈을 감고선 가만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대로 있는 당신을 보다가 툭 튀어나온 말이다. 곱슬거리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만져보고나니 든 생각이다. 개 같다는 말은 욕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덧붙인다.) 귀엽다는 뜻이야. (랑은 다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이 머리를 헤집고 헝클어뜨리는게 아닌 차분한 손길이다.) 왜? 싫어하면 안 돼? (좋아하는구나 다음에 나온 말이 그럼 됐어 여서, 랑은 물어보았다. 싫다는 대답이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할 뿐이다. 당신이 답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캐묻지도 않겠고, 굳이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는 짓궂은 거짓말도 하지 않겠다만.) 집 갈때 큰일났네- (정말 당신이 입을까 싶어서 쿡쿡 웃기만 한다. 당신이 정말 저 더플 코트를 입어버린다면 분명 어딘가 뜯어지는 소리가 날 것만 같다. 입고 갈 수 있을만큼이면 다행이겠다고 생각한다.) 진짜 입으면 나도 네 옷 입고 갈거야. 복수한다? (복수라고 하긴 했지만 분명 랑이 당신의 옷을 입는다고 그 옷이 터지는 일은 없을 일이다.) (하드케이스로 시선이 꽂히고, 케이스를 여는 것에 헤매고 있자 당신이 방법을 알려준다. 랑은 당신의 말을 따라 케이스를 여는데 성공했고, 야호~. 하고 작은 소리를 냈다. 완전히 열어버리기 전에는 당신에게서 허락을 구하는데, 말 대신에 행동으로 답을 돌려주는 당신이었다.) 아? (케이스가 열렸을 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나 싶다. 당신이 낸 소리를 따라했다. 곧 하드케이스의 안쪽을 구경한다.) 완-전 많다~. (피어싱을 뚫은지 얼마 안된데다, 무난하고 기본적인 디자인만 하고 있기 때문에 신기해한다. 다양한 종류의 피어싱들을 피어싱샵에 갔을 때 보기는 했지만, 귀 뚫는단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 피어싱 디자인이 기억에 남을 새는 없었다.) 와아, 얘 움직여! (관절이 있는 금속 해골 모양 피어싱. 움직일까 싶어서 손가락으로 건들여보았다가 하는 말이다.)